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10화(9/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10화
원작에 등장하는 이하루는…… 말하자면 ‘꺾여 버린 천재’였다.
한국대 로스쿨생은 대부분 상경이나 사화괴학대, 인문대를 졸업한 문과 출신이지만 이하루는 출신 성분 자체가 달랐다.
한양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KEIST 전산학부도 3년 만에, 그것도 수석으로 졸업한 순도 100% 이공계열 엘리트다.
그대로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것 같았지만, 모종의 ‘실패’를 겪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이하루는 도피처로 로스쿨 입시를 선택한다.
문제는 머리가 너무 좋은 나머지 입학시험에서 전국 순위권의 점수를 받아 버렸다는 점이었다.
법학 지식을 묻지 않고, 일종의 지능 테스트나 적성고사처럼 운용되는 시험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모처럼의 성적이 아까워서 한국대 로스쿨에 원서를 넣었고, 당당히 최초합 했지만, 정작 이하루는 법학 공부엔 손도 대지 않았다.
아마 이 시기 즈음엔 PC방과 오락실을 전전하면서 낮밤이 뒤집힌 폐인 생활을 이어 갔을 텐데…….
“……오락실이라.”
그러고 보니 나도 전생에 오락실은 꽤 자주 갔었다.
동생이 쓰러진 후엔 일하느라 못 갔고, 주로 수험생 시절에.
다섯 평짜리 고시원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 가다 보면 주기적으로 스트레스를 풀어 줄 방법이 필요했다.
오락실 정도면 짧은 시간으로 저렴하게 활력을 찾을 수 있는 취미였다.
“그리운데. 오랜만에 한번 실력 발휘 좀 해 봐?”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오랜만에 입에 댄 알코올과 고기의 맛이 흥을 돋우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당장 집으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번화한 거리를 돌아다니며 오락실을 찾았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허허, 이게 이쪽 세상에도 있네.”
놀랍게도 현실에서 신림동 살던 시절에 다니던 그 오락실이 그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
반가움 반 신기함 반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 막 실내에 발을 들이밀었을 때였다.
“아, 감 없네 진짜. 처발렸으면 그만 질척대고 가셈.”
“이년이? 야, 딱 한 판만 더 하자고! 그런 얍삽이 두 번은 안 당한다니까!”
“님 개못하잖아요.”
“아아아악!”
트레이닝복 후드를 뒤집어쓴 키 작은 여자와 덩치 큰 남자가 격투 게임 기계 앞에서 다투고 있었다.
잠깐, 이 인터넷에 찌든 듯한 시니컬한 말투.
어딘가 낯이 익은데…….
그때, 여자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후드 아래로 살짝 드러난,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병적으로 새하얀 얼굴.
“뭘 봐요. 구경났음?”
아는 얼굴이었다.
“……이하루?”
“헉.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스토커신가?”
이하루가 맞았다.
이런 식으로 마주칠 줄은 몰랐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 설득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놓친다면 이 전설의 포켓몬 같은 괴짜를 어디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스토커는 무슨. 너랑 같은 한국대 로스쿨 학생이야. 네 조원이기도 하고.”
‘한국대 로스쿨’이라는 말에 이하루와 싸우던 남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서 오락실 밖으로 도망쳤다.
예로부터 법 배우는 치들하고는 얽히지 말란 격언이 있긴 했다.
뭐, 이하루는 민매 한번 안 펼쳐 봤으니 법을 배웠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조원?”
“그래. 네가 안 나와서 우리 조 점수가 왕창 깎이게 생겼어. 출석도 조별로 반영하겠다고 하시더라.”
“아하, 그런 사연이.”
“부탁할게. 남은 기간만이라도 나와줄 수 있을까?”
이하루는 가만히 서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당당하게 외쳤다.
“하나 거절한다!”
“아니, 야.”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음.”
그러더니 이하루는 격투 게임 기기를 가리켰다.
“날 설득하려거든, 저걸로 승부를 보시죠.”
어안이 벙벙해서 보고 있자 숫제 동전을 집어넣고 기기를 구동시키는 것이 아닌가.
뿅뿅거리는 효과음과 함께 화면에 빛이 들어오더니, 이하루의 캐릭터와 파란색으로 반짝거리는 게임 등급이 나타났다.
“……게임으로 붙자고?”
“싫음 말고요. 공부만 한 범생이라 이런 건 잘 못하시나?”
허허, 이것 참.
“하긴. 내가 이래 봬도 의자단인데 본 적도 없는 뉴비한테 질 리는…….”
“좋아. 한 판 뜨자.”
“엇.”
나는 이하루의 맞은편에 앉아 게임기를 켰다.
“대신 내가 이기면 프리로 끝날 때까지 꼬박꼬박 나와. 약속해.”
“님이 지면요.”
“그땐 더 이상 귀찮게 안 할게.”
“나만 손해 아닌가…… 뭐 어차피 이길 텐데 상관없죠.”
‘그 여유도 지금만이다, 이 녀석아.’
사실 나는 이하루가 생각하는 그런 초심자가 아니다.
고시 생활의 스트레스를 오락실에서 풀던 시절, 나의 이 게임 등급은 소위 말하는 ‘황금단’이었다.
맘만 먹으면 프로도 뛸 수 있는 실력이었다는 뜻이다.
법학을 훨씬 좋아했기에 취미로만 남겨 두었을 뿐이다.
이하루의 등급도 상당한 숙련자에 속했지만, 나와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와 중학교 축구부 에이스 정도의 격차가 났다.
특히나 게임 같은 건 공부와 달리 몸에 배는 운동이나 기술과 비슷했다.
몇 년 쉬었다 다시 해도 금방 되살아난다는 소리다.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Here comes a new challenger!]게임 시작을 알리는 문구가 떠오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K.O.]얼마 지나지 않아 승패가 갈렸다.
쓰러진 건 이하루의 캐릭터고, 살아서 승리 포즈를 취하는 건 내 캐릭터다.
이하루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약속했지? 월요일부턴 나오는 거다?”
“어, 어떻게.”
비록 이하루가 법 공부를 죽기보다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약속을 어기는 것은 그보다 더 싫어하는 일면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제 입으로 뱉은 말을 물릴 위인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걸로 됐다.
급한 불은 껐다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어떻게 했어요? 방금 그거?”
“……?”
“알려 줘요! 알려 주면 평생 스승으로 모심! 진짜 제발!”
이하루가 불쑥 다가와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정황상 내가 마지막에 그녀의 캐릭터를 쓰러뜨리면서 사용한 기술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냥 도피처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게임에 진심이었을 줄이야.
‘이런 게임 폐인이어서야 억지로 끌고 가도…….’
어떻게든 출석만 시키면 출결점수는 벌겠지만, 발표에 이하루가 걸릴 때마다 우리 조는 점수를 얻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는 잃을 수도 있다.
“뭐, 뭐든지 할 테니까!”
‘아니, 오히려 기회인가?’
원래는 출석 정도에서 만족하려고 했지만, 이 정도로 진심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짝만 더 욕심을 부려 보기로 했다.
“……지금 뭐든지 한다고 했겠다.”
“넵!”
“그럼 너, 우리랑 같이 법 공부 좀 하자.”
“……?”
지금이야 이런 한심한 꼬락서니지만, 어쨌든 이하루도 두뇌 성능으로는 작중에서 탑을 달리는 인물이었다.
요컨대 ‘하면 되는 아이’라는 뜻이다.
원작에서도 나중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상당한 속도로 나머지 학생들을 따라잡았다.
‘특히, 이과 지식을 베이스로 요구하는 지식재산권법 같은 건 아예 경연대회를 휩쓸 정도로 독보적이었지.’
이참에 원작보다 빨리 이하루를 성장시키고 그 덕을 좀 볼 요량이었다.
“……에잇, 어쩔 수 없지. 할게요.”
“진짜지? 두말하기 없기다?”
“맹세함. 진짜로다가.”
뜻밖의 큰 수확이었다.
“근데 님 이름이 뭐예요?”
“그걸 이제 물어보냐. 박유승이야, 박유승.”
“박…… 그냥 스승님이라 부르겠음.”
“그럴 거면 왜 물어봤어…….”
오락실에서 나왔을 때는 벌써 밤이 깊어 있었다.
다시 한 번 이하루에게 꼭 나오겠다는 약조를 단단히 받아 내고, 혹시 모르는 경우를 대비해 연락처까지 받아 둔 후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서 이번 주에 배운 내용을 조금 복습하니 잘 때가 한참 지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박유승, 큰일 났어! 신나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우리 오늘부터 출결.”
“하이요.”
“……엥?”
“오늘부터 잘 부탁드림.”
“……에에엥?”
* * *
한국대 로스쿨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전에 정기 교수회의를 연다.
별다른 의제가 없으면 일찍 파하거나 아예 건너뛰는 경우도 있지만, 새학기의 시작을 앞둔 이 시기엔 이래저래 확인할 일이 많은 법이었다.
그렇기에 장용환은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회의실로 향했다.
“어, 장 교수! 일찍 왔네!”
먼저 와 있던 박수근 교수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또 부인분과 다투셨습니까.”
“그게 일이 좀…… 잠깐,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왼손에 붙인 밴드. 위치를 고려하면 서투르게 칼질하다 난 상처겠지요. 누군가 바로잡아 준 듯 반듯했던 넥타이도 오늘은 후줄근하게 매셨네요. 출근 직후에 늘 배어 있던 찌개 냄새도 안 나고, 직접 아침 식사라도 만들어 드신 거 아니겠습니까.”
보나 마나 부인과 다퉈서 밥도 못 얻어먹고 다니는 게 뻔하다.
심지어 이번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며 장용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야, 검사 출신은 다르긴 다르구만.”
박수근은 허허 웃으며 혀를 내둘렀고, 그와 동시에 회의실에 들어온 부원장 최성철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자, 자. 회의 시작합시다.”
최성철이 서류 더미를 집어 들며 말했다.
“어디 보자…… 3학년들 변호사시험 가채점 결과는 수합했나요?”
“아. 그 옆에 놔뒀습니다.”
지목받은 자료를 읽으며 최성철이 말했다.
“올해도 예년과 비슷하군요. 역산해 보면 대충 응시자 기준으로 94%쯤 나오겠는데? 합격률이?”
“저희 애들이야 늘 우수하죠.”
“담당 교수님들은 애들 졸업 사정 좀 잘 챙겨 주시고, 졸업탈락자랑 예상 불합격자 명단 뽑아서 보내 주세요. 기숙 자습실 수요 미리 체크해야 하니까.”
현재 3학년생들은 지난 1월 둘째 주에 변호사 시험을 치른 상태였다.
긴 서술형 답안을 써야 하는 사례형과 기록형의 경우 결과가 늦게 나오지만, n지선다 선택형의 경우 가채점을 해 볼 수 있어 합격 여부를 예상하는 지표로 쓰였다.
94%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디 변호사시험은 과거의 사법시험과 달리 ‘로스쿨만 졸업하면 누구나 변호사가 되게 하자’는 모토 아래 정말 실력미달인 사람만 걸러내는 자격시험으로 설계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적된 정원 문제로 인해 매회 3,500명가량이 응시해서 1,700명 언저리만 합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그마치 절반을 솎아내는 것이다.
응시자의 대부분이 좋은 학부를 졸업하고, 몇 년씩 전문적인 법학 교육을 이수하며 밤낮없이 공부한 이들임을 고려할 때 절반 안에 드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2학년들 실적은…… 좋네. 특히 검찰 실무 성적 좋은 애들이 많아. 올해도 장용환 교수 덕에 검사 좀 배출하겠는데요.”
“애들이 잘한 거지, 제가 뭘 한 게 있겠습니까.”
제 얼굴에 금칠을 해 주는 발언에도 장용환은 손사래를 쳤다.
겸양이 아니라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료를 마련해 주고 공부법을 가르치는 정도는 할 수 있어도, 결국 공부란 건 스스로 하는 법이었다.
“전반적으로 호재가 많네요. 이번에 또 기부금 관련해서, 법대 시절 졸업생이신 정 의원님이 거금을 기부해 주셨어요. 앞으로도 한국대 로스쿨의 위상을 제고해 나가서 좋은 인연들 많이 만들어 갑시다.”
‘……속 보이긴.’
장용환은 속으로 혀를 찼다.
부원장 최성철은 유능했지만, 금융권에서 구르다 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유독 돈 문제 앞에서 약아빠지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언급된 정 의원은 최근에 부쩍 지지율이 떨어진 걸로 유명했다.
기부활동으로 이미지 전환을 꾀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최성철 쪽에서 먼저 접근해서 잡아 온 건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예비 1학년들은 좀 어떤가요? 여기 박수근 교수랑 장용환 교수가 수업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기수가 참 뛰어난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됩니다.”
박수근이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일단 상위권이 탄탄합니다. 그 입학 수석한 친구나 차석한 친구는 민사법만 보면 지금 당장 변호사시험 봐도 합격할 레벨이에요. 그 밖에도 눈여겨보는 학생이 한 명 있고요.”
“공교롭군요. 저도 한 명 있습니다.”
장용환도 말을 얹었다.
‘박유승이라고 했나.’
맹랑한 녀석이었다.
처음 질문을 던졌을 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더니, 입학 수석이 숨겨 둔 쟁점 하나를 놓치자마자 귀신같이 일어나서 정답을 꿰뚫었다.
가장 맛있는 부분만 골라 먹는 솜씨가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반가운 소식이네요. 이제 곧 예비입학생들 2차 시험이던가요? 두 분께서 평소와 같이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증거의 진위 여부에서 출발해 논리를 전개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건 수사를 하는 자의 사고회로였다.
말하자면 장용환 자신과 같은 부류.
그냥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많다.
애초에 그만한 수준이 안 된다면 한국대 로스쿨에 들어올 수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숨겨져 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논리와 사실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수사관의 마인드를 가진 원석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본인이 전혀 다른 길을 지망한다면 간섭할 생각은 없지만…….’
장용환은 오랜만에 만난 기대주를, 조금 더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부원장님.”
“말씀하세요, 장 교수.”
“2차 시험의 방식. 조금 바꿔 봐도 되겠습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