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79
79. 레이드 후 루팅
드라센의 몸은 어찌나 큰지, 다 녹는 데까지 하룻밤하고도 반나절 이상이 소요됐다.
이젠 여관만 한 크기로 줄어든 드라센의 사체를 보면서 나는 주저앉았다.
그런 내 옆에 세이나와 세레나데가 양옆으로 밀착하여 함께 앉았다.
자연스레 두 여성의 어깨나 허리에 팔이 올라갈 법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덜덜덜덜…….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영약을 세 알이나 먹었다.
‘주, 죽을 뻔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었다.
핼쑥해진 나와 달리 세레나데와 세이나는 윤기 나는 피부와 충만한 얼굴로 나를 초롱초롱 올려다본다.
‘서큐버스한테 정기를 뺏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영약이 없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끄으으으……. 제, 제독님, 살아…… 계십니까……?”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엉금엉금 기어 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뒤돌아볼 기운도 없어 목소리만 듣고 누군지 알아맞혀야 했다.
“니콜라인가? 그대는 무사한가?”
“저는 괜찮…… 쿨럭, 우웩!”
괜찮다고 애써 말하던 니콜라가 각혈을 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해적들 모두가 반송장이 되어 있었다.
반대로 세이렌들은 내 양옆에 있는 여인네들처럼 윤기 나는 피부를 빛내며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그녀들은 따로 모여서 어젯밤의 여운을 수다 떨고 있었다.
“드라센도 없앴고, 세이렌도 구했고, 거점으로 괜찮은 곳도 찾았군.”
중천에 뜬 해를 보며 나는 혼잣말을 했다.
내 혼잣말을 들은 니콜라가 옆에서 우려 섞인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마법 포도 다 썼고, 아티팩트도 많이 써 버렸습니다. 배도 세 척이나 잃었고요. 이를 충당할 드라센의 사체는 저렇게 녹아 없어지고 있으니…….”
손해도 엄청난 손해라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저 앞에서 루키엘이 애타게 드라센의 사체를 조사 중이었다.
세이렌에게 정기를 다 빨려 팔과 다리를 덜덜 떨면서 좀비같이 말이다.
“손실된 재물은 걱정 마세요. 드라센은 용도 아닌 이무기인 주제에 드래곤처럼 레어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곳에는 제법 많은 보물들이 있을 거예요.”
내 옆에 붙어 있던 세레나데가 드라센의 레어에 대해 얘기해 줬다.
그녀는 어제 내가 준 붉은 코트를 여전히 몸에 걸치고 있었다.
“그런가? 다행이군.”
세레나데의 말에 나는 안도했다.
“그 레어의 위치를 아나?”
“아뇨……. 하지만 이 근처 바닷속에 있는 것은 확실히 알아요. 이따 제 아이들을 풀어 수색해 볼게요!”
“고마워, 세레나데.”
“헤헤…….”
내 칭찬을 들은 세레나데가 뭔가를 기대하듯이 좀 더 옆에 가까이 붙었다.
살짝 허리를 숙여 뭔가를 바라는 듯한 모습.
그 모습에서 귀여운 강아지가 연상되었고, 자연스레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세레나데의 머리를 나도 모르게 쓰다듬었다.
그녀가 부르르 떨면서 기뻐한다.
“정말입니까, 형수님?!”
나와 세레나데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키엘이 난데없이 난입해 물었다.
하긴, 마법사의 귀에 이무기의 레어가 들렸으니 눈 돌아갈 만하지.
그나저나 세레나데는 언제부터 형수님 칭호를 듣게 된 것일까?
“네, 맞아요. 드라센에게 먹히기 전에 그의 레어 안에 갇혀 있었거든요.”
세레나데가 다시 한번 확답해 주자.
“오, 제르다시여, 감사합니다!”
이젠 하다 하다 마법사가 제르다까지 찾는다.
“드라센의 사체에서 아무것도 구하지 못해 슬펐는데, 레어라도 있으니 다행입니다.”
그런 루키엘의 말에 세레나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드라센의 사체에서도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을 거예요.”
“!!”
그 말을 들은 나와 루키엘의 시선이 세레나데에게 동시에 꽂혔다.
“마, 마스터, 그렇게 뜨겁게 봐 주시면 저도 다시 뜨거워질 수 있는데…….”
“……?!”
옆에 붙어 있는 세레나데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또 했다간…….’
나는 살기 위해 급히 시선을 돌렸다.
“형수님! 이무기의 사체에서 어떤 부산물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반면, 그녀의 무서움(?)을 모르는 루키엘이 나를 대신해 질문했다.
“안 그래도 저기 나타나고 있네요.”
세레나데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곳에는 어느덧 거의 소멸 중이던 드라센의 사체가 있었다.
이젠 머리의 끝부분만 남았지만, 크기는 여전히 마차만 했다.
한데 그 마차 크기의 드라센의 머리 끝부분이 갑자기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한다.
루키엘은 물론, 나와 니콜라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놈의 사체 앞으로 향했다.
“새?”
빛이 사라지고 드라센의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 존재가 드라센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은 대략 알 수 있었다.
새의 깃털이 드라센처럼 하늘색 크리스털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와~ 마스터! 탈것이 생겼네요!”
옆에서 세레나데가 총총 뛰면서 기뻐했다.
“축하드려요~ 마스터!”
세이나도 마찬가지로 폴짝 뛰면서 기뻐했다.
“이 새는 뭐지?”
“본래 드라센은 황금시대에 신수였던 존재였죠. 암흑시대에 마기에 오염돼 이무기라는 괴수가 된 것이고요.”
내 물음에 세레나데가 친절히 설명해 줬다.
“신수?! 설마, 이 새가 전설의 그랑블루인 겁니까?!”
루키엘은 뭔가 안다는 듯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랑블루? 황금시대에 그런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기도 하고…….”
“맙소사…….”
“아는 새인가?”
“요즘에는 잊힌 존재입니다. 저도 과거 아흐마흐 유적에서 나온 황금시대 문헌으로 얼핏 안 것이니까요.”
“뭐 하는 새인데?”
“말 그대로 신수입니다. 황금시대에도 꽤 귀한 취급받았던 신수. 하루에 대륙 전역을 날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사방을 얼려 버릴 정도로 마력이 강한 신수입니다. 모든 화염에 강한 저항력을 지녀서 암흑시대에는 지옥 불 마족들이 싫어했죠.”
루키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세레나데를 힐끔 보았다.
그녀는 루키엘의 말을 들으면서 틀린 내용이 없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세레나데, 탈것이라고 했는데 이 새를 탈 수 있다는 건가?”
“맞아요, 마스터. 황금시대 말기에는 수많은 소드 마스터들이 이 신수를 탔지요.”
황금시대 얘기가 나오니, 세레나데의 나이가 새삼 실감된다.
어찌 보면 지금쯤 마계에 있을 에르카네와 동년배 아닌가?
“……과거의 나도 이 새를 즐겨 탔나?”
“아뇨. 마스터는 굳이 탈것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이와 함께 점점 심오해지는 나의 과거다.
마음 같아선 수명이 갈리더라도 영약을 다섯 개 정도 먹고서, 이틀 내내 세레나데를 혼내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내 과거를 캐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영영 힘을 못 찾을 수 있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쓰러져 있던 신수 그랑블루가 깃털을 푸다닥 움직이더니 몸을 일으켰다.
“키이이이.”
놈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를 보면서 경계를 보였다.
“아무리 봐도 나를 태워 줄 것 같지는 않은데?”
“길들여야죠. 세이나를 꼬실 때처럼 해 보세요!”
뒤에 있던 세이나가 세레나데의 말에 얼굴을 붉혔고, 뜬금없는 세레나데의 말에 나는 이해되지 않아 되물었다.
“내가 세이나를 언제, 어떻게 꼬셨는데?”
“어머, 마스터! 나쁜 남자였군요……. 우리 세이나, 불쌍해서 어떡해…….”
“괘, 괜찮습니다, 여왕님. 이분은 이런 점이 매력이니까요…….”
두 여자의 콩트를 뒤로하고 나는 어느새 그랑블루라고 불리는 신수에게 조심히 다가갔다.
‘세이나를 꼬셨을 때처럼?’
그랑블루에게 다가가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세이나, 저 세이렌이 내게 언제부터 야릇한 시선을 보냈더라?
“?!”
그러다 그녀의 볼에 마나를 불어 넣었던 때가 떠올랐다.
실마리가 잡히자 그 뒤론 망설임이 없었다.
과감히 그랑블루의 커다란 부리에 손을 얹었다.
녀석은 이제 막 깨어나서인지 날아오르긴커녕, 거칠게 저항할 힘도 없는 듯싶다.
“크르르르르르.”
말하는 것도 잊어버린 고대의 신수.
상처 입은 아이 달래듯 쓰다듬으며 부리를 통해 마나를 주입했고.
“키이이이?”
이윽고 그랑블루가 경계를 서서히 해제했다.
그랑블루는 어느새 자신의 부리를 내 손에 비벼 대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길들일 수 있는 거야?”
“그야, 마스터의 기운이 특별하니까요.”
‘……무슨 페르몬 같은 건가?’
“키에에엣!”
그때, 내 손에 커다란 부리를 비비던 그랑블루가 갑자기 날개를 크게 벌렸다.
그리고 또다시 온몸에서 눈부신 빛을 뽐내더니, 줄어들었다.
“이건 또 왜 이러는데?”
그랑블루는 어느새 내 팔뚝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키킷, 키킷.”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 오른쪽 어깨에 올라탔다.
“아직 힘을 다 회복하지 못해 크기를 줄인 거 같아요.”
세레나데가 내 어깨에 올라탄 그랑블루를 팔을 뻗어 쓰다듬었고, 녀석은 기분 좋다는 듯이 세레나데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즐겼다.
“당장 탈것으로 쓰기엔 어렵겠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원래 해적 선장에겐 새 한 마리가 옆에 있는 것이 국룰이긴 하다.
‘갈고리 손은 좀 그렇지만, 해적 안대 정도는 하고 다닐까?’
이쯤 되니, 묘한 코스프레 욕심이 들 정도다.
나는 내 어깨에 올라탄 그랑블루를 의식하면서 루키엘을 봤다.
평소의 이놈이라면 해부까지 하려 들었을 텐데, 어째 잠잠하다.
“루키엘, 어쩐 일로 조용하냐?”
루키엘은 사생팬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랑블루를 바라볼 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신수의 허락 없이 신수에게 접근하거나 만지면 저주받습니다.”
참으로 단순한 이유였다.
“빙결의 신수께 미천한 마법사가 감히 청합니다.”
루키엘은 그랑블루를 향해 절하듯 무릎을 꿇은 뒤, 마치 율카네스에게 말하듯 최대한 공손히 청했다.
“괜찮다면 당신의 옛 둥지를 안내받을 수 있겠습니까?”
“둥지라면 드라센의 레어를 말하는 건가?”
내 말에 루키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수를 못 만질 바엔 차라리 이무기의 레어라도 찾겠다는 의지.
“키잇?”
그랑블루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목을 앞으로 내밀고는 마치 나침판처럼 부리로 남쪽 방향을 가리켰다.
“오오~ 감사합니다, 신수시여!”
“어서 가자!”
나 또한 신나서 남쪽으로 달렸다.
세레나데가 그런 내 뒤를 총총 쫓는다.
“세이나, 어서 가서 아이들을 소집해!”
“알겠습니다, 여왕님.”
아리따운 세이렌에, 추후 탈것으로 쓸 수 있을 진귀한 신수에, 이무기의 레어까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까?
‘마치 레이드를 마친 후에 즐기는 루팅 같군.’
* * *
몇 달 후.
내해, 동방 항로 초입.
북부왕국동맹의 동방무역 해협 인근.
“견시들뿐만 아니라 나머지 놈들도 경계에 집중해!”
중대형 항해선으로 구성된 펠리오의 큐리오 선단은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특히, 각 상선의 선장들은 불안함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펠리오 반도다! 힘을 내!”
힘든 것은 선장뿐만이 아니다. 선원들 또한 선장의 갈굼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해양 괴수인지 뭔지, 그냥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죽는 게 편할 거 같아.”
원래도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유명한 대양 항해다.
그런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경계 당직을 서야 하니, 곳곳에서 쓰러지는 선원들이 속출했다.
풍덩.
“누가 바다에 빠졌어!”
“내비 둬, 자살일 수도 있으니까.”
하루에도 바다에 빠지는 선원이 두세 명씩 발생했지만 아무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사고로 빠진 건지 자살인지 확실치도 않았고, 동료를 구조하느라 육지로 가는 시간이 미뤄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어?! 선장님! 전방에 대규모 선단이 보입니다!”
“오오! 펠리오에서 마중 나온 것인가? 함대 깃발이 무엇이냐? 청명 함대냐? 아니면 대백 함대냐?”
선장이 기뻐하며 망원경을 들고 함수로 달렸다.
“드디어 잠 좀 잘 수 있겠다!”
“하아, 살다 살다 해군이 반갑게 느껴질 줄을 몰랐어.”
그 말을 들은 선원들도 환호했다.
“그게, 선장님! 처음 보는 깃발입니다.”
견시의 말과 함께 선장은 망원경을 들어 전방을 봤다.
“저 깃발은 뭐지?”
검은색 바탕에 해골이 그려진 깃발.
그런 깃발을 가진 배가 적어도 수십 척은 넘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