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18)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18화(18/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18화
개강 첫 주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일단 수업의 가짓수부터가 팍 늘어났다.
프리로 때는 민법 강의가 하나뿐이었지만, 정규 학기에 들어서서는 앞부분의 ‘민법총칙’과 뒷부분의 ‘물권법’이 각각 강의가 개설되어 둘로 늘어났다.
그뿐인가? 그간 소홀히 했던 헌법도 정규 강의가 열린 만큼 제대로 챙겨야 했다.
심지어는 학점을 맞추기 위해 들어야 하는 선택 과목까지 있었으니, 단숨에 스케줄이 빡빡해질 수밖에 없었다.
“박유승. 넌 선택법 뭐 들어?”
“국제거래법.”
국제거래법은 변호사시험에서 가장 많이 응시하는 선택법이었다.
기왕 선택 과목을 들어야 한다면 시험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하고 싶었다.
한설은 국제법이었다. 그것도 만만찮게 응시율이 높은 과목이긴 했다.
“하루는?”
“인터넷과 법.”
“……그게 뭐야?”
“몰라요. 수강신청 목록에 있던데? 중간, 기말 안 본다길래 냉큼 집음.”
이하루답게 예나 지금이나 몸 편할 생각밖에 없는 선택지였다.
하기야 프리로도 끝났는데 수업이나마 꼬박꼬박 나와 주는 걸 감사해야 할지도 몰랐다.
‘뭐. 이젠 조별 평가도 아니니까 나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 녀석에게 투자한 시간이 있는데,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뽑아 먹고 싶다.
그러려면 때가 되기 전까지 어느 정도 기본은 닦여 있어야 했다.
‘빠르면 이번 달 말쯤인가.’
어떻게든 끌고 다니며 최소한의 공부나마 시키고 있는 이유였다.
좌우간 바쁘고도 충실한 하루하루였다.
매일 오전부터 오후 3시까지는 강의를 듣고, 도서관으로 직행해서 예습과 복습을 반복한다.
가끔씩 이하루의 의욕을 유지시키기 위해 오락실 한 번쯤 들러 주는 게 여가의 전부였다.
“그게 오늘 아님?”
“어허. 일단 오늘치 공부량은 채워야지.”
“젠장…….”
나는 맥없이 축 늘어지는 이하루를 붙잡고 스터디룸으로 끌고 갔다.
한설은 그새 예약 경쟁을 마스터했는지, 단 한 번도 스터디룸 예약에 실패하는 법이 없었다.
“4년간 지옥의 수강 신청으로 단련된 몸이다, 이 말이야.”
한설은 뿌듯하게 웃으며 내 맞은편에 짐을 내려놓았다.
역시 우수한 인간들과 친하면 콩고물이 떨어지는 법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등을 파묻은 채, 나는 공부할 책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그럼, 늘 하던 대로. 8시까지는 각자 할 거 하자고.”
지금 시각은 오후 3시 반. 못해도 4시간 반은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우선 책상 위에 꺼낸 두 권의 책을 노려보았다.
한 권은 [민법의 매듭].
다른 한 권은 [형법요약론].
지금까지 내가 사용해 온, 민법과 형법 각 과목의 스테디셀러 기본서였다.
“……너는 그것만 봐?”
“그것만이라니. 이놈들만 해도 벌써 몇천 페이진데.”
“하지만, 거기 없는 판례도 많잖아.”
그렇게 말하는 한설의 자리에는 몇 권이나 되는 판례집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입이 쩍 벌어지는 책의 산이었다.
맙소사, 저런 분량을 공부해대니 어떤 문제를 봐도 ‘어, 이거 그 판례다’ 하면서 대뜸 결론이 튀어나오지.
하지만 나는 저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없어도 돼.”
“?”
“기본을 탄탄하게 다져 두면, 처음 보는 사실 관계가 출제돼도 풀 수 있거든.”
그 말과 함께 나는 [민법의 매듭]을 펼쳤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책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모퉁이가 잔뜩 닳고 해져 너덜너덜했다.
“수험법학을 공부할 때 많이들 실수하는 게 있어.”
책장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겼다.
“바로 양을 늘리면서 공부한다는 거야.”
사법시험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의 로스쿨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예나 지금이나 법조인이 되겠답시고 공부하는 치들은 대체로 최상위권의 엘리트들이었다.
고등학교 내신이나 평가원 모의고사, 혹은 학부에서 가르치는 수준의 공부쯤은 가뿐하게 씹어 삼켜 온 괴물들.
그렇기에 이들은 ‘모르는 게 없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한다.
출제 범위에 포함된 모든 글자들이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하고, 시험장에서 맞닥뜨린 문제 가운데 처음 본 것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하지만.
“법학에서는 그게 안 되거든.”
분량이 터무니없이 많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간 소화해 낸 공부량을 다 합해도 겨우 민법 한 과목을 ‘완벽하게’ 마스터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량에 못 미친다.
민법 조문만 1000조가 넘는다.
조문마다, 개념마다 수십 년간 쌓인 학설과 판례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걸 다 꿰고 들어간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하물며 변호사시험은 민법만 있는 게 아니다.
형법, 헌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행정법, 상법, 거기에 선택법까지 부랴부랴 공부하고 시험장에 가야 한다.
얼마 만에?
겨우 3년 안에.
말도 안 되게 촉박한 일정이었다.
법학의 달인, 모르는 게 없는 정복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그보다도 더 짧은 2년 만에, 지금의 변호사시험보다 훨씬 경쟁률이 높았던 사법시험을 2차까지 합격해 냈는가.
“거꾸로 가야 돼. 양을 줄이는 거지.”
물 흐르듯 페이지를 넘기던 손가락을 거두었다.
펼쳐진 페이지는, 어떤 문단에는 굵은 밑줄이 잔뜩 그어져 있는가 하면 어떤 문단은 아예 통째로 가위표를 쳐서 밀어 버렸다.
“……이게 뭐야?”
“밑줄은 기출. 가위표 친 건 안 나오는 거.”
법학은 끔찍할 정도로 부피가 큰 학문이다.
하지만 그 내용 전부를 시험에 낼 수는 없다.
그 엄청나다는 민법조차 한 시험에 출제되는 문제는 고작 3문에 불과하다.
출제자의 입장이 되어 보자.
그 많고 많은 내용 가운데 겨우 세 문제만을 시험에 출제할 수 있다면, 무엇을 내야 할까? 무엇을 내고 싶을까?
당연히, ‘중요한 것’만 쏙쏙 골라서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꺼운 민법책을 다루는 법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일단은 체계를 잡는 것부터 출발한다.
민법총칙 제일 앞의 법원부터 시작해서, 물권법 마지막의 비전형담보물권까지.
모든 개념의 목차를 머릿속에 갖춰야 한다.
“의의. 요건. 효과. 주요한 리딩 케이스들.”
그러나 그 목차 전부를 세부적인 내용까지 꽉꽉 채워 넣으려 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항상 출제되는 주요 법리들은 가장 지엽적인 최신판례까지 줄줄이 꿰야 하는 게 맞다.
어차피 남들도 잘 아니까 그 정도는 해야 변별력이 생긴다.
하지만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들은 목차마다 한 줄씩 설명을 부연할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
어차피 시험에 나와 봤자 남들도 모른다.
기본 법리를 충실히 이해하고 이를 리걸 마인드로 적용해 풀어낼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암기는 불필요하다.
“이렇게 봐야 할 것. 안 봐도 되는 것을 나누어 표시하면, 다시 읽을 때 봐야 할 분량이 확 줄어들어.”
기출된 부분을 표시하고 추가된 판례를 덧댄다. 빼야 할 부분은 가차 없이 지워 버린다.
처음에는 이런 작업을 하면서 읽느라, 민매 한 권을 끝까지 읽는 데 몇 주일이 걸렸다.
그다음은 일주일.
그다음은 사흘.
그리고는 이틀.
프리로가 끝난 후, 개강 첫 주인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루.”
나는 1,300페이지짜리 민매를 집어 들고 한설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하루면 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어.”
이런 걸 단권화 학습법이라고 한다.
특히나 이미 고시 생활을 해 본 덕분인지 내 경우에는 반복 시간을 줄이는 과정이 빨랐다.
민매만이 아니라 [형법요약론]에 대해서도 같은 작업을 끝내 둔 터였다.
법학 지식이 휘발성이 강하면 뭐 어쩔 텐가.
밀어 넣는 속도가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면 그만인 것을.
한번 기틀을 잡아 두면 이를 반복할 때마다 점점 더 내 안의 법학 체계가 튼튼하게 완성되는 법이었다.
원래는 로스쿨 3학년, 그것도 변호사시험을 치르기 직전이나 되어서야 도달하는 경지였다.
하지만 사법시험을 2차까지 붙어 놓고 남들과 같은 속도로 달려서야 체면이 설 리 없었다.
‘어디까지나 민법과 형법에 한정된 성과긴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한 달 전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 수험 노하우를 쏟아부은 결정체.
졸업할 때까지 가져갈 이 두 권의 보물들과 함께한 덕분이었다.
“말도 안 돼.”
“진짜야. 시험 삼아 아무거나 물어보던가.”
한설은 내 민매를 가져가더니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었다.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의 양도통지 후에 생긴 임차인의 채무를 반환채권에서 공제할 수 있어?”
“할 수 있지.”
나는 즉답했다.
“451조 2항에서 ‘양도통지 전’에 발생한 사유로 대항할 수 있다고 규정해서, 반대 해석상 통지 후의 사유로는 대항할 수 없으니까 생기는 쟁점이지?”
머릿속 체계에서 질문과 답이 들어갈 목차를 찾는다.
어렵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고 읽으면서 주소 설정을 끝마친 문제였으니까.
“그래도 가능해. 원래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은 목적물의 반환까지 발생한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공제하고 발생하는 것이니까.”
“……진짜 말도 안 돼.”
한설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 달 전에 소멸시효 요건 효과 외운다고 밤새던 애 맞아?”
“단권화와 반복 회독의 힘이지.”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야…….”
한설은 제 앞에 쌓인 판례집 더미를 보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그거야말로 가당치도 않은 기만이었다.
애초에 그녀처럼 판례집을 통째로 머릿속에 쑤셔 넣을 수 있는 암기력이 있다면 이런 짓은 하지도 않았다.
‘한설의 방식은 비효율적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불의타도 없이 모든 걸 완벽하게 대비하는 게 가능하니까.’
하지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면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이었다.
저런 훈련된 암기 천재가 아닌 한낱 범부이기에 노하우로 승부하는 것이다.
이 슬픈 몸부림을 두고 억울해하다니, 그러면 쓰나.
한설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는 다시금 책에 고개를 파묻었다. 오늘의 할당량은 채워야 했다.
한참 공부에 빠져 있노라니, 이하루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여덟 시. 여덟 시. 타임 투 플레이 게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투였다.
“벌써 그렇게 됐어? 좋아, 가자 가.”
“오늘은 꼭 한 판이라도 따고 말 거임.”
“한참 멀었다, 이 녀석아.”
한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먼저 가 볼게.”
“내일 보자고.”
멀어지는 한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하루가 작게 중얼거렸다.
“한설 언니도 같이 놀면 좋을 텐데.”
“저 친구는 통금 때문에 안 돼. 늦었다간 다음부턴 수업 끝나자마자 집으로 잡혀갈걸.”
“그래도요.”
안쓰럽긴 하지만, 남의 집안 사정에 간섭할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한설 본인이 따르고 있기도 하고.
“아, 다음 주는 나도 못 놀아 줘.”
“헐. 왜요.”
“해야 할 일이, 하나 늘 예정이거든.”
“……?”
* * *
“다양한 경험을 쌓아 줬으면 한다.”
학기 초, 첫 지도교수 모임에서 장용환이 뱉은 말이었다.
“내게 지도받길 선택했다는 건 검찰에 관심이 있단 뜻이겠지. 하지만 공부만 잘하는 인간을 검사로 길러 낼 생각은 없다. 교내외의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실적 기록을 제출하도록.”
그러면서 장용환은 지도학생들에게 한국대 로스쿨에서 참여할 수 있는 온갖 프로그램이며 대회들의 목록을 떠안겼다.
무변촌 봉사활동.
자인법정변론경연대회.
리걸 클리닉.
지식재산권법 공모전.
기타 등등.
실적이 부족한 사람은 지도모임에서 퇴출되고 다른 지도교수가 배정될 거라고 했다. 물론 패널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수자는 2학년 여름에 있을 검찰 실무수습 때 추천서를 써 주겠다.”
달콤한 과실 또한 약속되어 있었다.
검찰 실무수습은 그 자체로 검사 선발 과정에 반영되진 않지만, 검찰 업무를 체험하면서 견문을 넓히고 현직 검사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검사를 지망하는 나로서는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인 셈.
따라서 참여할 수 있는 활동들엔 되도록 참여해야 했다.
‘이 중에선…… 일단은 리걸 클리닉인가.’
리걸 클리닉(Legal Clinic : 법률임상수업)은 로스쿨에서 법학교수나 실무가의 지도 아래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의뢰인을 위한 상담, 법률 자문 등을 수행하면서 실무적 경험을 할 수 있어 상위권 학생들에겐 꽤나 인기가 높았다.
의뢰는 로스쿨 홈페이지에 개설된 리걸 클리닉 창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학생들은 경험을 쌓고, 의뢰인은 무료로 법률적인 도움을 제공받는 윈윈 구조다.
학생들이 주체라고는 해도 최종적으로는 담당교수의 검수를 통해 의견서가 작성되므로 불완전한 서비스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무료기도 하고, 진지하게 소송절차를 밟기 전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는 충분했다.
매 상담 건수마다 지속적으로 실적을 벌어 올 수 있는 코스였다.
많아야 주당 한두 번,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므로 부담도 크지 않았다.
‘유일한 문제는…… 리걸 클리닉의 담당 교수가 최성철 부원장이라는 건데.’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원작에 묘사된 최성철 부원장을 떠올렸다.
그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유능한 기회주의자’였다.
모름지기 장인이란 제가 다루던 도구를 닮는 법이랬던가.
국제 금융분쟁의 무대에서 활약해 온 최성철은 무척 계산이 빠른 타입이었고, 오직 자신에게 가져다줄 손익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했다.
명예를 좇아 한국대 로스쿨에 교수로 부임해 와서도 그런 기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학생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실적에 보탬이 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
후자에겐 요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래서 강창수 원장과 대립하지.’
유능하기에 부원장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최성철과 강창수 법전원장은 앙숙에 가까운 관계였다.
교육관부터 교내 파벌싸움까지 모든 측면에서 부딪히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지금도 최성철은 호시탐탐 강창수를 몰아내고 원장의 자리를 거머쥘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터였다.
원작에서도 박유승이 퇴학당할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징계를 추진했던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다지 얽히고 싶은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
지금의 나로서는 딱히 꿀릴 구석도 없으니 최성철을 피한답시고 실적 쌓는 꿀통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첫 활동일에 맞추어 리걸 클리닉용으로 배정된 강의실을 방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