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Law School Genius RAW novel - Chapter (92)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92화(92/159)
천재 로스쿨생이 되었다 92화
“착각하시면 안 되죠.”
굳어 버린 장화은에게 쏘아붙였다.
“제자들의 성공? 그냥 우수한 사람들, 알아서 잘할 사람들이 우연히 어머님 강의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 의탁해서 자신이 옳다고 단정하지 마세요.”
애초에 장화은의 방법론이라고 해 봤자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무지막지한 학습량과 공부 시간을 강요해서 억지로 책상에 앉혀 놓고, 기를 쓰고 달달 외우게 만드는 게 그 골자였다.
물론 수험법학이라는 게 결국 다 외울 수 있으면 장땡이긴 했다.
그리고 학원의 힘을 빌려 강제로라도 공부하는 습관을 만드는 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비효율적이야.’
특히 상위권한텐 더 그렇다.
스스로 꾸준히 공부할 수 있는 끈기와 열정이 있는 학생들.
기본기는 이미 충분하고,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해 가며 깊이 있게 자신만의 체계를 쌓아 올릴 역량이 되는 이들에게 장화은은 오히려 독이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성공했다고는 해도, 장화은은 수험가에서 1, 2등을 다투는 스타 강사는 아니었다.
‘알 사람만 아는’, ‘그런 선택지도 있다’는 정도의 입지를 가진 수많은 강사들 중 하나일 뿐.
사실 장화은의 독단적인 면모를 정당화해 줄 만한 충분한 근거는 못 되는 셈이었다.
나는 그런 부분들을 하나하나, 조곤조곤 지적해 나갔다.
장화은이 감추려 애써 온 그녀의 가장 깊은 모순들과 약점들을 낱낱이 까발렸다.
“……네가.”
그러자 어느새 냉혹해 보이던 가면은 무너져 내리고, 장화은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뭘 안다는 듯이 지껄여! 그 시험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주제에!”
‘아니, 해 봤거든.’
물론 그렇게 말할 수야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나는 대답하는 대신 입꼬리를 틀어 올릴 뿐이었다.
“경험이 올바름의 척도라면, 수십 년째 신림동 고시원에 갇혀서 신선놀음하고 계시는 아저씨들이 법학의 정점이겠죠.”
“……!”
내가 사시를 공부하던 시절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수험 생활을 한 나머지, 시험을 준비하는 삶에 완전히 매몰되어 버린 양반들.
사오십 대가 되어서도 한 해 한 해 늘어 가는 주름과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눈치채지 못한 채 독서실과 고시원만을 활보하던 이른바 ‘신림동 신선’들이었다.
내가 보기엔 장화은이나 그네들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망집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모욕적인 속뜻을 읽어 낸 장화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거의 다 왔다.’
내가 이렇게 장화은의 속을 긁고 있는 건 그저 감정적으로 욱해서만은 아니었다.
물론 이 사람에게 화가 난 것은 맞지만, 필요한 작업이기도 했다.
사실 장화은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든 들어줘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어쨌든 그럭저럭 자리 잡은 사회인이며, 한설의 친어머니였다.
외부인인 내가 뭐라 지껄이든 장화은으로서는 무시하고 계속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장화은의 행동 원리를 이해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인간은 수십 년째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법학 실력이 부족해서 시험에 떨어진 게 아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더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런 주장을 자기 스스로와 온 세상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일생.
강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도, 한설에게 자신의 방법으로 로클럭이라는 결과를 내도록 강요하는 것도 전부 그 일환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그 지점을 흔들면 된다.
자신의 권위와 타당성을 의심받는다면, 장화은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를 지키려고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그 자기 확신이 무너진다면 그녀의 삶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테니까.
“어머님께서는 틀렸습니다.”
나는 단언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까요? 어머님은 법학의 방법론이든 한설에 대해서든 저보다도 아는 게 없으십니다.”
“너, 너 지금 뭐라고,”
“한설은 알아서도 잘할 애예요. 그렇게 무식하게 쥐어짜 내는 방식을 강요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훨씬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친구라고요.”
법학의 교육자로서 당신은 그다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가르칠 상대를 면밀히 파악하는 눈도, 애초에 그걸 가능하게 할 법학 실력도 나보다 떨어진다.
그런 의미를 행간에 담는다.
“네까짓 게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장화은이 언성을 높였다.
“자격. 자격이라. 그거 좋은 말이네요.”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말을 받았다.
“그럼 저희, 서로의 자격을 증명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요? 저는 감히 남의 집 교육 방침에 훈수를 둘 자격을, 어머님께서는 딸에게 일방적인 이상과 방식을 강요할 자격을.”
“그게, 무슨.”
“어머님이 정말 옳으시다면, 그래서 이 모든 게 정당화될 수 있는 거라면. 적어도 풋내기 로스쿨생보다는 법학을 잘 아셔야 할 거 아닙니까.”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지적 역량이 정당성을 담보하는 일은 결코 없다.
한설이 과도한 학습 강요에 시달리다 쓰러진 시점에서 이 사람의 교육법은 이미 타당성을 잃었다.
아니, 애초에 단 한 번도 옳았던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화은에게는 그 둘이 같은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로서는 그토록 무시해 온 풋내기, 그것도 얼마 전까지 개망나니로 동네방네 소문이 났던 놈보다 법학을 모른다는 말만큼은 결코 무시하고 넘겨 버릴 수 없다.
“제가 어머님보다 못하다는 게 증명되면, 원하시는 대로 한설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그 반대가 된다면…….”
흔들리는 장화은의 눈동자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걔한테 더 이상 간섭하지 마세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법정변론대회 본선, 보러 오세요. 그럼 제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될 테니까.”
장화은의 눈에 많은 것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 읽어 내기도 힘든, 수십 년 치의 해묵은 감정들이 그 안에서 용솟음치고 있었다.
“……우습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장화은이 입을 열었다.
“조그마한 우물 안에서 1등 한 번 해 봤다고 세상이 다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지.”
“승낙하신 줄로 알겠습니다.”
“하, 참 내.”
그렇게 기이한 내기가 성립되었다.
* * *
꼬여 버린 가정사를 풀어내는 건 어렵다. 오랜 세월에 걸쳐 뒤틀린 한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도 지난한 과제다.
어느 쪽이든 내 능력만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법학으로 위아래를 가르는 것쯤이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긋지긋할 정도로 해 와서 익숙해진 프로세스고,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한국대 로스쿨 제1법학관에 자리하고 있는 원장실.
“나를 찾아왔다는 게냐.”
안락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있던 강창수 원장이 몸을 일으켰다.
한 차례 침음성을 흘린 그는, 나 대신 내 옆에 서 있는 인물에게 시선을 던졌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강 교수님.”
장화은이 강창수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강창수는 로스쿨이 세워지기 전, 법대 시절부터 강단을 지켜 온 기둥이었다.
당연히 장화은 또한 학부 시절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 하나라는 소리였다.
“해서…… 내게 뭘 원한다고.”
“심판을 봐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강창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나와 장화은 사이에 성립한 내기의 내용은 단순했다.
장화은보다 내 실력이 더 뛰어나다는 걸 증명하면, 더 이상 한설에게 간섭하지 않을 것.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문제는 그 ‘증명’의 장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점이었다.
모욕이란 모욕은 죄다 퍼부어 놓고 할 말은 아니긴 한데, 장화은은 어쨌든 법학 강사로서 구를 대로 굴러먹은 인물이었다.
학생 수준은 진작에 뛰어넘었다는 소리다.
당연히 그런 그녀와 내가 맞붙는 싸움이라면, 승패를 판정할 인물 또한 훨씬 위에서 우리를 굽어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자여야만 했다.
‘역시 강창수밖에 없어.’
다른 교수들은 안 된다. 이런 사사로운 일에 어울려 달라고 부탁할 정도의 친분은 없으니까.
물론 강창수와도 아득하게 거리감이 있긴 했지만, 이 꼬장꼬장한 노친네에게는 적어도 혈연이라는 카드를 들이밀어 볼 여지가 있었다.
하물며 그는 전직 대법관이다. 학계에서도 한국 민사법의 기둥으로 불리며 존경받았던 원로 중의 원로.
이 나라 사람 가운데 강창수보다 법학을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을 터였다.
아무리 장화은이 프라이드가 높다고 해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권위는 결국 더 큰 권위 앞에서만 구겨지는 법.
‘장화은의 스승이기도 하고.’
“강 교수님의 외조카였다고…….”
“혹시 혈연 탓에 불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게 우려스럽다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분은 아니시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제자였다면 그 대쪽 같고 까탈스러운 성정도 경험해 봤을 것이다.
강창수는 어떤 경우에든 개인적인 연원으로 한쪽에 치우쳐진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걸 아는지 장화은도 마지못해 수긍했다.
“흠.”
강창수가 나와 장화은을 번갈아 눈에 담았다.
옛 제자와 외조카.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조금도 흐려지지 않은 이지가 우리를 비춘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다만, 하고 강창수는 이마를 쓸어내렸다.
“이렇게 해야 하는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구나.”
강창수가 장화은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소식은 들었다. 강사가 되었다지.”
“네, 이제는 그럭저럭 자리를 잡았고요.”
“딸이 지금 우리 로스쿨을 다니고 있고.”
“부족함이 많은 아이입니다.”
내게는 장화은이 친구의 어머니지만, 강창수에게는 자신을 거쳐 간 수많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훨씬 젊은 날의 그녀를 겹쳐 보듯이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렇게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
“동시에 교만하기도 했고.”
“!”
옛 제자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때로는 틀렸음을 인정하는 게 앞으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건만. 너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저, 저는.”
“그 과오를, 아직도 반복할 셈이냐.”
장화은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단지 꽉 쥔 주먹 위로 돋아난 푸른 실핏줄만이 그 심상을 짐작케 할 뿐이었다.
“……네.”
다시 얼굴을 들었을 때, 장화은은 독기가 한가득 서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야겠어요, 저는.”
“허…….”
대법관이자, 한국대 로스쿨의 원장이자, 누군가의 옛 스승인 노인은 깊은숨을 뱉어 냈다.
“좋다.”
그러고는 선반을 뒤지더니 봉투를 두 개 꺼내어 나와 장화은에게 각각 건넸다.
“받아라.”
“이건?”
“원래 이렇게 쓰려고 준비한 물건은 아니지만…… 상관없겠지. 승패를 가르려거든, 이걸로 해라.”
심판역을 수락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 이번 승부의 제재(題材)라는 소리였다.
‘여기까진 생각대로 됐다.’
남은 것은 하나. 이 안에 든 게 무엇이든, 장화은을 꺾고 내 친구를 오랜 주박에서 풀어 주는 것뿐이었다.
할 일이 명확하다면 행동은 빠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봉투를 죽 찢어, 내용물을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