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8
8. 공작가의 역대급 부부싸움
몸 전체에서 풍기는 지적인 아우라. 세침함과 귀여움이 섞인 고양이상의 예쁜 외모.
어두운 성에서 입은 수수했던 옷차림과 달리, 지금 그녀가 입은 옷은 공작가 안주인의 위치를 나타내는 적당한 화려함을 품은 드레스였다.
‘헐, 그럼 내가 공작 부인에게 공주님 안기를 했던 거네?’
도대체 왜 그런 수수한 차림으로 수행원 한 명 없이 성으로 왔는지.
‘자칫 잘못했으면 저택이 아니라 감옥으로 끌려갈 뻔했어.’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늦었지만 공작 부인에게 경례를 올렸다.
마비됐던 이성이 제자리를 찾으니, 뒤이어 공작 부인 주변까지 살필 수 있었다.
‘그때 도와준 시녀도 저택으로 왔구나! 역시나 보통 배경이 아니었어.’
성에서 도와줬던 그 시녀 또한 공작 부인을 수행하는 시녀들 사이에 껴 있다.
그 시녀를 보니 뭔가 안도가 되면서도 기뻤다.
“흐음?”
공작 부인 이노는 로니아드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자신의 뒤쪽에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의 시선이 향한 방향을 살짝 보았다.
‘시녀와 기사가 종종 눈이 맞기는 하지.’
공작가에서 자신 같은 고위 귀족을 직접 대하는 시녀는 신분이 낮지 않다.
최소 하급 귀족가의 차녀 정도 된다.
즉, 종종 기사와 시녀가 눈이 맞아 결혼도 한다.
‘하지만 저분의 진짜 신분을 알고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마친 이노는 성큼성큼 로니아드에게 걸었다.
이노가 로니아드에게 다가갈수록, ‘이 여자가 왜 나한테 오는 거야?’라며 로니아드는 당황했다.
‘공작 부인이 저 신입을 주시하시는군.’
‘역시 아까 했던 핏줄 부정은 구라야.’
‘저 녀석, 아니, 저분에겐 신고식은 절대 시켜선 안 돼!’
기사들은 ‘과연!’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로니아드 경?”
“네, 공작 부인.”
이노는 상큼하게 웃으며 오직 로니아드만이 들을 수 있게 작게 말했다.
“저번엔 고마웠어요.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시녀장에게 말해 놓을 테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잘 알겠지만, 그때 있었던 일은 퍼트리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이스를 비롯한 기사들이 들을 수 있던 내용은 로니아드의 간결한 답례뿐이었다.
“그럼.”
이노는 짧게 인사 후에 연무장을 떠났다.
휘이이잉~.
공작 부인과 그녀를 수행하는 시녀들이 떠난 연무장은 휑한 바람만이 불었다.
“로니, 아니, 로니아드 님? 정말 렌슬렛과 아무 관련이 없는 거 맞아……요?”
이스가 다시 조심스레 물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내가 지금 아무리 부인해 봤자, 전혀 신빙성이 없을 상황이다.
오히려 과장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차라리 잘된 것인가?’
다시 나를 조심스레 보는 시선들.
‘텃세나 신고식 같은 악습은 이젠 받지 않아도 되겠지?’
처음엔 낭패라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쁘지 않다.
‘렌슬렛은 나랑 너무 안 맞는 거 같아. 후딱 목표나 해결하고 방랑 기사로 떠나야지. 이 정도 무력이면 어디 가서 굶진 않겠지, 뭐.’
어수선한 훈련을 마치고 식사까지 해결하니 해가 지고 있었다.
“아, 나 오늘 야간 당직이지?”
훈련에 야간 당직까지. 뭔가 재입대한 기분이다.
‘역시 방랑 기사가 좋을 거 같아.’
다시 한번 렌슬렛 탈출을 결의하는 나였다.
* * *
“로니! 당직 들어가는 거야? 어디에서 서는데?”
“서문 쪽 안뜰. 순찰 당직이야.”
다른 기사들과 다르게 이스는 나를 다시 편하게 대했다.
‘넉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저 녀석도 만만치 않은 배경을 가진 것인지.’
아마도 둘 다 같다.
이스트라는 내 말을 듣더니 마침 생각 난 듯 조언을 해 줬다.
“서문 쪽이면 사냥터와 가까워서 종종 짐승들이 굴을 파고들어 올 때가 있어.”
“경보 마법이 있지 않아?”
“가끔 관리 소홀로 작동 안 할 때가 있거든.”
“고마워. 참고하도록 하지.”
제법 도움이 되는 정보다.
순찰을 돌면서 굴 같은 게 있는지 봐야겠다.
“기사님, 기사님 말씀대로 굴 같은 게 몇 개 보입니다.”
“…….”
병사 둘과 순찰을 돌면서 이스의 말이 생각나 굴이 있을 법한 곳을 집중해서 보았다.
굴은 어린아이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크기였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굴 같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있을 줄이야.’
문득 아까 조언을 해 준 이스트라가 생각났다.
‘단순히 우연일까? 아니면 알고 있던 것일까?’
어쨌든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딴맘을 먹었다면 애초에 알려 주지도 않았을 테니까.
“코넬은 서둘러 당직실에 보고해. 나는 당직 마법사에게 가겠다. 제롬은 여기서 지키고 있고.”
렌슬렛에도 마법사들이 거주한다.
제국이나 왕도처럼 마탑의 형태로 있지 않지만 말이다.
나는 일부러 직접 당직 마법사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음했다.
‘이 세계로 온 후로 마법사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어.’
서문 당직실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마법사들이 근무하는 건물이 있다.
건물 입구에는 병사 셋이서 경비를 서고 있었는데, 기사 제복을 입은 내가 나타나자 별 제지 없이 통과시켰다.
‘벨?’
과연 마법사가 거주하는 곳이라 그런지 문 옆에 호출 벨처럼 생긴 것이 보였다.
실제로 아래에 호출 시 노크 대신 누르라고 쓰여 있다.
꾹!
나는 벨을 꾹 눌렀고, 은은한 멜로디가 문 안쪽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10초 정도 있었을까?
문이 열리더니,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마법사가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나왔다.
“기사께서 무슨 일이십니까?”
“서문 순찰 도중에 짐승의 짓으로 추정되는 굴이 몇 개 발견됐습니다.”
호기심에 문 안쪽을 살짝 훔쳐보면서 말했다.
안에는 언제든 통신 마법을 송수신할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그래서요?”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마법사의 반응에 나는 얼이 빠졌다.
바로 표정을 굳히고는 마법사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서문은 사냥터와 가깝습니다. 그런 서문 벽 아래에 굴이 생겼다는 겁니다.”
나는 마법사의 더 심드렁한 표정을 보곤 재빨리 말을 이었다.
“굴이 생길 동안 경보 마법이 발동되지 않았으니, 이에 대한 대처를 해 달라고 요청하려고 방문한 겁니다.”
내 말에 마법사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만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새로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아, 그래서 그렇군.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니 그렇게 오버하지 않아도 됩니다. 앞으론 굳이 여기까지 방문하지 마시고, 당직실에 보고해 두면 조만간 수리에 들어갈 겁니다.”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대답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문 안에서 “요즘엔 신입 기사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 알려 주나?”라는 투덜거림이 들렸다.
‘원작에서도 마법사들은 폐쇄적이고 싸가지가 없었지. 직접 마주하니 진짜 재수 없군.’
이 세계에서 마법사에 대한 첫인상은 덕분에 좋지 않았다.
다음 날, 저택에서 유일하게 친분을 나눈 동료 기사 이스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했다.
“로니 너도 참 팔자가 사납다. 설마하고 말해 줬는데 그날 순찰 중에 굴이 뚫릴 줄이야. 참, 허허허.”
이스는 자신도 신기한지 허허 웃어 댔다.
“일단 네가 어제 한 대처는 정석대로 잘한 거야.”
“근데 왜 그 마법사는…….”
“그게, 원래라면 네가 한 방법이 맞는 건데, 알다시피 마법사와 기사의 사이는 썩 좋지 않거든. 꼴에 라이벌 의식이랄까? 그러다 보니 어제 같은 문제가 생겨도 기사들은 마법사에게 얘기하지 않고 당직실에만 보고해.”
“그렇군. 그럼 저 굴은 우리가 없앤다 치고, 경보 마법 수리는 언제쯤 되는 건데?”
내 말에 이스는 뭔가를 계산하고 추측하는 듯했다.
“어제 당직 일지에 써 놨으면, 하급 서기관이 취합해서 행정부에 올리고, 행정부에서 마법부로 회의 때 이 내용을 전달할 거니까, 빠르면 열흘 정도 걸리지 않을까?”
“열흘씩이나 걸린다고?!”
이스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이스는 오히려 나는 이상하다는 눈치로 쳐다보며 말했다.
“오히려 열흘 정도 그 굴로 토끼나 여우 같은 짐승들이 오면 시종과 시녀들이 좋아할걸? 잡아서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공작 부인께서 자애로우시다고 해도, 아랫것들 식탁에 매끼마다 고기가 오를 정도로 공작령이 풍족한 건 아니거든.”
“하지만 토끼 같은 동물이 아닌 맹수나 몬스터면?”
“명색이 공작 저택 인근이야, 로니. 몬스터는 물론 맹수는 씨가 마른 지 오래야. 사냥터라 해도 레이디나 귀부인들을 위한 사냥터라 토끼 같은 초식동물들뿐이야.”
“하지만 어제 발견한 굴은 제법 컸어. 어린 소년 정도는 통과할 크기였으니까.”
“그래? 이번엔 사슴 고기를 먹게 되려나?”
“…….”
이스의 태도에 나는 더 하려던 말을 관뒀다.
“크흠, 혹시 모르니 주변에 경고는 해 두지.”
그런 내 모습에 이스는 헛기침을 하고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내게 작게 말했다.
“로니, 너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잘 이해가 안 갈 거야. 게다가 너에 대한 소문 때문에 공작가의 떠도는 얘기를 마음 편히 해 줄 사람도 없잖아?”
역시나 뭔가가 있었나 보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이스의 말에 집중했다.
양 귀에 마나를 분배했을 정도로.
“사실, 보안 문제에 열흘씩이나 걸리는 게 정상이 아닌 건 맞아. 이건 단순히 기사와 마법사의 사이가 나쁘기 때문만은 절대 아니거든.”
“파벌 싸움이라도 있는 거야? 공작가에?”
내 말에 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아! 지금, 아니지, 약 10년 전부터 렌슬렛 공작가에는 두 개의 파벌이 있었어. 그리고 어제 당직을 선 당직실의 중급 기사와 당직 마법사는 서로 파벌이 다르지.”
나는 이스의 말을 듣고는 내가 읽었던 원작의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봤다.
애초에 메인 히로인 중 한 명인 아리아의 가문인 렌슬렛의 배경 설명은 깊지 않았다.
그저 렌슬렛의 공작 부인과 렌슬렛 공작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고, 이로 인해 결국 공작 부인이 죽었다는 설정이 전부다.
‘부부싸움이 결국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게 될 정도로 극단적으로 변했다는 게 문제지만.’
하긴, 평범한 부부싸움은 아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깊게 연관되어 있으니까.
“공작 부인과 렌슬렛 공작, 두 분의 파벌을 말하는 거야?”
“너도 대충은 아는구나? 그럼 더 이상 얘기할 필요는 없겠군. 이런 얘기는 괜히 꺼낼수록 위험할 테니.”
말을 마친 이스는 주변을 살피더니 내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고는 자리를 떠났다.
이스가 떠나고 홀로 남은 나는 원작의 내용으로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 봤다.
‘원작에선 결국 렌슬렛 공작이 자신의 아내이자 공작 부인인 이노를 죽이는 것으로 비극이 시작된다.’
10년 전, 룬-아르미다츠 왕국 시절.
개혁 군주 라이오스 국왕을 지지하던 국왕파와 라이오스 국왕에 대적하던 귀족파의 내분이 있었다.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심화 됐던 갈등.
하지만 그 갈등의 끝은 허무했다.
당시 개혁 정책을 펼치던 라이오스 국왕이 갑자기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국왕파 귀족들이 패닉에 빠져 있는 동안, 귀족파 귀족들은 국왕의 남동생 체스카드 공작을 앞세워 체스카드 왕실을 세운다.
그 반정(反正) 이후 펼쳐진 숙청과 암투!
내전으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국왕파 귀족들이 몰락하는 계기가 됐다.
로니아드의 가문 칸브라만 남작가도 그 당시에 몰락했다.
‘공작 부인 이노의 가문은 옛 국왕파의 레미앙 백작 가문이었어. 나의 칸브라만 남작가 또한 국왕파 가문이었고. 반면에 렌슬렛의 공작 하이든 폰 렌슬렛은 전형적인 귀족파 인물이지.’
이노와 하이든이 결혼을 한 시기는 라이오스 국왕이 죽기 약 2년 전.
당연한 얘기지만, 정략결혼이었다.
당시만 해도 선대 렌슬렛 가주가 살아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 렌슬렛은 귀족파가 아닌 정통적인 국왕파였다.
렌슬렛이 귀족파로 노선을 바꾼 것은 지금의 가주 하이든 폰 렌슬렛이 가주가 된 후부터다.
‘이걸 보면 이노 그 여자도 참 불쌍한 팔자야. 정략결혼에, 끔찍한 결혼생활에, 결국엔 남편에게 살해까지 당하니.’
그렇게 혀를 차는데 문득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그런데 이노가 언제 공작에게 죽지? 이번 겨울에 아리아 영애의 몇 번째 생일 파티가 열린다 했었지?!’
품을 뒤져서 전에 정리해 놓은 원작 노트를 펼치고는 손가락을 이용해 시기를 계산해 봤다.
“올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