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8)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08화(108/235)
#108 기묘한 나무 덩굴
#108 기묘한 나무 덩굴
산에서 살기 위해서는 주변의 지형과 살고 있는 동물의 종류를 확인해둬야 한다.
겉으로 보기와 달리 푹 꺼지는 곳이나 풀과 나무로 뒤덮여 보이지 않는 절벽과 급경사는 없는지, 곰이 사는 굴이나 늑대의 보금자리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들은 한도 끝도 없이 많다.
하지만 넓은 지역을 하루 혹은 며칠 사이에 모두 둘러볼 수는 없다.
거스는 사는 곳을 중심으로 회오리처럼 둥글게 확장하면서 조금씩 확인하도록 가르쳤다.
한 번에 모든 것을 할 수도 없지만 해서도 안 된다. 최소한의 확인을 하며 지역을 넓히고, 세세한 것은 살면서 조금씩 매일매일 더해간다. 그것이 기본.
어딘가에서 본 글귀가 떠올랐다.
바닷물을 끓이려 하지 마라.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샅샅이 확인하고 넘어가려는 건, 저 넓은 바다를 모두 끓이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답이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쓸데없는 노력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쏟을 수 있는 노력과 시간은 무한한 게 아니니까. 한계를 정해놓고 다음으로 나가야 한다.
주환은 집 주변을 더 들춰보고 싶어지는 마음을 누르며 걸음을 뗐다.
오두막 뒤쪽으로 향하자, 잔디 깎이 기계로 깎은 듯 매끈한 봉분이 보였다. 겨울이라 그런지 납작하게 누운 약간의 풀만이 무덤을 덮고 있었다.
봉분 근처에는 나무가 없지만, 오두막 쪽으로는 베어내지 않은 것들이 상당히 많다. 자란 지 얼마 안 된 키 작은 나무도, 오래되어 하늘 높이 솟아있는 나무도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오두막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집이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적당히 나무가 있는 것은 좋지만, 이건 너무 많다. 오두막 근처에 밭을 만들만한 공간도 모자라고, 어느 정도 벌목을 해야 할 것 같다.
주환은 주변 나무를 확인한 뒤 히죽 웃었다. 오두막 근처에 있는 나무는 대부분 장작으로 괜찮은 종류였다. 한동안은 멀리까지 땔감을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둥글게 나선형으로 집 주변을 살펴보던 주환의 걸음이 문득 멈췄다.
동물의 발자국을 몇 개 찾았다.
여우, 두더지처럼 작은 동물의 것이 대부분이지만, 한 개가 상당히 컸다.
‘이건….’
뚜렷하게 남은 발바닥 앞에, 긴 손톱자국이 땅에 깊이 박혀 있다. 주환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발자국 중에는 없는 것이다.
‘이 정도로 발자국이 뚜렷하게 남을 정도면, 무게가 상당히 나가겠는데.’
최소한 몇 백 킬로는 될 것 같다. 산에서 그만큼 커다란 짐승이라고 하면, 곰이거나 마수일 것이다.
손으로 만져보니 발자국은 화석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겨울이라 땅이 딱딱해져 있는 걸 감안해도, 최근의 것은 아니다.
나뭇잎 덮인 주변을 조금 더 확인해보자, 동일한 발자국이 몇 개 더 찍혀 있었다.
발자국 위에 내려앉은 마른 나뭇잎과 흙, 쥐똥같은 것을 보면 최소한 몇 달 이상은 된 걸 거다. 적어도 십여 일 이내의 것은 아니었다.
주환은 근처까지 따라온 연화에게 시선을 주었다.
연화는 최근까지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길드 마스터가 소녀의 모습이었던 연화를 이 집에서 데려왔다고 들었다. 할아버지가 죽은 뒤 혼자 살고 있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부모님이 들인 양자였을 테지만.
“혹시 이곳에서 살 때 이 발자국의 주인을 본 적이 있니? 곰이나 마수 같은 거.”
주환이 묻자, 연화가 발자국을 내려다보더니 눈을 깜박거렸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잘 모르겠는 모양이다.
하지만 만나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이 발자국의 주인을 모르겠다는 표현 같다.
‘허긴.’
이 아이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 연화는 비록 소녀의 모습이라고 해도 상대의 크기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연화는 거대한 마수라도 거리낌 없이 사냥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 발자국을 남긴 놈 정도는 수도 없이 죽여왔던 게 아닐까.
‘정말, 하루라도 빨리 능력을 키워야지, 주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네.’
주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연화의 목덜미를 가볍게 쓸었다.
“집에 가서 리지와 도로시 곁에 있어 줘. 이 근처에 위험한 짐승이나 마수가 있을지 몰라.”
오즈가 집에 있지만, 만일 뭔가가 나타나면 그 아이만으로는 좀 불안하다. 오즈는 아직 위급한 순간에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정도까지 실력이 향상되지 않았다.
주환이 뭔가 요구한 게 기뻤던 모양이다. 연화가 가볍게 발을 굴렀다. 어리광처럼 주환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고 몇 번 비빈 뒤, 연화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토닥토닥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주환은 팔에 마력을 둘렀다.
마력이 팔 주위로 퍼지면서, 피부가 약간 저릿저릿 해졌다. 예전에는 마력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자주 사용하면서 지금은 그 흐름을 얼추 알 수 있게 되었다. 꼭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다.
주환은 피부를 타고 흐르는 마력을 공기 중에 약간 흘렸다. 가늘게 흐르는 바람을 따라 마력이 주변으로 흩어져 간다.
화살을 쏠 때처럼, 주환은 마력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 세계의 마법사는, 처음에는 남을 흉내 내 마법을 사용하지만, 점차 그것을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바꾸고 맞추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간다.
주환이 볼 때는 이거나 저거나 다 비슷한 것 같지만,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힘을 운용하는 방식이 다른 모양이다.
주환도 이것저것 마력을 운용해보며 스스로에게 잘 어울리는 방식을 찾고 있었다.
요즈음에는 공기 중에 마력을 띄워, 보이지 않는 곳을 탐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일상에서 수시로 마력을 운용해보고 있다.
이게 가능해지면 연화와 오즈의 본능에만 의지할 필요 없이, 척후병 역할을 마력이 대신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쉽지 않았다. 눈에 닿는 거리 정도라면 공기에 실린 마력을 느낄 수 있지만, 조금만 멀어져도 그 감각은 솜사탕처럼 허공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실체가 없는 건 아무래도 느끼기 어려운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주환은 공기만으로 탐지하는 건 포기하고, 바닥에 있는 흙을 약간 집었다.
마력을 담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비비자 흙이 고운 먼지처럼 잘게 부서진다.
주환은 소복이 쌓인 흙가루에 마력을 담은 뒤, 허공으로 손을 올렸다.
후, 불어 허공으로 날리자, 고운 흙먼지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공기에 실린 흙가루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은 채, 넘실넘실 바람을 타고 허공에 퍼져갔다.
‘확실히 작은 거라도 실체가 있으면 쉽구나.’
굳이 마력만으로 뭔가를 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적은 마력으로 마법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편의 효율이 좋다.
‘어차피 이 세계의 마법은 물체에 부여하는 식으로 발현되는 것 같고.’
하지만 먼지처럼 작은 물체에 마력을 담는 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것 같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채찍이나 화살, 검처럼 부피가 어느 정도 있는 물건을 사용해야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적어도 길드마스터와 길드장의 말로는 그렇다.
‘아, 됐다.’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그대로 마력이 날아갔다.
앞으로, 옆으로, 그리고 뒤로.
주환을 중심으로, 흙가루가 원을 그리면서 넓게 퍼진다.
그리고 마력에 닿는 물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는 것처럼, 마력이 물체에 닿으면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훈련이 부족해서인지, 마력에 닿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형체 있는 것에 닿았다는 사실은 아는데, 그게 토끼인지 고양이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크기가 다르다는 것과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동물인지, 아니면 나무나 바위처럼 체온 없이 고정된 상태의 물체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
마력이 닿은 형체에 따라 느낌이 다 달랐다. 나무, 풀, 새, 쥐, 고양이….
말로 설명하라고 하면 힘들지만, 아, 이건 동물이구나, 이건 바위구나, 하고 직감적으로 느낀다.
처음에는 신경을 전부 쏟아 마력을 펼쳤지만 일단 사방에 퍼진 뒤에는 힘을 조금 뺐다. 길을 걸으면서 사방을 확인하는 정도의 주의를 기울이면 된다.
사방에 펴진 마력은 일정 거리를 탐지하면서 그대로 주환을 따라왔다. 우산을 펼쳐 든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주환의 발소리가 퍼질 때마다 근처에 있는 작은 동물이 깜짝 놀라 도망쳤다. 쥐보다는 큰 것 같고, 어쩌면 족제비 같은 것일까. 괜히 놀라게 한 것 같아 약간 미안해졌다.
주환은 동물의 똥이나 발자국을 확인하면서 집을 중심으로 둥글게 퍼지며 걸었다.
가끔 나무에 작은 생채기를 내 표시를 한다.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산속에서는 자신이 어디까지 왔는지,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른다.
표시를 할 때에는 항상 비슷한 높이로, 기준을 정해 거기에 맞는 나무를 골랐다.
표식은 수평이 아닌 빗금 형식을 사용했다. 어디로 가는 건지, 방향을 표시하기 위해서다.
/ 표시는 왼쪽으로 가고 있다는 뜻, 그 반대의 빗금은 는 오른쪽을 향해 간다는 표시다. 그리고 X 표시는 이 근처, 혹은 너머가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큰 짐승의 발자국은 한 번 더 발견했지만, 마찬가지로 최근의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연화에게 사냥당했거나 영역을 옮긴 건지도 모르겠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도로시에게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주의를 해둬야겠구나. 아니, 이건 오즈에게 말해두어야 하나.’
어릴 때 산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도로시는 가끔 무심코 산에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 아이를 만난 마을의 산에서 살 때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 산을 겁내지 않는 건 아닌데, 갑자기 나무나 수풀을 보고 달려가곤 했다.
왜 그런 곳에 가는지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대답하려고 하지 않았다. 리지가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입을 꼭 다물고 고개만 흔들었다.
‘이곳은 다른 산보다 위험하다고 하니, 정말로 조심해야겠네.’
지금은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지만, 혹시 또 모른다.
몇 시간 동안 산을 헤집으며 돌아다녔지만, 큰 발자국을 남긴 짐승을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이랄까.
가끔 기묘한 모양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을 보았다.
무덤에서 가까운 곳에 더 많이 있었는데, 덩굴 중간중간에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말린 나무줄기가 매달리듯 달려 있었다.
‘이상하게 생겼네.’
문득 그 동그란 나무줄기가 젠탱글 무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글동글한 그림으로 나무를 장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수가 사는 산이라 하더니, 덩굴까지 이상하게 생긴 것 같다.
주환은 토끼똥이 있는 길목에 덫을 설치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다행히 도착한 다음날, 화덕 위의 천장 구멍에는 우산처럼 나무 기둥을 세우고 가죽을 씌워 놓았다.
바람이 불 때 물방울이 조금 튀기는 했지만 빗줄기가 집 중앙으로 쏟아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지붕의 다른 곳이 샌다.
아직 자기 전이었던 도로시가 집안을 이쪽저쪽으로 뛰어다녔다. 아이 손에는 작은 나무통이 들려 있었다.
아이가 이쪽에 나무통을 놓아 물을 받고, 다시 저쪽으로 뛰었다. 물이 똑똑 떨어지는 곳에 나무통을 놓은 뒤, 머리에 두 손을 올려 비를 막으면서 외친다.
“아빠! 여기도 물이 내려요!”
리지도 밀가루와 음식이 젖지 않도록 뚜껑을 닫으며 돌아다녔다.
주환도 매트리스나 뚜껑 없는 통들을 비가 새지 않는 공간으로 옮겨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 맞지 않는 곳으로 짐을 이리저리 옮겨놓자,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난리통에 피난 온 것 같은 몰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음식이 젖지 않는 걸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침대처럼 커다란 물건은 어떻게 두어도 한쪽 구석은 비를 맞았다.
“하아.”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바닥 여기저기가 썩어 있어서 오래된 탓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빗물이 새기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주환은 무심코 천장을 올려다보고 중얼거렸다.
“대체 우리 부모님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던 거지?”
결국 그날 밤은 미리 구입해온 천막용 가죽으로, 집안에 간이 텐트를 만들었다.
지푸라기 매트리스를 깐 침대 위에 작은 텐트를 치고 모두 함께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잔다.
빗방울이 텐트 구석을 토독토독 칠 때마다, 도로시가 번쩍 눈을 뜨고 텐트를 보았다.
“왜 그러니, 도로시? 물이 샐까 봐 그래?”
리지가 묻자, 도로시가 누운 채 고개를 흔들어 젓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나잖아, 엄마. 집안인데 비가 와!”
“….”
캠핑하러 간 기분인가. 어쨌든 아이라도 즐거워하면 됐다.
아이를 가운데 끼고 반대편에 누워있던 리지가 킥킥거리고 웃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요. 집 안에 있는데 비가 와.”
“….”
왜인지 리지도 즐거운 모양이다. 리지가 아이의 몸 위로 팔을 뻗더니 주환의 손을 잡았다.
“이상하죠? 내일 바닥 닦을 걸 생각하면 한숨이 나올 것 같은데 재미있어요.”
풀 죽은 주환을 위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정말로 즐거워하는 것 같다.
“엄마, 신나지?”
“그래.”
아내와 아이가 킥킥거리고 웃는 소리를 들으며, 주환의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하지만 내일은 새벽이 되자마자 지붕부터 덧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