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0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09화(109/235)
#109 평범한 어느 새벽 날
#109 평범한 어느 새벽 날
새벽이 되자마자, 주환은 산에 설치한 토끼 덫을 보러 다녔다. 간밤에 비가 왔기 때문에 약간 걱정이었다. 잘못하면 올가미에 걸린 토끼가 그대로 체온이 낮아져 죽어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산속의 밤은 매우 춥다.
다행히 얼어죽은 토끼는 없었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산이라 그런지, 각기 다른 곳에 설치한 올가미에는 전부 토끼가 잡혀 있었다.
‘반 정도는 올가미가 차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렇게 모두 잡힐 줄이야.’
다만, 한 마리는 뭔가에게 먹힌 듯 몸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올가미를 풀지 못해 그 자리에서 먹어치운 모양이다. 살이 있는 부위는 대부분 먹어치우고, 남은 것은 뼈와 털 뿐이었다.
이렇게 지저분하게 뜯긴 놈은 털도 사용하지 못한다. 아깝지만 다 버리는 수밖에 없다.
주환은 올가미에 남은 토끼 사체를 빼내고 핏자국은 꼼꼼하게 흙으로 덮었다.
다음부터는 조금 더 멀리에 덫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집에서 가까운 장소는 아니지만, 이렇게 짐승이 많다면 조금 더 주의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무리 오즈와 연화가 있다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정말 여기는 먹을 게 풍부하구나.’
평지의 경우에는 이미 봄이 오기 시작했어도, 산은 아직 한겨울이다. 오두막 근처는 지대가 낮아 덜하지만, 조금만 숲으로 들어가도 이곳의 계절은 여전히 겨울이었다.
그런 한겨울 추위에서도 토끼가 이렇게 잡힌다면, 봄여름은 더 쉬울 것이다. 산에 자생하는 과실나무만 찾아도 굶어 죽지는 않을지 모른다.
‘오즈와 연화가 있으면 집은 안전할 테고….’
마수가 많아 평범한 사람은 살 수조차 없다는 이 산이, 어쩌면 주환에게는 무엇보다 쾌적한 환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주환 역시 마법에 점점 익숙해져, 지금은 어느 정도 컨트롤도 가능하다. 혼자라면 마수에게 당하지 않을 정도로는 강해진 느낌이 있었다. 적어도, 위험하면 도망칠 정도는 된다.
주환은 토끼 자루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캄캄한 자루 속에서 가만히 엎드려 있던 토끼들이 놀란 모양이다. 도망치려는 듯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토끼만 확인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직 아침 식사 전이었다.
주환은 흙먼지에 마력을 담아 주변에 흩뿌렸다. 원형으로 넓게 퍼진 마력으로 주변을 탐색하면서, 다시 집이 있는 방향으로 내려간다.
올라올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서서히 걸어가면서, 주환은 어제보다 조금 더 탐지 범위를 넓게 펼쳤다.
조금 더, 조금 더, 할 수 있는 한계까지 범위를 넓힌다.
일정 범위까지는 쉽지만,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신경을 훨씬 많이 써야 했다. 범위가 넓어질수록 거기에 필요한 집중력은 몇 배로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조금만 신경을 느슨하게 하면, 멀리 퍼져 있던 흙먼지는 금세 흩어져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면 탐색이 불가능해진다.
주환은 다시 흙을 주워 마력을 담았다.
벌써 다섯 번째다.
‘조금 더 편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네.’
주환은 흙먼지의 양을 조금 많게 잡아 사방에 날린 뒤, 다시 탐지 범위를 넓혔다.
걸어가는 방향으로 마력 탐지의 범위가 그를 따라서 이동한다.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른 건 없었다. 작은 동물, 나무, 돌 같은 걸 마력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끔 땅 밑에서 뭔가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두더지, 혹은 뱀일지도 모른다. 땅속에 있는 게 무엇인지는, 지상과 달리 대강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뭔가 살아있는 게 존재한다는 것만, 아주 가끔 느낄 수 있었다.
“….”
주환의 걸음이 문득 멈췄다.
마력이 탐지한 끄트머리,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게 있다.
아직 멀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보이지는 않는데 냄새가 풍겨 오는 것 같은 감각으로,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 있는 건지만 대강 알 수 있다.
그래도 작은 동물이 아니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거라면 이렇게 뚜렷하게 감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 큰 거다.
주환은 약간 긴장하여 걸음을 빨리했다. 괜찮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집에는 연화와 오즈가 있다. 그 아이들이 있는 한, 산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리지와 도로시에게 위험이 미칠 염려는 없었다. 괜찮다.
한참 걸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마력 탐지는 눈을 감고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다. 정확한 크기와 방향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조금 더 가까이 갈 필요가 있었다.
방향을 가늠하며, 산길을 이리저리 누빈다. 가끔 완전히 기척을 놓쳤다. 그러면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와 추적한다.
마력의 탐지 범위를 조금씩 이동해가면서 길을 진행하자, 마침내 그것들에 가까워졌다.
‘아, 닿았다!’
넓게 펼친 마력의 그물 끝에 그것이 들어왔다.
크다. 주환 정도 되는 크기, 어쩌면 그보다는 약간 작을까.
주환은 마력이 탐지한 것의 수를 세어갔다.
‘하나, 둘, 셋….’
늑대인지도 모른다. 이전에 만난 늑대는 사람만큼이나 컸다. 늑대는 무리를 짓는 동물이니 가능성이 있었다.
탐지한 것들의 속도는 느리다. 멈춰 서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던 주환은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짐승이 아니었다. 인간이다.
마력 탐지의 중간중간 무기질로 보이는 것이 함께 느껴졌다. 아마 칼이나 창 같은 걸 거다. 동물이 그런 걸 지니고 있을 리 없다.
인간이 이 산에 있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일곱 명.
‘대체 누가 이런 산에 들어온 거지?’
이곳은 마수의 숲이다. 그걸 잘 아는 사람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입을 덜기 위해서 노인이나 아이를 버리려는 자들이나, 혹은 정말 먹을 게 없을 때 목숨을 걸고 들어오는 사람이 간혹 있다고 들었다.
‘마수를 잡으러 들어온 건가?’
설마 병사들은 아닐 거고, 무기를 들고 있는 걸 보면 모험가일 가능성도 있었다. 마수 사냥꾼이 아닌 일반 모험가 중에도, 실력에 자신이 있으면 마수를 사냥하러 다니는 파티가 있는 모양이다.
“….”
그러고 보니, 길드에서도 혹시 일이 있으면 연락을 준다고 했었다.
오두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있는 걸 보면, 길드 사람일 가능성이 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주환은 산 밑을 향해 달려갔다.
* * * * * * * * * *
타이론 왕국에서는 여러 나라에서 도적질을 해 전쟁 자금을 조달해왔다.
그 일을 수행하는 책임자 급은 귀족이 많지만, 그 밑에 있는 자들은 거칠고 질 낮은 용병이나 평민 출신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타이론 왕국의 귀족이 대가를 나누기로 약속하고, 가족과 부하를 이끌고 도적 흉내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가 몸담은 조직은 귀족과 용병, 일반 병사가 뒤섞여 있었다.
대장이 상당한 실력을 지닌 바람 마법사였기 때문에 실적은 가장 좋은 편에 속했다.
일 년 정도만 더 이곳에서 일을 하고 나면 귀국할 예정이었다.
더러운 일을 맡은 대가로, 본국으로 돌아간 뒤의 영달은 약속되어 있었다.
지휘자급은 모두 나름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고, 용병과 평민 출신의 일반 대원들에게도 적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쓰디쓴 노력 끝의 달콤함이 약속되어 있었는데….
‘쥐새끼 같은 상인 놈.’
시모니 왕국의 상인단을 습격하다 대장이 불마법사에게 죽고, 물건 호송을 책임진 상인 앤리에게 배신당한 뒤부터 그들의 조직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아니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한동안 조용히 숨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변경백작의 토벌이 시작되었다. 숨어있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 근방의 영지를 다스리는 변경백작은 무관 타입의 귀족이다.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우는 마법사이기도 했다. 거칠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유능한 사냥개이기도 했다.
그의 도적단은 순식간에 변경백작의 부하에게 쫓겨 극한 상황에 몰렸다. 동료와 부하가 죽고, 부대장 자신은 소수의 부하를 이끌고 도망쳤다.
하지만 변경백작의 부하들이 집요하게 쫓아왔기 때문에 가도로는 다닐 수 없었다.
그들의 소식이 영지 전체에 닿았는지, 곳곳에서 검문이 행해지고, 뒤에서는 변경백작의 부하가 계속 쫓아왔다. 산이나 숲을 이용해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숲은 짐승과 마수의 세상이다. 가급적 얕은 숲으로만 이동했지만, 밤마다 몇 명씩 부하가 죽어갔다. 결국 남은 것은 자신을 포함해 일곱 명뿐이다. 모두 죽었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가면 무사히 본국에 도착할 수 있어.’
거리로 보면 아직도 멀지만, 이 방향으로는 크게 위험한 도시가 없다. 있어봐야 작은 마을이 대부분이었다.
부대장은 깊은 숨을 쉬었다. 가장 빠른 길은 숲을 가로지르는 거지만, 그에게 숲 속을 통과해서 갈 배짱은 없었다. 숲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할 생각이다.
하지만 이 정도 변방으로 오면 변경백작의 부하들도 계속해서 쫓지는 않는다. 고작 도주하는 몇 명을 쫓겠다고 병사를 움직일 여유는 그들에게도 없었다. 살아날 확률은 충분했다.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산에 근접해있는 마을을 습격해 배를 채우고, 여자를 부하들에게 안게 해 불만을 잠재우면 된다.
지금 남은 부하들은 모두 용병 출신이었다. 본래 도적이나 마찬가지였던 용병 출신은 살아남는 기술이 뛰어나다. 그들보다 실력 좋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용병들만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가끔 부대장인 그에게조차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놈들이지만, 자신에게는 그들의 무력이 필요하고, 용병들에게는 타이론에 갔을 때 보상을 보증해줄 수 있는 그가 필요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쳇, 뭐야, 여자가 한 명뿐이잖아.”
용병 한 명이 중얼거리더니 바닥에 가래를 뱉었다.
“그래도 먹을 건 제법 있어 보이는 걸. 조금 아까 창고문을 열 때 보니까 뭔가 잔뜩 쌓여 있더군.”
“지금 똥인지 오줌인지 가릴 때냐. 한 명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부하 용병들이 킬킬거리고 웃는다. 하지만 모두 목소리가 지쳐 있었다.
부대장은 지친 몸을 세우고 멀리 보이는 오두막집에 시선을 주었다.
작고 초라한 집 앞에서 여자가 뭔가를 빨고 있었다.
그 근처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왔다 갔다 한다. 여자의 일을 돕는 건지, 손에 작은 걸 들고 여자에게 갔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뛰어가곤 했다.
‘아무래도 좋아. 먹을 게 좀 있으면.’
너무 오래 굶었더니 여자 생각도 없다. 그저 뭔가 먹고 싶었다. 여자와 아이가 먹을 걸로 보일 정도였다. 지금이라면 사람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부대장, 갑시다.”
“이 집에는 남자도 없는 것 같아요. 뭐, 이런 숲 속의 촌놈 따위 있으나 마나지만.”
“좋아, 가자.”
부대장이 막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어디에선가 히이잉, 하고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뭐…?”
이런 곳에 웬 말 울음소리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우거진 나무 사이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헉!”
부대장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굉장히 큰 남자였다. 2미터 정도 되려나. 하지만 근육이 울룩불룩 붙은 덕분에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
하지만 부대장이 놀란 이유는 그 거한의 덩치 때문이 아니었다. 본 적이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저, 저, 저 남자!”
상인단 행렬에 있었던 불마법사다. 상인 앤리와 만날 때 모더니 도시에서 보았던, 바로 그 남자.
부대장은 물에 빠진 것처럼 손을 휘적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온몸으로 소름이 쫙 돌면서 다리에 힘이 약간 빠졌다.
“뭐야!”
“저 놈?”
부하들이 무기를 꼬나잡았다. 거한을 향해 겨눈다.
하지만 안 된다. 저놈한테 그런 무기는 통하지 않아.
저 남자가 뿜어내던 거대한 불덩이가 떠올랐다. 맙소사, 그런 게 날아오면 순식간에 통구이가 되어 죽을 거다.
부대장은 허둥지둥 몸을 돌렸다. 도망쳐야 한다. 부하들이 저 남자를 잠시 막고 있는 동안 도망쳐야 해.
부하들의 고함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몇 발자국 달리는데, 뭔가가 확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헉! 유니콘이다!”
하지만 그 뒤는 모르겠다. 진짜 유니콘이었는지, 부하들은 불덩이가 되어 죽었는지 어쨌는지.
부대장이 본 것은 허공으로 높이 들린, 매끈하고 하얀 말다리와 잘록하게 들어간 말의 배때기뿐이었다.
그걸 본 순간, 단단한 말발굽이 그의 얼굴을 강하게 내리쳤다. 부대장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면서 정신을 잃었다.
* * * * * * * * * *
도적이었던 것 같다. 주환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놈들은 마침 집을 향해 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고개를 돌려 집 쪽을 보자, 오즈가 마당과 나무가 있는 경계 부근에 서서 이쪽에 시선을 주고 있었다.
주환은 오즈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찾을 수 있었다. 작은 뿔토끼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수풀 사이에 있는 오즈의 몸은 쉽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도로시가 오즈 뒤쪽에서 엄마를 돕는다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놈들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더러운 소리를 지껄이며 욕보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연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금세 이유를 알았다. 하얀 뿔이 도적들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주환보다 먼저 이들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와 있었던 것 같다.
역시, 오즈와 연화가 있으면 집은 안전하다. 주환보다 훨씬 민감하게 주변의 기척을 눈치채고, 알아서 리지와 도로시를 지켜준다.
주환은 땅의 흙을 한 줌 집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뿌렸다. 동시에 손에서 마력을 낸다. 팔 전체에서 뿜어진 마력이 흙 알갱이를 알알이 잡으며 놈들을 감쌌다.
‘죽어 마땅한 놈들이다.’
주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여자를 겁탈하고 아이를 죽이고, 힘없는 인간을 괴롭히는 놈들이다. 죽어 마땅하다.
지금까지 여러 번 생각은 했지만 사용하지 못한 방법이 있었다. 공기의 움직임을 차단해, 호흡을 막음으로써 생물을 죽이는 것이다.
지난번 연화가 산적들을 마비시켰을 때 떠오른 생각이었다. 독으로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면, 마력으로 공기 흐름을 멈춰 죽일 수도 있는 게 아닐까라고.
그게 가능하다면 적이 수십, 수백 명이라도 한 번에 죽일 수 있다. 제대로 연습만 하면 수천 명도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마력을 약간 사용하는 것만으로 수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는 거다.
전쟁이 있는 나라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질 수만 있다면 가능한 방법은 많을수록 좋다.
다만, 그런 식으로 뭔가를 죽일 이유가 없었다. 사람을 상대로는 당연히 할 짓이 못 되고, 짐승을 상대로도 불쌍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놈들이라면 그렇게 죽어도 싸다.
주환은 허공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마력으로 놈들의 얼굴을 감쌌다. 물이 가득 찬 비닐봉지를 놈들의 머리에 씌우는 듯한 감각이다.
그리고 그대로 마력을 멈추었다. 빽빽하게 밀집된 마력이 뜨끈한 피부에 닿아 공기의 흐름을 완전히 막았다.
산적들이 숨을 들이마시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놈들의 얼굴이 금세 흙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잠시 뒤, 도적들은 흰자위를 보이며 하나씩 바닥에 쓰러졌다.
“….”
생각했던 방법은 확실히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맑은 것은 아니다. 찝찝한 감정만 남았다.
주환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들어 마력을 둘렀다. 가볍게 땅을 향해 몇 번 내리친다. 흙먼지와 함께 순식간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였다.
시체를 모두 바닥에 파묻은 뒤, 흙을 덮으면 끝이다.
가까이 온 연화의 등을 툭툭 쳐서 잘했다고 칭찬하자, 기쁜 듯 주환의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그리고 주환의 옷을 물어 끌어당기더니, 몸을 약간 굽혔다.
“네 등에 타라고?”
히이잉.
“안장도 없는….”
주환이 말하는데, 연화가 덥석 그의 팔을 물더니 훌쩍 위로 집어던지듯 올렸다. 거구의 몸이 의외로 쉽게 들린다. 짐을 끄는 것뿐 아니라, 연화는 턱도 강력한 것 같다. 힘이 장사다.
졸지에 유니콘 등에 올라타자, 연화가 가볍게 토닥토닥 걷기 시작했다. 흔들흔들, 높은 위에서 몸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의외로 이건 무섭다.
자기도 모르게 갈기를 꽉 잡자, 연화가 웃는 것처럼 갈기를 흔들며 히이잉 울음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안장을 만들거나 사놓아야 할 것 같다. 유니콘은 처녀 아니면 등에 태우지 않는다더니, 다 뻥인 모양이다.
집에 도착하자, 도로시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도로시도 연화 타고 싶은데.”
글쎄, 위험해서 안 된다. 아빠도 등에 탔다가 무서워 죽는 줄 알았으니까. 어쨌든, 역시 안장은 마련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찌꺼기가 남아있던 감정이 조금 사라져 있었다. 어쩌면 연화가 그래서 자신을 등에 태운 걸까.
힐끔 연화를 쳐다보자, 하얀 유니콘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으로 도로시의 머리카락을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도로시가 깔깔 웃는 소리 속에서, 리지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어서 오세요. 토끼는 많이 잡혔나요?”
“그래.”
자루를 내밀자, 리지가 기쁜 듯이 웃으며 받았다. 도로시가 침 투성이의 머리카락을 흔들며 달려와 자루에 머리를 디밀었다.
“토끼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도록 오즈에게 잘 지키게 하고 길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