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8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89화(89/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89화
세미나는 매시간 다른 주제를 주고, 이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니어들은 각 인턴들의 자질을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하게 된다.
법리를 얼마나 폭넓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를 사안에 맞게 적용해서 나름대로 논리적인 주장을 설계할 수 있는가, 또 이를 전달하는 태도와 언변은 얼마나 능숙한가.
이런 능력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등 인격적인 측면까지도 함께 평가의 대상이 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대회나 시험도 아니고, 이건 어디까지나 진&안이라는 ‘회사’에서 함께 일할 신입을 뽑는 절차.
능력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같이 근무하고 싶은 사람인지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눈에 띄기 위해 지나치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다른 인턴들의 말을 가로채는 등의 헛짓거리를 했다간 즉시 대폭 감점이다.
답을 알더라도 원만한 대화와 소통으로 상황을 풀어 가는 것이 컨펌을 위해서는 훨씬 현명한 방식이었다.
‘뭐, 나는 신경 안 쓸 거지만.’
컨펌에 관심이 없는데 앞뒤 재서 뭐 하겠는가.
나는 그저 법학 얘기로 치고받을 생각에 마냥 들떠 있었다.
“협박 교사와 구성요건적 착오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 같네요.”
문제는 그런 바보가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협박죄에서 협박의 의미. 피교사자가 범죄의 대상을 착오한 경우 교사자의 죄책에 대한 평가. 두 가지만 알면 쉬워요.”
PPT에 문제가 공개되자마자 백서율은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잽싸게 일어나 발언의 기회를 잡았다.
하기야 그녀의 실력을 고려하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사안이었으니, 놓치기 싫은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은 가공의 사안입니다.]‘김석구(41, 회사원)’과 ‘하주희(36, 회사원)’은 직장 동료이자 불륜 관계다.
그런데 김석구는 하주희에게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과 재혼하자고 요구하기 시작했고, 하주희가 이를 거부하자 하주희의 남편을 평소에 연모해 온 A씨에게 하주희와 자신의 불륜 사실 및 그 증거를 넘겨주었다.
A씨는 자신이 갖게 된 불륜의 증거로 하주희를 협박해서 남편과 이혼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A씨는 하주희를 찾아가 남편과 이혼하지 않으면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했지만, 사실 A씨가 대면한 인물은 하주희가 아니라 그녀와 똑같이 생긴 하주희의 쌍둥이 언니였다……(중략)……
김석구의 죄책을 가능한 한 가볍게 만드는 견해와, 무겁게 만드는 견해를 각각 제시해 보세요.
[별첨 자료 1] [별첨 자료 2] [별첨 자료 3]‘가공의 사안은 무슨.’
원작에 따르면 사실 이건 진짜로 있었던 일,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을 등장 인물들의 이름만 가명으로 싹 바꾸어 놓은 사례였다.
진&안이 무슨 불륜 협박 같은 ‘시시껄렁한’ 일을 맡겠냐 싶겠지만, 돈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문제의 ‘김석구’에 해당하는 실존 인물은 내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금수저에 속했다.
어느 정도냐고 하면, 나이도 찰 만큼 차 놓고 아랫도리를 잘못 놀려 쇠고랑 차게 생긴 자식놈을 위해 수억 원쯤은 선수금으로 지불할 여유가 있었다.
말이 선수금이지 성공보수로 약정된 금액은 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현행법상 형사재판에 관한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지만, 상대는 진&안이다.
법망을 회피해서 보수금을 받아낼 꼼수쯤은 얼마든지 파악하고 있는 로펌이었다.
결국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어떻게든 김석구의 모델을 무죄로 만들거나 형량을 깎아 보려는 작업에 착수했고, 결국 성공했다.
다만 그 기틀이 되는 논리는 대체로 로스쿨에서도 배우는 내용이었다.
그러니만큼 아직 로스쿨 1학년생인 인턴들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던져 줄 이야깃거리로는 딱 좋았다.
“일단 김석구는 A씨의 협박 행위에 필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증거자료도 제공했죠. 이는 협박죄에 대한 방조범으로 봐야 해요.”
형법 제32조(종범)
①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②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형법 제283조(협박, 존속협박)
①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백서율은 유려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문제는 A씨가 한주희인 줄 알고 이 일과는 무관했던 한주희의 쌍둥이 언니를 협박했다는 점.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생겨요. 뭐 다들 아시는 ‘객체의 착오’ 건이랑, 한주희를 협박하는 이야기를 한주희의 언니에게 한 것도 ‘협박’으로 볼 수 있느냐죠.”
객체의 착오란 A에게 범죄를 저지르려고 했는데, B라는 다른 사람을 A로 착각해서 그에게 범죄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범죄를 저지를 생각으로 범죄를 저질렀으면 나쁜 놈이니까 잡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
형법에서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기준은 고의에 따른다.
고의가 없는 범죄행위는, 과실범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는 한 처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케이스에서 범인에게는 ‘B에게 범행할 고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A를 협박하겠다’는 고의만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철두철미하게 고의를 기준으로 따지면, 이 사안에서는 하나의 행위가 두 가지 범죄를 구성하는 셈이다.
A에게 범행하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A에 대한 범행의 미수’.
그리고 B에게 범행할 고의가 없이 그런 결과를 발생시켰으니 ‘B에 대한 범행의 과실범’.
‘다만 판사님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그런 원리주의적인 말장난에 현혹되지 않고, 법원은 저지르려고 한 범죄와 실제로 발생한 결과의 죄질이 비슷하면 그냥 고의범을 인정한다.
‘나쁜 짓 할 생각으로 나쁜 짓 했으니 처벌해야지’라는 일반인의 법 감정과도 일치한다.
그렇기에 백서율 또한 이 부분은 굳이 더 파고들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협박을 듣고 있는 사람인 한주희의 언니와 A씨가 해악을 끼치려는 대상인 한주희가 다른 사람이라는 데 있어요. 듣는 사람이 아닌 제삼자에게 해를 가하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협박에 해당될까요?”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다들 답하기를 머뭇거리고 있기에 내가 일어났다.
인터넷도 쓸 수 없고, 검색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보니 아직 각론 공부가 100% 완성되지는 않은 1학년생들로서는 확신을 가지고 나서기 어려웠다.
‘괜히 나섰다가 잘못된 대답을 해서 찍히는 것보다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법이니까.’
“가령 어머니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건 누가 봐도 협박 같죠. 하지만, 당신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대통령을 암살하겠다고 말하는 건 좀 애매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이라고는 해도 다 같지가 않다.
내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공포심을 느끼겠지만, 별 상관없는 사람이나 아예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을 공격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어 봤자 크게 마음이 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판례도 ‘피해자 본인과 제삼자가 밀접한 관계에 있어 그 해악의 내용이 피해자 본인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정도’인 경우엔 협박죄가 성립한다고 하니까요.”
그렇게 논거를 대자 누군가가 뱉어 낸 끙, 하고 앓는 소리가 테이블 위로 낮게 흘렀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왜 저놈은 모르는 게 없느냐는 원성이 담긴 것 같아서 쓴웃음을 지었다.
억울해할 필요 없단다. 같은 시간을 보낸 게 아니니까.
전, 현생을 합해 얼마나 시간을 갈아 넣었는데, 이 정도 답변도 해내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둔재 중의 상둔재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 할 일이었다.
“……맞아요.”
내게 주목도를 빼앗긴 것이 탐탁잖았는지, 백서율이 입술을 비죽였다.
“그러니까 죄를 덜어 내려면 ‘밀접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해야 하는 거예요. 별첨 자료를 보면 한주희와 그 언니는 평소에 무척 사이가 안 좋았고, ‘네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언니가 쏘아붙이는 걸 들었다는 증언도 있더라고요.”
‘언제 별첨 자료까지 읽었대.’
PPT가 공개되는 동시에 우리 앞에도 인당 1부씩 별첨 자료를 담은 서류뭉치가 놓여졌는데, 그새 이를 훑어보고 필요한 내용을 뽑아낸 모양이었다.
“밀접한 관계가 아니라서 언니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면 협박미수. 그럼 김석구도 협박이 아니라 협박미수를 방조한 게 되니까 형이 훨씬 가벼워지죠.”
백서율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좋은 의견이에요. 백서율 학생. 혹시 평소에 대법원 판례 전문을 좀 읽어 보는 편인가요?”
“시, 시간이 남을 때 가끔 취미로요.”
성진태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백서율이 부끄러운 듯 말을 더듬었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처럼 자존심 강한 인간이 선발권을 쥔 어른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싫어할 리는 없었다.
“쟁점 하나씩 차근차근 짚어 나가는 모습에서 기본기가 잘 닦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잘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극찬이었다. 백서율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그럼, 혹시 반대쪽 견해를 준비한 분은 없을까요? 그러니까…… 김석구 씨의 형을 무겁게 만드는 쪽으로요.”
이번에도 손을 드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방금 백서율이 발표한 의견은 원작에서 신서준이 제시한 것과 동일했다.
더불어 실제 재판에서 진&안 측 변호사가 주장했던 내용과도 같았다.
‘그리고 받아들여졌지.’
검사가 따로 항소하지 않았기에 사건은 그렇게 1심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거기야말로 가장 이상한 지점이었다.
한주희의 실존 모델과 그 언니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야 사실인정의 싸움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법리적인 관점에서 제시해 볼 만한 다른 견해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진&안에서 뭔가 수 쓴 거 아니야?’
그렇게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내가 알아차릴 정도라면 현직 평검사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심증에 불과한 만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어쨌거나 법정에서도 실제로 통용된 주장을 꿰어 맞춘 원작의 신서준이나, 왠지 모르게 입을 닫고 있는 놈을 대신해 같은 결론에 도달한 백서율이나 훌륭한 실력자들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확실히…….”
“저 학생도 꽤나…….”
시니어들도 흥미롭다는 듯이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백서율도 비로소 쏟아지는 관심을 즐기며 어깨가 부쩍 올라가 있었다.
사람이 참 투명하다 싶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데.
“훗.”
이 망할 인간이 콧대가 높아진 걸로도 모자라서 이쪽을 향해 승리의 미소를 던져 오는 것이 아닌가.
– 어때요? 이번엔 내 승리죠?
그렇게 얼굴에 쓰여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열받는다.
‘어쭈.’
실격을 각오하면서까지 스마트폰을 빼돌려 내게 연락을 취한 것도 그렇고, 걱정해 준 게 고마워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건만.
이렇게 나오시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진짜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한 가지.”
그래서, 손을 들고 발언의 기회를 잡았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게 있긴 한데요.”
“그건 뭐죠?”
성진태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 사안…… 묵시적 교사로 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내 대답과 동시에, 쩌적 하고 백서율의 표정에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