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59화(59/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59화
“검사 측은 일찍이 이런 논리를 펼친 바 있다.”
구민환의 묵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비록 김갑동의 행위는 방조처럼 보이지만, 단순한 방조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A의 아들이라는 지위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의무가 있어서, 이를 방임해서 생긴 죽음에 대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랬었죠.”
“그렇다면…… 동일한 논리가 이을남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구민환이 나직하게 선언했다.
“C병원은 김갑동과 A의 생명에 관한 의료계약을 체결했다. 그 상대방으로서, 의료기관으로서 C병원 측에는 A의 생명을 치료하고 존속시켜야 할 당위적인 의무가 발생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지적이었다.
의사에게 환자를 돌볼 의무가 있다는 것만큼 분명한 진실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의무’를 가진 집단에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A를 퇴원시키는 것은…… 곧 의무의 부작위 아닌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진다.
“그 말씀은?”
“죄목이 틀렸다는 소리다.”
구민환이 대꾸했다.
“이을남에게 적용되어야 할 죄목은, ‘살인방조’가 아니라 김갑동과 마찬가지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다.”
‘역시……!’
지금 구민환은 내가 한 번 펼쳤던 논리를 완전히 가져다 써먹고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도록 한 게 의무의 방임이라면, 의료진이 환자를 죽게 만든 것 또한 의무의 방임으로서 마찬가지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구민환은 내가 전개할 주장을 전부 읽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같은 논리를 활용해서, 내가 거부할 수 없게 결론을 수정하려는 심산이었다.
자기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니까.
한설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구민환의 구사해 오는 전략이란 결국 이런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신서준 그놈도 그랬었지.’
– 민환 선배님은 압도적이고 완전한 승리를 즐기죠.
– 상대방의 무기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뭐 그런…… 느낌이 좀 오시나요?
그렇게 생각하고 내가 쓴 서면을 되돌아보니, 구민환이 접근할 만한 지점이 눈에 띄었다.
그게 바로 이 부작위범 논증이었던 것이다.
“이상한데요.”
하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척하며 되물었다.
“피고인 측은 분명 무죄를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야 오히려 살인죄의 정범이 되어 형량만 무거워질 텐데요.”
“어설프군.”
한순간 구민환이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정말 그 녀석에게 이긴 게 맞나?”
“법정 안입니다. 사담은 그만두고 결론부터 말씀하시죠.”
내가 흔들리지 않자, 그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을남에게 적용해야 할 죄목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하지만 이건 검토해야 할 죄가 무엇인지를 확정한 것일 뿐, 실제로 살인죄가 성립하는지는 지금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답부터 말하지.”
구민환이 툭 내뱉었다.
“피고인 이을남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할 정도의 법령, 조리, 계약상의 의무가 없다. 따라서 그는 무죄다.”
“……그게 무슨 말장난이죠?”
옆에서 한설이 불쑥 일어났다.
“방금 피고인 측 변호인은 ‘의사의 의무’가 있으니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랬지.”
구민환이 검지를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일반론이다. 환자의 신병을 맡고 있는 의료진 측이 치료행위의 중단으로 환자를 죽게 만들었다면, 당연히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검토해야 한다는 일반론.”
“그래서요?”
“실제로 의료진 측의 구성원인 각 개인에게 살인죄가 성립할지는, 그들의 신분이나 역할, 환자나 보호자와 체결한 의료계약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다시금 하나하나 따져 보아야 한다.”
구민환은 한차례 목을 가다듬고는, 판례 하나를 호명했다.
“91도2951 판결.”
그것은 형법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판례였다.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갖는다면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동등한 형법적 가치라는 말이 모호하게 들리지만, 실제로 판단되는 방식은 간단하다.
그냥 부작위를 저지른 사람이 지고 있던 ‘의무’가 충분히 무겁고 중요한 것이면 부작위범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소리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물에 빠진 조난자를 발견하고도 모르는 척하고 지나갔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대뜸 그에게 사람을 살리지 않은 ‘부작위’를 물어 살인죄를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구조요원이 그랬다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대원은 또 어떤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사회적 신뢰를 유지해야 할 막중한 의무를 가진 이들이 이를 저버리는 것은 정말로 나쁜 짓이라는 이야기다.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평가될 만큼.
결국 의무의 무게와 깊이, 사안과의 관련성을 가지고 부작위범의 성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렇다면 쟁점은 단순해진다.
피고인 이을남이 A에 대하여 지고 있던 의무는 얼마나 무겁고 중요한 것인가.
“피고인 이을남은 사건 당시 병원에 근무하던 ‘당직의사’다. 긴급한 사태를 대비하거나 입원환자의 입, 퇴원을 관리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지.”
“그 말은…….”
“A의 전담 의사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김갑동과 체결한 의료계약의 당사자나 책임자도 아니었다. 당직의로서 업무를 성실히 해야 할 의무쯤은 있겠지만, A의 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 할 정도의 무거운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
“궤변이잖아요!”
한설이 분개해서 외쳤다.
“당직의사면 환자의 생명을 책임질 정도의 의무는 없다? 그렇다면 환자의 퇴원을 결정할 권한도 없어야죠! 애초에 죽을 게 뻔한 환자의 퇴원을 결정할 수 있는 시점에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있었다고 보아야……!”
“근거가 있나?”
“……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주장만으로 그쳐서는 의미가 없지.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판례가 있느냐고 묻는 거다.”
“아니, 그건…….”
그제야 한설도 구민환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눈치챈 것 같았다.
“형사재판에서 유죄의 입증책임은 전부 검사 측이 진다. 당직의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할 정도의 의무를 부과할 ‘확실한’ 근거가 없다면, 피고인 이을남은 무죄를 선고받아야 한다.”
결국 구민환은 판례 싸움을 하자고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굵직하고 큰 법리, 수험적으로 유의미한 법리에 관한 판례가 아니라, 자잘한 사실관계의 인정을 두고 다투는 진흙탕 같은 싸움이었다.
보통의 경우 판례 가져오기 대결로 넘어가면 한설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수험의 범주에 들어가는 판례 중 그녀가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댈 만한 판례가 없다는 점이 아니었다.
“어, 어떡하지.”
한설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작위의무에 관한 판례는, 정답이 없는 문제잖아…….”
‘그래. 오히려 너무 많다는 점이지.’
의료인의 부작위범을 판단하는 문제에 있어서, 판례는 제법 오락가락하는 편이었다.
그냥 병원에 근무하고 있던 간호사에게도 의무를 인정해서 부작위범으로 본 판례가 있는가 하면, 치료 과정에 참여한 의사한테 부작위범의 성립을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래서야 판례를 들어서 주장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당한 판례를 들어서 ‘봐라, 여기에 비추어 보면 당직의사한테도 충분한 작위의무가 인정된다’고 외치더라도, 저쪽에서 또한 ‘아니, 이 판례에서는 인정 안 된다는데?’ 하고 카운터를 날릴 게 뻔하니까.
판사끼리도 의견이 통합되지 않은 문제라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시험에 부작위범을 낼 때도, 출제위원들은 어떤 논란도 없이 판례가 통일된, 아주 전형적인 소수의 케이스들만 골라서 출제하곤 했다.
내가 자주 예시로 들었던 경찰관이라든지, 아니면 본인의 가게에 찾아온 손님에 대한 술집 주인이라든지.
의료인의 경우에는 워낙 판례가 오락가락하는 만큼 부작위범을 쟁점으로 출제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걸 저 인간이 억지로 부작위범으로 끌고 가서 이 사달이 난 거지만.’
“흠.”
구민환은 내가 노려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어서 근거를 대 보라는 듯 무기질적인 시선을 이쪽으로 향해 올 따름이었다.
“난장판이네.”
“이건 판례 가지고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일 텐데…… 그냥 우기기 싸움이 되겠구만.”
“그러면 역시 민환이 형이 유리하지 않을까? 온갖 사건 사고며 사실 기록을 만지고 해석하다 온 사람인데. 결국 경험의 폭은 못 따라가지.”
관객석에서 쑥덕대는 소리들도 이건 구민환에게 유리한 싸움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라면 실무가의 경험치를 뛰어넘기는 어렵다.
특히나 경찰이란 결국 공무원이고, 어떻게든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선례와 매뉴얼을 끌어들여 제 입맛에 맞게 써먹는 데는 도가 튼 족속들이었다.
구민환 본인도 진흙탕 같은 우격다짐 대결에는 자신이 있었으니 이쪽으로 유도해 왔을 터.
그렇게 모두가 구민환의 우위를 점치고 있는 상황에서.
“……하.”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 하하.”
“왜 웃지? 포기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요. 그냥 웃겨서 그렇습니다.”
구민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 이게 선배님께서 무죄를 주장하시는 이유이고, 근거입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단언했다.
“이 시합, 선배님의 패배입니다.”
“……뭣?”
미동도 없던 구민환의 눈동자에, 내가 그의 패배를 입에 담는 순간 처음으로 이채가 어렸다.
“확실히 선배님은 굉장합니다. 제 논리를 역이용해서 억지로 답이 없는 문제로 끌고 왔고, 본인의 경험치와 역량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무대를 만드셨죠. 그 치밀한 설계와 수싸움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법학도로서는 영 빵점이십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묻겠습니다. 선배님께 법학이란 무엇입니까?”
맥락 없는 물음에 구민환은 순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지기 싫어서 별 헛소리를 다 하는군.”
어느새 그는 평소의 무기질적인 얼굴로 되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어울려 주지 못할 것도 없지. 좋다. 말해 주마. 내게 법학이란 건.”
그리고서 그는 툭 내뱉었다.
“승리를 거두어야 할 게임판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그렇겠지.’
구민환이 로스쿨에 온 이유는 오직 하나.
본인의 두뇌와 논리력을 드러내고, 경찰로서 쌓아 온 경험과 역량을 선보이며 내로라하는 수재들을 꺾어 나가는 것.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해 이곳에 입학했다.
그에게 있어 법학이란 배우고 공부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학문이 아니었다.
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당장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눈앞의 상대를 밟아 올라서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만을 골라 취해 왔다.
– 민환 선배님은 음, 사실 법학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거든요.
그 방식은, 일견 내 공부법과도 닮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법학을 사랑한다.
가능하다면 육법전서의 근간에 녹아든 심원한 법리 전부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 것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시간도, 천재적인 머리도 갖고 있지 않기에 거꾸로 가장 실용적인 쟁점들부터 출발한 것뿐이다.
여유가 생긴 지금은 쟁점과 쟁점 사이를 이어 주는 일반적인 법리이론이나, 판례의 소수 의견까지도 챙겨 가면서 내 안의 체계를 빈틈없이 재정비해 가고 있다.
그 차이가.
구민환이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더 할 말 있나? 슬슬 시간 끌기는 그만두지.”
“그러죠.”
나는 잠시 그를 마주 보았다.
내게 평생의 꿈이었던 법학을, 자신의 알량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한 오락거리로만 대해 온 남자가 저기 서 있었다.
“지금 피고인 측의 주장에는.”
그 오만의 대가를 치르게 해 줄 차례였다.
“아주 심각한 오류가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