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12)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12화(112/235)
#112 어머니 아버지와 관계있는 거야?
#112 어머니 아버지와 관계있는 거야?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주환은 집 주변으로 가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높이 자란 나무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
하늘 높이 자란 나무 끄트머리를 올려다보면, 젠탱글 무늬의 덩굴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저 높은 시야 끄트머리에 동글동글, 끝을 감아 달팽이 모습을 한 덩굴이 마치 열매처럼 나무 여기저기에 달려 있다.
‘설마, 사람이 평상시에는 고개를 높이 쳐들지 않는 걸 알아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니겠지.’
포식자의 눈을 피하거나 벌,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해 식물도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나무에 기생해서 그 영양분을 빼앗아 먹고사는 식물도 있다고 한다. 기생 식물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 식물인데도 참 교활하게 산다고 생각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식물이 다양하게 주변 상황을 고려해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 혹은 짐승의 눈을 피해 높은 곳에서 자라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놈들도 살아있다는 건가.’
식물도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걸 가끔 잊어버린다. 그냥 열매를 맺고 씨앗을 뿌리는 무생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 역시 이놈들도 살아 움직이고, 생존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생각하는 거지.
숲길을 걸어가던 중, 동그랗게 말린 덩굴 한 개가 몸에 스쳤다. 주환은 무심코 걸음을 멈췄다.
자신과 접촉했던 젠탱글 덩굴을 바라본다.
왠지 느낌이 묘해서 손을 대봤지만, 조금 전 스칠 때 느꼈던 감각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착각이었나.’
왠지 덩굴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때, 집 쪽에서 리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환! 주환! 거기에 있나요?”
“그래. 리지.”
주환은 홱 몸을 돌려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달려가자, 마당에서 벗어나 숲길로 약간 들어와 있는 리지가 보였다. 초조한 모습으로,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야?”
깜짝 놀라 물어보자, 리지가 손을 뻗어 주환의 옷을 꽉 잡았다. 리지의 눈동자에 금세 눈물이 차오른다. 그렁그렁한 눈물에 잠겨, 리지의 예쁜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 오지 않아서…계속 기다리는데 오지 않고…그래도 계속 기다리는데…연화가 왔다고….”
“…누가? 도로시는?”
리지의 곁에 연화는 없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꼬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마치 자신과는 관계없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는 신호는 어디에도 없다. 만일 도로시가 없어졌거나 위험했다면, 분명 연화의 모습도 저렇게 평화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로시는…자고 있어요. 요즘 피곤했으니까. 하지만….”
“….”
리지의 눈동자에 모여 있던 눈물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서…여기는 위험한 곳인데…지난번 산보다 훨씬 위험한데…항상 오던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서….”
중간중간 말이 멈췄다. 그의 옷자락을 꽉 잡은 리지의 손가락이 하얗다.
“미안, 리지. 걱정했구나. 정말 미안해. 우연히 마수를 보았기 때문에 그걸 추적하느라 늦었어.”
“…걱정했어요.”
“그래, 미안. 잘못했어, 리지.”
가만히 안아주자 겨우 안심이 된 모양이다. 리지의 몸에서 약간 힘이 빠졌다. 살짝 그에게 몸을 기댄다.
마수의 가죽과 고기를 처리하느라, 그의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마력을 이용해서 최대한 몸에서 떨어뜨린 채 작업했지만, 냄새가 전혀 배지 않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부패한 굴속 사체의 냄새도 아직 묻어 있었다. 부패한 것의 냄새는 다른 것보다 쉽게 배고 잘 빠지지 않는 것 같다.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가 신경 쓰여 리지를 떨어뜨리려 했지만, 리지는 여전히 옷자락을 꽉 쥔 상태였다.
너무 힘이 들어가 아플 것 같다. 주환은 그 손가락을 하나씩 잡아떼어냈다.
“리지, 나는 굉장히 강해졌어. 이제 예전처럼 상처 입을 일은 없을 거야. 웬만한 마수 가지고는 끄떡도 안 한다구.”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 가볍게 말해봤지만, 리지는 웃지도 않았다.
“알아요…알고 있어….”
그렇게 말한 뒤 다시 그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
마수의 숲이라 하여 사람도 들어오지 않는 두려운 곳. 한 번도 무서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쩌면 리지도 이 숲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있을 때는 웃고 있었지만, 주환이 혼자 그 숲에 들어간 뒤에는 계속 이렇게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다음부터는 제시간에 돌아오도록 노력할게.”
그렇게 말하고 등을 가볍게 두드리자, 리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늦어도 돼요. 그냥 안전히 돌아오기만 하면, 얼마든지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
왠지 그 말이 너무 불쌍하게 들렸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 주환은 리지의 손을 잡았다.
“들어가자. 봤으니 알겠지만 마수를 잡았어. 가죽 벗기는 건 다른 짐승하고 똑같은데, 벗기자마자 굉장히 뻣뻣해지는 것 같아. 서둘러 처리하지 않으면 지네 껍질처럼 되어버릴 거야.”
“후훗.”
겨우 리지가 웃는다. 작은 손으로 주환의 손가락을 꼭 잡으면서, 리지가 말했다.
“마수 가죽은 그렇대요. 그래서 일반 가죽보다 다루기 힘든 거죠. 조끼 갑옷으로 만들면 활도 잘 안 뚫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엄청 비싼 거래요.”
아, 그래서였구나.
주환은 히죽 웃었다.
가끔 등을 돌리고 있으면 리지가 가만히 눈으로 몸을 더듬는 게 느껴졌다. 가끔은 일부러인 것처럼 뒤에서 껴안기도 한다.
처음에는 드디어 자신과의 밤 생활에 익숙해져 음란의 눈이 뜬 건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금방 깨달았다. 눈이 너무 맑은 거야. 쾌락에 찌든 느낌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뭐, 그냥 자신의 바람이었을 뿐이라는 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실망 따위는 조금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왜 그런 건지는 몰랐는데, 가끔 몰래몰래 주환의 몸에 맞는 조끼를 바느질하는 것과 연결해보면….
‘그래, 그런 거겠지.’
주환에게 마수 가죽으로 만든 조끼를 만들어주고 싶은 것 같다. 어쩌면 깜짝 선물 같은 걸로.
‘빤한 살림살이잖아. 몰래 만든다 해도 다 알게 되는데.’
그걸 숨기려고 하는 아내가 귀여운 건, 아마 생각 탓이 아니라 진짜로 리지가 귀엽기 때문일 거다. 아내가 너무 귀여워서 큰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집에서만 지내고 싶어질 것 같다.
둘이 나란히 걸으면서 리지가 문득 마수 가죽에 시선을 주었다.
“한데 마수를 생포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의뢰가 훨씬 돈이 된다고.”
“아.”
주환은 어깨를 으쓱했다.
털 빠진 게 병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병든 곰이라 여겨 죽이려 했다. 아픈 개체를 숲에 남겨두면 병이 퍼질 수 있다.
하지만 마수라는 사실을 안 뒤에는 불쌍해졌다. 생포해서 누군가에게 파는 게 꺼려졌다.
팔린 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만일 새끼 잃은 어미 곰이라면 살아있는 동안 내내 제 아이를 그리워할 테니까.
오랫동안 자신을 그리워하며 살았던 어머니가 생각나서,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주환은 그렇게 말한 뒤 빙그레 웃었다.
리지는 아직 점심 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둘이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리지가 원하는 대로 커다란 나무통에 물을 가득 담았다.
마수 가죽을 담가 두기 위한 것이다.
그 안에 소금을 적당히 넣은 뒤, 리지가 주환을 보고 방긋 웃었다.
“그럼, 마력을 조금 부탁드릴게요.”
“내 마음대로 부어도 될까?”
“음, 그런 것 같아요. 그 장인의 말로는 마력수의 농도는 높을수록 좋다고 했거든요. 하지만 마력이 너무 많으면 흐물흐물해질지도 모르니까. 처음에는 이만큼?”
리지가 엄지와 검지를 벌려 한 뼘 정도를 표시했다.
“이만큼 정도만 부어주세요. 판매되는 마력수는 이것보다 훨씬 적게 들어 있대요. 가죽 장인이 굉장히 우울해했죠. 조금만 농도가 짙으면 더 좋은 가죽이 되는데 아깝다고.”
글쎄, 마력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측정되는 건 아닌데.
주환은 속으로 조금 웃었다. 마력을 느껴본 적이 없는 리지는 그게 무슨 소금이나 모레처럼 질량을 가늠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주환이 물통 앞에 서자, 리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해졌다.
마수 가죽의 처리도 일반 가죽과 큰 차이점은 없었다.
다만, 사용하는 물건이 조금 다르고, 가죽이 딱딱하고 질긴 편이라 힘이 더 들 뿐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보통 가죽은 가공하기 전에 소금물에 담가 두는데, 마수 가죽은 그 소금물에 마력수라는 걸 추가로 사용하는 식이다. 마력수는 색도, 냄새도 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 봐서는 일반 물과 똑같았다.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마력수는 물에 마력을 푼 거라고 들었다. 물에 마력이 녹이는 방법과 농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데, 질 좋은 마력수는 마법사들의 회복제로 사용된다.
길드 직원에게 물어보니, 주환처럼 마력량이 많은 경우엔 다른 물건에 하듯 그냥 마력을 부으면 된다고 했다.
마력이 적은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더 많이 녹아들도록 뭔가 처리하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방법을 사용할수록 질이 낮아진다고 한다.
마수 가죽에 사용하는 마력수는 가장 질이 낮은 것 중 하나다. 사용하고 남은 비명당근의 찌꺼기들을 모아 다시 우려낸 게 대부분이라고 들었다.
주환이 있으면 마력은 차고 넘치니, 굳이 돈 주고 그런 걸 살 필요도 없다.
뭔가 엄청난 장면을 기대하는 것 같은 리지의 시선을 받으면서, 주환은 물에 손을 담근 채 마력을 조금 풀었다. 물에 비해 마력이 많았던 건지, 통속에서 물이 약간 출렁거렸다.
주환이 손을 빼내자, 리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끝…난 건가요?”
“응.”
“…어…아무것도 안 변한 것 같은데.”
“리지, 마력은 그런 거야. 눈에 보이지 않고, 맛도, 냄새도 나지 않아. 가죽 장인이 사용하던 것도 그렇지 않았어? 뭔가 좀 달랐나?”
“…고약한 냄새가 났어요. 뭔가 썩은 것 같은? 오래된 똥 냄새 같은 거.”
“이런.”
아마 그건 굉장히 안 좋은 놈이었을 거다. 어쩌면 품질 낮은 마력수 중에서도 정말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것. 마력보다는 다른 물질이 더 많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주환이 웃자, 리지의 어깨가 약간 내려갔다. 조금 실망한 것 같다. 오즈와 연화의 뿔이 빛났을 때처럼, 뭔가 반짝거리는 걸 예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게 마력수라는 건 어떻게 알죠?”
리지가 물속에 손을 넣어 휘휘 저으며 물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이상한 모양이다.
“마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알 수 있어. 없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래요? 그러면 마력수라고 속아서 사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정말 곤란하겠지. 잘 모르는 종류라면 길드에서 판매하는 것 외에는 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많이 싸다면 특히 그럴 것이다. 어느 세계를 가도 사기꾼이라는 건 있는 법이니까.
리지는 꽃 주변을 돌아다니는 나비처럼 한동안 주환의 근처에서만 맴돌았다.
가죽을 소금 마력수에 담가 작업을 하다가도, 주환이 뒷마당으로 나가면 금세 쫓아온다. 마치 뭔가 할 일이 있었던 것처럼 주환 근처에서 꼬물꼬물 뭔가 하다 그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면 쫓아 들어왔다.
‘불안해서 그런가.’
그 모습이 왠지 죽은 곰마수의 모습과 겹쳐서, 주환은 한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리지는 가끔 마력수에 담가 둔 가죽을 막대기로 누르거나 뒤집었다. 마력이 마수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물에 젖은 가죽은 굉장히 무겁다. 단지 물통에 있는 가죽을 휘젓는 것도 여자의 힘으로는 버겁다.
작고 가느다란 몸으로 안간힘을 쓰는 게 안쓰러워 도와주려고 하자 리지가 그의 등을 밀었다.
“안 돼요, 주환. 이건 내 일이니까. 당신은 사냥하느라 힘들었으니 조금 쉬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껌딱지처럼 꼭 붙어 다니더니, 일이 생겨 그런지 아니면 이제 마음이 조금 안정된 건지, 떨어져도 괜찮은 모양이다.
주환은 연화를 불러 집 뒤편의 무덤으로 향했다. 연화가 꼬리를 조금 흔들며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왔다.
주변의 나무를 올려다보면, 달팽이 모습을 한 덩굴이 여기저기 있었다.
“오늘 돌아다니다 저런 모습의 덩굴이 여기저기에 있는 걸 발견했어. 연화야, 혹시 저 이상한 덩굴은 네가 만든 거니?”
히잉.
연화가 머리를 주환의 등에 쿡 갖다 댔다. 긴 뿔이 겨드랑이 옆으로 빠져 앞으로 불쑥 나왔다. 부드러운 흰 갈기가 얼굴로 흘러내려 주환의 몸을 건드렸다.
“….”
뭔가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모르겠다. 그렇다 아니다 정도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뜻이 아닌 것 같다.
“저 무늬는 알고 있니?”
히잉.
안다는 듯 머리를 약간 위아래로 흔든다.
“네가 만든 거야?”
히이잉.
이번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자신이 만들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라는 것 같기도 하다.
연화도 답답한 듯 제자리에서 약간 서성였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갑자기 무덤으로 향한다.
토독토독, 연화의 발소리가 바쁘다.
주환이 따라가자, 연화가 무덤 앞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연화가 앞발로 땅을 약간 긁었다.
“…뭐, 어머니 아버지와 관계있는 거야?”
히잉.
연화가 기쁘다는 듯이 갈기를 푸드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