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86)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86화(86/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86화
“형사재판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재판을 안 하는 것이다. 많이 들어 본 얘기일 겁니다.”
강단에 서 있는 것은 새카만 양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초로의 변호사였다.
‘최수길 시니어 변호사’라고 적힌 이름표가 그 앞에 세워져 있었다.
다름 아닌 고철수에게 전화 너머로 화를 내던 그 검사 전관이었다.
‘귀하신 몸이구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최수길은 진&안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법복을 벗은 게 비교적 최근이어서 전관으로서의 파워가 따끈따끈하게 살아 있었다.
당연히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쳐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인턴 지도라는 ‘잡무’는 상대적으로 입지가 낮은 고철수가 담당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로서는 얼굴도 볼 일이 없는 인물이었겠으나, 성진태가 열심히 설득한 끝에 잠시 시간을 내어 특강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번 인턴은 오전에는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매일 많은 것을 배워 갈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검사 출신 전관이 강단에 나타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흔치 않은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그렇지도 않은가?’
생각해 보니 한국대 로스쿨에서는 매주 장용환에게 강의를 듣지 않았던가.
하도 익숙해져서 잠시 망각했지만, 그 또한 검찰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 코스만을 밟다가 나온 인물이었다.
새삼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었는지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재판에 들어선 후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겠습니까?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 보세요.”
‘자유롭게’만큼 어려운 주문은 없었다.
인턴들은 슬금슬금 서로 눈치만 살폈고, 확실하게 답을 알고 있는 신서준은 그 안에 섞여 모르는 척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이상하다. 원작에선 이쯤에서 손들고 대답하던데.
뭐 하는 건가 싶어 슥 쳐다보니, 놈은 역으로 내게 능청스럽게 눈짓을 보냈다.
그게 꼭 ‘박유승 씨는 아시나요?’ 하고 묻는 것 같아 아주 괘씸했다.
한숨을 푹 쉬고 손을 들었다.
“양형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형사재판에서 기소된 피고인은 대부분 유죄를 받습니다. 하지만 유죄라고 해도 다 같은 유죄는 아니죠. 형의 양정에 따라서는 같은 죄라도 얼마든지 처벌의 수위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양형.
피고인의 죄책이 결정 난 후, 이런저런 사정을 종합해서 최종적인 형을 결정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형사 사건의 판결을 두고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제일 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무슨 판사한테 반성문 내고 빌었다고 형이 깎이는 게 말이 되냐, 같은 죄를 저질렀는데 왜 이놈보다 저놈이 가볍게 처벌받냐, 판사 마음대로 판결하라고 있는 제도 아니냐 등등.
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양형은 엿장수 마음대로 처벌을 정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일단 법전부터가 양형을 해야 한다고 떡하니 못 박아 놨다.
형법 제51조(양형의 조건)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하여야 한다.
1.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2. 피해자에 대한 관계
3.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4. 범행 후의 정황
더불어 양형위원회에서는 범죄별 형량 책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해서 발표하고 있고, 법원조직법에서 이 양형기준을 존중하도록 규정해 두었기 때문에 판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생각 외로 거의 없다.
애초에 양형이란 과정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똑같이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전부 ‘같은 정도’로 나쁜 놈인 건 아니다.
피만 보면 흥분하는 변태 쾌락 살인마와,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주동자를 살해한 소년을 같게 취급할 수 있겠는가?
물론 둘 다 죄인이고 처벌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죄의 무게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다.
“음.”
잘 대답했다는 듯이 최수길이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여기까지는 원작의 신서준도 대답했던 내용이다.
그걸 앵무새처럼 반복해서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특히…… 집행유예라는 제도의 존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오.”
최수길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스쳤다.
“현행 형법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내려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를 선고하는 경우여야 합니다. 어떻게든 양형을 통해서 이 기준까지만 형을 깎아 내면,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로 풀려날 길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셈입니다.”
징역 4년과 3년 6개월의 차이는 크지 않다. 기껏해야 반년쯤 옥살이를 덜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징역 3년 6개월과 3년은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다.
후자는 아예 감옥에 가지 않고 자유를 되찾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형사 변호사의 실무상 역량이란 결국 여기서 판가름이 나는 법.
그러나 안타깝게도 로스쿨 교육과정에서 양형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딱 바로 그 앞, 선고할 수 있는 형의 범위를 계산하는 소위 ‘처단형’ 문제라면 형사재판실무 수업에서 풀어 보긴 하지만.
“학생.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한국대학교 로스쿨 1학년, 박유승입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최수길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검찰 전관이 내 이름을 기억한다라.
진&안에 취직할 생각이 아니더라도 이건 꽤 의미 있는 일이었다.
“맞습니다. 박유승 인턴이 잘 대답해 준 것처럼 형사 변호사에게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양형 실력입니다. 하지만 로스쿨에서는 잘 가르치지 않는 주제라더군요.”
그렇기에 오늘은 양형에 관한 강의를 준비했다며 최수길은 유인물을 나눠 주었다.
옛날 사람이라 PPT에 익숙하지 않은 걸까. 어째 받아 든 유인물도 예전 법학책들처럼 한자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다만 강의 내용 자체는 꽤나 유익했다.
최수길은 양형위원회가 발표하는 양형기준의 적용 방식이라든가, 그러한 기준이 없는 벌금형의 경우 판결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특히 검사 입장에서 변호사가 준비한 양형 사유의 증거들을 반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소개하는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저건 나중에 검사가 돼서도 두고두고 써먹을 내용이라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전부 받아 적었다.
“그럼, 일정이 있는 관계로 특강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나가는 길에 최수길은 잠시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두어 번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막 교대하듯이 들어오다가 그걸 목격한 고철수의 표정이 썩어 들어간 것은 물론이었다.
* * *
어느덧 일주일간의 인턴 과정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최수길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매일 오전에 듣는 강의는 유익했고, 오후에 제출하는 과제들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때마다 뭔가 배우는 게 있어서 좋았다.
특히 과제를 할 때 진&안의 자료집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과연 최고의 로펌답게 진&안은 밖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소송기록이나 증거자료들을 잔뜩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내가 활약할 때마다 한껏 우거지상이 되어 일그러지는 고철수의 얼굴이었다.
“……쯧.”
원래대로라면 이번 인턴에서 제일 주목받는 것은 단연 신서준이어야 했다.
굳이 고철수가 밀어주려 하지 않아도 애초에 실력 자체가 독보적이었으니까.
내가 전력으로 경쟁하려 들었어도 쌍두마차가 되면 됐지 나 혼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서준은 왜인지 어떤 상황에서든 전혀 나서지 않으려 들었다.
그게 나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인지, 고철수의 수작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이 상황을 고철수가 대단히 불편하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박유승 인턴.”
“네, 변호사님.”
그러나 내가 싫다는 티를 팍팍 내는 것 말고 고철수가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모든 과정에 성실히 참여했고, 뭐 하나 트집 잡을 게 없을 만큼 과제도 완벽하게 수행해서 냈다.
‘그래. 오죽 깔 게 없으면 관상 얘기나 하고 있었겠어.’
“면접 시간 됐다. 가 봐.”
이번 인턴 과정의 말미에는 크게 두 가지 이벤트가 남아 있었다.
하나는 마지막 날 오전에 있을 세미나다.
여기서는 그동안의 과제와는 달리 인터넷을 봉쇄당한 환경에서, 순수하게 자신의 지식과 논리만으로 주어진 논제에 관해 토론하고 그 과정을 참관한 시니어들에 의해 평가받는다.
다른 하나가 바로 지금 고철수가 언급한 면접이다.
다대다로 평가가 이루어지는 세미나와는 달리, 면접은 여러 명의 시니어들이 한 사람의 인턴을 세워 놓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가며 그의 자질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느 쪽이든 컨펌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나로서는 그다지 간절하게 임할 필요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 면접의 구조는 검찰 본시험 이후에 치르게 될 면접과 유사한 편이니,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경험해 보는 건 나쁘지 않겠지만.
“바로 가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숨기며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좀생이 같으니라고.
‘그럼, 들어가 보실까.’
면접실 앞에 도착한 나는 문밖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별생각이 없다고 해도 이 너머에는 업계 대선배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과의 문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분명 뭔가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허투루 넘길 수는 없다. 끄윽, 하고 기지개를 켠 후 자세를 바로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쓸데없는 각오였다.
“아, 유승 학생! 오랜만이군요!”
오자마자 나를 반갑게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성진태였다.
인턴 선발 과정을 총괄하고 있는 사람이니 개별면접에도 참여하는 게 당연하긴 했다.
“힘들게 서 있지 말고 앉아서 얘기합시다. 거기 주전부리도 좀 놔뒀으니 편하게 들어요.”
결의를 다진 게 무색하게도, 이 다대일 면접은 면접이라기보단 그냥 귀여운 후배 하나를 데려다 놓고 벌이는 아저씨들의 친목회에 더 가까웠다.
성진태야 원래부터 나를 높이 사고 있었다지만, 다른 시니어들까지 이렇게 호의적인 건 조금 뜻밖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오전 특강에 들어왔던 시니어 중 한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5년간 본 인턴들 중에 자네만큼 빠릿하고 과제 퀄리티 좋은 학생은 한 명도 없었어. 2, 3학년들을 전부 포함해도 말이야.”
우리가 제출한 과제는 일차적으로 고철수가 검토하지만, 결국 인턴 선발에 관여하는 모든 시니어들에게 보고가 올라간다.
고철수가 아무리 나를 싫어해도 나에 대한 평가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는 이유다.
덕분에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번 인턴 기간 내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이들에게는 무척 흡족했던 모양이다.
“성 변호사님이 무조건 뽑아야 한다고 할 땐 너무 섣부른 판단 아닌가 싶었는데…… 솔직히 기대 이상이야. 실력만 놓고 보면 자네를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정도라고.”
묘하게 뼈가 있는 말이다. ‘실력만 놓고’라는 건, 그 밖에 다른 고려 사항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 봐. 자네, 검찰 지망이지?”
‘엇.’
“제출한 과제들 보면 알지. 얼핏 보기엔 우리 방식을 최대한 배우고 적용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슬쩍 그 허점과 대책을 연구하고 있는 게 눈에 훤하더라고.”
“……면목 없습니다.”
나는 냉큼 시인하고 머리를 박았다.
나름 숨긴다고 숨긴 건데, 진&안의 시니어들쯤 되면 애송이의 속내쯤은 손쉽게 간파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인턴 활동도 거의 끝나 가는 시점이고, 더 거짓말을 해 봤자 부질없을 테니 이실직고하는 게 맞았다.
“하하, 고개 들어. 뭘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그래.”
“……괜찮은 겁니까?”
“안 괜찮을 건 또 뭐 있겠나. 물론 깜냥도 안 되는 게 줄타기를 시도하다 걸리면 괘씸하겠지만, 자네는 그런 레벨이 아니거든. 능력이 되면 스스로 선택하는 게 맞지. 뭐, 기왕이면 우리 회사를 선택해 줬으면 싶긴 한데.”
“무엇보다도.”
성진태가 끼어들었다.
“미래란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요. 졸업할 때쯤 되면 유승 학생도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거고, 정말 공직으로 가더라도…… 나중에라도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의외였다.
들키면 입사할 생각도 없이 들어와서 홀라당 정보만 빼먹으려 했느냐고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딱히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였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당장 입사를 확정 짓지 않더라도 언제든 같이 일하자며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지 않은가.
사실 이런 건 절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원작에서는 대형 로펌에 컨펌을 받아 놓고서 몰래 공직 준비를 병행하다가, 앙심을 품은 동기가 로펌에 고자질하는 바람에 채용을 취소당하는 학생도 등장했었다.
“보험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성진태가 말을 이었다.
“유승 학생 정도 실력이라면 충분히 검사가 될 수 있는 재목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일이란 건 모르는 거니까요. 잘 안 풀리더라도 갈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검사 준비도 좀 더 수월하게 되지 않겠어요?”
이제는 숫제 우리 회사를 보험으로 깔아 두고 공부하라며 나를 설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원래 이 자리는 시니어들이 지원자의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텐데, 오히려 그 시니어들이 내게 어떻게든 우리 회사를 선택지에 넣어 달라며 어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그 등쌀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도의 답변을 돌려주었을 즈음 면접 시간이 끝났다.
문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이들은 내게 혹 컨펌을 받더라도 철회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퇴근을 위해 사무실로 복귀하니, 다른 인턴들은 이미 죄다 집에 간 뒤였다. 텅 빈 사무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고철수 혼자였다.
“잠깐.”
짐을 챙겨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별안간 고철수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너, 내일 세미나 나오지 마라.”
……이건 또 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