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13화(13/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13화
“내가 누구?”
이하루가 당당하게 어깨를 쭉 폈다.
“한국대 로스쿨 민법 쪽지 시험 ‘1등.’”
“잘났다 그래.”
“대충 알았다. 한국대의 수준…….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까불지 마라. 너 때문에 한끝 차이로 1등 못 할 뻔한 거 벌써 잊었어?”
면박을 줬지만, 이하루는 낼름 혀를 한 번 내밀고는 먹던 그라탕 그릇에 고개를 처박았다.
여기 식당 그라탕이 천하일미기는 했다.
나도 딱 먹기 좋을 만큼 식은 그라탕을 한술 떴다.
맛있다. 이게 1등의 맛인가?
그런 내 팔을, 옆자리에 앉은 한설이 툭 쳤다.
“에이, 자랑 좀 하면 어때. 선행도 안 하고 와서 그 점수 받은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한설은 제 배 아파 낳은 딸내미라도 보는 듯 대견하다는 눈으로 이하루를 쳐다봤다.
하기야 그 말도 영 틀린 것은 아니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우리 셋의 점수는 한설이 88점, 내가 86점, 이하루가 75점이었다.
조별 평균은 83점으로 당연히 1등.
사례형은 기본적으로 잘 써도 점수를 짜게 주기 때문에 이 정도면 모두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은 셈이었다.
참고로 2등인 신서준의 조는 95점, 72점, 70점으로 평균 79점이었다.
이렇게 보면 신서준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다가 엎어진 꼴로 느껴지지만, 사실 70점대만 해도 순위권에 들어오는 점수였다.
“상대가 나잖아.”
한껏 콧대가 높아진 이하루가 으스댔다.
물론 이하루가 벌써 점수에 걸맞은 실력이나 이해의 깊이를 갖게 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내가 만든 족보로 한정된 범위만을 반복 답파했고, 반드시 그 안에서 모든 문제가 출제된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하루의 뇌세포 성능을 생각하면 답만 달달 외웠어도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아직은 공부에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래도, 개인 성적으론 못 넘었네.”
한설이 아쉽다는 듯 덧붙였다.
확실히 신서준은 괴물이었다.
수제작 족보라는 치트키를 들고도 넘어서지 못하다니.
하기야 사례형 문제의 모범답안까지 구하지는 못했으니까.
내 나름대로 답을 만드는 과정에서 빠뜨린 판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뭐 어떤가.
“하지만 이겼죠?”
나도 싱글벙글 웃으며 한마디 보탰다.
이번 시험은 어디까지나 개인 점수가 아닌, 조별 평균을 성적에 반영하는 시스템이었다.
명명백백히 1등은 우리 10조인 것이다.
실제로 조별평가 점수도 쪽지시험 성적을 반영해서 팍 뛰어올라 있었다.
[박유승(10조) / 조별평가 (37/40)]40점 만점의 조별 점수가 벌써 37점까지 차올랐다.
프리로 종료까지 며칠 안 남긴 했지만, 앞으로 딱 3점만 더 따면 만점이다.
이 정도면 1차 평가 때 박살 난 걸 만회하고도 남았다.
‘남은 건 2차 평가에 달렸어.’
변화가 예고된 2차 평가.
대체 어떤 식으로 치러질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잘 해내고 말리라.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박유승 씨, 맞으신가요?”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웬 여학생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누구신지…….”
“유예슬이라고 해요. 같은 수업 듣는 9조의.”
“배현중이랑 같은 조야.”
한설이 속닥거렸다.
‘유예슬이라니. 그 유예슬?’
나는 즉시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유예슬은 말하자면 원작 1부의 메인 빌런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유명 로펌인 ‘태종’의 대표가 애지중지하는 외동딸이었다.
언젠가 그 자리를 물려받을 유예슬은 제왕학을 실습하기라도 하듯 늘 주변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해 왔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과 예측대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
원작에서는 신서준을 눈엣가시로 여기며 번번이 부딪혀 왔고, 재력과 인맥을 활용해 그를 압박하려 들었다.
“이번에 10조가 쪽지 시험 1등이라면서요? 축하드려요.”
“운이 좋았죠.”
“운이라뇨. 그렇게 성적을 팍 올리셨는데…… 뭔가 ‘비결’이라도 있으셨던 것 아닌가요?”
비결이란 두 글자에 묘한 강세가 들어갔다.
‘……요것 봐라.’
“아니면, 역시 집안 내력일까요? 박유승 씨. 전 대법관까지 지내셨던 강창수 원장님의 외조카시니까요.”
살살 눈웃음을 치며 떠보는 꼴이 퍽 음습했다.
이 정도면 문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쪽이 바보 천치다.
유예슬은 지금 대놓고 ‘너 원장 친인척이잖아. 뭔가 수작 부리고 있는 거 아니냐’고 찔러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유예슬이 다음 타깃으로 나를 점찍은 모양이었다.
“‘비결’이라면…….”
아주, 괘씸했다.
“유예슬 씨가 고교 시절 법무부 법학논문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을 때 쓰신 ‘그런 비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 뭐라고요?”
한순간 여유롭던 유예슬의 표정에 쩌적, 하고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그, 그걸 당신이 어떻, 게……!”
“수상작, 읽어 봤습니다.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돋보이더라고요.”
나는 쐐기를 박듯 덧붙였다.
“마치, 형사법학계에서 연구자로서도 고명하신 유예슬 씨의 부친처럼 말입니다.”
“……!”
유예슬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녀로서도 할 말이 없는 주제였다.
당시 유예슬이 제출한 작품은, 오래전 그녀의 아버지가 해외 소규모 저널에 기고했던 논문을 그대로 번역해서 베끼다시피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워낙 옛날 저널이라 인터넷에는 자료로 남아 있지 않았다.
발행 부수도 원체 적었기에 지금은 유예슬이 전량 회수해서 갖고 있는 만큼 증거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켕기는 게 있는 쪽은 ‘혹시나’ 하고 멈칫하게 되는 법.
‘나도 너에 대해서 안다. 피차 귀찮아질 일 만들지 말고 좋게 좋게 가자.’
나는 그런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었다.
“이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음식이 좀 식어 버렸네요. 여기 그라탕은 따뜻할 때 먹는 게 제맛인데……. 마저 들어도 괜찮을까요?”
“기억, 해 두겠어요.”
“그러시죠.”
내가 출구를 향해 손짓하자, 찌릿하고 이쪽을 노려본 유예슬이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방금, 무슨 이야기……?”
“아무것도 아니야. 밥이나 마저 먹자.”
한설이 유예슬의 부정을 알면 그냥 넘어갈 리 만무했다.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해서 일이 커지면 그걸 덮기 위해 저쪽에서 무슨 짓을 해 올지 모른다.
나는 그녀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어물쩍 넘기고, 묵묵히 그라탕 속 닭고기나 건져내는 데 몰두했다.
조금 식었어도 역시 이곳 그라탕은 최고였다.
* * *
점심식사를 마치고 형법 시간이 돌아왔다.
“다들 이미 들어서 알겠지만, 2차 평가의 형식을 좀 바꾸기로 했다.”
장용환 교수가 마이크를 톡,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여러분은 이미 로스쿨에 와서 꽤 많은 시험을 치렀다. 어땠지?”
“어려웠습니다.”
진심이 한껏 묻어나는 대답이 돌아오자, 학생들이 공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자네. 이름이 뭐지?”
그 웃음은 곧바로 소실되었다.
“유태운입니다. 교수님.”
“어떤 부분이 어려웠나?”
“그…….”
유태운이 식은땀을 흘렸다.
“외울 게, 무척 많았습니다. 논리를 전개하기 전에 일단 암기한 게 없으면 쟁점조차 파악할 수 없어서…….”
“과도한 암기를 강요받아서 힘들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드리려던 말씀은…….”
“왜 그럴까?”
“……예?”
“왜 우리는 그 과도한 암기를 여러분에게 강요할까? 대답해 보도록.”
유태운의 낯빛이 파리해졌다.
“무슨 취조받는 것 같다, 그치.”
한설이 질린다는 듯 소곤거렸다.
“검사장 출신이잖아.”
적당히 대꾸하는 사이, 한참 눈알을 굴리던 유태운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어, 저희가 앞으로 볼 시험들이 다 그걸 요구해서인 것 같습니다. 변호사시험도 그렇고, 검사 본시험이나 로클럭 선발시험도 그렇고요.”
“바로 그거다.”
장용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이 앞으로 볼 모든 법학 시험은 그런 식으로 치러진다. 논리도, 번뜩이는 발상도, 사실관계를 포착하고 요약해 내는 능력도 사실은 다 부차적인 문제지. 그런 능력을 보이려면 우선 무식하게 많은 지식을 머리에 때려 박아야만 한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덧붙이며 장용환은 한숨을 쉬었다.
“여러분은 한국대 로스쿨에 입학할 예정이다. 앞으로 누구보다 우수할 것을 기대받는 몸이지. 우리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에서도 최고여야 하고, 검사도 가장 많이 배출해야 하며, 로클럭 실적 또한 정점에 달해야 해.”
그 모든 시험에서 최고여야 하기에, 우리는 기를 쓰고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발버둥 쳐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한국대라는 이름을 짊어질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학생들 사이에 긴장감이 흘렀다.
새삼 자신들이 어떤 지반 위에 서 있는지를 자각한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그때, 별안간 장용환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그걸로 충분할까?”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발언이었다.
방금 최고가 되라고 해 놓고서, 그걸로 충분하겠냐니.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암기를 잘하고. 정해진 범위에서 깔끔하게 깎인 문제들을 잘 받아먹고. 그렇게 다듬어진 교육 트랙이 요구하는 것들을 잘 수행해 내면, 좋은 법조인이 될 수 있나?”
“교수님께선 그것들의 의미를 부정하시는 건가요?”
누군가 감히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다. 나 또한 수십 년 전에 닳아빠진 암기 덩어리 시험을 통과했기에 이 자리에 서 있고, 또 수없이 많은 제자들을 그런 시험장에 밀어 넣어 왔다. 그건 그것대로 필요한 과정이지.”
그러나.
“충분하진 않다.”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공부는 말하자면 좋은 법조인의 기본이다. 그걸 잘 해낸 여러분은 당당하게 내가 한국대 로스쿨을 졸업했다고 자랑할 수 있게 될 거야. 하지만…… 여러분 중 누군가는 그 위를 바라봐야 해.”
장용환이 선언한다.
“한국대 로스쿨을 자랑거리로 삼는 게 아닌, 한국대 로스쿨이 여러분을 자랑거리로 삼게 되도록.”
“……!”
그건, 지금의 우리가 받아들기에는 너무 커다란 말이어서.
침묵과 함께, 꼴깍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강의실에 흘렀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교육 과정과 시험들만으론 여러분이 그런 자질까지 갖추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걸 길러 줄 수도 없고. 그러니까. 입학도 전에 치르는 이 별것 아닌 시험 하나쯤은.”
장용환이 손뼉을 딱 쳤다.
“다소 상궤를 벗어난 것이어도 괜찮지 않겠나?”
촤르륵. 지잉.
장용환의 등 뒤로 스크린이 내려오고, 그 위로 빔프로젝터가 하나의 이미지를 투사했다.
로스쿨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판례 검색 엔진의 홈페이지가 그곳에 떠올라 있었다.
“……교수님, 이건?”
“이번 2차 평가는 오픈북이다.”
“예, 예?!”
여기저기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암기와 현출(現出)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로스쿨에서 오픈북 테스트라니.
나조차도 경악해 입을 떡 벌리고 장용환을 쳐다봤다.
“물론 책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지만, 시험장에서 여러분에겐 이 판례 검색 엔진이 제공될 거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찾아봐도 좋고, 레퍼런스를 달아 두어도 좋다. 그 대신.”
장용환이 다시 한번 손뼉을 마주쳤다.
“여러분이 풀어야 하는 문제는…… 이런 것들이다.”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빔프로젝터가 수많은 영상들을 어지러이 토해 내기 시작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여자.
증거품 보관함에 담긴 지문 찍힌 식칼.
권리자가 몇 번이나 바뀌어 취소선이 잔뜩 그어진 부동산등기부.
화면을 보고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노인.
주인의 이름을 표시하는 깃발만 외로이 꽂힌, 황량한 땅.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을 담은 수십 페이지의 두꺼운 자료 뭉치들.
“이번 시험에서 여러분은 실무가가 된다. 변호사일 수도 있고, 검사일 수도 있다. 그리고……수험법학에 꼭 들어맞게 잘 정돈된 사실관계 대신, 수많은 증거와 기록들을 파헤치며 직접 쟁점들을 발견하고, 나름의 주장을 세워 갈 거다.”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시험이었다.
“난이도는 걱정하지 마라.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건 상대평가고 여러분이 못 하는 건 여러분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못 하니까.”
멍하니. 망연자실하게 화면만 쳐다보는 학생들.
“한 사람당 응시할 과목은 하나다. 민사가 더 편한 사람은 민사를, 형사가 더 자신 있는 사람은 형사를 선택해 시험을 치르면 된다. 선택 과목은 오늘 밤까지 내 이메일로 제출하도록.”
“교, 교수님, 저…….”
“시험 일자는 프리로의 마지막 날. 시험과 관련된 질문은…… 받지 않겠다. 이상.”
그 말만 남기고 장용환은 몸을 돌려 강의실을 떠나 버렸다.
이와 교차하듯이 들어온 행정실 조교가,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게 전달사항을 전파했다.
“어, 그…… 오늘 강의는 2차 평가 응시과목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이자 자습이라고 하셨습니다…….”
“우,”
조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아아아아악! 이, 이게 대체 뭐야!”
강의실은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