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knight in a fantasy novel RAW novel - Chapter 85
85. 취중진담(?!)
아까 더러워서 손도 못 올렸던 테이블 위로 앨리스가 기어 다니듯 올라왔다.
그리고 비틀비틀 기어서 로니아드를 향해 다가온다.
‘앨리스의 주사는 단순히 엉겨 붙는 수준의 주사인가? 그나마 다행…….’
이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앨리스가 입고 있던 망토를 스르륵 벗기 시작했다.
넝마가 되어 속옷이 비치는 드레스가 보였고, 이어서 드레스도 벗으려 한다.
“오, 이런…….”
앨리스의 주사 유형을 파악한 로니아드는 신음을 흘렸다.
“앨리스가 이런 주사를 가졌다니…….”
카디나가 신기하다는 듯 말릴 생각도 안 하고 이 상황을 구경한다.
“저, 저, 저, 저! 미친년이 뭐 하는 짓이야?!”
아스카가 앨리스 못지않게 얼굴을 붉히더니, 어쩔 줄 몰라 했다.
“으으으흥~ 로니아드 경, 제가 경을 어떻게 생각하는 줄 알아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했는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흐트러진 모습을 한 앨리스가 로니아드 앞으로 기어 왔다. 그리곤 그의 허벅지에 앉았다.
“네크 슬라이스!!”
더 이상 일이 커지기 전에, 로니아드는 앨리스의 목을 손날로 후려쳤다.
앨리스는 비명도 못 지르고 의식을 잃었다.
“카디나, 망토 가져와.”
카디나에게 앨리스가 벗은 망토를 받은 뒤 다시 그녀에게 입혔다.
“앞으론 얘한텐 술은 먹이지 않는 거로 하지.”
“동감입니다.”
로니아드의 말에 카디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주사를 핑계로 한번 해 봐?’
아스카만이 음흉한 생각을 하느라 로니아드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 날도 서서히 밝고 있으니, 빈방을 계속 찾아보자. 돌아다니면서 얘가 입을 옷도 구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1층으로 내려온 투숙객은 없는 것 같다.
점원도 주방에서 일하느라 바빠 보지 못했다.
망토를 이불처럼 말고 잠든 앨리스를 안고서 로니아드 일행은 조용히 여관을 빠져나갔다.
* * *
롱페리우스에 마련된 고급 저택.
“앨리스가 사라졌다고?”
차를 마시려던 남자는 비서관의 보고에 마시던 차를 내려놨다.
붉은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눈동자에 유한 인상, 안경을 써서 그런지 천성 문관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가출인가?”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은 앨리스와 관련된 보고를 듣곤 피식 웃었다.
“예, 하지만 아가씨의 것으로 보이는 찢어진 드레스가 도심 골목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가출하다가 중간에 봉변을 당한 게 아닌지 염려됩니다.”
비서관의 말에 청년의 표정이 찡그려졌고, 그런 주인의 모습을 본 비서관이 어깨를 떨었다.
“그러면 안 되지. 앨리스 그 아이는 펠리오에 납품할 최상급 상품이라고.”
“……최선을 다해 아가씨를 찾겠습니다.”
“그래, 일단 가 봐.”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아가씨를 모시던 시녀와 기사들은 어떻게……?”
비서관이 조심스레 물었다.
“못난 동생 때문에 아까운 인재들을 죽이는 것은 손해지. 그냥 죽이는 것보단, 재활용하는 게 이득이야.”
알렉스는 고민할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시녀는 배꼽에 노예 낙인을 찍고, 기사는 검투사로 재활용하면 좋겠군.”
알렉스의 말에 비서관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 숙인다.
“그들도 공자님의 아량에 감복할 겁니다.”
그렇게 말한 비서관은 도망치듯 청년에게서 사라졌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못난 부하들을 둔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비서관이 사라진 후, 청년은 맞은편에 앉은 한 남성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대 동생 찾는 걸 도와줄까?”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에 회색 머리카락과 회색 눈동자를 가진, 나이를 추정하기 힘든 남자가 알렉스라 불린 청년을 응시한다.
“이카본 님의 귀한 손을 그런 사소한 일에 쓰는 것은 낭비입니다.”
알렉스 앞에 앉은 남자에겐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체, 또는 창백하고 커다란 인형을 보는 기분.
‘아바타인 것을 알고 있어도 영 적응이 안 되는군.’
알렉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눈앞의 존재는 제국 유학 당시, 우연한 기회로 인연을 맺은, 제국의 최고위층 인사다.
“제국 암흑 군단의 군단장인 내가 괜히 도와주겠다고 물어봤을까?”
“혹시…… 제 동생이 실종된 일이 단순한 가출이 아니란 말인가요?”
“그럴지도.”
“그렇군요.”
알렉스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적혔다.
“만약 제 철부지 동생을 찾아 주신다면야 가문의 영광일 것 같습니다.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사례라……. 폰테임에게 받을 게 있긴 하지.”
“그런가요? 말씀하시면 준비하겠습니다.”
“알렉스 공자, 그대는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대의 아버지만이 내게 줄 수 있지.”
“……뭔지 얘기해 주신다면 제가 아버지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공자가 설득해도 후작은 주지 않을 거야.”
이카본의 말에 알렉스가 침묵했다.
결과적으론 무시당했기에, 기분이 상당히 좋지 못했다.
“그래도 도와주지. 조금이라도 폰테임 가문에 빚은 달아 둬야 그자가 양보할 테니.”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굳이 귀찮으시면 그냥 계셔도 됩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저희 가문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빚이라니! 괜히 이걸로 아버지에게 책 잡히기 싫은 알렉스가 이카본의 호의를 거절하려 했다.
알렉스의 말에 이카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차피 지금 그대들 전력으론 앨리스와 함께 있는 자들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마침 흥미 가는 존재도 있으니 겸사겸사다.”
“……?!”
이카본의 의미심장한 말에 알렉스의 표정이 잠깐 굳어졌다.
“그렇군요. 그럼…… 감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표정을 풀었다.
이카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체처럼 창백한 그는 빼빼 말랐으며, 팔다리가 길었고 무엇보다 키가 2미터를 넘었다.
비록 본신이 아닌 아바타지만, 이카본의 화신이 풍기는 위압감에 알렉스는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하기 바빴다.
“심심했는데 잘됐군.”
그 말을 끝으로 이카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몇 분 후.
“후우~.”
알렉스가 해방의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저 양반은 우리 가문에 뭐 볼 게 있다고…….”
제국 유학 당시 인연을 맺긴 했지만, 그가 화신까지 사용하면서 체스카드 왕국까지 자신을 따라올 줄은 몰랐다.
‘지금 앨리스를 데리고 있는 자들이 그렇게 강하다고? 나도 한번 알아봐야겠군. 그래야 저 양반의 목적이 뭔지 추측이라도 하지.’
* * *
간신히 빈방 하나를 구했다.
카디나가 앨리스가 급히 입을 평복을 사 왔다.
‘어째, 급한 일은 다 끝났나?’
아스카의 공간 이동 마법이 가능할 때까지, 조용히 관광이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덤으로 앨리스도 심문하고 말이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다.
아스카가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양손에 화염 마법을 캐스팅한다.
그런 아스카의 분노를 받고 있는 대상은 앨리스였다.
일의 발단은 이러했다.
내게 네크 슬라이스를 맞은 앨리스는 얼마 안 있어 깨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술에서 완전히 깨어났다는 뜻은 아니었다.
“흐으으응~ 흐응~.”
아까처럼 옷을 벗는 등의 주사는 부리지 않았지만, 해롱해롱한 눈으로 엉겨 붙는 것은 여전했다.
‘술에 취한 김에, 심문을 한번 해 봐야겠군.’
나는 내 팔에 매달려 헤헤거리는 앨리스를 보았다.
몇 번 떼어 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달라붙었다.
“저거 취한 척하고 있는 게 분명해!”
아스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앨리스를 째려본다.
“맞아~ 난 안 취했어~ 멀쩡하다고오~.”
아스카의 말을 들었는지 앨리스가 외쳤다.
“취했군.”
“진짜 취했네?”
우리는 앨리스의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스카 여왕~ 이 불여우 같은 년~.”
“뭐, 불여우? 너 취한 척 연기하는 거지! ……그나저나 내가 여왕인 걸 어떻게 아는 거야?”
“아스카! 너의 모든 것을 빼앗을 거야……. 펠리오가 움직인 건 모~두 내 계획이라고~.”
“……뭐라는 거야?”
“계획대로 되고 있어~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앨리스의 말에 아스카는 코웃음 쳤다.
그녀는 앨리스의 말을 딱히 믿지 않는 듯 보였다.
‘이렇게 술술 불다니. 앞으로 종종 먹여야겠군.’
나는 술의 참 기능을 몸소 느끼며 앨리스의 주사를 부추겼다.
“앨리스, 너는 어디까지 개입했지?”
“히히히히…….”
내 말에 앨리스가 배시시 웃으며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빈다.
“야! 너 솔직히 말해! 안 취했지? 안 취했지?!”
아스카가 소리 지르든 말든 앨리스는 내 가슴에 머리를 대고는 멍하니 입을 열었다.
“그냥 나는 계획만 짰어요……. 계획도 그냥 부추기는 것만 한 거예요……. 여왕을 죽이고 군대를 일으키는 짓은 그 돼지 상인 군주가 벌인 짓이에요……. 그러니 앨리스는 죄가 없어요……. 앨리스는 착한 아이예요. 날 버리면 안 돼요, 로니아드…….”
‘역시 앨리스가 발단이었어.’
앨리스의 하소연 같은 말에 방 안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야…… 너 그게 무슨…….”
아스카의 얼굴이 굳어졌다.
“…….”
카디나도 말이 없었다.
“지금 여기 롱페리우스에 집결 중인 군대도 너의 작품이야?”
“우웅우웅~ 앨리스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에요……. 이건 저의 계획을 멋대로 바꾼 셋째 오라비 알렉스의 짓이에요…….”
‘알렉스가 벌써 귀국했나?’
원작에서 빌런 역할을 맡았던 등장인물 중 하나.
‘펠리오랑 로지스트 일만 없었다면, 지금쯤 제국에서 그 녀석과 접촉했을 텐데…….’
꽤나 거슬리는 놈이었다.
‘지금은 이카본과 함께 있어서 접근도 힘들겠군.’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 알렉스는 이카본과 함께 있을 것이다.
“네 오빠 알렉스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건 앨리스도 몰라요오~.”
그런 앨리스를 보는 아스카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오라버니, 쟤가 한 말이 도대체…….”
아스카의 물음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얘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의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야.”
나는 아스카가 괜히 앨리스를 죽이려 들면 어쩌나, 걱정스러워졌다.
“흐음…….”
“얘한테 복수하고 싶어?”
“굳이 쟤가 없었어도 이 일은 어차피 일어났어. 오스카를 향한 펠리오의 야욕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솔직히 와 닿지 않는다는 게 정확한 거 같아.”
덤덤한 아스카의 반응.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아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내 손길에 아스카가 기분 좋은 강아지처럼 헤실거린다.
그런데 내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 아스카의 왼쪽 눈을 가려 주던 머리카락도 흐트러졌다.
“어? 너 눈 왜 그래?”
녹색으로 변한 아스카의 왼쪽 눈을 내가 지목했다.
“히익!”
아스카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리고 그런 아스카의 왼쪽 눈을 나뿐만이 아닌, 앨리스도 보게 되었다.
내가 아스카를 쓰담쓰담해 줄 때부터 심기가 불편했던 앨리스는 아스카의 눈을 보자마자 도발하기 시작했다.
“오드 아이다~! 오스카의 여왕이 대대로 마녀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사실이었어!”
“다, 닥쳐!”
아스카가 굳은 얼굴로 앨리스에게 소리쳤다.
아까 앨리스의 계획에 대해 들었을 때보다 아스카의 반응이 더 차갑다.
“싫은데~ 이 마족년아! 마족이래요~ 마족이래요~.”
하지만 여기서 관두면 술 취한 앨리스가 아니다.
“전대 여왕도 그럼 마족이었겠네? 헤엥~.”
그리고 이 말이 결정적이었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릴 거야!”
간접적이지만 앨리스의 계획이 발단이 되어 에르카네가 죽었다.
그런데 그런 앨리스가 아스카의 엄마를 모욕했다.
‘아무리 술 취했어도 패드립은 아니지. 비록 사실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