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7)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07화(107/235)
#107 감정 전염의 능력
#107 감정 전염의 능력
낮에는 논의가 필요한 안건이나 공식적인 서류를 처리한다. 하지만 간단한 서신 작성, 혹은 비공식적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확인 같은 것은 해가 떨어진 뒤 침실에 있는 책상에서 확인했다.
타이론의 왕세자 글렌은 시종이 가져온 상자에 방금 확인한 서류를 넣고, 새로운 편지를 꺼냈다. 다른 나라에 시집간 왕족 여인들의 편지다.
외국에 나가 있는 왕족 여성은 정기적으로 본국에 서신을 보내온다. 자신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적은 안부 편지 같은 것인데, 그런 걸 주변 상황과 꿰어 맞추면 의외로 고급 정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편지는 상대 나라의 검열을 거친 것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사신을 통해 몰래 보내오는 것들도 있다.
그런 편지들을 하나씩 확인한 뒤, 그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아버지 왕께 보고하는 것도 왕세자의 일이었다.
한참 편지와 서류를 읽고 있는데 시종이 조용히 말을 걸었다.
“여자 용사의 호위가 왔습니다.”
“아.”
그 여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것 같다. 글렌은 숨을 멈추고 입가에 작은 미소를 그렸다.
“들어오게 하라.”
“….”
시종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거의 동시에 문이 열렸다. 바람이 들어와 책상 위에 있던 촛불이 흔들렸다.
“왔느냐.”
“예, 전하.”
호위 기사가 가까이 오지 않고 조용히 문 앞에 서 있다.
시종이 글렌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조금 전까지 여자 용사의 방에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혹시라도 여자 용사의 능력에 영향을 받았을까 걱정이 되어 저렇게 서 있는 모양이다. 글렌은 쓴웃음을 지으며 호위 기사에게 손짓했다.
“이리로 가까이 오라. 그대는 매일 신전에서 축복을 받고 있으니 괜찮아. 여러 번 신관과 마법사에게 확인도 받고 있을 터, 걱정 말고 가까이 오라.”
호위 기사가 힐끗 시종을 본다. 시종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왕세자 전하께서는 오늘 신전에서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혹시 여자 용사의 능력이 남아있더라도 영향받지 않으십니다.”
시종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호위 기사가 몸을 움직였다.
“그럼, 무례한 일이오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호위 기사가 가까이 다가와 책상 앞에 조용히 섰다.
“어떻더냐?”
“오늘 아침 가장 가까이 섬기게 했던 시녀가 발광했습니다. 동료가 자신을 음해했다고 의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징후는?”
“그녀의 경우 다른 이와 달리 징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 없는 것으로 보였는데 갑자기 이상을 일으켰습니다.”
골치 아픈 일이다. 여자 용사의 능력은 타인의 부정적인 감정을 끄집어내 전염시키고 증폭하는 것. 주변을 미치게 만든다.
그 여자 용사는 상대방에게서 항상 부정적인 것을 찾아냈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을 들춰낸다.
의심, 비웃음, 경멸, 우월감, 비열함, 폭력성, 악의….
상대방 본인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는, 저 밑바닥에 숨겨져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찾아내는 거다.
이 세상 누구도 좋은 감정만 가지고 있지 않는데, 그 여자 용사는 그걸 용납해 주지 않았다.
“불쾌한 능력이다.”
그 능력은 타인뿐 아니라 여자 용사 자신에게도 적용되었다. 그 때문에 항상 그녀는 불안하고 슬프고 두렵고, 또 자신이 못났다고 자학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주변에 미쳤다.
‘그저 마력이 많은데 능력을 발현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건만.’
글렌은 속으로 혀를 찼다.
처음 그녀의 곁에 있는 사람 몇 명이 발광할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왕궁의 수석 마법사가 옛 기록에서 과거에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에야 조치가 취해졌다.
글렌은 그런 능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직까지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은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을 제한하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일 신관이 강력한 축복을 내려준다.
하지만 방금 보고 들은 것처럼, 축복도 아주 완벽하지 않은 것 같다. 때때로 축복을 받고도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이 있었다.
글렌은 시종에게 시선을 주었다.
“용사의 모습은 어떤가? 그 자는 여자 용사에게 영향을 받는 것 같으냐?”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싶은 징후가 있습니다. 그자의 옆에 붙여놓은 여자들에게서 성격이 약간 거칠게 바뀐 것 같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
“그러나 확실치 않습니다. 이 세계에 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여자 용사의 영향인지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글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녀를 별궁으로 옮길 준비를 해두어라.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겠지. 더 이상 사람이 발광하면 소문이 뻗어 나갈 거야.”
“알겠습니다.”
시종이 고개를 숙인다.
글렌은 호위 기사를 보았다.
“그대는 계속해서 여자 용사를 다독이게. 그녀에게 의심의 여지를 주지 마. 다른 사람은 모두 실패했다. 그대만이 부정적인 감정을 들키지 않았어.”
“알겠습니다, 전하.”
호위 기사가 절을 하고 물러간 뒤, 글렌은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고 눈을 감았다.
‘역시 그자들은 용사가 아닌 거야.’
하지만 산타의 계약자도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루돌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왕께서는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글렌은 안 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시체를 움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전염시키는….’
그런 자들이 용사나 산타의 계약자일 리 없다.
* * * * * * * * * *
주환은 끙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었다.
오두막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안 전체에 내려앉은 먼지와 바닥 여기저기에 있는 것들을 치우는 것이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오두막은 얼핏 보면 깨끗했지만, 구석구석 세심히 들여다보면 먼지와 벌레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쥐똥은 물론이요, 딱딱하게 말라 비튼 지네의 사체도 있다. 지네가 마르면 둥글게 되어 돌처럼 딱딱해진다. 여기 와서 알았다. 처음에는 벌레가 아니라 토템 장식물 같은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조금 예쁘다 싶기도 하다. 그게 뭔지 알고 난 뒤에는 조금 끔찍했지만.
“….”
주환의 입에서 작게 한숨이 샜다.
건물 여기저기가 쥐 혹은 두더지 같은 것에 쏠려 구멍이 나 있었다. 오두막 옆에 있는 창고도 마찬가지다.
음식물을 집과 창고에 두면 순식간에 생쥐 먹이가 되어버릴 것 같다. 모처럼 비싼 돈 주고 사 와서 쥐새끼한테 적선하는 꼴이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커지겠는데.”
주환이 중얼거리자, 열심히 쓸고 닦던 리지가 허리를 구부정하게 세우며 말했다.
“오늘 다 끝날 것 같지도 않아요.”
“….”
주환은 하늘을 보았다. 벌써 뉘엿뉘엿 해가 진다. 이제 슬슬 잠자리를 마련할 시간이었다.
“….”
밖에서 쳐다보는 게 아니다. 그는 집 안에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산이라 그런가. 하늘이 참 가깝네.’
기분이 묘하다.
도시에 있는 건물이나 이층 건물은 조금 다르지만, 그냥 마을에 있는 단층짜리 허술한 집중에는 천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경우가 많다.
굴뚝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걸 집에 설치하는 게 굉장히 비싸다고 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단층집은 천장을 뚫어 연기가 빠지게끔 해놓는다.
한데 이 오두막은 그 천장의 연기 구멍이 좀 크다. 상당히 크다. 솔직히, 비가 오면 물이 쏟아져 들어와, 불이고 뭐고 다 꺼져버릴 정도로 컸다.
‘어머니 아버지는 대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산 거지?’
이전 마을에 있을 때 본 건데, 어떤 집에서는 천장의 연기 구멍 위에 우산처럼 나무나 가죽으로 덧씌워 놓는 경우가 있다. 이 집에도 그게 필요할 것 같다. 아니, 꼭 필요하다.
“리지, 오늘은 이만 쉬자.”
리지는 허리를 쭉 펴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조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더니, 허리가 아픈 것 같다.
“음, 하지만.”
리지가 눈썹을 옆으로 떨어뜨리고 집을 보았다. 하긴, 집안 꼴을 보면 쉬고 싶어도 쉴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닌 것 같아. 천천히 하자구.”
주환이 그렇게 말하자, 리지의 어깨가 약간 떨어졌다. 앞날이 구만리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도로시는 근처 나뭇가지를 모아 묶어 만든 빗자루를 들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청소를 하는 거지만, 실제로는 이쪽에 있는 먼지를 저쪽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그래도 엄마를 돕는다고 열심인 걸 보면, 먼지만 나고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주환과 리지가 일을 멈춘 걸 보자, 도로시가 이마에 붙은 땀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달려왔다.
“엄마, 아빠! 쉬는 시간이야? 도로시도 너무 힘들어요. 하아, 좀 쉬어야지.”
헥헥,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귀엽다.
주환은 도로시를 안아 들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그래, 수고했다. 오늘은 이제 그만 쉬고 나머지는 내일 하자.”
“응!”
집 가운데 자리한 화덕에서는 육포를 넣은 물이 끓고 있다. 리지가 주환과 도로시를 보고 웃더니 그 물에 스튜 재료를 이것저것 넣었다. 말린 야채와 향신료, 소금을 넣고 잠시 끓이자 향긋한 냄새가 오두막 곳곳으로 퍼졌다.
그때, 밖에서 연화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두막에 도착하자마자 어디론가 가버렸던 연화가 이제야 돌아온 모양이다.
“도로시가 보고 올게요!”
크게 소리치고, 도로시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오즈가 깡총깡총 뛰어 그 뒤를 쫓는다.
하지만 밖으로 나갔던 도로시는 금세 다시 뛰어들어왔다.
“아빠! 연화가 새 잡아왔어! 새가 퍼덕퍼덕거려요!”
“응?”
밖으로 나가보니, 연화가 입에 산꿩을 물고 있었다.
꿩은 아직 죽지 않았다. 반쯤 살아있었다. 상처가 없는 걸 보면 아마 마비시켜 잡은 모양이다. 한쪽은 멀쩡한데 한쪽만 마비된 것 같다. 한쪽 날개를 가끔 퍼덕거렸다.
“말이 새를 잡다니, 무슨 사냥말인가.”
약간 기가 막혔지만, 유니콘에게는 이것도 일상일지 모르겠다. 말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이 녀석은 어디까지나 마수나 짐승을 사냥해서 먹는 존재라고 하니까.
주환을 보자, 연화가 물고 있던 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얼굴을 그의 몸에 들이밀었다.
연화의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쩌면 칭찬을 기대하는 걸까.
“그래, 그래. 잘했다.”
주환이 목덜미를 가볍게 치면서 칭찬을 했지만, 왜인지 계속해서 뭔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주환이 무슨 뜻인지 모르자, 연화가 뿔로 꿩을 밀어 주환의 발밑에 두었다.
‘아, 혹시.’
예전, 막노동 아르바이트를 할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막노동하는 사람 중에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어릴 때 종종 엽총 사냥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 사람 왈, 진돗개는 특별히 훈련시키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사냥을 하는데, 사냥감을 잡으면 반드시 주인이 먼저 한 칼 베어낸 뒤 먹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그게 사냥개를 다루는 기본이라고 했다.
어쩌면 연화도 그걸 기대하는 게 아닐까.
주환은 연화의 반응을 살짝 살피며 칼을 들어 꿩에 갖다 댔다. 연화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의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주환은 도로시를 보았다. 아이한테 동물 죽이는 모습을 보이는 건, 본래는 안될 일이다.
하지만 리지가 도로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뒤, 주환은 자신의 생각을 조금 바꿨다.
지구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이 아이를 대하지 말라. 이 아이는 이 험한 세계를 자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아이다.
게다가 이 아이는 이미 세상의 잔혹함을 많이 알고 있었다.
주환이 아이를 위해서 해야 하는 건, 참혹한 모습을 숨기고 가리는 게 아니라 올바르게 보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 세상을 그의 손바닥으로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주환은 도로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도로시, 짐승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돼. 그건 나쁜 짓이지. 하지만 반드시 죽여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괴롭지 않도록 단숨에 죽여야 한다.”
도로시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빠!”
“….”
주환은 꿩의 목에 칼을 대고 살짝 그었다. 이미 힘이 빠져 있던 꿩은 금세 숨을 떨구었다.
주환이 꿩에서 살을 약간 베어낸 뒤 큰 부분을 내밀자, 연화가 기쁜 듯 갈기를 흔들며 받았다.
작은 부분은 리지가 챙겼다. 조금이지만 잘 씻어 스튜에 넣을 모양이다.
“잘했다.”
툭툭, 목덜미를 두들겨주자 연화의 꼬리가 기쁜 듯이 휘휘 양옆으로 움직였다.
“근데 아빠, 오즈가 슬프대요.”
도로시의 말을 듣고 구석을 보자, 문 뒤쪽에 오즈가 귀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있었다.
“삐이.”
아마 연화는 사냥을 해 칭찬을 받았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한 게 슬픈 모양이다.
도로시가 오즈의 머리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오즈. 너는 작아서 그래. 꿩이 더 크니까 사냥 못하는 거야. 꿩을 들고 오려면 말이야, 엄청나게 몸이 커야 하거든.”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오즈에게는 약간 위로가 되었던 건지, 작은 뿔토끼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삐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