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0)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10화(110/235)
#110 이상한 곳이 있다
#110 이상한 곳이 있다
며칠 동안 커다란 나무통에서 살던 토끼들의 이사가 끝났다.
한 번 해봤다고, 이번의 토끼우리는 조금 더 볼품 있게 만들어졌다.
경첩을 미리 사 왔기 때문에 문도 제대로 여닫을 수 있고, 땅을 파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나무도 깊이 박았다.
세상만사, 뭐든 하면 느는 법이다. 자신이 만들어놓고도 왠지 토끼우리가 멋있어 보여, 상당히 뿌듯해졌다. 이 정도라면 집도 한 채 뚝딱일 것 같다.
하지만 그 외에도 할 일은 넘치도록 많았다. 주환은 물론 리지와 도로시까지, 산으로 들어온 이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하루가 지나갔다.
비 새는 지붕을 고치고, 나무 벽의 구멍 난 곳은 나무를 덧대어 막는다.
주환이 그런 일을 할 때마다, 리지가 지붕에 얹을 천막을 만들거나, 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커튼처럼 원단을 자르고 이어 붙여 벽에 걸었다.
도로시는 엄마 아빠가 일할 때마다 쫓아다니며 심부름을 한다. 의외로 이것저것 아이가 하는 일이 많았다. 싫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도 일하는 게 뿌듯했는지 군소리 하나 없었다.
대신 일 하나 끝날 때마다 오즈와 연화에게 달려가 “도로시는 너무 힘들어”라며 푸념을 가장한 자랑을 해댔다.
오즈와 연화도 매일매일 아이 자랑에 시달리느라 편안하지는 않았을 거다.
집 주변의 나무는 매일 조금씩 베어내 장작과 새 창고를 만들 용도로 구분해 쪼개 두었다. 창고를 하든 장작으로 사용하든, 어쨌든 일정 기간은 말려두어야 한다.
원래 있던 창고는 그다지 크지 않다. 이것저것 비축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창고가 필요했다. 아직 손을 대지는 못했지만 목재가 얼추 모이면 시작할 예정이다.
집도 더 넓히고 싶지만, 그쪽은 봄이 되어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시기에 벽을 허물면 그야말로 실내는 시베리아 벌판이 되어, 추위로 얼어 죽고 말 거다. 지금은 부지런히 증축 재료를 모아두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집을 고쳐가면서 새로 알게 된 것도 있었다. 아버지는 처음에 이 오두막에 아궁이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진흙을 두텁게 올려 집 한쪽 밑부분에 두려고 했던 흔적이 있었다.
근처에 얇은 돌도 몇 장 있는 걸 보면, 집의 일부분을 구들처럼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두막 하나 만드는 것도 힘겨운 사람이 구들을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구들의 구조 자체를 잘 몰랐을 수도 있다.
그냥 아궁이만 어찌어찌 넣어 구들이나 벽난로처럼 만들어보려고 했던 거라면, 실패해서 다행이다. 아버지 솜씨로는 집이 홀랑 타버렸을 것 같다.
“….”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면, 동트기 직전에 리지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한다.
주환은 밀가루와 소금, 약간의 말린 야채를 넣어 만든 수프를 떠먹으면서 물끄러미 리지를 보았다.
모든 것이 깨어나기 전의 새벽녘에는 리지가 더욱 하얗고 가녀리게 보인다. 마치 요정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그냥. 예뻐서. 요정 같다고 생각했어.”
“….”
리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이 시간이 주환에게는 굉장히 즐겁다. 달콤한 밤도 시끄러운 낮도 좋지만, 아이가 잠든 모습을 보며 둘이 앉아 보내는 새벽의 고요함은 왠지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이 세상에 자신과 리지, 둘만 존재하는 것 같다.
새빨개진 리지의 얼굴을 보면서, 주환은 빙그레 웃었다.
‘아, 좋다.’
못 견디게, 정말 좋다.
식사를 마친 뒤, 주환은 그리 두껍지 않은 옷에 조끼를 입고, 활과 화살을 챙겼다. 도끼와 작은 칼은 리지가 만들어준 혁대에 단단히 매달려 있었다. 그대로 그걸 허리춤에 차 단단히 묶으면 끝이다.
리지가 허브 우린 물을 가죽 수통에 넣어 건네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불빛 속에서 리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한다. 작은 입술이 꼼질 움직이더니, 가느다란 소리를 뽑아냈다.
“조심하세요.”
“그래, 다녀올게.”
문 앞에서 가볍게 키스를 하고 주환은 집을 나왔다.
점심 무렵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도시락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리지,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사냥할 때 보았던 일, 혹은 집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뒤에는 물을 길어오고, 집을 수선하고, 나무를 베거나, 살면서 필요한 일들을 했다.
밤이 되어 아이가 잠들면, 가볍게 와인을 한잔하면서 부부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것이 하루의 끝, 다시 잠들었다 깨어나면 새벽이 된다.
그것이 이 산에 온 뒤 거의 매일 이어지는 일상이었다. 단조롭지만 평화롭고 온화한, 마음이 편해지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주환은 오두막에서 산으로 들어가다, 문득 집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작은 산길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 보니 저 도로도 봄이 오기 전에 조금 넓히는 게 좋을 것이다. 지금의 마차는 정말 빠듯하게 통과하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수풀이 길을 막을 것 같다.
바깥은 오랜 전쟁의 여파와 새로운 우려로 여기저기 난리인데, 이 산속은 마치 따로 뚝 떼어진 세상처럼 고요한 느낌이었다. 마수가 사는 숲이라 사람들도 거의 오지 않으니, 전쟁이 일어나도 어쩌면 이곳만은 지금처럼 계속 조용하게 지나가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수풀 때문에 도로가 조금만 막혀도, 밖에서는 이쪽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숨겨진다. 저 좁은 길이 마치 이곳과 바깥을 가르는 신비의 게이트처럼 느껴졌다.
“….”
어느 정도의 물품만 있으면 자급자족이 가능한 산속 생활, 수백의 군인보다 강한 연화와 오즈까지 있다. 이곳이 군대가 지키는 바깥의 큰 도시보다 훨씬 안전하고 풍족한 셈이다.
오즈도 조금씩 나름의 훈련을 하고 있으니 점점 강해질 테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계절이 되면 과일을 말리고 벌통에서 꿀을 모을 수 있다. 소금만 충분히 비축해두면, 정말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이곳과 바깥세상은 상관없을지 모른다.
‘조금 더 깊은 산속에 비상용 오두막을 하나 짓고, 동굴을 몇 개 찾아 음식을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하면….’
이기적인 생각이 조금씩 자라 구체적으로 증식해갔다.
인간은 자신에게 소중한 게 생기고 행복해지면, 타인에게 너그럽고 인격적인 사람이 되는 대신 편협하고 이기적이 되는 모양이다.
아니면 자신만 그렇게 변하는 건가. 그나마 심장 한 귀퉁이에 걸려 있던 인류애 따위는 산타한테나 줘 버리고 온 것 같다.
주환은 쓰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숲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나무에 새겨둔 표식을 확인하고 다시 걷는다.
집 주변을 탐색하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조금씩 주위를 넓히면서, 달팽이처럼 서서히 확장해간다.
어제는 대나무가 자라는 지역도 발견했다. 화살이 거의 떨어져서 약간 걱정이었는데 다행이었다.
불에 살짝 그을린 뒤 끝만 뾰족하게 만들어도 화살로 사용할 수 있는 대나무는, 현재 주환이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바람 마력을 다루는 일은, 불과 달리 신경을 세심하게 분산해야 해서 평상시와 다른 종류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마력 탐지를 하면서 한 번 요령을 잡으면 숙달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균형을 잡고 굴러가기 시작하면 더 이상은 옆으로 넘어질까 신경 쓰이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활이 없어도 근거리라면 화살을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칼이나 도끼보다 바람 마력을 이용한 화살 쪽이 훨씬 유용할지도 모른다.
주환은 자신이 대강 깎아 만든 대나무 화살을 두 개 들어 마력을 담았다. 아직 날개도 붙이지 않았다. 단순히 표면을 다듬고 끝을 뾰족하게만 만든 것이다.
그 화살에 바람을 둘러, 그대로 날린다.
두 대의 화살은 눈으로 보일 만큼 서서히 날다, 주환이 더욱 힘을 담자 마지막에 속도를 내며 조금 떨어진 나무에 박혔다.
가까이 가서 보면, 쇠촉도 없는 대나무 화살이 절반 가까이 나무에 들어가 있었다. 손으로 당겨도 빠지지 않는다. 마력을 담은 바람이 대나무 표면을 감싼 덕분에, 화살에는 상처하나 나있지 않았다.
주환의 얼굴에 히죽 미소가 떠올랐다. 아직은 최대 서너 개가 한계지만, 조금 더 연습하면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화살의 개수는 늘어날 것이다.
마을에 살 때는 마력을 흩뿌리고 연습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혹시라도 실수하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위축되었다. 이곳은 사람이나 건물 상할 염려 없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실력은 하루가 멀다 하게 쭉쭉 뻗어갔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자신도 머지않아 연화의 능력을 넘어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인간이던 자신이 자꾸만 다른 존재처럼 달라진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
가끔 바닥을 확인하며 걷던 주환의 걸음이 멈췄다.
처음 집 근처에서 발견했던 커다란 발자국이 다시 보였다.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니 가장자리가 부스러졌다. 먼저와 달리 최근의 것이라는 뜻이다.
주환은 손에 화살을 몇 개 들고 주변을 살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시 발자국을 찾았다. 그 주변을 샅샅이 살피다 보니 얼마 안 된 배설물이 보였다. 처음 보는 형태지만, 상당히 큰 걸 보면 아마 발자국 주인의 배설물일 거다.
주환은 다른 곳의 탐색을 일단 멈추고 발자국의 주인을 추적하기로 했다.
영역을 갖는 육식 동물은 생각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오가며 먹이를 잡는다. 이 짐승이 어떤 건지는 몰라도, 배설물을 보면 육식동물이다. 냄새가 상당히 독했다.
덩치가 크면 클수록 먹이도 많이 필요하다. 큰 동물일수록 더 넓은 영역을 필요로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녀석의 먹이 영역에는 분명히 오두막집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발자국이 집 근처에 있었던 것을 보면 확실하다. 최소한 몇 달 전까지는 그 집에도 오간 적이 있다.
‘반드시 잡아야 해.’
마력을 최대한 사방으로 펼쳐 세밀하게 탐색을 해나간다. 커다란 동물은 근처에 없었다.
녀석이 낙엽을 밟고 지나갔는지 몇 군데, 나뭇잎이 눌리고 흩어진 자리가 있었다.
발자국을 찾아내고, 놓치면 그 주변을 뒤진다. 추적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주환은 조금 이상한 것을 알게 되었다. 발자국을 추적하며 숲 깊숙이 들어갈수록 주변 나무의 구성이 달라졌다.
주환이 무슨 나무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솔직히 나무의 종류는 은행나무 소나무가 아닌 이상 거의 구분하지 못했다. 과실나무도 열매를 봐야만 안다. 그는 벚꽃나무와 매화나무를 구별할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열대 나무가 대략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열대 나무가 한겨울이 되면 모든 것이 얼어붙는 숲에 사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주환은 주변의 나무를 둘러보았다. 야자나무처럼 생긴 것이 몇 그루, 다른 나무에 섞여서 하늘 높이 자라 있었다. 기후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다른 곳과 온도는 비슷했다.
하지만 땅에 손을 대보면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무뿐 아니라 토양까지 이상한 것이다.
‘나무 위로 올라가 볼까.’
나무를 타는 건 자신 없지만, 이 주변이 어떤지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서 보는 게 최선이다.
‘바람을 이용하면 가능할지도….’
주환은 예전에 붉은검 파티가 나무에 오르던 모습을 떠올리고 허리춤에 둘둘 말아 묶어 두었던 밧줄을 풀었다.
밧줄을 나무에 묶어 지지대로 사용하면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무게는 바람 마법을 사용하면 어느 정도 가볍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섬주섬 준비를 하고 가장 키 큰 나무를 껴안는 것처럼 마주한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주환은 작은 칼에 마력을 휘감았다. 그것으로 나무에 흠집을 내 발 디딜 곳을 만들면서 조금씩 올라간다.
한 번 올라갈 때마다 상체를 뒤로 기울여, 나무와 자신을 느슨하게 묶고 있는 밧줄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아직 나무의 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이마에 구슬땀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오래되지는 않았을 텐데, 벌써 몇 시간은 흐른 것 같다. 긴장 때문에 손에 축축한 땀이 생겼다.
한참 올라가자, 주변 나무가 밑으로 보였다. 아직 더 올라가야 꼭대기다. 하지만 바닥을 내려다보니 어질어질해졌다. 더 이상 올라가는 건 무리다. 여기에서 떨어지면 리지와 도로시는 어쩌나 생각하니 겁이 더럭 났다.
주환은 바람을 이용해 몸의 무게를 최대한 가볍게 하면서 주변에 시선을 돌렸다. 멀리까지, 마른 겨울나무가 숲의 경사를 따라 완만하게 펼쳐져 있다.
대부분은 평범한 겨울 숲의 풍경이었다. 한국의 가파른 산과 달리, 이곳은 얕은 언덕 정도의 경사로 거대한 산과 구릉이 이어져 있었다. 어떤 지점은 그냥 평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한 지점을 중심으로, 열대나무가 주변을 향해 펼쳐져 있었다. 이곳처럼 다른 나무 중간에 몇 그루 있는 게 아니다. 그 지점은 온통 열대 나무로 가득했다.
‘저기에 뭔가 있는 건가.’
열대나무가 있는 지점은 굉장히 떨어져 있었다. 한 번에 가보기에는 너무 멀다. 이 광대한 숲에서, 저곳은 여기와 큰 상관없는 다른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할 정도로 멀었다.
‘그런데도 이런 장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인데….’
왠지 찜찜하다.
주환은 잠시 그 장소를 쳐다보다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나무에서 사선으로 떨어진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굴이다. 입구에 나뭇가지 같은 게 조금 쌓여 있었다. 그리고 나무에 가려진 뭔가가 그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