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2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29화(29/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29화
“아니. 하지만, 정확도가 보장될 리가…….”
김승필이 정당한 태클을 걸었다. 내가 나서야 할 때였다.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정확도.”
나는 품에서 두툼한 서류철 하나를 꺼내 들었다.
지금 벽면에 요약되어 있는 바로 그 논문의 인쇄본이었다.
“지난 며칠 동안 저는 이 논문을 읽고, 분석했어요. 그리고 이쪽에 보시는 것이 제가 직접 정리해 낸 요약본입니다.”
서류철의 맨 위에서 얇은 종이 너덧 장을 꺼내 팔랑팔랑 흔들었다.
김승필이 그것을 받아 들고 읽어 나갔다. 곧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졌다.
“……이럴 수가.”
김승필이 감탄했다.
“이 요약문과, 방금 저 프로그램…….’날먹’이 뱉어 낸 요약문, 핵심은 거의 일치합니다. 박유승 씨가 정리한 텍스트에 있는 내용은 저 화면 속 문서에도 대부분 들어 있어요.”
그 말인즉슨.
“쓸 수 있겠는데요. 이 프로그램.”
김승필은 기자다.
텍스트를 빠르게 훑어서 개요를 파악하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탁월했다.
그가 보고서 내린 판단이라면 믿을 만했다.
크로스체크가 이루어지자 그제야 스터디원들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암. 당연히 그래야지.’
‘날먹’은 나와 이하루가 며칠씩 시간을 갈아 넣어서 완성한 희대의 역작이었다.
나는 참고가 될 만한 텍스트들을 뽑아 데이터로써 제공했고, 실제로 파인 튜닝 작업을 하는 건 이하루가 전담했다.
심지어 나는 ‘날먹’의 성능을 입증하기 위해 헌재의 논문 하나를 미리 선정해서 직접 분석하고 요약문까지 써내야 했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이하루도 이하루대로 철야를 했지만, 나 또한 며칠 내내 날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쇼맨십은 중요하다.
신문물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눈앞에서 그 효과를 입증하지 않으면 믿고 쓰기 힘들다.
특히나 진로와 직결되는 내신 시험에 사용하는 만큼 더더욱 신중해지는 게 당연했다.
조금 품을 들이더라도 증명의 절차가 필요한 이유였다.
“딸깍.”
이하루가 연이어 버튼을 눌렀다.
나머지 논문들이 차례대로 선택되었고, 하나씩 얄팍한 요약문으로 변했다.
“……문자 그대로 날먹이네 이거.”
유태운이 혀를 내둘렀다.
“이름값 하죠.”
이하루가 뿌듯해했고, 기세를 몰아 내가 덧붙였다.
“이제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지? 우리 여섯 명은 지금부터 이 12매의 요약문을 각자 2매씩 맡아서 공부해 올 거야.”
요약문이라도 12매를 전부 처음부터 읽으려면 다소 막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각자 2매씩만 공부해 오고, 서로에게 이해한 바를 설명해 주는 방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해하고 있는 글을 읽는 속도는 처음 보는 글을 다루는 것에 비해 훨씬 빠르다.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읽기도 쉬워진다.
이런 식으로 헌법에 들여야 할 노력을 최소화하고, 회독 수를 늘려서 기억에 새기면 된다.
“수백 페이지의 강의안도, 두꺼운 논문들도 읽을 필요가 없어졌군요.”
“한 사람당 2매…… 응, 이 정도라면 전혀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겠어.”
김승필과 한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박유승 씨! 완벽한 용인술이에요!”
“뭐요?”
“한설 씨를 통해서 일을 나눠 맡을 사람을 모으고, 이하루 양을 기용해서 프로그램으로 공부량을 압축하고, 김승필 씨한테 결과를 검증받았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부리는 자질……. 역시, 당신은.”
“그만. 제발 거기까지.”
유예슬이 또 혼자서 이상한 망상을 늘어놓았다.
더 골 때리는 점은 김승필까지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자, 요약문 분배하겠습니다.”
괘씸해진 나는 가장 어렵고 귀찮은 주제를 골라 유예슬과 김승필에게 던져 주었다.
남은 요약문들의 분배도 끝마치고 자리를 파할 때였다.
‘깜빡할 뻔했네.’
“아, 그리고 김승필 씨는 잠깐 남아 주세요. 같이 가 주실 곳이 있습니다.”
“네……?”
* * *
“반갑습니다, 오기태 씨.”
나는 리걸 클리닉 때의 의뢰인, 오기태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실제로 만난 오기태는 다부진 체격에 허름한 작업복을 걸친 중년이었다.
“이쪽은 오늘 일을 도와주실 김승필 씨입니다. 제 로스쿨 동기죠.”
“어, 아, 예! 잘 부탁드립니다!”
오기태의 인사에 김승필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이분은?”
“그러고 보니 김승필 씨는 리걸 클리닉에 참여하지 않으셨죠. 정리한 자료를 보내 드렸으니 한번 읽어 보세요.”
김승필은 스마트폰으로 내가 보낸 사건 개요를 확인했다.
오기태 씨의 부친이 요양원에서 낙상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 건이었다.
화면을 훑어 내리던 김승필의 눈매가 빙긋이 휘었다.
“뭘 생각하시는지 알겠군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기태 씨. 그 후로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어휴, 말도 마십쇼. 그 속이 시커먼 원장 놈이 글쎄!”
오기태는 이때다 싶었는지 분통을 터뜨렸다.
“저더러 할 말 있으면 법정에서나 하라지 뭡니까!”
이전에도 확인했듯, 오기태의 부친이 낙상 사고를 입은 이유는 요양보호사가 보행기의 바퀴에 장난질을 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오기태는 따로 그 요양보호사를 만나서 자백하는 진술을 받아 두었다.
문제는 요양원 측에서 사용자책임에 따른 배상을 거절하고, 정녕 뭔가를 받아 내고 싶거든 법정에서 붙어 보자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오기태는 기나긴 법정 싸움을 수행해 낼 여력이 없는 상황.
괘씸해하면서도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저도 그냥 법정 가서 들이받고 싶죠. 하지만 당장 생활이 있으니까…… 변호사를 쓰는 것도 여의치 않은 형편이고요.”
“이해합니다.”
나는 오기태를 다독였다.
“실은 오늘, 오기태 씨의 건과 관련해서 요양원장과 이야기해 볼 약속을 잡았습니다. 오기태 씨를 부른 것도 그래서고요.”
“어, 어떻게요? 그 양반, 제가 전화하면 이제 코웃음 치면서 끊어 버리기나 하던데…….”
나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한국대 로스쿨 리걸 클리닉입니다. 귀하의 요양원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고와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뭐, 그렇게 소속을 들먹였더니 저쪽에서 찜찜한 투로나마 만남을 승낙해 주었을 뿐이다.
역시 사람이란 그럴듯한 타이틀이 있고 봐야 하는 법이었다.
한국대 로스쿨? 리걸 클리닉? 왠지 무시하면 아주 귀찮은, 머리 아픈 일이 벌어질 것만 같지 않은가.
“아무튼, 가시죠.”
문제의 요양원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원장실로 안내받았다.
벗겨진 머리에 배가 잔뜩 튀어나온 사내가 원장 명패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글쎄, 나는 잘 모르는 일이요.”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원장은 시치미를 뚝 뗐다.
“우리는 요양시설이 준수해야 할 안전 수칙을 모두 준수하고 있수다. 직원 개인의 일탈까지 전부 책임지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아뇨. 책임지셔야 합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직원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잘못이더라도, 넓게 보아 외형적으로 직무행위의 범주에 속하는 경우엔 사용자가 책임지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판례는 이 ‘외형적으로 직무행위의 범주’라는 개념을 지극히 넓게 해석하고 있다.
가령 회사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폭행하거나, 성추행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 보자.
어떤 의미에서든 성추행이나 폭행이 ‘직무’에 포함되거나 관련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은 겉으로만 봐도 명백하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사용자책임을 부정하게 되면, 피해자가 현실적으로 가해자 대신 회사에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결국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사용자책임 규정이 유명무실해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판례는 입법 취지와 사건을 둘러싼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케이스에서도 사용자책임의 성립을 인정하곤 했다.
“하물며 보행기를 관리하고, 안전한 상태로 유지하는 건 요양보호사들이 통상적으로 수행해야 할 업무에 속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죠. 원장님께선 고용주로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이 있으신 겁니다.”
“……하, 이거 참.”
원장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법대로 따지길 좋아하시면, 법정에 가서 정식으로 소송을 거시라니까? 왜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요?”
“법정 절차를 밟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니까요. 저희한테든, 원장님께든 피차 귀찮고 소모적인 과정이 될 겁니다. 그보다는 합의를 통해 일을 해결하는 편이…….”
“피차? 아니지, 아니야.”
원장은 비열하게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나는 상관없수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고 돈인데 뭘. 소송하려면 해. 오히려 소송이 부담스러워서 쩔쩔매는 건 그쪽에 계신 분 아니신가?”
“이, 이 금수만도 못한 놈이!”
울컥한 오기태가 앞으로 나섰고, 김승필이 그를 붙잡고 뜯어말렸다.
확실히 요양원장은 양심이 썩어 문드러졌을지언정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는 우리가 타협을 시도하는 게 의뢰인의 사정 때문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졸렬한 놈!”
“졸렬하면? 당신이 뭘 할 수 있는데? 그때 낸 보호자 서류 보니 뭐 어디 경비원인가 그러시던데, 교대 근무하느라 법정 갈 시간은 있으시겠어?”
오기태가 분통을 터뜨리자, 원장은 조롱으로 맞대응했다.
그 꼴을 보던 내가 조용히 말했다.
“언론에 알리겠습니다.”
“……뭐?”
“요양원은 입소자의 가족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소속 보호사의 일탈 하나 사전에 막지 못하고, 이를 책임지지도 않으려 하는 기관에 소중한 가족을 맡기려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겠죠.”
“지금 협박하는 거요? 이거 명예훼손인 거 몰라?”
“형법 310조. 사실의 적시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일찍이 장용환 교수의 수업에서 다루었던 내용이다.
“부실하게 운영되는 요양시설에 관한 진실을 널리 알리는 건, 수많은 노인들과 그 가족들의 공공복리를 증진시키는 이로운 행위입니다.”
“이익……!”
“하지만 원장님께서 기꺼이 도리를 다해 주신다면야, 그런 ‘부실함’은 당초부터 없었던 게 되니 제가 폭로할 건덕지도 없어지겠죠.”
합의에 응하지 않으면 진상을 폭로하겠다는 말은 협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 당신의 과오를 알리고자 하는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그 과오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겠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원래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아니겠는가.
“하, 하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요양원장이, 이윽고 실소를 흘리면서 내뱉었다.
“저기 학생. 책만 보고 공부만 해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는 가르치는 듯한 투로 떠들었다.
“언론에 어쩌고저쩌고하는 거, 그렇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요. 학생이 그냥 덜컥 자료 들고 가서 기사 써 달라고 떼쓰면 그대로 써 주는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면요?”
“기자란 양반들이 학생 같은 풋내기를 만나 줄 만큼 한가한 줄 아는 거요? 대단히 뜨거운 이슈 거리도 아닌데 묻힐 게 뻔하지.”
요양원장이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었다.
“아님, 뭐. 언론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력한 지인이라도 있으신가?”
요양원장의 생각에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요양보호사가 입소한 노인을 다치게 만들고, 요양원 측에서는 이를 은폐하려 든다.
공분을 살 수 있는 주제긴 하지만 그리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사건 사고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벌어지지 않던가.
그 전부가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당연히 언론사 입장에서도 꼭 기삿거리로 다루어 줘야 할 이유는 없었다.
혹시나 정말 기자들이 취재를 나서더라도, 잘 ‘대접’해서 돌려보내는 식으로 무마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 이것 참.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나는 능청스러운 동작으로 옆을 가리켰다.
“김승필 씨. 소개 부탁드립니다.”
갑자기 배턴 넘겨받은 김승필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금방 내 의도를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김승필? 그 이름, 어디선가…….”
“안녕하세요.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김승필입니다. 지금은 잠시 휴직하고 한국대 로스쿨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죠.”
김승필이 품에서 예전 명함을 꺼내 요양원장에게 건넸다.
“한국일보? 서, 설마!”
순간 요양원장의 낯빛이 파리해졌다.
“그, 그 마약클럽 사건 보도한……?”
“때마침 전 직장 동료들이 기삿거리 없냐고 연락을 해 와서요. 그 후로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는 언론사, 뭐 이런 프레임으로 재미를 좀 본 모양입니다. 위쪽에서 공익보도나 범죄 폭로 같은 건수 있으면 닥치는 대로 긁어다 쓰라고 오더가 떨어졌다네요.”
그런데, 하며 김승필이 씩 웃었다.
“마침 하나 찾은 것 같네요. 괜찮은 기삿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