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87)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87화(87/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87화
고철수가 퇴근하는 박유승을 붙잡는 장면으로부터 몇 시간 전.
과제를 하다가 잠시 휴식 중인 신서준에게 고철수가 찾아왔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나와 보라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
건물 뒤로 신서준을 불러낸 고철수가 끙, 하고 앓는 소리를 흘렸다.
“왜 그러세요, 고 변호사님?”
“나름대로 우리 후배님이 컨펌받을 수 있도록 힘써 보려고는 했는데…… 그 녀석 때문에.”
“아아.”
신서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까마득한 선배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구는 이유를 신서준은 결코 모르지 않았다.
세상에 대가 없는 친절은 없는 법. 컨펌되면 고철수의 영향력을 키울 지지 기반이 되어 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사내 정치에 놀아나 줄 시간은 없는데 말이죠.’
애초에 진&안 인턴에 지원한 것도 여기서 알아봐야 할 게 있었기 때문이다.
고철수의 쓸데없는 ‘도움’에 발이 묶이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박유승에게 이목이 쏠리도록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신서준의 속내를 고철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는 이 용모 반듯한 후배가 자기 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고철수에게 있어 눈엣가시처럼 걸리적거리는 놈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하, 참. 어디서 그런 놈팽이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네.”
박유승.
경찰 출신이나, 법학과에서 오래 공부한 사람들이 해내기 쉽도록 타겟팅해서 낸 과제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는 놈이었다.
시니어들의 강연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면서 주목을 받더니 완전히 이번 기수의 유력한 컨펌 후보로 떠올랐다.
그 탓에 고철수의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지고 있었다.
“다른 변호사님들은 그 뺀질거리는 놈이 뭐가 그리 마음에 든 건지…….”
‘으음.’
투덜대는 고철수를 보며 신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슬슬 조사할 것도 다 조사했는데. 이 귀찮은 선배님도 털어 낼 때가 됐네요.’
여러 번 고철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서준은 그에 대한 파악을 어느 정도 끝내 놓은 상태였다.
회사 내에서 고철수의 입지는 꽤나 고립되어 있었다.
한국대 출신, 검찰 출신들이 만들어 낸 ‘이너 서클’에 그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른 시니어들과 제때제때 의사소통도 안 되고, 오랫 동안 그런 상황이 이어진 탓에 누적된 열등감과 맹목적인 출세욕으로 이지(理知)가 흐려져 있었다.
요컨대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소 무리한 수를 두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떨까요.’
“어쩔 수 없죠.”
신서준은 짐짓 시무룩한 표정을 꾸며 냈다.
“그 친구가 잘하는 거니까요. ……‘검찰을 꿈꿀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가진 동기거든요.”
신서준이 내민 떡밥을 고철수는 냉큼 물었다.
“음?”
“사실 보통 실력으로는 꿈도 못 꾸잖아요. 검사라는 진로는. 학교에서도 그 친구라면 검사 될 거라고 믿는 동기들이 많아요.”
“잠깐. 그게 사실이야?”
“네. 그만큼 뛰어난…….”
“아니 그거 말고. 검사 지망이라는 거.”
고철수의 얼굴에 이거다 하는 빛이 스쳤다.
원래 진&안은 공직을 지망하거나, 병행하는 소위 ‘양다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과거에도 컨펌 받아 놓고 로클럭 준비하다가 고발당해 컨펌이 취소된 학생의 케이스는 유명했다.
“맞을 거예요. 검찰 출신 교수님 지도반도 신청해서 들어갔고. 그 교수님이 지도학생들 검사 만드는 데 일가견 있는 분이거든요.”
‘이건 써먹을 수 있겠어.’
이야기를 들은 고철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박유승이란 놈이 써낸 과제물들에서 그런 기미가 보였던 것 같기도 했다.
자세히 살펴보기도 싫어서 대충 휙휙 넘기느라 제대로 파악하진 못했지만.
‘감히 다른 진로를 생각하면서 진&안 인턴을 와?’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딱 걸렸어.’
다만 이걸 다른 시니어들에게 그대로 일러바치는 건 하책이었다.
진&안이 양다리를 싫어하는 기조가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이번 인턴들은 아직 1학년에 불과했다.
반면 본격적인 공직 준비 코스들은 전부 2학년 2학기부터 시작한다.
지금 단계에서 ‘이놈 공직 갈 놈이다’라고 고발해 봤자 아주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정도로는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컨펌을 무르고 박유승을 내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1학년생을 겁박하는 재료로는 쓸 수 있었다.
‘우리 회사가 공직 병행에 단호한 입장을 취해 왔다는 건 로스쿨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것 같으니까.’
고철수는 신서준을 슥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 후배님도 나더러 움직여 달라는 뜻으로 일부러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시선이 마주치자 신서준이 웃었다.
그 미소를 본 고철수도 씨익 웃었다.
“방법을 찾은 것 같다. 흐흐.”
“저야 늘 변호사님만 믿죠.”
‘똘똘한 친구야.’
이번에 입사하게 되면 꽤 든든한 수족이 되어 줄 것 같았다.
졸업하고 바로 와서 조직 생활도 못 해 봤을 텐데, 벌써부터 이런 뒷공작을 벌일 줄 알다니. 아주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들뜬 고철수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후배의 눈이,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 * *
“너 검찰 지망이잖아. 응? 네가 낸 보고서들만 봐도 알겠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검찰지망생들이 모이는 지도교수반에 들어갔다며.”
내 앞에서 고철수가 이죽거렸다.
“그러고도 우리 인턴을 지원했어? 너 지금까지 공직 병행하는 애들 싹 컨펌 잘리고 진&안 블랙리스트 올라간 거 몰라?”
“아니, 그게.”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당신네 시니어들이 나는 괜찮다던데요?’
고철수가 지적한 건 전부 사실이었지만 나에 한해서는 이미 채용을 결정할 시니어들이 전부 오케이를 때린 지 오래였다.
어째서인지 고철수 이 인간은 우리끼리 이미 얘기가 끝났다는 걸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시니어들 사이에서 겉돌고 있었다는 건가.’
다시 말해 고철수의 협박은 내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었다.
여기서 진실을 밝히면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도망치겠지.
그건 제법 통쾌한 장면이겠지만, 그걸로 충분한 걸까.
고철수의 수작질에 피해를 입어 온 게 나 하나뿐이라면 그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후배를 밀어주기 위한 그의 노력은 다른 학생들에게 소외감을 유발했고, 과제의 선정 방식 또한 그다지 공정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심지어는 그 당사자인 신서준마저 썩 내키지 않는 눈치였으니, 결국 이 사람은 개인적인 목적으로 형사 인턴 전원에게 민폐를 끼친 셈이었다.
그렇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생각을 마친 나는 수긍한 척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하. 잘 생각했어. 진&안 시니어들에게 찍힐 바에야, 실수로 못 나와서 떨어지는 게 낫지. 그래야 나중에 마음 바뀌면 1겨울이나 2여름에 다시 지원할 수도 있을 거고. 이번에는 양보 한번 해라.”
신이 난 고철수가 떠드는 소리를 뒤로하고, 마저 짐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섰다.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들이 그렇게 신조까지 꺾어 가면서 모셔 오려고 애를 쓴 ‘인재’가, 누군가의 협박 때문에 채용에 꼭 필요한 절차를 결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시니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 * *
진&안 1학년 여름 인턴의 마지막 날.
그 대미를 장식하는 절차이자, 컨펌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법률 토론 세미나.
그 현장에서 형사 분야의 인턴들이 한 테이블을 두고 모여 논제에 관해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었다.
“저 신서준이란 친구도 실력이 상당하네요.”
“저기 백서율 인턴도 제법…… 승부욕이 너무 세 보이는 건 단점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이들로부터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시니어 변호사들은 토론 내용을 지켜보며 실시간으로 평가지에 점수를 기입해 나갔다.
이번 채용 과정의 총책임자인 성진태는 물론이고, 특강을 나왔던 최수길을 비롯한 변호사들도 오늘만큼은 전부 참석했다.
물론, 이 인턴들의 지도담당이었던 고철수도 와 있었다.
신서준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싱글거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수준 높은 토론이네요.”
성진태가 그렇게 요약했다.
진&안에 인턴을 올 수 있을 정도의 학생들이라면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인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특한 선발 전형을 쓴 덕분인지, 이를 감안하고도 유독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시니어들이, 문득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했다.
“그런데 박유승, 그 친구는 안 온 건가요?”
“모르겠습니다. 고민 끝에 컨펌은 포기하기로 한 건지…….”
“꼭 뽑고 싶은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이들의 말대로였다. 출석해 있는 학생들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지만, 당초에 시니어 변호사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뽑고자 했던 인턴은 다름아닌 박유승이었다.
한데 어쩐 일인지 박유승은 오늘 세미나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애초에 공직 지망인 학생이었으니 컨펌 기회를 포기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 보고 싶었던 시니어들로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잠깐 쉬고 하도록 하죠. 두 시 정각에 다시 모입시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성진태는 참가자들에게 휴식을 알렸다.
한편 박유승의 거취를 걱정하는 사람은 변호사들만이 아니었다.
‘……이 인간은 왜 안 오지?’
백서율은 초조한 듯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결국 그녀는 인턴이 끝날 때까지 박유승, 그 뺀질이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첫날부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백서율이 마감 기한을 꽉꽉 채워서야 겨우 해낼 수 있었던 과제를, 한참 전에 마무리하고는 여봐란듯이 퍼질러 자던 옆얼굴을 떠올리자 또다시 분이 차올랐다.
그렇기에 오늘은 정말 단단히 준비를 해 왔다.
이 세미나에서는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비롯한 첨단 기기들은 일제히 수거해서 옆방에 보관해 놓은 상태였다.
순전히 머릿속에 집어넣은 지식과 논리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전장.
물론 채용설명회 때 보여 준 박유승의 실력을 생각하면 딱히 이런 조건이라고 그녀에게 유리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지막 기회이니만큼 백서율은 최선을 다할 각오로 이곳에 왔다.
한데 정작 벼르고 있던 그 인간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건 인정 못 해.’
냉정하게 생각해서 박유승의 부재는 백서율에게 손해가 아니었다.
강력한 경쟁자가 레이스에서 빠지면 그만큼 컨펌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가니까.
진&안을 지망하는 그녀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봐야 했다.
하지만 백서율은 그런 식으로 컨펌을 받아 봤자 하나도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박유승이 없다고 해서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방금까지의 토론에서 그녀는 신서준이란 남자에게도 한 수 밀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쉬는 시간을 틈타 백서율은 화장실에 가는 척 세미나실을 슥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몰래 옆방에 들러, 자신의 스마트폰을 빼돌린 후 화장실로 숨어 들었다.
“저기요. 지금 어디서 뭐 하시는 거죠? 세미나 있는 거 모르시나요?”
–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사실은 인턴 명부에서 보고 입력해 두었다.
사유는 이번 인턴 생활에서 그와 결착을 내지 못할 경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유승을 이기지 못할 경우 나중에라도 찾아가서 이길 때까지 승부를 걸기 위해서였다.
– 아니. 그보다 세미나 때 폰 쓰면 부정행위로 탈락이잖아요. 들키면 끝장인데. 백서율 씨 진&안 가려는 거 아니었어요?
“지금 남 걱정이나 할 때인가요? 당신은 아예 오지도 않았잖아요.”
– …….
“어차피 이번에 컨펌 받는 건 물 건너갔어요. 당신이 안 오면 그 허여멀건 경찰대 기생오라비가 먹겠죠. 되지도 않을 거 욕심낼 바에는 당신을 불러서 제대로 결착을 내는 게 나아요.”
– 허여멀건 경찰대 기생오라비…….
전화 너머의 박유승은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은 기색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아, 하고 침음성을 흘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아직 시작한 지 30분 정도밖에 안 됐고, 첫 번째 쉬는 시간을 준 시점이니까. 지각으로 점수는 좀 까이더라도 참가는 할 수 있을 거예요.”
– 뭐, 알겠습니다. 가죠.
박유승은 흔쾌히 대답했다.
– 지금 가더라도 하려던 건 할 수 있고…… 확인해야 할 것도 있으니까.
그리고는, 백서율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린 뒤 통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