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1화(11/235)
#011 사냥꾼의 작업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집이다.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기뻐해 줄까.’
현대 지구에서는 돈이 최고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 다달이 통장에 들어오는 숫자가 크면 클수록 좋다. 그 숫자가 클수록 가장 좋은 신랑감으로 대우받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지금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늑대도 상당한 재산이 될 거다.
가죽 처리야 제대로 하지 못해 질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최소한 집안의 깔개는 될 테고, 무엇보다 푸짐한 고기가 있었다. 먹을 게 장땡이지.
죽은 늑대가 말랐다고는 해도 덩치가 큰 만큼 먹을 곳은 많았다. 다리 하나만 해도 꽤나 크다.
‘늑대 고기가 맛은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늑대 고기도 먹을 수는 있을 거다.
최소한 리지와 도로시가 기뻐해 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물통을 지고 나갈 때보다는 확실하게 놀랄 거다. 어쩌면 존경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걸 노리는 건 아니야. 그냥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뿐이다.
기분 좋게 걸어가, 나무 사이로 집이 막 보였을 때였다. 갑작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것, 도로시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설마, 늑대가 여기까지 내려왔나. 아니면 멧돼지? 그게 아니면 뱀? 설마 독사 같은 거면…
물통을 내려놓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냥 뛰기 시작했다.
곧이어 리지가 집에서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이고, 그녀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주환은 여전히 뛰고 있다. 혹시 모르니까 뛰고는 있다. 늑대가 나타났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리지와 도로시는.
작은 몸이 구르는 것처럼 달려가 리지에게 달라붙는 것이 보였다. 도로시였다.
리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칼을 쥔 채 허공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주환이 있는 방향을 향해서다.
리지의 허리에 도로시가 달라붙은 채 뭔가를 소리치며 울고 있다.
두 사람의 주변 어디에도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주환은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리지와 도로시에게 겁을 주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이 우는 건 자신 때문이었다. 늑대 때문인가. 살아있는 게 아닌데, 죽은 건데, 그래도 무서웠을까.
‘두 사람 모두 여자니까.’
배려가 모자랐던 것 같다. 현대 지구였다면 당연히 여자들 앞에 이런 짐승의 사체는 가지고 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리지와 도로시가 늑대를 보고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주환은 땅에 물통과 늑대 사체를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피투성이다. 늑대의 피와 자신의 피가 뒤엉켜 전신이 붉었다. 군데군데 피가 아닌 액체도 있다. 아마도 늑대 머리 안에 있던 것. 이런 모습을 보여도 되는 걸까.
약간 주저하면서 몇 걸음 앞으로 가자, 갑자기 리지가 칼을 땅에 버리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주환! 주환!”
울면서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외쳤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엉거주춤 서 있는데, 리지가 달려오다가 앞으로 엎어졌다.
당황해서 그녀의 앞으로 달려가자, 리지가 비쩍 마른 팔을 뻗었다.
“주환!”
엉엉 울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아니, 늑대 때문인 게 분명하겠지. 설마 이 숲에서는 늑대를 죽이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래서 겁을 먹고 리지가 우는 건가. 늑대가 숲의 수호신이나 뭐 그런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높은 사람들만 잡을 수 있는 동물이었던가.
불안하다. 말만 통했다면 어떤 상황인지 금방 알았을 텐데, 의미를 알 수 없으니 괜히 안절부절못하기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리지가 팔의 상처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엉엉 울면서 정신없이 그의 얼굴과 목, 가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몸을 아래에서 위로, 다시 중간으로, 더듬어갔다.
어느새 도로시도 타박타박 옆으로 달려와 그의 어깨를 더듬었다. 리지의 흉내를 내는 것 같다.
도로시가 등으로 돌아가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고, 리지는 앞에서 온몸을 더듬어본다.
‘단순히 걱정을 한 건가.’
누군가가 자신을 걱정해 준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심장이 간질간질해졌다. 약간 부끄럽고, 조금 기쁘다. 얼굴이 자기도 모르게 붉어진 것 같았다.
‘그렇지. 물 길러 갔던 사람이 갑자기 늑대를 뒤집어쓰고 오면 당연히 놀라고 걱정하겠지.’
리지는 이 세계의 사람이니 늑대가 얼마나 위험한 동물인지는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거다.
실제로 갑자기 타오른 불길이 아니었다면 위험했다. 잘못하면 늑대한테 물려서 죽었을 수도 있고, 엄청나게 큰 상처를 입었을 수도 있다.
주환은 당황한 리지의 손목을 가만히 잡았다.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어. 아니, 다쳤지만 이제 괜찮아. 팔만 물렸을 뿐이니까. 괜찮아요. 나는 괜찮아.”
여러 번 괜찮다고 되풀이하자, 리지가 겨우 파닥거리던 손을 멈췄다. 피로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않고, 리지가 그의 목에 팔을 올려 끌어안고 울었다.
“####. ####.”
리지가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아마 다행이다 라든가 걱정했다 든가, 그런 말인 것 같다.
도로시도 리지를 흉내 낸 건지, 아니면 그냥 나온 행동인지, 주환의 목에 손을 뻗은 채 등에 엎어져 울고 있었다.
가끔 도로시가 손으로 탁탁 그의 등을 쳤다. 리지와 비슷한 발음으로 뭔가 말하는 걸 보면, 그녀를 따라 말하는 모양이다. 역시 이건 걱정했다는 말이겠지.
잠시 그렇게 셋이 엉겨 붙어 있다가 주환은 살짝 몸을 움직였다.
늑대를 처리해야 한다. 빨리 내장과 피를 빼지 않으면 모처럼 잡은 늑대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다. 피빼기를 게을리하면 누린내가 너무 심해져서 고기의 맛이 없어진다.
손으로 늑대를 가리키며 칼을 사용하는 시늉을 하자, 리지도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허둥지둥 일어났다.
주환이 늑대로 다가가 다시 어깨에 짊어지자, 리지가 그제야 놀란 듯 입을 크게 벌렸다. 늑대를 보고 다시 번갈아 주환을 보는 눈이 동그랗다.
도로시는 처음에는 약간 겁에 질린 눈으로 늑대를 보고 있었다.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이 침착하자 괜찮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리지와 주환의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타닥타닥 달려와 주환의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조금 멀찍이 원을 만들면서.
늑대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축 늘어져 있자, 드디어 겁이 사라진 모양이다. 바짝 다가왔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늑대를 올려다보면서 도로시가 뭔가 소리쳤다. 흥분해서 팔딱팔딱 뛴다.
역시, 남자는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아이의 부분이 남아있는 것 같다. 리지와 도로시가 놀라는 모습을 보자 저절로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런 자신이 조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들뜬 마음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었다.
후후후, 나 멋지지? 그런 마음에 입술이 살짝 올라갔다.
하지만 리지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녀는 주환의 팔에 난 상처를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눈물로 지저분해진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다시 울상이 되어 있었다.
“….”
앞으로 가급적이면 다치지 말아야겠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최대한 노력하자.
*
리지는 그를 데리고 숲 쪽으로 향했다. 오두막에서 약간 떨어진 곳, 숲에 가까운 자리에 움막 같은 것이 있었다. 나무로 지어졌는데, 그리 크지 않았다.
리지가 나무막대 걸쇠가 걸려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늑대를 가리키며 뭔가 써는 듯한 흉내를 낸다. 응, 무슨 뜻인지 알았어.
오두막이 사냥꾼의 집이라는 건 사냥감을 손질하는 공간도 있다는 말이다. 할아버지도 시골집 뒤편에 사체를 처리하는 작은 공간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주환이 문을 열자, 어둡고 좁은 공간 안에서 역한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오랫동안 건물 내부에 밴 짐승의 피 냄새다.
‘여기는 화장실인 줄 알았는데.’
처음 왔을 때도 이 건물을 보았지만 집에서 뚝 떨어져 있고, 또 조금 작아서 화장실이라고 생각했다.
화장실 하나는 엄청나게 크게 지었네, 그렇게 생각했어. 화장실 겸 거름을 모아두는 창고가 아닐까 싶었다.
한데 이게 화장실이 아니라면 대체 볼일 보는 곳은 어디야. 이 근처에는 달리 화장실 같은 건물이 없다.
‘설마 화장실이 없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어디에서.’
그렇게 생각하다 주환은 머리를 저었다. 이상한 장면까지 떠오를 것 같다. 멈추자.
주환은 안으로 들어가 나무로 된 덧창을 열었다. 환기를 위해서인지 오두막집보다 창이 크다.
커다란 창문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보이지 않던 구석까지 눈에 들어왔다. 군데군데 피나 내장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 자국이 묻어 있었다.
구석에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나무통이 하나 놓여 있다. 동물 사체를 해체하면서 나오는 부산물을 담아두는 곳인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벽 한쪽에는 칼이 두 개 걸려 있었다. 커다란 것과 작은 것이다.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자를 때 사용하는 것 같다. 지구의 것과 달리 칼이 굉장히 두껍다. 그냥 두꺼운 철 토막을 끝만 갈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 밑에는 나무를 잘라 책상처럼 만들어놓은 작업대가 있었다. 구석에는 작은 물통과 넓적한 돌이 놓여 있었다. 칼을 가는 데 사용하는 모양이다.
정면의 벽에는 벽걸이처럼 툭 튀어나온 나무 막대가 여러 개 있었다. 거기에 짐승의 털이나 고기를 거는 것 같다. 보관하는 장소는 아닌 것 같고 아마 작업할 때 사용하는 모양이다.
나머지 벽에는 어디에 사용하는지 잘 알 수 없는 물건과 눈에 익은 것이 함께 뒤섞여 걸려 있었다. 가죽 주머니, 이상하게 생긴 나무 막대기, 그물처럼 생긴 것, 밧줄, 올가미가 매달린 긴 막대기 등.
마을 사람들은 집에 있는 물건은 가져가면서 왜 여기에 있는 건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을까. 조금 이상하다.
어쩌면 미신 같은 게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냥꾼의 물건을 건드리면 저주받는다든가, 그런 거.
아니면 사냥꾼이 잡아오는 짐승을 주기적으로 마을 사람이 기르는 농작물과 교환하는 식으로 마을 경제가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마을에서 기르는 가축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고기는 정육점처럼 사냥꾼이 보충해 주는 거다. 그것도 아니면.
“….”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았을 거다. 그러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불안해할 필요도 없을 텐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딜 가도 언어와 문자를 모르면 사기당하기 딱 알맞다. 꼭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가급적 빨리 익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말이야 리지에게 배운다 해도 문자는 어디에 가야 배울 수 있을까. 보아하니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촌장은 알고 있으려나. 알고 있다 해도 가르쳐 주려고 할지 모르겠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은 특히 문자에 잘 맞는다. 마을에서 글자를 아는 사람이 촌장과 극소수의 몇 명 뿐이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르쳐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아.”
어쨌든 늑대 손질부터 하자. 내장부터 빼내야 한다. 지금은 그게 가장 급한 일이야. 서두르자.
꼼꼼히 작업실을 살펴본 주환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내장이나 피를 빼내기는 힘들 것 같다.
이전의 사냥꾼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몰라도 피가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그냥 통에 내장과 피를 받아 밖으로 내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거면 그냥 밖에서 하는 게 낫다.
게다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냄새가 너무 심했다. 세균도 우글우글할 것 같다. 뜨거운 물을 사용해서라도 소독하지 않으면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당분간은 문과 창을 열어서 햇빛 소독이나 해야겠다.
주환은 밖으로 나가 숲으로 향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문득 숲에 있는 나무에 눈이 갔다.
누군가가 굵은 나뭇가지에 밧줄을 묶어 길게 내려 놓았다. 나무 바로 옆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작업하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주환은 바로 뒤에 있는 리지를 보았다. 그녀는 어미닭 쫓아다니는 병아리처럼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다친 팔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숲은 위험하다.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늑대가 올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리지와 도로시가 밖에 있으면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이다.
주환은 손가락으로 오두막집을 가리켰다. 들어가 있으라고 여러 번 반복해서 손짓한다.
리지는 불안한 표정으로 주환의 얼굴을 보고, 다시 팔을 보고, 멀리 있는 늑대 사체를 번갈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저하며 집으로 향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아무래도 걱정해 주는 것 같다.
집 근처에 서 있던 도로시와 리지가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 주환은 밧줄이 걸린 나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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