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71)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71화(71/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71화
“저를 전적으로 밀어주겠다고요?”
그 반문에, 정석규는 내심 웃음을 삼켰다.
“그래.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네를 말이야.”
박유승은 예상치 못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 터였다. 지금이야말로 밀어붙야 할 때라는 걸 정석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명석한 자네이니만큼, 이 정석규가 힘을 보태 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하리라고 믿어.”
‘그래. 모를 리가 없지.’
국회의원이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건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수십 명씩 나오는 재단 장학생들마저도 어떻게든 그 연줄을 써먹고자 사방팔방에서 군침을 흘리면서 달려들 정도다.
심지어 다른 국회의원도 아니고, 유성 그룹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정석규다.
그 관계는 결코 박건이 정석규의 자금줄이 된다는 일방적인 지지의 형태가 아니었다.
도리어 알게 모르게 정석규는 유성에 이익이 될 만한 정책적 흐름을 주도하고, 그런 정석규의 정치생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유성이 금전을 수혈하는 호혜적 공존에 가까웠다.
당연히 유성 내부의 일에 관하여 정석규의 입김은 어마어마한 태풍으로 작용한다.
당장 그 박건조차 정석규의 ‘조언’을 정면에서 무시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자네는 그동안 그 진가에 비해 너무 무시당했어.”
정석규가 은근한 목소리로 부추겼다.
“민하 양은 대놓고 유승 군 자넬 핍박했고, 태양 군은 남몰래 자네가 일어서지 못하도록 공작을 펼쳤지. 지금의 자네라면 전부 간파하고 있겠지만.”
박유승은 대꾸하지 않고 있었다.
뭔가 고민하는 듯, 생각하는 듯 깊이 있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분하지 않나?”
‘지금이다.’
“내가 볼 땐 자네야말로 다른 두 남매보다 훨씬 뛰어난 자질을 가진, 유성그룹의 왕좌에 어울리는 그릇이야. 마땅히 가졌어야 할 것을, 되찾고 싶지 않아?”
처음 박유승의 변모에 대해 보고받았을 때는 단순한 변덕이나 조작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한평생 개망나니로 살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성실한 엘리트로 바뀌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니까.
영혼이라도 바뀐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고가 거듭될수록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박유승이 쌓아 올린 실적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정석규는 머릿속에서 박유승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단순한 개망나니에서 뒤늦게, 너무나도 뒤늦게 재능을 개화한 천재로.
얼마나 한탄스러울까.
또 얼마나 지난날을 후회했을까.
가지고 태어난 자질은 천부적이며, 실제로 그것을 증명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정신을 차린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이미 후계 구도가 어느 정도 정형화되고, 그룹 내의 파벌들도 줄을 댈 곳을 정한 지 오래다.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박유승은 유성그룹 내에서 가장 불리한 입지에 놓여 있었다.
정석규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 생각이었다.
박유승은 우수하다. 그러나 아직 그 지성을 날카롭게 벼려 내고,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 줄 경험치는 부족한 시점이다.
힘을 주겠다는 꼬드김으로 젊은 청년 하나쯤 포섭하는 건 정석규에게 있어 일도 아니었다.
박유승의 능력과 야망을 부추겨, 유성그룹 내에 마수를 뻗칠 장기말로 삼는다.
그게 박유승을 실제로 본 순간 그가 세운 계획이었다.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유성그룹이다.
이 나라에서 1, 2위를 다투는 재벌은 아니지만 적어도 열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손꼽히는 거대한 기업 집단.
게다가 정석규의 상식으로는 능력과 포부는 비례하기 마련이었다.
박유승은 우수하다. 본인의 분야에서 가진 재능이든, 단 한 번의 본가행만으로 후계자 지정을 백지화시킨 깜냥이든.
그런 인간이 제 능력에 걸맞은 보상을 주겠다는데 탐을 내지 않을 리 없었다.
“저는…….”
박유승이 침묵을 깨는 것과 동시에 정석규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유성과는 오랫동안 한배를 탔지만 그건 오월동주나 다름없었다.
속이 시커먼 자신을 박건이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정석규도 잘 알고 있었고, 그 또한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유성에 더 깊이 뿌리를 박고자 이런저런 빈틈을 찾아 수작질을 펼치는 나날이었다.
마침내 찾아낸 안성맞춤인 패. 이를 어떻게 굴려 먹을지 생각하며 정석규는 즐겁게 계획을 세워 나갔지만.
“후계 경쟁 같은 건 생각 없습니다.”
다음 순간, 박유승의 대답을 들은 그는 입을 떡 벌렸다.
“지금은 공부에 집중하기도 바빠서요.”
* * *
미쳤다고 내가 정석규의 손을 잡겠는가.
우선 나는 후계 경쟁에 일절 관심이 없다. 오히려 되도록 집안이랑 멀찍이 떨어지고 싶을 지경이다.
물론 내 안위를 위해서는 유성의 파멸을 막아 내는 편이 좋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편은 갖춰야겠지만, 그게 후계자가 되는 길이여야 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러면 검사가 못 되잖아.’
둘째로…… 설령 내가 진짜로 유성그룹의 왕좌를 탐내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 집안싸움을 정복하는 데 외부의 힘을 등에 업어서야 결과가 좋을 리 없다.
신라는 당나라 군세의 힘을 빌려 통일한 대가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를 내주고 말았다.
그야 애초에 북방까지 다스릴 행정력이 없었다고 보는 분석도 있지만, 모양새가 옹졸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정석규를 등에 업고 참전해도 결과는 비슷해진다.
너무 강한 힘을 빌리면 결국 거기에 종속되는 신세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애초에 정석규는 썩은 동아줄이다.
당장은 강대해 보이겠지만 거기에 넘어갔다간 다 같이 파국으로 굴러떨어진다.
머지않아 끝장날 인간하고 손을 잡는 것만큼 바보짓도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 ……진심으로?
정석규는 재차 물었지만 나는 뜻을 꺾지 않았다.
–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천천히 다시 생각해 봐. 그리고 뜻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고.
정석규는 제 명함을 건네주었지만, 이건 집에 돌아가는 즉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예정이었다.
그 후로는 말없이 최고급 일식 코스를 해치우는 일에만 전념했다.
다시 말하지만, 요리에는 죄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상황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빨리 비빌 언덕을 만들어 두어야겠다는 계산이 섰다.
앞으로의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할 일들을 해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보험.
오늘은 그걸 위해 길을 나섰다.
“안 덥냐? 슬슬 5월인데.”
나는 지하철 옆좌석에 늘어져 있는 이하루를 가리켰다.
녀석은 태양 빛이 따가워지기 시작한 지금에 이르러서도 항상 짙은 색의 후드 집업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전혀요. 오히려 쌀쌀함.”
“쌀쌀하다고? 이게?”
나는 맞은편 좌석에 앉은 승객들을 쳐다보았다.
대부분 긴팔 옷 하나만 입고 있거나, 아예 반팔을 입고 얇은 아우터를 손에 들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월말의 한낮은 제법 더웠다.
“햇볕 막아주는 효과도 있고요.”
원체 밖으로 나다니는 일이 없다 보니 이하루는 피부가 병적으로 하얀 편이었다.
자외선에 무척이나 취약한 체질이라고도 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어서,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햇빛을 막는다는 말과 쌀쌀하단 말이 어떻게 양립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가서 말 잘해. 작은 스타트업이라곤 해도 어쨌든 한 기업의 대표와 임원들을 설득해야 하니까.”
“아, 믿고 맏겨만 주셈.”
이하루는 자기만 믿으라며 가슴을 탕탕 쳤다.
“설득하는 데도 이 복장이 더 유리함.”
“그건 왜?”
“딱 봐도 공대 너드녀 같잖음.”
“자각은 있구나…….”
아닌 게 아니라 짙은 다크서클에 부스스한 머리, 뒤집어쓴 후드티까지.
이하루는 방금 전까지 코딩 과제를 하다 뛰쳐나온 공대생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비주얼이긴 했다.
오늘 우리가 향하는 곳은 박건에게 지분을 받아 냈던 스타트업, 라이팅의 본사였다.
사실 내가 가진 지분의 크기를 생각하면 굳이 본사까지 걸음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최대 주주로서 압력을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라이팅의 사업 모델을 뜻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아무래도 반감이 쌓일 수밖에 없다.
매일같이 실무를 뛸 사람들이 내 비전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작업 효율이 떨어진다.
쓸데없는 잡음도 나올 테고, 그런 낭비는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그래서 친유성파로 분류되는 임원에게 먼저 접촉해 이사회의 소집을 부탁했다.
여기서 앞으로 바뀌게 될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고, 이들을 설득시킬 요량이었다.
“안 되면 어떡함?”
그때는 뭐, 어쩔 수 없다.
“지분의 힘으로 밀어붙여야지.”
그러기 싫은 거지 못 하는 게 아니다.
어느덧 지하철이 판교역에 도달했다. 나름 IT회사답게 라이팅의 본사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역에서 내려서도 본사 건물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 했다.
나는 괜찮았지만, 신체 활동에 익숙지 않은 이하루는 도착할 때쯤엔 거의 흐물거리는 연체동물처럼 변해 있었다.
“다 왔다.”
“오, 오오……!”
문 앞에 서자, 대표가 직접 나와서 맞이해 주었다.
라이팅의 대표는 깔끔하게 빗어넘긴 머리에 뿔테안경을 낀 지적인 이미지의 청년이었다.
나이는 얼추 30대 초반쯤 되었을까.
“반갑습니다. 라이팅 대표를 맡고 있는 서종원이라고 합니다. 박유승 씨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그쪽은……?”
내 등 뒤로 살짝 숨듯이 선 이하루를 향해 서종원이 시선을 던졌다.
“우리 사업 아이템입니다.”
“흐음.”
서종원이 탄식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작게 흘려보냈다.
“……일단 들어오시죠.”
안내받은 실내는 제법 깔끔했다. 서종원을 따라 걸음 한 회의실에는 이미 다른 임원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논의를 나누고 있었다.
들어가기 전, 서종원이 잠시 우리를 돌아보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저는…… 박유승 씨의 생각이 그다지 미덥지 않습니다.”
라이팅의 대표는 그렇게 직설적으로 선언했다.
“저희 회사는 리걸테크하고는 아무런 연관점이 없습니다. 직원 가운데 법학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전무하고, 이전에 관련된 업무를 처리해 본 경험도 부족하죠.”
서종원이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희 회사의 현재 상황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압니다. 최대 주주인 박유승 씨의 입장에서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존에 쌓아 오던 걸 버리고, 이렇게 모험적으로 분야를 바꾸는 건 조금.”
서종원은 살짝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기색이었다.
“애초에 리걸테크란 거, 선발주자인 미국에서도 아직 그럴싸하게 완성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한 사업 아닙니까. 리걸테크를 자칭하는 기업들도 단순히 정보 검색을 조금 쉽게 해 주는 엔진 수준에 머무를 뿐이죠.”
그의 지적이 이어졌다.
“정말로 생성형 AI를 활용한 리걸테크 프로그램이란 게 시장에서 먹히려면, 최소한 간단한 법률 상담 정도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레벨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려면 난해한 법적 텍스트를 완벽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엔진이나, 그걸 튜닝할 수 있는 기술자가 있어야 하는데…….”
다소 감정이 담긴 목소리긴 했지만, 서종원의 지적이 속상한 대표의 투정에 불과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라이팅은 리걸테크 개발사가 아니다. 생성형 AI를 다루는 데 능숙한 직원들을 여럿 보유한 회사일 뿐.
이들이 주력으로 밀었던 사업 모델을 완전히 집어치우고, 내가 그린 그림을 따라오도록 만들기 위해선 성공에 대한 확신을 줄 필요가 있었다.
아주 선명하게 인쇄된 청사진이.
“저는 말로 안 합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내 손엔 그것이 쥐어져 있었다.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저 안에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