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6)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6화(6/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6화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신서준은 툭 하고 제 접시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메뉴는 나와 같은 오븐 치킨 그라탕이다.
애초에 원작에서 녀석이 즐겨 먹던 음식인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난 거의 다 먹었는데.”
“잠깐이면 됩니다. 저도 먹는 속도가 꽤 빠른 편이거든요.”
에두른 거절에도 신서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 앉더니 그라탕을 한술 푹 떠서 입안에 쑤셔 넣었다.
중세 귀족처럼 기품 있게 생겨 먹은 녀석이 품행은 퍽 소탈했다.
“박유승 씨죠? 아까 1반 형법 수업에서 같은 문제에 대해 발표했던 신서준이라고 합니다. 정말…… 인상 깊게 잘 들었습니다.”
“운 좋게 얻어걸렸을 뿐이야.”
“저는 기껏해야 명예훼손죄를 아는지 물어봐서 선행 수준이나 체크하려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쟁점을 이중으로 숨겨 뒀을 줄이야. 듣고 나서야 아차 했습니다. 이런 게 ‘천재’의 풀이인가 싶더라고요, 하하.”
신서준이 붙임성 좋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건 그가 즐겨 쓰는 수법이기도 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선망받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지를 알고 있기에, 역으로 거리낌 없이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얼굴에 금칠을 해 준다.
‘이런 대단한 녀석이 날 인정해 주다니!’ 하면서 들뜬 상대가, 쉽게 자신에게 호의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기분은 좋았다.
화면 너머로만 지켜보며 부러워했던 원작 주인공이 내 풀이를 칭찬해 주는 것은 꽤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하지만, 넘어가선 안 된다.
“바쁘니까 본론부터 말해.”
“어이쿠, 실례.”
일부러 더 무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도 신서준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싱글거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참 성격도 좋구나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신서준은 그런 천사표에 바른 생활 사나이형 주인공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모를까.
“박유승 씨.”
신서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좋은 법조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시험하는 듯한 눈빛이 날카롭게 날아와 박혔다.
‘……이건.’
나는 이 질문을 알고 있다.
‘원작에서 한설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사실 신서준은 순수하게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로스쿨에 들어온 케이스가 아니다.
원작 스토리가 진행되며 밝혀진 사실이지만, 녀석에게는 이곳 한국대 로스쿨에 입학해야만 하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 다른 원우들과의 관계는 결국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장기말의 탐색에 불과했다.
신서준은 그 싱글거리는 낯짝으로 뜻을 숨긴 채,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물색했다.
놈의 레이더에 걸려 들면 필연적으로 메인 스토리에 엮여 들게 될 것이다.
사람이 죽어 나가고 교직원이 용의자로 잡혀가는 그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에.
그럴 순 없었다.
내게는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지 않은가.
한눈팔지 않고 오직 공부에만 매달려도 달성할까 말까 한 아득한 목표다.
내버려두면 알아서 신서준이 해결해 줄 시나리오에 끼어들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퉁명스레 내뱉었다.
“법학 잘하는 놈.”
“……그가 정의롭지 못한 일에 힘과 지식을 사용한다면요?”
“법학 잘하는 게 정의야.”
신서준의 눈썹이 움찔했다.
아주 짧은 순간, 놈의 얼굴에 실망스럽다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습니까.”
이걸로 됐다.
원작의 한설은 ‘누구에게나 원리원칙을 공정하게 적용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가 신서준의 그물망에 코가 꿰이고 말았다.
예비 법학도들의 정의감은 그가 무척 좋아하는, 그리고 즐겨 이용하는 먹이었다.
말수가 확 줄어든 신서준은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모를 속도로 그라탕을 해치우더니, “그럼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 한마디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일단 살아남긴 한 셈이다.
“으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라지만 부조리를 입에 담는 것은 역시 기분이 나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세상이 올바르게 굴러 갔으면 해서 검사를 꿈꿨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법학 잘하는 게 정의야.’
맞는 말이다.
정의롭지 않은 놈이라면, 그건 진정으로 법학을 잘하는 게 아니니까.
* * *
1차 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며칠 만에 객관식은 물론이고 인당 수만 자 분량의 답안을 제출하는 사례형 문제까지도 모두 채점했다는 소리였다.
한국대 로스쿨 교수들은 죄다 괴물인가.
그 사이 몇 번의 민법, 형법, 헌법 수업이 지나갔다.
한설은 교수님께서 무언가 질문할 때마다 번번이 손을 들고 정답을 외쳤고, 덕분에 우리 조는 순조롭게 포인트를 쌓아 가고 있었다.
비록 나머지 한 명은 여전히 수업에 나오지 않고 있지만…… 한설이 최소 3인분을 해 주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와, 또 신서준이 1등이야?”
“경찰대 수석 출신이라잖아. 우리랑은 그냥 구력 자체가 다르지.”
“차석은 한설이네. 얘도 진짜 어지간하다.”
학생들이 웅성대는 쪽으로 흘긋 시선을 던졌다.
1차 시험 결과의 ‘발표’는 개별 통지나 홈페이지 로그인을 통한 확인 따위의 미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한국대 로스쿨은 훨씬 더 노골적이고, 잔혹하고, 음습한 의도가 한껏 담긴 수단을 활용했다.
학생들이 에워싼 복도 벽면.
그곳에는 1등부터 150등까지, 예비입학생 전원의 1차 시험 성적 및 등수를 일렬로 인쇄한 벽보가 붙어 있었다.
1등. 신서준
2등. 한설
3등. 정민식
.
.
.
원작 때부터 익숙하게 보아 온 그 면면들이다.
참고로 내 이름은 그 별처럼 빛나는 최상단에서 아득히 떨어진 곳에 있었다.
139등. 박유승
……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객관식을 통째로 찍고 집어던졌으니까.
물리적으로 점수가 괜찮게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순수하게 사례형에서 받아 낸 점수만으로 열한 명이나 제쳤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해야 할지도 몰랐다.
“오, 문제별 정답률도 있네?”
“객관식 4번 정답률 보소. 13%? 저거 답 뭐냐?”
“4번이 뭐더라…… 소멸시효? 그거 나도 찍어서 모름.”
원우들이 나는 모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객관식 문제는 아예 읽어 보지도 않았으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얼핏 보기에 문제 퀄리티는 좋아 보이던데, 나중에 기본서 회독하면서 최종 점검용으로 풀어 봐야겠다.
“와, 뭔데 사례형도 점수분포표가 있냐. 여기 교수들 진짜 시험에 진심인가 봐.”
한 학생이 가리킨 대로, 벽보에 있는 것은 객관식 문제들의 정답률만이 아니었다.
총 8문의 사례형 문제에 대해서도 각 문제별 최고점과 최저점이 표시된 점수분포표를 함께 붙여 두었다.
“사례 8문 뭐임? 20점 만점인데 딱 한 명만 18점이고 나머지 거의 전원이 9점 아래네.”
“이건 한 명만 정답이고 나머진 죄다 개소리 썼다는 거 아니야?”
“8문이 뭐였길래? 사례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 없었던 것 같은데…….”
“그거 아니냐? 그 제삼자에 의한 사기 취소 문제?”
“뭐야. 그거 던져 주는 쉬운 문제 아니었어? 뭔가 함정이 있나?”
그걸 시작으로 제법 학구적인 토론이 오갔지만, 정답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쉽사리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대신 모두가 동의한 명제가 딱 하나.
저 18점, 틀림없이 신서준이다!
“아뇨, 저는 아닙니다.”
하지만 신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성적 나왔다는 소리 듣고 교수님 찾아가서 답안 강평을 부탁드렸었는데, 그때 제 답지를 꺼내서 보여 주시면서 뭐가 틀렸는지 다 짚어 주셨거든요. 제가 8문에서 받은 점수는 11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벽보를 보고 떠들기나 할 때 쟤는 교수님께 가서 피드백을 구해 오는구나.
과연 저렇게 하니까 수석이구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신서준조차 답을 맞추지 못했다니.
잇따라 이들은 한설과 정민식에게로 방향을 돌렸지만, 이들 역시 8문 최고점의 주인공이 아닌 것은 매한가지였다.
“야. 혹시…… 저거, 너야?”
한설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아닌데?”
“……그렇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어, 사실 나야.
물론 입 밖에 내진 않았다.
139등이 유일한 정답자라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니까.
가뜩이나 일전의 활약으로 한설에게 의혹을 살 뻔했는데, 구태여 나설 까닭은 없다.
어쨌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1차 시험은 망했다.
아주 처참하게!
그러니만큼 프리로 최종 성적을 챙기기 위해선 조별 평가와 프리로 종강 직전에 치는 2차 시험에서 더더욱 좋은 점수를 받아야 했다.
조별 평가 쪽은 한설이 맹활약해 주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2차 시험 쪽이다.
프리로 종강까지는 채 2주도 남지 않았건만, 2차 시험은 1차 때와 달리 민법 전 범위에 형법총론까지 시험 범위로 들어간다.
그만큼 다른 학생들도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는 시험이긴 했다.
그러나 나는 최상위권의 성적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 않던가.
결국, 죽어라 공부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돌아가서 공부나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한껏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경영대의 수치, 관악산이 낳은 최악의 꼴통, 박유승 선생이시잖아.”
돌아보니 원작에서 본 것도 같은 얼굴이었다.
“그, 누구신지.”
“배현중이라고! 모르는 척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하, 이름을 들으니 기억이 났다.
배현중은 박유승과 마찬가지로 소모품 악역으로 쓰인 캐릭터였다.
차이가 있다면 배현중은 나름 공부는 잘했고, 박유승보다는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더 많다는 정도였다.
결국 신서준에게 정리당해 스토리에서 퇴장한다는 점은 같았지만.
하지만 그건 독자로서의 기억이고, 박유승이 그와 접점이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배현중이란 놈도 박유승이나 한설과 같은 경영학과 출신이었던 것 같긴 한데…….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배현중이 발끈해 소리쳤다.
“개 같은 새끼! 너 따위가 한국대 로스쿨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아니, 하지만 들어와 있잖아.”
“하. 분명 뭔가 입시 비리 같은 거라도 저질렀겠지.”
‘진짠가?’
순간 설득력 있다는 생각을 잠깐 해 버렸다.
한국대 로스쿨은 학점도, 입학시험인 LEET도 최고의 점수를 기록한 이들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그것은 한국대 로스쿨의 현실 모델이 되는 로스쿨도 마찬가지였다.
박유승 같은 진짜배기 꼴통이 입학했다는 건 다소 무리한 설정이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작가가 집어넣어 놨지, 내가 집어넣었나.
내가 대꾸하지 않자 더욱 흥분한 배현중이 공격을 이어 갔다.
“139등? 푸핫, 그따위 등수나 받을 바엔 자퇴하고 말지.”
“그러는 너는 몇 등인데.”
“37등이다!”
“……좀 치긴 하네.”
어정쩡한 등수처럼 보이지만, 이곳이 전국 굴지의 괴물들모이는 한국대 로스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저 등수면 3대 로펌이나 로클럭도 노려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 성적이 끝까지 간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지만.
“당연하지. 너 같은 열등한 쓰레기랑은 태생이 다르다고.”
배현중이 이죽거렸다.
그래, 배현중은 이런 캐릭터였지.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겐 한없이 굽실대지만, 자기보다 ‘급’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상대에게는 아무렇게나 대하는 놈이었다.
그 꼴이 퍽 우스워 한마디 했다.
“그렇게 우월하시면 아까 대답 좀 하지 그랬어. 139등 따리한테 눈 뜨고 점수 뺏기지 말고.”
“그, 그건……!”
배현중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아닌 게 아니라 놈에게는 자존심에 상처가 될 법한 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그 누구도 장용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신서준과 나를 제외하고.
신서준에게 밀리는 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답하지 못한 문제를 내가 풀어냈다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만큼.
“하, 한설! 그래. 같은 조인 설이가 알려 줬겠지! 네가 스스로 답한 게 아니라!”
그 발로인지 배현중이 악다구니를 썼다.
“야, 쟤가 널 ‘설이’라고 부르는데? 너 쟤 아냐?”
“너 몰라? 쟤 학부 때 나한테 작업 걸다 까였잖아. 아직도 저러고 다니네.”
슬쩍 옆에 있던 한설에게 귓속말을 하자, 마찬가지로 속닥거리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하, 그런 사이.
그 꼴을 본 배현중은 속이 꺼멓게 타들어 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이도 고생이 참 많아. 저런 떨거지랑 같은 조가 돼서 억지로 챙겨 주느라. 그러지 말고, 이번에 내가 스터디를 하나 여는데…….”
“야.”
그런 배현중의 말을, 한설이 툭 잘라 냈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 얘랑 억지로 다니는 거 아니거든? 물론 다른 사람이랑 같은 조가 됐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적어도 박유승은 자기 쓸모를 입증했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었어? 감동인데.”
한설이 자진해서 나를 비호해 줄 줄은 몰랐다.
중간에 안 들어가면 더 좋았을 문구가 삽입된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그리고 그 다른 사람에, 너는 해당 안 돼.”
칼 같은 거절.
박유승>배현중이라는 부등식을 확고하게 천명하는 순간이었다.
“……쓰레기 같은 놈. 그새 착한 설이를 구워삶았구나.”
아쉽게도 배현중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두고 봐라. 설이만 믿고 등 뒤에 숨어서 편하게 점수를 버는 것도 이제 곧 끝이니까.”
그 말을 남기고, 배현중은 이를 부드득 갈며 자리를 떠났다.
“……밥맛 떨어지게, 진짜.”
그 뒷모습을 보며 한설이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