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53)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53화(53/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53화
“이번 사건은 유죄냐 무죄냐를 가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건 이 문제에 엮여 있는 엄청나게 많은 쟁점들 중 하나에 불과해.”
“……그러면?”
지금까지 법정변론대회의 사건 형식은 첫 번째 예선전과 똑같이 주어졌다.
죄목은 미리 정해서 알려 주고, 그게 성립하는지 아닌지를 물어봤다는 이야기다.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하면 검사 측의 승리고, 유죄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는 것을 밝히면 피고인 측의 승리다.
직관적이면서도 깔끔한 룰.
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안 줬잖아. 죄목.”
“앗. 그러네.”
“이건 죄의 무게를 직접 가늠해 보라는, 다시 말해서…… 무엇을 얼마나 처벌해야 하는지 처음부터 정해 보라는 소리야.”
예컨대 똑같이 강도 짓을 하다 사람을 죽인 놈이 있다고 치자.
이놈이 돈과 재물만 뻇어 가는 걸로도 모자라서 고의로 사람을 죽였다고 하면 강도살인죄로 처벌된다.
반면 강도 짓을 하긴 했는데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고, 살짝 겁주려고 휘두른 팔이 실수로 맞아서 피해자가 죽어 버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는 강도치사의 죄목으로 처벌받게 된다.
양자는 죄의 무게도, 그에 따르는 처벌의 무게도 서로 다르다.
당연히 입증해야 할 내용도 고의와 과실로 구별된다.
“변호인의 입장에서는 무죄를 받아 내는 게 최고의 결말. 그게 불가능하다면 조금이라도 형이 가벼운 죄로 처벌받도록 유도해야 해.”
그것이 변호인의 승리 조건이라면, 당연히 그에 맞서는 검사 측의 승리 조건은 정반대가 된다.
되도록 무거운 형으로 처벌받도록 주장을 구성해야 하고, 어떻게든 무죄가 나오는 결과만큼은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
“하지만 무겁게만 한다고, 가볍게만 한다고 능사인 건 아니야.”
일단은 제시된 자료와 증거에 비추어 입증 가능한, 즉 ‘말이 되는’ 주장이어야 한다.
설득 가능성과 입장상 죄의 무게를 잘 가늠해서 가장 합리적인 타협점을 짚어 내야 한다.
“그럼…… 프리로 2차 평가 때 형사 문제들이랑 가장 비슷한 거네.”
“그렇지. 그때도 검사는 되도록 무겁게, 변호인은 되도록 가볍게 만들도록 주장해 보라고 시켰으니까.”
사안이 이런 형식으로 짜인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변호인 측을 선택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검사는 적용할 죄목을 고를 기회가 단 한 번뿐이지만, 변호인은 일단 무죄부터 주장했다가 보충적으로 조금이라도 처벌이 덜 무거운 죄목을 적용해 달라고 계속 주장을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형사재판에서 입증책임은 기본적으로 검사에게 있기 때문에, 증거에 대해 시비를 걸어 볼 여지도 상대적으로 더 많다.
당연히 문제를 출제한 장용환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주장을 전개하고, 시비를 걸고, 방어하는 모든 과정을 종합해서, 총체적으로 ‘더 잘한’ 팀의 손을 들어 주겠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장용환이 생각하는 답에 근접한 결론을 내리더라도, 그 과정에서 억지를 부리거나 바른길을 못 찾고 빙빙 돌아가면 질 수도 있다는 거지.”
“어렵네…….”
직관적이진 않다.
유죄면 검사의 승리, 무죄면 피고인의 승리.
지금까지 치러 온 예선전의 구조가 훨씬 더 간단명료하고 알기 쉽다.
그럼에도 이렇게 바꾼 의도는 대체 무엇일까.
“뭐일 것 같아?”
“음…….”
팀원들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이제까지 이런 부분에서 항상 기막힌 답을 찾아내 왔기 때문인지, 무한한 신뢰가 쏟아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녀들을 향해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겠어.”
“엑.”
“아니, 내가 신이냐? 그렇게 언제든지 교수의 속마음을 줄줄이 꿸 수 있으면 저 자리에 앉아 있어야지, 왜 너희들 옆에 앉아 있겠어.”
나는 장용환이 앉은 판사석과 우리의 자리를 순서대로 가리켰다.
나는 단지 남들보다 문제를 좀 더 많이 풀어 본, 그래서 잔머리가 약간 잘 굴러 가고 노하우가 많은 수험생에 불과하다.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다만…… 이 사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겠어.”
“그건 나도 알 것 같아. ‘보라매병원’ 사건하고 ‘김할머니’ 사건을 살짝 섞은 거 아니야?”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보라매병원 사건은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별거하기에 이른 아내가, 의식불명인 채로 연명치료를 받게 된 남편의 퇴원을 요구해서 남편을 사망하게 만든 사건이다.
김할머니 사건은 폐암 치료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김할머니’에 대해 가족들이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하고.
병원 측에서 이를 승인했지만 정작 할머니는 치료가 중단된 뒤에도 바로 사망하지 않고 수백 일간 더 삶을 이어 갔던 사건이다.
과다출혈로 인한 식물인간화나 환자가 노인인 점은 김할머니 사건과 유사하고.
사건 전에 환자가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악인이었다는 점이나 연명치료가 중단되자마자 즉시 사망했다는 점은 보라매병원 사건과 유사하다.
과연 판례 복사기 한설이었다.
보자마자 어떤 판례들을 재료로 문제를 만들었는지 단숨에 꿰뚫어 보다니.
“굳이 그 두 사건을 섞었다고 생각하면…… 짚어야 할 쟁점들이 무엇무엇일지는 대충 감이 잡혀. 검사와 피고인 중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도 말이야.”
“뭐야, 역시 생각이 다 있었구나. 그래서 어디를 골라야 하는데?”
“검사.”
나는 단언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피고인의 변호인 측이 좀 더 유리하다며?”
“그렇긴 해. 하지만 그 점은 분명히 장용환 교수님도 잘 알고 계실 테고, 감안해서 평가하겠다고 언질을 주셨잖아. 그리고 변호인이 유리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구조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나는 서류의 어느 한 지점을 검지로 슥 훑으며 덧붙였다.
“이 사건만큼은, 검사 쪽에 서는 게 좀 더 나을걸.”
* * *
판사석, 그리고 방청석 측에는 양쪽 대기실의 화면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본격적으로 법적 공방이 치러지기까지는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당장 이 10분의 분석 시간이 종료되고 나면, 양 팀은 2시간 30분 동안 자료를 읽고 서면을 작성하며 주장을 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방청객들이 이렇게 북적거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저렇게 송출되는 화면 덕분에 참가팀이 문제를 분석하고, 자료를 검색하며, 주장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일 초도 남기지 않고 낱낱이 공개된다.
다시 말해 우수한 학생들의 사고방식과 논리,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포함해서 온갖 것들을 눈동냥 해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잊어서는 안 될 사실 하나. 이곳은 한국대 로스쿨이었다.
공부로 성공하는 데 목숨이라도 건 것 같은 미치광이들이 모인 집단.
그렇기에 단지 화제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리는 만무했다.
재미를 위해 움직이기엔 지나치게 엉덩이가 무거운 족속들이다.
다 빨아먹을 단물이 있으니까 모이는 법이었다.
‘호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건 방청객들만이 아니다.
판사석에 앉은 평가위원 또한 준비 과정을 살피며 점수를 매기는 데 참고할 데이터로 삼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장용환은 번뜩이는 눈으로 양 대기실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직시하고 있었다.
“저기, 민환 오빠. 혹시 우리가 도울 건…….”
“없다.”
“형, 저희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요. 물론 멱살 잡고 끌고 가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 팀인데 저희도 조금은 쓸모란 게 있어야 염치가…….”
“괜찮다.”
구민환의 팀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혼자 3인분, 아니 평범한 학생을 기준으로는 3인분을 넘어서 5인분이나 10인분도 거뜬히 해낼 기세의 구민환이 모든 자료를 움켜쥐고 놔 주지 않는 판국이었다.
그는 아예 자기 앞에 서류뭉치를 세 더미로 나누어 놓고, 그 셋을 동시에 넘기면서 개요를 파악하고 메모지에 뭔가 끼적끼적 적어 나가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버린 두 팀원은 옆에서 쩔쩔매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 사건기록. 어떻게 만들었을까.”
“응? 만드는 방법?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어?”
“음.”
구민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없어도 된다는 거다.”
바로 그때, 마치 듣기라도 한 듯이 반대쪽 대기실의 화면에서 답이 들려왔다.
“‘보라매병원’ 사건하고 ‘김할머니’ 사건을 살짝 섞은 거 아니야?”
‘……실력 차이가 좀 나긴 하는군.’
장용환은 생각에 잠겼다.
최성철이 이번 1학년을 두고 황금 기수라며 기뻐했던 이유가 다 있었다.
아무리 최상위권이라고는 해도, 요 1학년들로 구성된 팀은 이미 2학년생들의 평균적인 수준을 한참 웃돌고 있었다.
한설은 모르는 판례란 게 아예 없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암기량을 뽐낸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울 지경인데, 저 박유승이라는 놈은 숫제 출제위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으려는 아주 괘씸한 작태를 보여 줬다.
너무 괘씸해서 장용환의 입가에 웃음이 번질 지경이었다.
‘재미있어.’
그가 이번 1학년들 중 가장 눈독 들이고 있는 재목이 바로 박유승이었다.
놈은 학기 초부터 남들이 짚어 내지 못하는 쟁점을 짚고, 보지 못하는 함정들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곡예를 선보이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중간고사 1등마저 달성해 내는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뭘 보여줄 테냐, 박유승.’
물론 아무리 이 1학년들에게 장용환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는 해도, 이번 결승전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느냐면 그건 또 다른 문제였다.
저쪽에는 구민환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수재가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었으니까.
“쟁점은, 다음과 같다.”
“어, 어? 설명해 주는 거야?”
“한 번만.”
구민환이 수첩에 적은 글자와 서류 더미를 슥 대조해 보더니 읊기 시작했다.
“첫째. 이 사건 안락사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의 여부.”
“헌법적인……? 오빠, 우리 형사 다루고 있는 거 아니었어?”
“김할머니 사건에서는, 특수한 조건하에서라면 소극적 안락사는 적법하다는 판례가 나왔다. 이번 사건의 안락사도 적법하다고 볼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애초에 범죄 자체를 구성하지 않으니 김갑동이든 이을남이든 전부 무죄다.”
“……앗, 그렇구나!”
구민환은 그 뒤로도 수첩에 적은 메모를 읽어 나가면서 사건의 쟁점을 차례차례 짚어 냈다.
관련된 부분의 자료가 몇 페이지에 있는지까지 착실하게 체크해 둔 뒤였다.
서류를 집어 들고 검토하는 그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이고 있었다.
“와, 진짜 저 형은 미친 사람이다. 혼자서 저만큼의 서류를 읽으면서 벌써 저만큼의 쟁점을 뽑아냈다고?”
“전문가를 어떻게 이기겠냐. 이미 형법으로 밥벌이를 하다 온 사람이잖아.”
“양민 학살에도 정도란 게 있지.”
관중석에서는 그렇게들 떠들고 있었다.
그만큼 구민환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는 2학년들 사이에서도 남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장용환이 보기에는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이 자료 좀 봐.”
“이건…… 의사 소견서네?”
“좀 이상하지 않냐?”
“어, 잠깐만. 으음…… 어디가?”
“여기 이 부분. 아까 날먹에 돌려보고 오류 나길래 다시 봤는데, 명백하게 문장구조나 서식이 달라지는 지점이 있어. 원본은 따로 있고, 문제로 만드는 과정에서 누군가 손댔다는 소리야.”
반대편 화면에서는 박유승이 서류를 집어 들며 단언하고 있었다.
“교수는 할 짓 없는 사람이 아니야. 엄청나게 바쁜 분들이라고. 그런데 예선용으로 자료 수백 페이지를 만들면서, 구태여 내용을 이렇게까지 잔뜩 바꾸어 가면서 손을 댄 부분이 있다? 무조건 쟁점을 숨겨 놨다는 뜻이야.”
“……이제 와서 하는 소리지만, 정말 이런 식으로 풀어도 괜찮은 걸까?”
박유승의 관찰력. 직감. 그리고 출제자를 역으로 읽어 내려는 특유의 접근방식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단서를 쥘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실제로 박유승은 꽤 정확하게 냄새를 맡은 편이었다.
‘그 보고서…… 편집하다 조금 실수를 한 모양이군.’
사실 실수라고 하기도 뭣했다.
의사들이 사용하는 문장과 법률가의 문장은 기초부터 다를 수밖에 없으니, 건드린 흔적이 표가 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 힌트를 찾는 ‘꼼수’를 부리는 박유승이야말로 진짜 이상한 놈일지도 몰랐다.
-삑. 삑. 삑.
그런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품에 넣어 두었던 스톱워치가 날카로운 알림을 울려 왔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의미였다.
“제한 시간 종료.”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오르는 것이었다.
“양 팀은 법정으로 모여, 희망하는 입장을 제시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