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73)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73화(73/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73화
서종원이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본 화면에는, 내게 있어서 무척 낯익은 양식의 줄글이 주르르륵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문 1-1.]갑은 오랜 친구인 을로부터 을의 외삼촌이 집에다 금괴를 보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친구인 병과 함께 셋이 절도를 공모하여……(중략)…….
“이건 최근에 출제된 변호사시험 문제를 약간 변형한 겁니다.”
나는 그렇게 설명하며 이하루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리고 이건 여기 이 녀석이 개발한 리걸테크 프로그램의 프로토타입이죠. 야, 눌러.”
“예스, 서.”
이하루가 ‘날먹’의 작동 버튼을 클릭한다.
그와 동시에, 문제 부분의 텍스트가 위로 밀려 올라가며 그 자리에 무언가 다른 내용의 줄글이 타닥타닥 입력되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설마……?”
‘응, 그 설마야.’
잠시 후 완성된 텍스트.
[1-1 답안]I. 결론
을은 특수절도죄의 공동정범 및 위험운전치상죄, 살인교사죄의 실체적 경합범의 죄책을 진다.
II. 을의 죄책
1. 갑과 병의 특수절도죄에 대한 공모공동정범의 성부
가. 문제점
특수절도의 ‘합동’은 현장에서의 실행행위분담을 요하는 바, 갑 및 병과 함께 절도를 공모한 을에게 특수절도의 공동정범은 성립하는지 문제된다.
나. 판례
……(중략)…….
“이, 이게 무슨…….”
너무나도 그럴듯한 법학 답안지의 출력.
축약된 사실관계에서 스스로 쟁점을 뽑아내고 근거가 되는 판례를 찾아 결론까지 깔끔하게 도출해 냈다.
“요점은 간단함.”
이하루가 툭 내뱉었다.
“애초에 AI란 거, 뭘 이해하고 쓰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다음에 올 확률이 제일 높은 단어를 뱉는 거임.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충분한 데이터를 주고 로직을 좀 만져 주면 법학 텍스트를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도 얼마든지 짤 수 있다.
“아니, 그게 말이 쉽지…….”
서종원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충분한 데이터를 크랙해서 모으는 것도, 일상언어와 다른 법률 텍스트에 맞게 미세조정을 거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닌데. 이거 뭐 사기 아닙니까? 정해진 텍스트만 출력하는 깡통인 건…….”
“더 보시죠, 그럼.”
내가 지시하자 이하루가 다음 문제를 화면에 띄웠다.
[문1-2.]갑은 을에게 201X.0X.0X.에 5,000만 원을 빌려주었으나, 을은 약속한 기일이 지나도록 금전을 갚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갑은 을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네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하였다. 하지만 을은 갑의 메시지를 잠결에 확인하여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였고, 이를 알지 못한 갑은 을이 고의로 자신을 무시하였다 생각하여……(중략)……
“눌러.”
“딸깍.”
[답안]I. 결론
갑은 협박미수죄와 현주건조물방화치사죄의 실체적 경합범의 죄책을 진다.
II. 을에게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점
1. 문제점
협박죄(형법 제283조)는 사람을 협박하여 외포케 한 자에게 성립하는 범죄다. 판례는 협박의 기준을 사회통념상 상대방이 공포를 느낄 만한 해악을 고지하는 것으로 보고,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갑의 문자메시지가 협박에 해당함은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을이 그 내용을 인식하지 못한 바, 갑의 협박 행위가 기수에 이르렀는지 문제된다……(중략)……
“하나 더.”
[문제]정과 무는 X토지를 공동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의 조카인 병이 X토지를……(중략)……
[답안]I. 결론
법원은 병에게 횡령죄의 유죄판결을 하여야 한다.
II. 병에 대한 친족상도례의 적용 여부
1. 문제점
병은 X토지의 공동소유자인 정의 조카이나, 무와는 아무런 친인척 관계가 없어 이러한 경우에도 친족상도례(형법 제361조, 형법 제328조)가 적용되어 고소 없이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인지 문제된다……(중략)……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문제와 그 해답.
“이게 할루시네이션에 의한 헛소리가 아니란 건 제가 보증합니다.”
나는 탁 하고 책상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한국대 로스쿨의 학생증.
겸사겸사 성적표를 인쇄한 사진까지.
“한국대 로스쿨……?”
서종원이 뜨악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 나라 최고의 법학교육기관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거머쥐어 본 사람의 보증이다.
그럼에도 이 답안의 진위를 의심하려면 적어도 현직 변호사나 법학 교수쯤은 와야 이치에 맞았다.
물론 이곳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는 없었다.
“……진짜란 거군요, 이 프로그램.”
서종원은 이하루에게 노트북을 건네받고는 결과물과 프로그램을 이리저리 만져 보았다.
텍스트를 생성해 내는 AI에 대해서는 그도 나름대로 현업 종사자이자 전문가였다.
적어도 제대로 된 상품을 알아볼 눈썰미쯤은 있다는 뜻이었다.
“……대단한 물건입니다. 이거.”
잠시 후, 서종원은 승복한 듯이 노트북을 다시 책상에 내려놓았다. 조금은 허탈한 목소리였다.
“몇 가지 한계는 눈에 띄지만, 이 정도면 그대로 내놔도 언론과 투자자들의 주목을 확 끌 수 있는 시제품 역할쯤은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업체도 아니고 혼자서 이런 걸 어떻게,”
“우리 애가 좀 똑똑하거든요.”
“브이.”
물론 이 방면으로 이하루의 재능은 ‘좀’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려 원작이 공인한 천재 중의 천재 아닌가.
애초에 그런 설정인데 말이 안 된다 싶어도 원작자한테 따져야지 나한테 따질 문제는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혼자서 이 정도를 할 수 있다면.”
나는 이하루를 가리켰다.
“여러분과 함께라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는 서종원과 이 자리에 모인 라이팅의 임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 오…….”
누군가 작게 탄성을 흘렸다.
이런 분야는 때때로 한 사람의 비범한 인간에 의해 터무니없는 진일보를 이루기도 하는 법이다.
혼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천재에게 적절한 인프라가 제공된다면, 훨씬 엄청난 걸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공정에 함께할 사람들은 또 얼마나 굉장한 콩고물을 주워 먹을 수 있게 될까.
‘그걸 생각해 보라고, 이 아저씨야.’
기업가에게 중요한 건 결국 그러한 지점이었다.
“확실히, 이거라면…….”
“박유승 씨가 데려온 저분, 정체가 뭐지?”
“뭔가 처음부터 우리 쪽 사람 느낌이 난다 했는데…….”
임원들의 반응도 어느새 다시 호의적으로 돌아왔다.
이들 또한 조영철처럼 경영이나 회계 쪽의 인재로 스카우트된 경우를 제하면 대부분 서종원과 같은 프로그래머 출신이었다.
공대, 특히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평생 키보드를 만지고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산 사람들.
이들은 이하루의 행색에서 한껏 묻어나는 동류의 냄새를 감지했다.
하물며 그녀가 만들어 낸 제품의 성능을 눈앞에서 목도했다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떻습니까?”
서종원은 딱히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전에 조사한 그의 프로필은 한국대 컴공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엘리트.
하지만 더 큰 성공을 꿈꾼 그는 AI라는 새 시대의 아이템을 집어 들고 냉큼 자기 회사를 차렸다.
서종원이 나의 개입을 우려했던 것은 내가 개발이나 사업에 대해서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를 문외한이며, 제안의 내용도 업계인의 상식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문외한? 여기서 순수하게 프로그래밍 실력만으로 이하루보다 뛰어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리걸테크의 불가능성? 눈앞에 멀쩡하게 기동하는 시제품을 보여 줬다.
이렇게까지 걸어볼 만한 패가 잔뜩 튀어나왔다면, 그가 할 만한 대답은 정해져 있다.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게 사실상의 수락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전에.”
“?”
“우리, 앞으로의 권한 분배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좀 해 볼까요?”
기를 쓰고 우리 앞길을 막아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탑승하려고 하면 안 되지.
이미 서종원에게는 지금까지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업을 끌고 왔다는 과(過)가 있다.
새로운 시대에 이전과 동일한 발언권을 가져가는 건 어불성설이다.
원래 개혁이란 건 기존 우두머리부터 휘어잡고 보아야 하는 법이었다.
* * *
세부적인 방침들의 협의는 조영철이 잘 이끌어 주었다.
큰 골자는 라이팅의 연구팀에 날먹을 제공하고, 연구개발 과정에 이하루가 일종의 고문으로서 지휘 감독권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녀석도 남은 2년 반 동안은 변호사시험을 위한 공부란 걸 하긴 해야 하니 최대한 부담을 덜면서도 권리행사가 가능한 방향으로 조정을 마쳤다.
“어떻게 잘 풀렸네요.”
“그러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물건이 좋았으니까.”
우리가 가져가서 시연한 ‘날먹’.
그건 원본의 성능에 더해, 이하루의 노동력을 갈아 넣다시피 하고 나의 검수를 거쳐서 만들어진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이전 버전과는 달리 법학적으로 문제되는 간단한 사실관계를 제공하면, 스스로 그에 맞는 쟁점들을 찾아내고 그럴듯한 답안을 써낼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물건이었다.
“아직 완벽한 건 아니긴 한데요.”
그 말대로였다.
어디까지나 지금의 날먹이 답을 써낼 수 있는 건 ‘간단한’ 사실관계.
복잡하게 몇 개의 쟁점을 뒤섞어 놓고 분량까지 늘어지는 실제 변호사시험 문제를 직접 풀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입력할 문제들은 내가 손을 좀 봤다.
보다 간편하게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핵심 쟁점들이 쉽게 드러날 수 있는 구조로 텍스트를 재배치했다.
앞으로는 이런 작업까지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이하루와 라이팅의 숙제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일단은 큰 한 걸음을 내딛은 셈이었다.
리걸테크를 파서 인생을 날로 먹겠다는 이하루의 원대한 꿈이 조금씩 실체를 갖추고 있었다.
이 녀석의 성격이라면 기뻐서 방방 뛰거나 실컷 으스댈 줄 알았는데,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하루는 왠지 평소보다 조용한 느낌이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이하루는 고개를 저었다.
“잠깐…… 옛날 생각을 좀 함.”
“옛날 생각?”
녀석이 비스듬히 고개를 틀어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늘 푹 눌러 쓴 후드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다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전히 짙은 다크서클 탓에 피로한 인상이었지만, 학기 초에 비하면 상당히 총기를 되찾아 반짝이는 눈이었다.
“스승님은, 제가 왜 로스쿨에 왔는지 아심?”
“……글쎄.”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간단한 배경 설정 정도는 안다.
본래 컴퓨터공학과 프로그래밍 쪽에서 독보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나가던 그녀가, 어떤 실패를 경험하고 도망치듯 로스쿨에 원서를 냈었다는 것 정도.
‘문제는 그 실패가 뭐냐는 거지.’
원작자가 이하루라는 인물을 그려 넣은 이유는, 컴퓨터를 써야 하는 온갖 문제들을 ‘아무튼 이하루가 해 주었습니다’로 퉁치고 넘어가는 편의주의적인 전개를 위해서다.
이하루의 설정 또한 그런 천재가 왜 뜬금없이 문과 소굴에 와 있느냐를 납득시키기 위한 일종의 변명 같은 것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이 녀석의 과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본편에서 묘사되지 않는다.
“뭐, 별거 아닌 이야기긴 한데요.”
그렇게 일축한 이하루는, 돌아가는 길 내내 더 이상 이 화제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가면서 열람실로 돌아가기 전에 오락실이나 들르자고 졸랐을 뿐.
당연히 기각하려 했지만, 왠지 그러지 말아야 할 것 같아서 몇 판쯤 어울려 주었다.
‘읏차.’
열람실로 돌아온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노트북을 열어보는 것이었다.
확인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변호사시험 채널.
[사용자명 : 법학의신] [게시글 : 12] [댓글 : 113] [신규 알림 : 37(new)!]로그인을 하니 내 계정의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한설에게마저 구린 네이밍 센스를 대차게 까인 뒤, 앞의 사족을 잘라 내고 닉네임을 그냥 ‘법학의신’으로 개명했다.
물론 이것도 구리다고 게시판 이용자들에게 욕을 좀 얻어먹긴 했지만, 하도 내 덕을 본 사람들이 많다 보니 그런 여론도 금방 묻혀 없어졌다.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한 대가지.’
이 변호사시험 채널은 전국 로스쿨생들로부터 온갖 희귀하고 까다로운 법학 문제들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는, 게임으로 치자면 파밍 장소였다.
가만히 닻을 내려놓고 있으면 양질의 문제들이 잔뜩 쏟아진다.
내일은 법학의신의 이름을 달고 그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해 주는 날이었다.
그러니 오늘까지 축적된 문제들을 하나하나 검토해 볼 차례였다.
나는 서른일곱 개나 알림창을 흐뭇하게 열어 보았다.
‘어디 보자…… 응?’
그런데, 개중 하나 내 이목을 잡아끄는 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