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32화(32/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32화
헌재의 연구실은 법학관 꼭대기 층에 있었다.
사람이 좀처럼 드나들지 않는 조용한 복도를 지나, 연구실 문을 열자 산더미처럼 쌓인 법학 서적과 논문들의 산이 나를 맞이했다.
“들어갑시다.”
안으로 들어서니 헌재가 뒤에서 방문을 탁, 하고 닫았다.
“실은 말이지요.”
헌재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두서없는 첫 마디였다.
“내 수업이 환영받지 못하는 것도. 학생들이 폭넓고 깊이 있는,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넌덜머리를 내는 것도…… 사실은, 전부 여러분들 탓이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
“그저, 이 로스쿨이란 제도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헌재가 멀리 창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고작 삼 년입니다. 법학이 얼마나 원대하고 심원한 학문인데, 삼 년 만에 완벽하게 정복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결국 문제 되는 건 얼마나 효율적으로 공부해서 시험에 붙느냐…… 학생들은 거기에 천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역시 알면서 그러는 거였냐.’
“하지만. 하지만요.”
여전히 그는 나를 등지고 선 채였다.
“그래도 누군가는 지켜야 합니다.”
“지킨다고요?”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배움과 가르침을. 깊이와 근간을.”
헌재가 말을 이었다.
“그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젠 로스쿨이란 교육기관 전체가 원생들의 변호사시험 합격과, 내세울 만한 아웃풋을 일궈 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지요. 내 듣기로는 소위 학원가 일타강사란 치들보다 우리 교수님들의 강의가 더 수험에 잘 맞을 지경이라더군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고 그는 덧붙였다.
“한 사람쯤은. 딱 한 사람만이라도 이 나라에 아직 학문법학의 맥이 끊긴 것은 아니라고, 내가 그것을 지켜 내고 있노라고 호소해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
그렇게 말하는 헌재의 뒷모습은 어쩐지 무척 지치고 외로워 보였다.
시대의 흐름에 홀로 맞서 싸우는 작은 투사.
그 신념에 공감하든, 반대하든 간에 짊어지고 있는 것의 무게만큼은 와닿는 순간이었다.
“박유승 학생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지요.”
헌재가 서랍을 열더니 서류철 하나를 꺼내 건넸다.
“교수님. 이건.”
“오늘 집필을 끝낸 논문입니다. 개인적인 연구 목적으로 집필한 물건이라, 아마 발표는 하지 않을 것 같지만.”
헌재는 이만 물러가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가져가세요. 한 번 쭉 읽어 보고, 감상을 들려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며 헌재가 덧붙였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는, 박유승 학생에게 달려 있다…… 고 해 두지요.”
‘갑자기 웬 미발표 논문을? 앗, 설마!’
어떻게 활용할지는 내게 달려 있다니. 그 말을 곱씹던 나는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서류철을 넘겼다.
첫 장에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제목.
[국립대학의 자율성이 갖는 범위와 한계 – 법률유보원칙의 적용범주를 중심으로]법률유보원칙.
그건 이하루의 프로그램 ‘날먹’에도 집어넣은, 이번 중간고사 범위에 포함되는 키워드였다.
‘……혹시 시험에 낸 건가? 이걸?’
국립대학의 자율성과 관련된 판례를 법률유보원칙에 근거해서 평가하는 문제.
헌재의 평소 출제 스타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이건 맹점인데.’
일찍이 나는 헌재가 시험 문제를 만들 당시에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즉 비교적 최근에 연구한 주제들이 출제될 거란 논리를 편 바 있다.
이는 실제로 모든 기출문제와 연결되는 논문의 존재로 증명됐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연구하고 있는 주제야말로 헌재가 가장 관심을 두고 중요하게 여기는 내용이 아니겠는가?
아직 쓰고 있는, 미발표된 논문에서도 문제를 출제할 수 있으리라는 데는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래도 행정적인 업무부터 강의 준비까지 온갖 일로 바쁠 교수라는 자가, 설마하니 중간고사 관련 작업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새 연구논문까지 쓰는 중이리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대부분의 로스쿨 교수들은 헌재의 십 분의 일만큼도 학술적 저작을 남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학문법학에 영혼을 바친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러 이걸 챙겨 줬다는 건, 역시 시험에 냈단 소리겠지.’
알아서 활용하라던 때의 그 미묘한 발음의 강세와 악센트.
눈치를 밥 말아먹은 게 아닌 이상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스터디에서 준비한 요약문들도 알짜 중의 알짜 자료였지만, 이건 아예 문제와 답을 통째로 가르쳐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이걸 그냥 받아먹어도 되는 건가?’
이미 발표된 논문들을 모아서 보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자료고, 정확히 어느 논문에서 문제가 출제될지 모르는 만큼 일부러 사람을 모아서까지 분량을 나누어 대비했다.
그러나 이 논문은 다르다.
미발표된 것인 만큼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
게다가 그걸 건네준 것은, 시험을 직접 출제하는 교수 본인.
이래서야 문제 유출이고 부정행위가 아닌가.
“교수님.”
“…….”
위대한 법학자가 나를 마주 보았다.
아니, 아니다. 거기에 서 있는 것은 그저 한 명의 인간이었다.
누구도 편들어 주지 않는 고독한 투쟁에 지쳐 버린 평범한 남자.
그는 어떤 심정으로 내게 이 논문을 건넸을까.
“교수님, 저는.”
헤아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혼자 읽어 버리고 말기에는, 이 논문이 너무나도 가치 있는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
“말씀하신 ‘배움’을 위해서라도, 제가 이 논문을 직접 요약 정리해서 원우들과 함께 공유해도 되겠습니까?”
적어도 그의 삶에 평생 후회할지도 모를 작은 오점을 남기지 않는 것.
“미발표된 논문인 만큼 절대 바깥으로 새어 나가진 않게 하겠습니다. 대신 강의 시간에 참고 자료처럼 제공해서, 원우들이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사용하고자 합니다.”
이거면 된다.
교수가 직접 가져온 참고 자료에서 시험 문제가 그대로 나오는 건 흔한 케이스다.
나 혼자 볼 때와 다른 점은 모두가 이 자료를 볼 수 있기에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거 시험에 낸대요, 하고 친절하게 입에 떠먹여 줄 생각까지는 없다.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데 그 정도 어드밴티지는 가져도 될 것 아닌가.
그래도 눈치 있는 놈이라면 알아서 몇 페이지짜리 요약문 정도는 시험 전에 읽어 보고 올 것이다.
부가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내가 뿌린 요약문 덕분에 한 문제라도 건진 녀석들은 시험이 끝나면 내게 감사하게 될 테니까.
언제까지고 미움받는 인간으로 남아서야 이런저런 활동에 불리하니, 이쯤에서 이미지 개선을 꾀해 보는 것도 괜찮겠지.
무엇보다 훌륭한 점은 딱히 내가 손해 보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헌재가 내는 중간고사는 두 문제로 이루어져 있다.
한 문제는 이 논문에서 나온다고 쳐도, 나머지 한 문제는 결국 우리 스터디에서 준비한 12편의 요약문 안에서 출제된다는 소리다.
성적이란 건 결국 상대평가다.
만약 내가 논문을 공유한 덕분에 한 문제를 전원이 잘 쓰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나머지 한 문제에서 반드시 등수가 갈리게 되어 있다.
굳이 부정에 가까운 짓까지 저지르면서 욕심을 낼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헌재의 시험 난이도를 생각하면 어차피 고득점은 우리 차지니까.
“……학생은, 정말 여러 번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내 제안에 헌재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우뚝 서 있더니, 이내 허탈한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인간이 될 뻔했습니다.”
헌재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기한은…… 시험 전에 수업이 딱 한 번 남았군요. 그때로 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때까지 준비해 오겠습니다.”
“좋습니다. …… 이만 가 보세요. 조금 피곤하군요.”
그렇게 나는 헌재의 연구실을 나섰다.
꽤 오랫동안, 문 너머에서 고뇌하듯 불규칙적으로 서성이는 구둣발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 * *
다음 수업에 맞춰 강의실로 돌아오니, 이하루와 한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사하심?”
“어. 별일 없었어.”
나는 연구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들에게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완전 별일인데?”
“난 또. 스승님 대학원생 되는 줄.”
그게 무슨 끔찍한 소리야.
“우린 이미 대학원생이잖아.”
“헉. 맞네.”
전생의 학부 시절에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긴 했었다.
교수님의 마음에 쏙 드는 퍼포먼스를 펼쳐 보인 동기가 연구실로 납치되더니, 졸업 후 대학원에 끌려가고 말았다는 흉흉한 괴담.
하지만 우리는 이미 대학원생이었다. 앞에 ‘전문’이 붙긴 하지만 어쨌든.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박사 과정 같은 걸 권유해 올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요원한 이야기였다.
인권을 박탈당한 노예가 되어 학문에 몸 바칠 일은 결코 없었다.
“그래도 안심했어.”
한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진 않았다 싶어서. 그걸 그냥 받아서 너 혼자 썼거나, 우리끼리만 돌려보려고 했으면 엄청 실망했을 거야.”
‘아. 그런 뜻.’
그건 한설의 기준에서 명백하게 선을 넘는 행위였을 것이다.
아직 한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잔뜩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손절당할 수야 없는 노릇.
‘애초에 불공정한 승부는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점수를 잘 받아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계가 오후 2시 정각을 알렸다. 이번 과목은 다름 아닌 형법.
덜컥하고 문이 열리더니 장용환이 칼같이 강의실에 들이닥쳤다.
‘역시 시간 하나는 철저한 양반이란 말이야.’
조금 일찍 올 수는 있어도 늦게 오는 법은 결코 없었다.
장용환만큼 정시 시작 정시 종료를 확실하게 지키는 교수는 드물었다.
이런 철저함이야말로 그의 화려한 커리어를 뒷받침하는 근간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자, 그럼.”
장용환이 입을 떼자 제각기 이야기를 주고받던 학생들도 일제히 조용해지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수업의 질도 훌륭했지만, 장용환에게는 본능적인 차원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사자 앞에 선 초식동물이 그 위압감에 짓눌리듯, 좌중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킨다.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충분히 뜸을 들였다는 듯 장용환이 운을 떼었다.
“오늘의 수업을 시작하겠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평소와는 다른 인사.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아, 이거 혹시 그 장면인가?’
“급한 일정이 생겨서 잠시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해. 따라서 오늘 수업은 없다.”
원작에도 있었던 장면이었다.
이날 장용환은 현직 때부터 오랫동안 추적해 온 ‘어떤 사건’의 증인을 만나러 자리를 비운다.
신서준이 한국대 로스쿨에 진학한 이유나, 원작의 최종 보스와도 관계된 중요한 안건이었다.
아무래도 슬슬 메인 시나리오가 굴러가기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휩쓸려 가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인 더 로스쿨’은 무척 파란만장한 이야기니까.
대비하기 위해서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이 꽤 많았고, 어느 정도 머릿속에 정리도 해 둔 상태였다.
다만.
당장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보다 좀 더 가까운 문제였다.
“그럼 휴강인가요?”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꼭 이제 자유냐고 물어보는 것 같군그래.”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다. 여러분은 학기당 수백만 원에 달하는 학비를 내고 있는데, 교수란 작자가 개인 사정으로 빠진답시고 수업을 방기해서야 되겠나?”
장용환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조교님들. 준비 다 되셨습니까?”
그게 신호였던 듯, 앞뒤에서 조교들이 큼지막한 종이봉투를 잔뜩 안고 강의실 안으로 진군했다.
“이 봉투가 맞을까요, 교수님?”
“맞습니다. 배부해 주십시오.”
학생들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저 봉투 안에 든 것의 정체를.
“……시험지?”
제 몫의 봉투를 받고 열어 본 한설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앞에는 몇 장 분량의 시험 문제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얼핏 훑어보니 형법 객관식 문제로 보였다.
내 앞에도 어느새 똑같은 봉투가 툭 떨어졌다.
“그건, 내가 이번 시험을 위해 만들었지만 결국 출제하지 않은 문제들이다. 요컨대 폐기물들이지.”
하지만. 하고 장용환이 덧붙였다.
“폐기물이라곤 해도 내가 만든 문제. 난이도와 질은 보장할 수 있다. 그리고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이번 시험이 어떤 식으로 출제될지 감을 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
“오오…….”
처음엔 긴가민가했던 학생들도 그제야 귀중한 보물이라도 만지는 듯 조심조심 시험지를 집어 들었다.
장용환의 말대로 이 시험 문제들은 형법 중간고사를 대비하는 데 있어 최고의 교보재였다.
문제의 수준으로 보나 유형으로 보나 장용환이 출제할 중간고사 문제와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용환이 어디 이런 당근을 공짜로 안겨 줄 사람이던가.
결코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었다.
“금일 수업은 이 문제들을 푸는 것으로 대체하겠다. 모두 푼 사람은 조교님들께 제출하고 나가도 좋다, 만.”
빨리 가려고 대충 풀고 내진 않는 게 좋을 거다. 장용환이 그렇게 부연했다.
“강의계획서를 보면 성적에 과제점수 10%가 반영된다고 쓰여 있었지. 그 점수, 오늘 제출한 시험지의 채점 결과로 갈음하겠다.”
즉 단순한 연습문제 같은 게 아니란 소리였다.
그 자체로도 성적에 반영되는 만큼 기를 쓰고 풀어야 했다.
10%면 석차 수십 등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당한 비중이었다.
“어, 어떡하지.”
“망했다. 객관식은 시험 직전까지 눈에 발라서 달달 외워야 풀리는데.”
“첫 장만 슬쩍 봤는데 헷갈리는 거 엄청 많아…….”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듯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같은 개념, 같은 범위에 대한 시험이라도 객관식과 사례형을 대비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사례형 시험에선 긴 글을 직접 써내게 된다.
따라서 각 쟁점의 논리구조 전부와 법리의 핵심 키워드들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읊을 수 있도록 숙지해야 한다.
대신 법전을 참조할 수 있고, 논리적인 다툼과 해석의 여지가 있는 굵직한 쟁점들로 출제 대상이 한정된다.
따라서 의외로 암기해야 할 분량은 적다. 하나하나를 뼈에 스미듯이 익혀야 할 뿐.
반면 객관식은 무엇이든 출제될 수 있다.
지엽적인 한 줄짜리 판례 결론도 나올 수 있고, 법조문의 단어 하나만 살짝 바꿔서 선지에 넣을 수도 있다.
때문에 암기해야 할 대상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신 눈으로 선지를 읽고 참 거짓을 분별할 수만 있으면 되기에 깊이는 덜해도 된다.
여러 번 읽고 눈에 익혀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넓고 얕은 지식은 특성상 휘발성이 무척 강하다.
그래서 시험 한참 전에 열 번 읽은 사람보다, 시험장 들어가기 직전까지 두 번 읽은 사람이 훨씬 더 선명한 기억을 갖고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다.
수험생은 언제나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생물이다.
결국 객관식 공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뤄 둘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먼저 읽어 봤자 어차피 까먹거든.’
그러니만큼 예고 없이 치르는 객관식 시험이라는 건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대비되어 있을 수 없는 구조.
하물며 그 출제자가 악질적인 함정 파기의 달인 장용환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너무 겁먹지 마라.”
장용환이 학생들을 다독였다.
“불시의 객관식 시험에 대비가 안 되어 있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뭐 전 개년 객관식 선지를 싹 다 긁어다가 어딘가에 표시해 두고, 매일매일 반복해서 읽기라도 한 게 아닌 다음에야 잘 못 보는 게 당연하지.”
장용환은 농담하듯이 말했다.
“설마하니 변호사시험을 앞둔 로3도 아니고, 1학년 중에 벌써 그런 미친놈이 있을 리가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