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3)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3화(3/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3화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 강창수 교수는 박유승의 외가 쪽 친척이기도 했다.
원작 초반부에서 박유승은 이를 믿고 더더욱 안하무인으로 굴었다.
하지만 정작 강 교수 쪽에서는 언제나 놈을 눈엣가시이자 가문의 오점이 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여길 뿐이었다.
실제로 박유승은 신서준을 질투한 끝에 도를 넘는 사고를 치게 되고, 한국대 법전원에서 퇴학당한다.
놈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공부나 하는 게 답이었다.
슬쩍 고개를 다시 책에 처박자, 강창수 교수도 흥미를 잃은 듯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이윽고 쿵, 쿵 하는 특유의 지팡이 소리를 울리며 그는 강단 위로 나아갔다.
“주목. 주목하십시오.”
제각기 흩어져 떠들던 학생들이 일제히 강단을 쳐다보았다.
“본격적으로 프리로 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에 대한 안내를 짧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2주간 여러분은 매일 헌법, 민법, 형법의 기본 3법 수업을 수강하고, 총 두 번 테스트를 치르게 될 겁니다.”
노학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추가로 수업 중 팀 단위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현재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과정이니 성심성의껏 임해 주십시오.”
‘현재 수준을 파악한다.’라. 아마도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울러 상기한 과정의 점수를 합산하여 정규 학기의 수강 신청 및 지도 교수 신청이 진행될 겁니다. 또한 최종 5등까지는 우수자 장려 차원에서 300만 원의 생활장학금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역시나.
“입학할 때 안내드린 성적우수자장학금과는 별개로 같은 사람이 중복해서 수령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장학금은 상관없다. 박유승은 돈이 썩어 넘치게 많았으니까.
수강 신청도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인 더 로스쿨’에서 묘사되는 한국대 로스쿨 교수진은 모두 최고의 실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었다.
정해 주는 대로 아무 수업이나 들어도 크게 실패할 일은 없었다.
애초에 공부란 건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하는 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도 교수 신청은 별개의 문제였다.
목표하는 진로에 따라 지도 교수의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가령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인 ‘진&안’에 가고 싶은 학생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진&안 출신인 박성광 교수의 지도 학생 자리를 노려야 한다.
진&안의 채용전환형 인턴에 선발되려면 어떤 자기소개서가 필요한지.
또 인턴 과정에서 부여받게 되는 과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등등…….
박성광 교수는 진&안의 채용에 대한 노하우와 자료를 한껏 축적하고 있었으니까.
졸업하고 금융권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면 최성철 교수를 찾아야 한다.
월스트리트와 국내의 증권사를 넘나들며 국제 금융자문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는, 종종 자신의 지도 학생들에게 금융권 현직들과 안면을 틀 자리를 주선해 주곤 했다.
나처럼 검사가 되고 싶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장용환 교수다.
전직 검사장 출신이자 검사 필기시험의 출제위원으로도 수차례 들어갔었던 형사법의 달인.
역대 지도 학생 중 검사 희망자들을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검사로 임용시킨 한국대 로스쿨의 에이스.
원작에서는 신서준도 장용환의 지도 학생이 되었었다.
당연히 장용환의 지도 학생이 되려는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 프리로 과정에서 적어도 상위 10% 안에 드는 성적을 받아야 했다.
지극히 어려운 과제였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2년 만에 사법시험 2차를 합격했던 나라면.
매일매일을 충혈된 눈으로 공부하며 수험서와 교수저로 책상 위에 탑을 쌓았고.
한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방대한 법학 지식을 씹어 삼키고 소화해 냈던 나라면 할 수 있다.
수년 동안 일에 치여 사느라 그 대부분을 잊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식이 휘발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노하우는 뇌에 새겨져 남는다.
답안지를 쓰는 법, 법학적으로 사고하는 법에 있어서 나를 따라올 사람은 이 안에 없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잊어버린 것을 다시 채워 넣기만 한다면 나는 여기서도 최고가 될 자신이 있었다.
“없는 것 같군요.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1차 시험을 봅시다. 안내문에 각자 필기구는 꼭 챙겨 오라고 명기했었지요?”
노교수의 폭탄선언에 학생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방금 뭘 들은 거지, 잘못 들었나 싶은 웅성거림이 퍼져 나갔다.
“저, 교수님?”
“학생은?”
“한설입니다.”
차석인 한설도 퍽 당황한 얼굴이었다.
“한설 학생. 질문이 있나요?”
“지금 시험, 이라고 말씀하신 게 맞나요?”
“맞습니다만?”
“저희가 받은 안내문에는 오늘 일정이 가벼운 오리엔테이션으로 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시험을 본다는 건 조금…….”
사실 한설은 지금 시험을 보더라도 상당히 유리한 편에 속했다.
다른 학생들이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입학 전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온 동안, 그녀는 ‘민법의 매듭’을 두 번씩 회독하고 철두철미하게 예습해 왔기 때문이다.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학교에서 배운 것도 없고, 시험을 볼 테니 대비해 오라는 공지도 없었는데…….”
하지만 원리원칙주의자인 그녀는 설령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일은 바로잡아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예외를 두지 않는 한설의 꼬장꼬장함은 독자들이 그녀를 피곤하게 여기는 이유이자, 동시에 미워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강창수 교수는 그렇게 일축할 뿐이었다.
“가벼운 오리엔테이션이란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마주할 로스쿨 생활은 끝도 없는 시험, 평가, 실무 수습과 발표 대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시험이야말로 로스쿨을 소개하는 가장 정확한 오리엔테이션이라고 볼 수 있지요.”
노교수가 재차 단언했다.
“부담 갖지 말고 편한 마음으로 보십시오. 어차피 프리로 종합 성적 산출에 있어서 오늘 보는 시험의 비중은 1할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자자, 얼른 시작합시다.
그 목소리에 행정실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튀어나와 학생들을 자리에 앉히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부했다.
침착하자.
지금의 내 법학 실력은 갓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걷기를 훈련하는 환자의 운동능력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시험을 대충 볼 생각은 아니지만, 오늘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학습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과욕은 금물이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다짐함과 동시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한국대 로스쿨에서의 첫 시험이 비로소 막을 올렸다.
* * *
‘올해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군.’
시험장을 돌아다니던 강창수 교수가 내린 결론이었다.
개회식에서 뒤처진 집단이네 어쩌네 하며 겁을 주긴 했지만, 사실은 강창수 역시 아직 입학조차 하지 않은 신입생들에게 많은 걸 바랄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로스쿨 제도 자체가 법학이 아닌 다양한 전공과 경험을 가진 지원자들을 법조인으로 길러 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던가.
물론 많은 로스쿨들이 서류 전형을 통해 법학 유경험자들을 다소 우대하여 뽑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당장 한국대 로스쿨만 해도 초기 기수에서는 사법시험 수험생 출신들을 많이 선발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다시 젊고 머리 좋은, 잠재력 있는 학생들이 많이 뽑히고 있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 테스트를 치르게 하는 이유는 완벽한 답안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학생들이 방학 때 예습을 하고 왔는지, 낯선 시험에 적응하여 그럭저럭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학생은 다르다.’
강창수가 보고 있는 것은 입학 수석 신서준이 문제를 풀어 가는 모습이었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일부러 특정한 판례를 알아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을 출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일반 법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사실관계가 명확한 문제들 위주로 구성했다.
아울러 범위도 1학기에 배우는 내용으로 한정했다.
학생들이 법학을 암기 위주의 과목으로 받아들이기보단 그들 자신의 리걸 마인드(Legal mind)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갔으면 해서였다.
신서준은 그 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문제를 보자마자 막힘없이 문제 되는 개념과 요건, 효과를 목차로 잡아 좌르륵 써 내려가고, 이를 제시된 사안에 적용하여 결론을 도출했다.
적어도 1학기에 다룰 범위쯤은 전부 마스터했다는 티가 나는 풀이었다.
학생들 사이를 거닐던 강창수 교수의 발걸음이 이번엔 한설 앞에서 멈췄다.
‘이 학생도 공부를 열심히 했군.’
신서준이 법리의 활용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라면, 한설은 압도적으로 많은 판례를 외워 자신의 무기로 삼았다.
이번 문제들은 전부 강창수 교수의 머릿속에서 나온 창작의 결과물이었다.
그럼에도 어찌 된 일인지 한설은 매 문제의 사실관계에 정확히 대응되는 판례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 답안에 첨부했다.
판례에 대한 이해가 다소 아쉽거나 논점이 미세하게 빗나가는 실수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대체로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두 학생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다른 학생들도 대체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공부가 부족한 부분은 잘 쓰지 못하더라도 아는 것만큼은 확실히 써내는 학생들이 많았다.
입학한 후 제대로 가르친다면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는 기수가 분명했다.
‘그런 반면에 저놈은…….’
만족스러워하던 강창수의 표정이 돌연 딱딱하게 굳었다.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울 조카, 박유승의 자리 옆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객관식 답안지부터가 문제였다.
이번 테스트의 객관식 문제들은 관련 내용을 한 번이라도 훑어보았다면 틀리지 않을 손쉬운 선지들로 구성했다.
신서준은 보란 듯이 15분 만에 모든 문제의 정답을 골라냈고, 암기가 강점인 한설은 무려 10분 만에 객관식을 완주해 내는 기염을 토했다.
다른 학생들도 최소한 1학기 과정은 어느 정도 예습을 해 온 것인지, 조금씩 막히긴 했어도 객관식을 푸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한데 이 박유승이란 놈은?
문제지를 보자마자 고개를 한 번 크게 끄덕이더니, 엄청난 속도로 문제지를 넘겨 대기 시작했다.
놈이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체크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3분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모조리 찍었다는 뜻이다.
조금 전 자유 시간에 홀로 ‘민법의 매듭’을 읽고 있기에, 혹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인지 조금은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헛된 기대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쉽게 출제된 객관식도 못 푸는 녀석이 사례형 답안을 잘 써낼 리는 없으니까.
그대로 발길을 돌릴까 고민하다가, 강창수는 혈연에 대한 마지막 도리라 생각하고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흠?’
한데, 의외로 박유승의 답안은 기대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비록 문제를 볼 때마다 한참이나 얼굴을 찌푸렸으며, 간단한 내용을 찾기 위해 법전을 뒤적거리기는 했다.
하지만 그가 써 내려간 답안은 일단 전부 맞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답안의 목차만 놓고 보면 거의 완벽했다.
사법시험 시절에도 이토록 깔끔하고 논리적으로 목차를 구성하는 답안은 흔치 않았다.
단지 그 목차 밑에 채워진 내용이 정확한 이론서나 판례의 표현이 아닌 본인의 말로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어 인상이 나쁠 뿐이었다.
‘마치…… 오래전에 법학을 공부해서 통달했던 사람이, 구체적인 표현만 잊어버려 자신의 언어 대로 적어 낸 답변 같군.’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강창수가 아는 박유승은 진지하게 법학을 공부해 본 적이 없는 녀석이었다.
아니, 법학은커녕 그 무엇도 제대로 임해 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한국대학교에 입학한 것도 재수 끝에 운 좋게 펑크 난 학과에 얻어걸린 결과물이었고.
로스쿨에 올 때도 대충 친 법학적성시험에서 여섯 문제나 찍어 맞추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입학한 것에 불과했다.
기이할 정도로 운만 좋은 놈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운으로 그럴듯한 구성의 답을 뽑아냈을 뿐인가?
하지만 어디 객관식도 아니고, 장문의 서술을 요구하는 사례형 답안을 운으로 잘 쓴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원숭이가 마음대로 타자기를 치게 두었더니 돈키호테 완역본이 튀어나왔다는 소리 나 다름없었다.
문득, 먼발치에서 본 자유시간의 박유승이 다시 강창수 교수의 뇌리를 스쳤다.
책에 빨려 들어갈 듯 고개를 처박고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던 놈…….
놈은 그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던가.
‘아, 저건.’
박유승이 호기롭게 문제지의 다음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강창수 교수가 직접 출제한, 이번 시험의 유일한 ‘함정’문제가 실려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민법 110조 2항의 제삼자에 의한 사기를 검토해야 하는 사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기 행위자를 제삼자가 아닌 묵시적 수권에 의한 대리인으로 보아 110조 1항의 사기를 검토해야 하는 쟁점이었다.
이런 유형은 사법시험 시절에나 기본으로 다루어졌던 것이다.
아직 로스쿨에 입학하지도 못한 예비 신입생들에게 들이밀 쟁점이 아니었다.
하물며 다른 문제들이 구태여 법리를 꼬지 않고 제대로 알고만 있으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난이도로 출제된 만큼, 함정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에 더욱 악질적이었다.
애초에 맞추라고 낸 문제도 아니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아 있으니, 자신감은 갖되 교만해지지 말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결코 운으로 풀 수는 없는 문제. 그것에 박유승이 볼펜을 들이밀었다.
‘……네놈은 어떻게 답할 생각이지?’
문제를 읽은 박유승은 나지막이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뭣?’
단숨에 너덧 줄의 답안을 슥슥 휘갈기더니, 그대로 강단에 제출하고 시험장을 나가 버렸다.
강창수 교수는 황급히 지팡이를 놀려 강단으로 향했다. 그러곤 재빨리 박유승의 답안지를 찾아 펼쳐 들었다.
그 마지막 줄에 선명하게 적힌 문장.
– ……한 사정으로 보아 C는 단순한 이행보조자 내지 피용자가 아닌 A의 대리인인 바, 판례는 대리인 등 본인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의 사기행위는 본인이 그에 대해 알거나 알 수 있었을 것을 요하지 않는다고 하므로, B는 이 사건 계약을 110조 1항을 근거로 취소할 수 있다.
‘정답, 이다…….’
그제야 강창수는 민법의 매듭을 들여다보던 박유승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해 냈다.
놈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