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35)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35화(35/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35화
[스터디룸 이용 제한 관련 안내]“뭐야 이건.”
언제나처럼 스터디룸으로 향하니 웬 출입 금지 팻말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듣자 하니 스터디룸 천장을 통과하는 배수관에 작은 문제가 생겨서 당분간은 이용이 금지된다고 했다.
이럴 거면 홈페이지에라도 공지를 좀 해 두지, 현장에 입간판만 걸어 놓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곤란한걸.”
단순히 혼자 공부하는 거라면 그냥 열람실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뭐임. 스룸 못 씀?”
이하루가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런 것 같은데.”
지금 나는 헌법 스터디원들을 대동한 상태였다.
생각보다 이 인간들하고 죽이 잘 맞아서 다른 과목들까지도 함께 공부하기로 했던 것이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도 있고, 공부 스케줄에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하는 만큼 스터디는 늘 괜찮은 공부 전략이었다.
“다른 장소를 찾아야겠군요.”
김승필이 말을 받았다.
“여섯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고, 육성으로 논의를 주고받더라도 문제 되지 않는 곳으로.”
“휴게실은 어때? 거기 큰 테이블 하나 있잖아.”
한설이 제안했다.
제법 그럴듯한 해결책이었다.
원래 쉬고 떠들기 위한 장소라 문제없기도 하고,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방해받을 일도 적다.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나머지 인원들도 찬동해서, 우리는 짐을 챙겨 휴게실로 향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뭐야, 이 짐짝들은.”
테이블에는 누군가가 쌓아 놓은 가방, 텀블러, 책 따위가 잔뜩 쌓여 있었다.
상법 교재나 형사소송법 교재가 눈에 띄는 걸로 봐서는 2학년의 작품이 분명했다.
이대로는 사용하기 곤란하다.
그렇다고 선배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는 것도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난감한 분위기가 감돌자, 한설이 나섰다.
“규정 위반이야.”
그녀는 거침없이 테이블로 다가가 물건들을 휴게실 한구석으로 치워 버렸다.
“휴게실에 개인 비품을 놓아두거나 특정한 자리를 사석화하는 건 학생 규정으로 금지되어 있어. 불만 있으면 학생회에 가서 따지라지.”
“……괜찮겠냐?”
속 시원한 행보였지만, 인맥과 평판, 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법조계에서 선배와 대놓고 마찰을 빚는 건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충분했다.
그렇기에 나는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 재판연구원 지망이잖아. 공직도 임용할 때 레퍼첵(레퍼런스 체크, Reference check) 한다며.”
레퍼런스 체크.
공직 임용이나 로펌의 입사자 선발을 앞두고, 대상자의 인성이나 평판에 결함이 있지는 않은지 주변에 연락해서 확인하는 제도다.
이 레퍼런스 체크의 존재 때문에 로스쿨에서는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일이 잦았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유예슬이 끼어들었다.
“가방 디자인 보니까 아는 선배예요. 올해 태종에 인턴 썼다고 들었는데…… 레퍼첵? 그걸 걱정해야 할 건 한설 씨가 아니라 이 선배일걸요. 후후.”
그러고 보니 지금 우리에겐 대형로펌 태종의 대표 딸내미가 있었다.
로펌 쪽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 중 태종에 지원해 보지 않는 이는 드물었다.
유예슬의 말마따나 평판을 걱정해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든든하긴 하네.’
규칙에 따라 정당한 권리를 행사해도 아무런 뒤탈이 없다니.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이었다.
뭔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온갖 잘못된 관행과 권위 의식으로 뒤범벅된 법조계에서 대쪽같이 굴 수 있으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아무튼 덕분에 우리는 편하게 자리를 잡고 예정대로 스터디를 진행할 수 있었다.
미리 각자 내신 기출문제들을 풀어 보고, 답안을 서로 공유하면서 오개념이나 놓친 쟁점들을 메워 가는 방식이었다.
“이 문제, 여기서 막혔는데.”
유태운이 제 답안지를 내밀자, 나는 한번 슥 훑어본 후 대답했다.
“아 그거. 본등기의 소급효가 적용되는 시점을 잘못 잡았네. 그건 제1가등기가 아니라 제2가등기에 기한 본등기잖아.”
“어? 아, 그러네! 그럼 여기서 근저당권설정등기가 말소되는 게 아니라…….”
공부를 안 한 게 아니기에 사소한 오류만 집어 줘도 다들 팍팍 알아먹었다.
“그거 똑같은 사실관계로 판례도 있어.”
“기본서엔 없던데?”
“최신 판례거든. 작년에 나온.”
“크아악. 또 가필해야겠네.”
순전히 도움만 베푸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일반법리에 의지해서 푼 문제 중 몇 개에는 아예 사실관계가 꼭 들어맞는 판례가 따로 존재했다.
다소 마이너하거나 최신 판례라서 기본서에는 빠져 있는 경우였다.
한설은 그런 케이스들을 어디선가 기가 막히게 외워 와서는 첨언해 주었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법리에 맞게 사안을 포섭해서 풀어도 점수는 준다.
그러나 대놓고 판례를 빼다 박은 문제들은 결국 그 출제 의도가 ‘너 이 판례 아니?’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판례가 있다면 있다고 써 주는 편이 당연히 득점에 유리했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판례를 모르고도 답이 나오는 게 더 신기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야 박유승 씨에게는 그 강창수 원장님의 피가 흐르니까요! 타고난 리걸 마인드로……!”
“당신은 좀 조용히 하시고.”
“넵! 죄송합니다!”
하마터면 또다시 유예슬의 박유승 숭배 타임이 돌아올 뻔했다.
처음엔 원장과의 혈연을 가지고 나를 음해하려 했으면서, 그녀는 이제 뭐만 하면 내 핏줄을 들먹이며 나를 찬양하려 들었다.
‘그나마 말이라도 잘 들어서 다행이지.’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유태운이 답안지 더미를 쥔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으, 그나저나 이거 진짜 쉽지 않네.”
“뭐가?”
내가 되묻자, 녀석은 답안지를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민법 III 내신 기출문제 말이야. 모범답안이 공개되어 있질 않으니까 죄다 일일이 풀어 본 다음 서로 맞춰 봐야 하잖아. 그나마도 100% 완벽한 답인지도 확신할 수 없고.”
“아아.”
민법 III, 그러니까 물권법을 가르치는 전규완 교수는 내신 시험지를 회수해 가지 않는다.
따라서 그간 출제된 기출문제는 모두 공개되어 있지만, 문제는 모범답안을 정리한 자료가 없다는 점이었다.
모범답안이 공개되어 있다면 공부하기 쉽다.
결론과 핵심 쟁점은 물론이고, 교수가 어떤 포인트에 가점을 주거나 감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서 방향성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반면 정답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면 맨땅에 헤딩하듯이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
기본서와 강의안을 뒤적이며 빠진 쟁점은 없는지 체크하고, 교수가 강조한 부분들을 서로의 필기를 확인해 가며 남김없이 찾아낸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게 그런 작업이었다.
“확실히 오래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민법은 그만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어. 품을 들이는 만큼 기억에 남고 몸에 체화될 테니까.”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
유태운은 수긍한 듯 고개를 떨궜다.
애초에 입으로는 우는소리를 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우직함이 그의 강점이었다.
하도 답안을 써댄 탓인지 녀석의 손가락엔 못 보던 굳은살까지 박여 있었다.
그건 박수를 쳐 줄 만한 태도였지만, 사실 나라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규완 교수는 굳이 분류하자면 헌재와 비슷한 학자 스타일의 교수였다.
헌재보다는 ‘수험적합적인’ 쟁점들을 골라서 출제하는 편이지만, 문제를 만들거나 채점하는 방식에는 확고한 본인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그런 만큼 우리가 쥐어짜 낸 답이 전규완이 생각하는 백 점짜리 해설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는 셈이었다.
“노력하는 과정에 가치가 있는 건 맞지만…… 역시 모범답안이 있었으면 좋겠긴 해.”
내 생각을 대변하듯 한설이 툭 끼어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서 설명했다.
“사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야.”
“어? 진짜?”
“그래. 물권법 학회라고 혹시 들어 봤어?”
한국대 로스쿨에는 학생들끼리 모여서 만든 다양한 학회들이 존재했다.
금융법학회나 형사법학회 등이 비교적 유명했고, 개중에는 전규완 교수가 지도하는 물권법학회도 있었다.
“물권법 학회는 전규완이 출제한 시험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있어.”
연구 주제로 쓰라면서 전규완이 자기 데이터베이스를 통째로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전규완은 1학년 과정 담당이고 물권법 학회는 2, 3학년만을 회원으로 받아 왔기에 큰 논란이 되진 않았다.
“그럼, 물권법학회 쪽에 찾아가서 교섭해 보면 되는 거 아니야? 우리는 발 넓은 사람이 둘이나 있잖아.”
유태운이 한설과 유예슬을 가리켰다.
“안 돼.”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는 법이었다.
“물권법 학회, 재작년을 마지막으로 폐쇄됐거든.”
전국을 휩쓴 전염병과 비대면 시대가 그 원인이었다.
당시에는 로스쿨마저 모든 학사 체제를 비대면으로 진행했고, 그 탓에 학회나 동아리 등 대면 활동이 요구되는 학생 단체 중 상당수의 명맥이 끊겨 버리고 말았다.
물권법 학회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현재 다니고 있는 재학생 중 물권법 학회에 몸담았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실, 꼭 재학생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한 명 있기는 한데…….”
물권법학회가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학회장.
그녀는 졸업 후 변호사시험에서 떨어진 탓에 로스쿨 기숙 자습실에서 재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학교에 남아 있기는 한 셈이었다.
“별로 추천하고 싶은 선택지는 아니야.”
이유는 간단하다.
실은 이미 내가 직접 그녀를 만나 보았기 때문이다.
– 안녕하세요, 선배님. 올해 입학한 1학년 박유승이라고 합니다. 실은…….
– 꺼져.
– 네?
– 꺼지라니까. 변호사시험 떨어졌다고 조롱하려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공부하는 사람을 왜 찾아와서 괴롭히는 거야?
불합격의 충격은 학회장을 무척이나 폐쇄적이고 편집증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다.
모두에게 기대받는 엘리트에서 한순간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경험이 큰 상처가 된 모양이었다.
학회장은 제대로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나를 떠밀어 쫓아냈다.
– 1학년? 맙소사, 내 동생이 이런 놈들이랑 동기라니. 혹시라도 희진이가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일러둬야겠어.
수확이라곤 학회장에게 우리와 동기로 입학한 동생이 있다는 사실과, 뒤틀릴 대로 뒤틀린 지금도 동생만큼은 꽤 아낀다는 걸 알아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은 건실하게 답안을 만들어 가는 게 최선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작업에 매진했고, 몇 시간이 흐른 끝에 그럭저럭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없어졌다.”
약간 떨어진 곳에 무리 지어 있던 학생들 중, 안경 쓴 여학생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름은 가물가물한데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대체 어디서 봤더라.
옆에 선 남학생이 그녀에게 물었다.
“없어졌다니?”
“민법I 교재랑 필기 정리본이 없어졌어.”
“자리에 두고 온 거 아니야?”
“아냐. 항상 가방에 넣어 두고 다닌단 말이야.”
안경 쓴 여학생은 울상을 지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어, 너도?”
“나도 형법I 개념 정리한 노트 잃어버렸는데.”
“나는 민법 I 강의안이…….”
“사실은 나도…….”
사방팔방에서 교재나 노트, 자료를 분실했다는 증언이 속출했다.
한두 명이라면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야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도둑맞은 거 아니야?”
누군가가 일부러 동기 원우들의 책을 훔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음, 벌써 때가 됐구만.’
원작에서도 딱 중간고사 직전에 벌어지는 사건이었다.
공부 잘하는 걸로 알려진 동기들의 책과 자료가 연쇄적으로 도둑맞고, 신서준이 그 범인을 밝혀 내는 에피소드.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찌질하게 무슨 남의 책을 훔치고 숨기느냐면서 악플이 잔뜩 달린 회차였지만.
작가는 놀랍게도 실제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한가.’
나야 전생에는 안 다녀봤으니 모르지만, 로스쿨에서의 경쟁은 평범한 사람마저 괴물로 만드는 일면이 있다고 들었다.
내신 성적에 따라 평생의 진로가 결정될 수도 있는 시스템이다.
가뜩이나 공부로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끼리 모아 놨으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어라 노력하며 경쟁에 매달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모두가 열심히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1등부터 150등까지 등수가 나뉜다.
이제껏 평생을 최상위권으로 살아온, 단 한 번의 실패나 패배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학생이라도 로스쿨에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위치에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혹한 환경 속에 아직 미성숙한 정신을 가진 학생들이 내던져진다면.
개중 누군가는 흔들리고 무너져서 잘못된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는 법이었다.
‘뭐, 그건 나랑은 상관없는 문제고.’
원작에서 이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은 당연하게도 신서준에게 주어진다.
그는 직접 범인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가짜 CCTV를 설치하고 ‘당신이 범인인 걸 안다, 오늘까지 모든 책과 자료를 되돌려 놓으면 눈감아 주겠다’라는 공고문을 여기저기 부착해서 범인을 압박했다.
원래 한국대 로스쿨의 열람실 건물에는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인지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범인도 이를 눈치채서 절대 걸리지 않으리라 믿고 저지른 짓일 테니, 그 확신을 흔들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범인은 훔친 물건을 전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된다.
어차피 로스쿨생이란 평생 일탈다운 일탈 한번 해 보지 않은 샌님이 대다수.
심약한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라면 그 정도로도 돌이킬 수 있다는 이야기이리라.
아무튼 그런 전개였던 탓에 범인이 누구인지는 원작 독자인 나로서도 알지 못했다.
사실 알아낼 방법 정도는 있긴 한데, 가만히 둬도 신서준이 해결할 일에 굳이 끼어들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어, 어떡해. 중간고사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흐윽!”
그렇기에 여학생이 파들파들 떨다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도 나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두지 않으려 했다.
‘어?’
눈물을 닦기 위해 여학생이 안경을 벗었다.
‘잠깐.’
그러자 비로소 드러난 맨얼굴은, 최근에 만난 누군가를 쏙 빼닮아 있었다.
‘……저 사람, 물권법 학회장이랑 똑같이 생겼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