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24)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24화(24/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24화
박건은 숫제 불가해한 기적이라도 마주한 듯 내 성적표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하지만 기업가의 실용적인 정신은 기적 따위를 용납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박건은 우선, 의심했다.
“그게, 정말 네놈의 성적표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똑똑히 인쇄된 이름 석 자가 어디로 도망갈 리는 없었다.
좌로 보고 우로 보아도 박유승. 내 성적표가 맞았다.
교차 검증을 위해 스마트폰에 학교 웹사이트까지 띄워 성적 페이지를 보여 준 후에야 박건은 겨우 성적의 진위를 납득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다고 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네놈이…….”
“꿈이 생겼거든요.”
그렇기에 나는 부연했다.
“저, 검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제껏 저질러 온 과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데 이바지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나는 의자 밑에 내려놓은 가방을 뒤적였다.
꺼내는 것은 지난 두 달간 흘린 피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단권화를 끝마친 수험서 두 권.
민매와 형법요약론이었다.
“그래서 좀 열심히 해 봤습니다.”
그것을 박건에게 내밀었다.
“이건…….”
박건이 건네받은 수험서를 쓸어 넘겼다.
페이지마다 가필과 메모장, x자 표시가 가득했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무언가 휘갈겨 쓰다가 부러뜨린 흑연 자국과, 눌어붙은 코피의 흔적이 오랫동안 박건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간 사람 된 도리도, 자식 된 도리도 못 해 온 건 알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감히 아버지 앞에 얼굴을 내밀 자격이 없다는 것도요.”
나는 박건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 보려 합니다. 제게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오.”
박건이 얼굴을 들고 내게 시선을 향했다.
유성그룹 회장의 깊은 눈동자가 꿰뚫는 듯한 빛을 쏘아 냈다.
그것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당당한 자세로 맞받아 냈다.
침묵이 길어지자 불안해진 박민하가 끼어든다.
“잠깐, 지금 쟤 말을 믿으려는 거야? 저 개망나니를? 당장 가진 거 다 빼앗고 내쫓아도 모자랄,”
“……고되고 험난한 길이 될 거다.”
박건이 툭 내뱉었다.
“앞으로도 항상 잘 풀릴 만큼 네 자질이 우수하리란 보장은 없다. 애초에 정규 학기도 들어가기 전의 성적. 운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지. 평가 방식에 다소간 차이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다른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하지 않아서 가능했을 수도 있어.”
‘날카로운데.’
나는 내심 감탄했다.
확실히 내가 프리로에서 5등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바뀐 2차 평가 방식이 주효했다.
부족한 암기량을 극복할 수 있었으니까.
지도교수 경쟁에 관심 없는 원우들은 공부를 덜 한 것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한설처럼 똑똑한 조원이 함께했으니, 운이 좋았던 건 맞지.’
과연 유성그룹을 홀로 일궈낸 자의 통찰력이었다.
“게다가, 방종한 삶에 길들여진 네놈의 천성을 생각하면, 언제 다시 고삐가 풀릴지도 알 수 없지. 3년은 길어. 네놈에게 그 고된 길을 오롯이 걸어 나갈 자신이 있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지적이 전부 사실이더라도.
이것만큼은 확신을 가지고 단언할 수 있었다.
“저는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간절히 바랐던 두 번째 삶이다.
한평생 무엇보다도 꿈꾸던 것들이 비로소 내게 주어졌다.
그런데 중간에 꺾여 버릴 리가 없지 않은가.
“……증명할 수 있느냐?”
그것은 무척 좋은 신호였다.
박건은 더 이상 내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묵살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 의중을 살피며 나를 시험하려 들고 있었다.
시험이란 건,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시간을 주십시오.”
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후, 첫 번째 중간고사를 치르게 됩니다. 그 결과로써 아버지께 제 의지와 자질을 입증해 보이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등.”
나는 눈을 감으며 대뜸 내질렀다.
“제가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하지 못한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자퇴를 시키셔도 좋고, 본가로 돌아오라 하시더라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성공했을 때는…….”
“성공했을 때는?”
“그에 따르는, 마땅한 보상을 주십시오.”
말하면서 잠시 생각했다.
‘……좀 무리수였나?’
온갖 천재들이 득시글대는 한국대 로스쿨이다.
그곳에서 1등을 해내겠다는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법학이란 게 어디 천재들만의 전유물이었던가.
-법학은 범재의 학문입니다. 어쩌면 둔재의 학문일지도 모릅니다.
일찍이 강창수 원장은 그렇게 말했다.
더 많이, 더 열심히 본 사람이 반드시 앞서나가는 게 법학이라면서.
그렇다면 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곳의 그 누구보다도 기본서가 닳아빠질 때까지 읽어댔고,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풀며 감각을 벼려내 왔다.
적어도 책상 앞에서 지새운 밤의 깊이와 흘린 피땀의 무게로 나를 뛰어넘을 사람은 없었다.
‘그래, 할 수 있어.’
그렇다면야 박건을 설득하기 위해 그쯤은 질러 줘야지.
보상을 요구한 것도 일견 주제넘어 보일 수 있다.
집안의 골칫거리이자 속만 썩이던 놈이, 제발 하고 싶은 거 계속하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해도 모자랄 판에 보상은 무슨 얼어 죽을 보상이란 말인가.
하지만 박건에 한해서는 이게 맞았다.
이 바위 같은 사내의 마음에는 이미 틈새가 열렸다.
최 기사가 두드린 문에, 내가 내민 노력의 흔적들이 합해진 결과다.
그렇다면 계속 저자세로 굽신대기보단 도전할 것은 도전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패기를 보여 주는 게 더 나은 선택지였다.
박건은 평생 무언가에 도전하고 부딪혀 온 남자.
배짱과 포부는 그가 높이 사는 가치 중 하나였다.
이윽고, 박건이 입을 열었다.
“좋다.”
그것은 명백한 허락의 선언이었다.
“뜻대로 해 봐라.”
“아빠!”
“지금 내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거냐?”
“……윽!”
박민하가 새된 소리를 질렀지만, 박건이 쏘아보자 곧바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유성그룹의 안온한 울타리에서 모든 것을 쌓아 온 그녀로서는 감히 아버지의 말에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다.
“그게 너희와 저놈의 차이다.”
“무슨,”
“오롯한 제 것이 없기에, 배짱도 부릴 수 없는 게지.”
“……!”
“오늘 식사는 여기까지 하마.”
박건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본래 오늘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 너희를 불렀다. 하지만…… 내가 너무 이르게 판단한 것 같구나.”
“아, 아버지?”
그제까지 잠자코 있던 박태양이 처음으로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다음에 다시 부르겠다. 돌아가서 각자 할 일 하도록.”
그 말만 남기고 박건은 완전히 식탁을 떠나 버렸다.
“…….”
오로지 세 남매만이 이곳에 남았다. 망연자실한 표정의 박태양과, 파르르 떨고 있는 박민하.
“어, 음.”
마지막으로 머쓱하게 뒷목을 긁는 나.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여간 살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나는 냉큼 도망치듯이 자리를 빠져나왔다.
“……큭!”
멀찍이 등 뒤에서, 울분에 찬 외침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 * *
“……라는 일이 있었답니다.”
나는 격투 게임 기계의 레버를 조작하며 이야기했다.
화면 속에서는 내 캐릭터가 상대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중이었다.
회심의 일격이 날아왔지만, 예상 범주 안이었기에 가볍게 막아 주고 반격.
상대 캐릭터가 쓰러졌다.
“실력 좀 늘었는데? 잡기 쓰기 전에 습관적으로 망설이는 것만 고치면 두 등급은 오르겠어.”
그런 멘트를 날리자, 게임 기계 반대편에서 이하루의 뾰로통한 얼굴이 쑥 튀어나왔다.
“늘었다면서 왜 맨날 지는 거죠.”
“허허, 나무가 자라 봤자 하늘에 닿겠느냐.”
그만큼 실력 격차가 난다는 소리였다.
“잘났다. 퉤퉤.”
입술을 비쭉이던 이하루가 근데, 하고 운을 띄웠다.
“스승님, 재벌 2세였음?”
“몰랐어?”
“몰랐죠. 금수저인 줄은 알았지만.”
좋겠다. 나였으면 당장 자퇴하고 평생 집에서 게임이나 했을 텐데. 이하루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하기야 보통 사람은 그렇게 돈이 썩어 넘친다면, 구태여 고생해 가며 공부에 매달리진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돈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
전생처럼 경제적 이유로 꿈을 포기하는 일만큼은 없게 해 주는, 일종의 보호막이자 안전망일 뿐.
“괜찮겠어?”
지켜보던 한설이 걱정스레 물었다.
점심 공강을 틈타 오락실에 온 것이었기에 한설도 따라올 수 있었다.
의외로 그녀는 총 게임에 재능이 있었다.
웃으면서 기관단총으로 좀비들을 학살하는 게 살짝 무섭기까지 했다.
얘는 게임 자주 시키면 안 되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뭐, 애초에 많이 할 녀석도 아니지만.’
“괜찮겠냐니?”
“들어 보니까 그 형님이란 분이나 언니분한테 완전히 찍힌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잖아. 그 양반들이 무서워 봤자 아버지만큼 무섭겠어?”
박건은 당장 내 자금줄을 쥐고 있다.
그를 움직일 수 있다면야, 박태양이나 박민하와 반목하는 것쯤은 별거 아니다.
대처할 방법도 어느 정도 생각해 뒀고.
“뭐, 결국 중요한 건 그거야.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을 해내느냐 못 하느냐.”
“……미리 말해 두는데, 난 적당히 할 생각은 없다?”
“당연하지. 오히려 적당히 했으면 화냈을 거라고.”
나에게 나의 목표와 사정이 있듯이, 한설에게는 한설의 목표와 사정이 있다.
한설은 꽤 잔정이 많은 편이지만 그것과 경쟁에 진심으로 임하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어떤 이유로든 대충 하는 건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이겨도 의미가 없지.’
온전히 내 실력과 준비만으로 쟁취한 트로피가 아니라면 어디 내놓고 자랑할 수도 없다.
게다가 뛰어넘어야 할 상대가 한설만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 1등을 차지하려면 그놈을 넘어야 해.’
모든 면에서 완벽한 우리의 원작 주인공.
신서준을 이겨 내야 한다.
“한 판 더 해요.”
“슬슬 오후 강의 시간 아슬아슬한데.”
“한 판만, 진짜 진짜 막판 제발. 빨리하고 뛰어가면 시간 안에 무조건 도착 가능.”
“괜찮지 않을까? 오후 수업은 헌법이고, 그 교수님 맨날 5분씩 늦게 오잖아.”
“너 정말 이하루한텐 무르구나…….”
한설의 지원사격에 나는 결국 한 번 더 게임기 앞에 앉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승리의 여신이 이하루에게 미소 지어 주는 일은 없었다.
내 충고를 받아들인 이하루는 곧장 기술을 걸어왔지만, 내 캐릭터는 이미 자세를 낮추고 동작의 허점을 노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비겁함. 자기가 한 조언을 역이용하다니.”
“어허, 한 가지에 매달리지 말라는 가르침이거늘.”
결국 마지막까지 탈탈 털린 이하루가 돌아가면서 구시렁댔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빨리 가기나 하자. 늦겠다.”
“오후 수업 ‘헌재’라며.”
“그거 감안해도 아슬아슬해.”
한설의 말대로 오후 강의는 헌법이었고, 헌법 교수는 매 강의마다 5분씩 늦게 들어오는 걸로 악명이 높긴 했다.
늦게 들어오는 게 왜 악명인가?
지체된 만큼 수업을 더 해야겠다면서 항상 정시보다 10분, 15분씩 늦게 마쳐 주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그를 헌재라고 불렀다.
헌법재판관처럼 공법에 빠삭하고 지혜롭다는 존경의 의미, 는 당연히 아니고, 헌법의 재앙을 줄인 멸칭이었다.
그의 강의는 지루한 데다가 변호사시험과 전혀 동떨어진 내용으로 원성이 자자했다.
“왜 한국대 로스쿨에 그런 교수님이 계시는 걸까.”
“반대지. 한국대 로스쿨이니까 있는 거야.”
한설의 푸념에 대꾸했다.
“로스쿨 교수들이 다 어디서 왔게? 원래 법대 시절에 계시던 분들이 넘어온 거야. 한국대 법대쯤 되면 학문 법학으로 이름 좀 날리는 고명한 연구자들이 여럿 교수로 있었겠지.”
연구자 출신 교수들은 학자로서 경지를 이루었기 때문에 프라이드가 대단히 높다.
로스쿨 교육과정이나 변호사시험 ‘따위’에 맞추기 위해 귀한 시간을 할애하느니, 일반대학원에서 하듯 자신의 연구 분야를 강론하겠다며 고집을 부릴 만큼.
“교수 사회에서는 그분들이 원로니까 터치할 수단도 없을 거고.”
“헌재도 그런 케이스란 말이야?”
“아마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보통 그런 교수님들은 1학년 교육과정에 배정되곤 한다.
변호사시험을 앞둔 학생들은 보다 수험적합적으로 가르치는 교수들과 시험을 준비하고,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1학년 때 학문적인 강의를 경험해 보라는 취지다.
그래서인지 헌재만이 아니라 민법III, 그러니까 물권법을 강의하는 교수님도 비슷한 타입이었다.
‘지금은…… 불행이라고 해야겠지.’
당장 중간고사가 그 ‘학문적인 강의’들에 초점을 두고 출제될 테니까.
내 공부법은 철저히 수험서를 중심으로 다듬어졌기에, 생뚱맞은 논점과 이론이 쏟아지는 시험에까지 먹힐 수는 없었다.
요컨대.
그런 수업만을 위한 또 다른 방식의 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뭐, 생각해 두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하루.”
“왜요.”
“나랑 일 하나만 하자.”
“……?”
이하루가 맹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네가 이번 시험의 키 카드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