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68)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68화(68/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68화
“그럼, 이것으로 수업을 마치겠다.”
강단에 선 장용환은 오늘따라 유달리 표정이 좋지 않았다.
“질문 있나?”
“있다고 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이다, 그치.”
옆에서 한설이 속삭였다.
“그러게. 가르치는 일 하나에는 진심인 양반이 왜 저러지.”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던 걸까?”
“안 좋은 일이라…….”
듣고 보니 뭔가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이맘때쯤 장용환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일이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의문은 금방 해소되었다.
“자. 다들 주목!”
벌컥 하고 뒷문이 열리더니, 최성철 부원장이 싱글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로스쿨 홈페이지에는 이미 공지가 나가긴 했는데, 그거 아무도 안 보는 거 아니까 육성으로 다시 한번 공지한다. 강의 끝난 거 맞지? 지금 전달해도 문제없죠?”
마지막 물음은 장용환을 향한 것이었다.
장용환은 교단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 마지못한 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네? 좋아, 그럼 다들 잘 듣도록.”
그와 달리 최성철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너네 오늘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공강이지? 그때 정석규 국회의원님께서 오셔서 특강을 하실 거야.”
‘아하. 이거 때문이었구만.’
“의원님은 우리 로스쿨의 전신인 한국대 법대 출신이시니까, 너희들 선배기도 하거든? 꼭 전원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해. 알겠지?”
강의실이 소란스러워졌다.
“정석규?”
“국회의원이 특강을 하러 온다고? 왜……?”
사실 꽤나 뜬금없는 소식이었기에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국회의원이라는 게 법을 만드는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것은 사실이고, 때문에 의원 중에는 법조계에 몸을 담갔던 이들이 적지 않다.
변호사나 판검사 출신의 현직 국회의원만 검색해 봐도 수십 명이 나오는 판국이다.
심지어는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법조인 출신의 수가 꽤 될 만큼 대한민국에서 법조계는 정치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다만 정작 오늘 온다는 정석규 의원은 법조인이 아니었다.
한국대 법대 출신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사법시험 대신 운동권에 투신한 인물이었다.
거기서 명성을 얻고 비로소 정치에 입문한 케이스였다.
로스쿨 특강에 어울리는 인선인지는 다소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석규…… 그 작년에 뉴스 나왔던 사람 아니야?”
한설이 소곤거렸다.
“왜, 그 부인의 땅 투기 문제로 논란이 됐던…….”
“어허!”
그걸 어떻게 들었는지, 최성철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의원님께선 그런 분이 아니시다! 얼마나 사회 환원에 힘쓰시고, 나라에 이바지하시는 분인데! 당장 너희들이 수업 듣고 있는 이 제2법학관만 해도, 의원님께서 기부하신 자금으로 증축한 건물이라고. 감사하게 여길 줄을 알아야지!”
최성철은 발을 굴러 쿵쿵 소리를 냈다.
마치 이 바닥도 의원님의 은혜로 깔았으니 그 존재감을 느껴 보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만하시지요, 부원장님.”
보다 못한 장용환이 그를 제지했다.
“정 의원님께서 많은 금액을 저희 로스쿨에 기부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민영 교육기관도 아니고, 이 나라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는 국립 법학전문대학원입니다. 이렇게 특정한 후원자를 부각시키는 건 적절한 처사가 아닌 것 같습니다.”
“쯧, 하여간 장 교수는 그 깐깐함이 문제라니까.”
혀를 찬 최성철은 그대로 돌아서 강의실을 나갔다.
“아무튼 난 전달했다? 반드시 전원이 참석해야 해. 학생회 통해서 각 기수 단톡방에도 공지할 거긴 한데, 확실하게 하려고 직접 온 거야. 알겠지?”
최성철이 남긴 신신당부만이 학생들의 귓가에 남아 들러붙었다.
“……다들, 나가도 좋다.”
그렇게 말하는 장용환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도 더욱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정석규가 온단 말이지.’
나로서는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국회의원 정석규.
그것은, 앞으로 한국대 로스쿨에서 벌어질 참극의 원흉이자.
우리 일가와 함께 처참하게 몰락할 최종보스의 이름이었다.
* * *
“너, 특강 갈 거야?”
“글쎄.”
오후 2시 50분. 스터디룸에서 느긋하게 수험서를 뒤적이던 내게 한설이 물었다.
“안 가면 큰일 나는 거 아님? 부원장이 그렇게 집요하게 구는 거 처음 봤는데요.”
“실제로 큰일 날 걸. 아마 출석 체크도 하고, 도중에 못 나가게 강의실 후문도 통제할 거야.”
원작에서도 그렇게 극성을 부렸으니 틀림없었다.
“으엑. 대체 왜 그렇게 진심인 걸까.”
한설이 몸서리를 쳤다.
“그야, 부원장의 원대한 꿈을 이루는 데 정석규의 힘이 필요하니까.”
“원대한 꿈?”
“그래. 우리한테는 꽁꽁 숨기고 있지만, 교수 사회도 꽤 치열한 정치판이거든.”
지금 한국대 로스쿨 교수들의 세력 판도는 크게 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강창수 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원장파.
박수근 교수나, 법대 시절부터 자리를 지켜 온 터줏대감인 헌재가 대표적인 원장파 교수로 손꼽힌다.
나머지 하나는 최성철과 가까운 교수들로 이루어진 부원장파다.
이들은 최성철이 밀어붙인 다양한 개혁안들이 연쇄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급격하게 세를 불렸다.
전통의 원장파냐, 실적의 부원장파냐.
그 구도에서 부원장 최성철의 입지를 더욱 단단하게 굳혀 준 것이 바로 정석규 의원의 존재다.
“정석규의 기부금, 그거 최성철 부원장이 발품 팔아서 따온 거거든.”
“어, 그런 거야?”
“그러니까 최성철이 정석규를 띄워 주는 건, 사실 자기 치적을 자랑하는 거나 똑같다는 소리야.”
최성철이 정석규의 기부금을 칭송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그걸 타 온 사람이 바로 최성철 자신이니까.
그는 매 순간 내가 이만큼 한국대 로스쿨에 도움이 된 존재라고 온몸을 비틀며 강조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건, 음. 뭐랄까…….”
“찌질한데요.”
상스럽지만 이하루의 그 한 마디만큼 적절한 요약이 없었다.
“뭐, 어쨌든 가긴 가야겠지.”
정석규의 특강.
이건 원작에도 있는 에피소드다.
우리의 주인공 신서준과 최종보스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악연은 꽤나 길고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일 터.
‘내 눈으로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어.’
나는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전부 알고 있다.
정석규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그것이 한국대 로스쿨을 어떻게 뒤흔들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 일가를 몰락시키는지까지도.’
도의적인 명분을 떠나서, 가만히 있다가 최종보스와 함께 집안째로 코가 꿰여서 파멸하는 것은 딱 잘라 사절이었다.
살아남으려면 그 전에 정석규라는 썩은 동아줄을 어떻게든 잘라 내야 했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직접 손을 쓸 수는 없어.’
상대는 정치권력의 중심부를 활보하는 거물이다.
충분한 증거와 필요한 장치들을 확보하지 못하면 내가 무어라 말하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정보를 모으고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럼 지금 출발해야 하는 거 아니야? 특강은 제1법학관이잖아.”
한설의 지적은 무척 타당했다. 우리는 서둘러 짐을 싸서 특강이 예정된 강의실로 향했다.
“자, 출석부에 이름 쓰고.”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선 두툼한 학생 명부를 들고 있는 최성철이 한 명 한 명의 출석을 확인하고 있었다.
“한설, 오케이. 이하루, 오케이. ……박유승. 그래.”
하루종일 들떠 있던 최성철의 얼굴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확 구겨졌다.
정말 어지간히도 나를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빙의 전과 후를 통틀어 그렇게나 물을 먹였는데, 호의적으로 군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오늘만큼은 튀는 행동은 하지 마라. 알겠지? 부탁이니까.”
내게 말을 건네는 최성철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 오늘 튀는 행동을 할 예정이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긴 한데요.’
애먼 사람을 견제하고 앉았다.
최성철이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나는 오늘 눈에 띌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사고를 치더라도 오히려 그가 철썩같이 믿고 있을 우리의 원작 주인공님께서 치실 텐데 말이야.
최성철을 지나쳐 강의실 맨 뒤쪽 구석진 책상에 모여 자리를 잡았다.
굳이 이곳을 고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임?”
자리에 착석하는 것과 동시에, 책상 밑으로 무언가를 꺼내는 나를 보며 이하루가 물었다.
“보면 몰라? 객관식 문제집이잖아.”
“뭣.”
“시간은 아껴서 써야지.”
스터디룸에서 나올 때 나는 자연스럽게 이 문제집부터 챙겼다.
정석규와 신서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왔다고는 해도, 그게 두 시간 내내 집중해야만 해낼 수 있는 과업은 아니다.
원래 이 시간대는 정규 공강이다. 바꿔 말해서 귀중한 자습 시간이라는 소리였다.
고스란히 날려 먹기에는 수험생으로서의 자아가 날카로운 바늘에 콕콕 찔리는 것처럼 통증을 호소했다.
“미친놈.”
그게 못내 충격적이었는지 이하루는 마침내 존대마저 잊어버렸지만, 유감스럽게도 여기에 그녀의 편은 없었다.
“네 오른쪽을 봐라.”
이하루의 고개가 빼꼼 돌아갔다.
거기에는 한설이 당연하다는 듯이 핸드북 크기로 편집된 판례집을 꺼내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언니마저.”
“이 시간대는 원래 자습을 했으니까…… 왠지 공부를 안 하려니 마음이 진정되질 않아서.”
“그렇다니까? 너는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
이하루는 끔찍한 괴물들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몇 문제인가 정답을 체크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시계가 오후 세 시 정각을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닫힌 강의실 문 저편에서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앗, 의원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하. 뭘 그렇게 격식 차리고 그러나, 최 부원장. 우리 사이에 말이야.”
“영광입니다!”
‘아주 딸랑이 납셨구만.’
최성철은 누가 보면 로스쿨 부원장이 아니라 의원실 보좌관이라고 해도 믿을 듯한 기세로 정석규의 비위를 맞추어 댔다.
영업과 인맥 관리로 굴러가는 금융권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답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 강의실인가?”
“그렇습니다.”
“왜, 2법학관 거기서 안 하고. 내가 지어 준 거 있잖아.”
“거기는 이미 벽돌 하나하나부터 의원님의 은덕이 살아 숨 쉬는 곳 아닙니까. 기왕 오신 거 저희 로스쿨의 근본이 되는 곳에도 의원님의 족적을 남겨야죠.”
“하하, 이 친구 말 한 번 기가 막히게 하는구만!”
기분이 좋아졌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너머에, 정석규가 있다.’
새삼 긴장감이 감돌았다.
몇 번이고 거듭해서 읽었던 내 인생작, ‘인 더 로스쿨.’ 그 중후반부를 어둡게 물들인 최악의 악당이 저 너머에 서 있다.
아직 이 세상의 사람들은 정석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세간의 평가로 정석규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기부나 자선 활동에도 힘쓰지만, 인복이 없는 정치가였다.
왜인지 자꾸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사고를 쳐서 피해를 입는 불운한 국회의원.
하지만 그때마다 재발 방지를 약속하고 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이미지를 쇄신해서 살아남아 왔기에,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불사조 정석규’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그들은 알지 못한다.
주변인의 잘못으로 알려진 비리나 부패, 사건 사고 중 대부분은 사실 정석규 본인이 저지른 것이며.
이를 어떻게든 덮기 위해 소위 ‘꼬리 자르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진실을.
워낙에 이미지 메이킹과 자기 홍보에는 도가 튼 인물이라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덮어 왔지만, 그것도 조만간 한계에 봉착할 예정이었다.
내가 노려야 하는 것은 바로 그때다.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지켜보고 계획을 세워나갈 요량이었다.
최성철이 구태여 부탁하지 않아도 눈에 띌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정말이지 요만큼도.
“……오?”
그때,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열렸다.
“아니, 이게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