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2)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22화(122/235)
#122 변경백작과 만나다
#122 변경백작과 만나다
마수가 출몰했다는 지역까지 가는 길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때로는 마차 바퀴가 진창에 빠져 꼼짝 못 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걸을 때마다 모험가들의 발이 푹푹 빠지는 곳도 있었다.
신발이 진창에 붙들릴 때마다, 맨땅을 걷는 것보다 조금씩 힘이 더 든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나쁜 의미로도 딱 그렇다. 안 그래도 하루 종일 걷느라 힘든 모험가들의 몸은 조금씩 지쳐갔다.
겨우 그런 길에서 멀어졌다 싶으니, 이제는 덜커덩덜커덩 심하게 마차가 흔들렸다.
‘진흙탕이 아니면 돌길인가. 정상적인 길은 언제 나오는 거야.’
토사가 흘러내린 적이 있었는지, 아니면 원래 이런 길인지, 바닥이 자갈길 같다. 벌써 반나절 이상 이런 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주환은 마차의 진동에 신경을 쓰면서 마부석 뒤의 틈으로 살짝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창문을 모두 닫아 햇빛이 적은 마차 안, 지푸라기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다행이다. 마차가 크게 덜컹거리는데 반해, 침대의 흔들림은 생각만큼 크지는 않은 모양이다. 리지와 도로시는 잘 자고 있었다.
‘많이 피곤한 것 같았는데 다행이네.’
두 사람이 마차 여행에 익숙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에는 항상 좋은 길을 선택해서 다녔다.
너무 힘들지 않도록 휴식시간도 많이 끼운 편이다.
지금처럼 진창에 바퀴가 빠지거나 울퉁불퉁한 길을 쉬지 않고 강행군한 적은 없었다.
결국, 처음 생글생글 웃으며 출발했던 두 사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마 멀미도 한몫했을 거다.
반나절도 안 되어 리지와 도로시는 침대에 눕다 토하다를 반복하더니 결국엔 잠이 들었다.
여러 번 치유 마법을 사용한 덕분에 멀미는 조금 덜한 것 같다.
하지만 베이고 찢어진 상처는 물론 화상까지 치료가 가능한 치유 마법이, 가장 가벼운 멀미에는 큰 효과가 없었다.
쉽게 없애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아주 약간 증상이 가벼워지는 정도에서 그쳤다.
‘멀미 정도는 우스울 줄 알았는데.’
마법은 어딘지 좀 이상하다.
아, 아닌가. 지구 의학도 어쩌면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감기처럼 간단한 것도 정복을 못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처방받는 약은 증상을 치료하는 거지, 감기 자체를 없애주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아직 감기를 정복하지 못했다. 누구나 흔하게 걸리는, 그토록 간단해 보이는 병인데도.
주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멀미와 감기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앞쪽에서 걷던 모험가들 사이에서 또 싸움이 난 것 같다.
“연화야, 조금 빨리 가자.”
주환은 고삐를 살짝 흔들어 신호를 보냈다. 연화가 톡톡톡 발소리를 내며 걷자, 마차가 크게 흔들리며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갔다.
“우오오오! 죽여버려!”
“우리 힘을 보여주라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는 것처럼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싸움만 벌어지면 생생해진다. 그렇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모습을 보면 꼭 엄살을 부린 것 같다.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모인 탓에, 모험가들 사이에는 어느새 출신 지역 별로 그룹이 생겨 있었다.
토벌대를 구성하기 위해 면담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조금이라도 서로 협력해서 일하기 좋은 방향으로 팀을 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지역을 위주로 나누었다.
그 결과 서로 친해지고 소속감이 강해진 것은 좋은데, 다른 문제가 생겼다. 사소한 일로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의 실력이 많이 차이 나는 경우에는 약한 쪽이 피해버린다. 싸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력이 비슷할 때는 무기부터 뽑았다. 마을의 거칠다는 남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모험가들은 핏기가 많은 것 같다.
당사자가 싸워도 주변에서 말려주면 괜찮을 텐데, 오히려 자기 지역 모험가를 응원하면서 때로는 판돈까지 걸기 때문에 골치다.
처음에는 주환도 좋게 해결하려고 말로 설득하거나 다독여 떼어냈다. 하지만 지금은….
주환은 소란스러운 사람들 근처로 가자 훌쩍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가 나타나자 모세의 바닷길처럼 길이 열렸다.
순식간에 싸우는 중심까지 사람들이 사라져 긴 통로가 생기고, 이제 막 무기를 휘두르는 모험가 세 명이 보였다. 둘이 한 명을 상대로 싸우는 것 같다.
주환은 뚜벅뚜벅 걸어갔다. 중심으로 다가가자 주먹을 움켜쥔다. 주환의 커다란 주먹 가장자리에 바람이 모였다.
싸우는 세 명이 주환을 보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놈을 향해 주먹이 날아갔다.
퍽, 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진다.
주환은 쓰러진 사람이 일어나는 것을 곁눈질로 보면서, 곧바로 다음 사람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이 닿기 전에 먼저 바람이 상대를 후려쳤다.
실제 주환의 주먹에 박혔다면 몰라도, 그저 세찬 바람이 때린 정도다. 힘도 조절했고, 죽을 염려는 없었다.
두 번째 모험가가 바닥에 고꾸라지는 걸 보고, 주환이 마지막 놈에게 몸을 돌렸다.
세 번째 모험가는 이미 바닥에 무기를 떨군 뒤였다. 두 손을 위로 쳐들고 소리쳤다.
“그만! 됐어요. 끝났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든 공평하게 해야죠. 내가 그토록 싸우지 말아 달라, 말아 달라, 부탁을 했는데도 무기까지 빼들었다면 세 명이 공동 책임인 겁니다.”
주환은 그렇게 말한 뒤 그대로 허공을 후려쳤다.
남자가 꾸엑,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올랐다.
“우오오오오오!”
“이겼다!”
“돈 내놔.”
“아, 젠장. 너무 빠르잖아.”
주환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 온 것까지 내기 대상에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만해요.”
주환이 얼굴을 찌푸리자, 모험가들이 와하하 웃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받아 챙기던 모험가가 씨익 웃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하지만 첫 번째 쓰러진 놈이 호언장담을 했거든요. 자기는 절대로 한 방에는 안 간다고.”
누군가가 뒤쪽에서 투덜거렸다.
“아, 정말. 이대로 나가다 보면 내기가 안 된다구. 모두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데 반대쪽에 걸 사람이 있겠어?”
하아, 정말이라고 한탄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주환은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처음에는 주환도 매번 싸우는 사람을 뜯어말렸다.
좋은 말로 달래고, 중간에 들어가서 중재를 하고, 왜 싸움이 시작되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끝도 없다. 이쪽에서 말리고 뒤돌아서면 저쪽에서 싸우고 있고, 방금 싸웠던 놈이 다시 싸운다.
그때마다 행렬을 멈추고 말리다가는 한 달이 되어도 현장에 도착하지 못한다.
결국 누군가가 싸우기만 하면 모두 두들겨 패게 되었다. 행렬을 멈추지 않아도 되고, 해놓고 보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말을 탄 길드 안내원이, 다시 마차에 오르는 주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고생이군요. 하지만 원래 모험가들이라는 게 저렇습니다. 거칠고 단순하고 향락적이죠. 순간순간 즐거운 게 있으면 즐기고 넘어갑니다. 모험가는 항상 죽음이 옆에 있기 때문에 즐거운 순간을 놓치는 법이 없죠.”
안내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뿔뿔이 흩어져 다시 길을 가는 모험가들을 힐끔 보았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첫 번째 토벌 기지에 도착해요.”
“마수는 발견했습니까?”
안내원은 가끔 길드에서 보낸 연락을 받고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소식이 왔을지도 모른다.
“아니요. 아직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토벌대가 흔적을 발견했다고 해요. 연락을 받은 지 좀 됐으니 지금쯤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안내원이 히죽 웃었다.
“길드에서는 다들 의외라고 난리인 모양입니다. 한 마리 늑대 같던 주환 씨가 이렇게 사람들을 잘 통솔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아니, 이 정도는 통솔이라고 할 것도 없다. 직장 생활 좀 해봤으면 이 정도는 누구나 가능한 거야. 딱히 직장까지 가지 않아도 중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아, 여기는 그런 게 없지. 집단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도 많은가.’
안내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수다쟁이가 부탁은 해놓고도 전전긍긍하고 있었어요. 주환 씨가 생긴 건 좀 험악해도 상당히 마음이 여린 편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뭐, 이런 건 안 어울리는 게 아닐까 하고.”
“….”
“붉은검 파티의 보고예요.”
첫 번째 지도역이라는 게 단순히 모험가로 살아가기 위한 안내를 맡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원조사원 역할도 하는 모양이다.
길드에서는 모험가에게 전에는 뭐 했는지, 성격은 어떤지 묻지 않는다. 현상금 걸린 범죄자라면 모를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였다.
대신 지도역을 붙여놓음으로써 대강의 성향을 파악하는 모양이다.
‘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는 역시 조직 입장에서 불안할 테니까.’
안내원이 힐끔 주환의 눈치를 살폈다.
“화내지 않나요?”
“안 내요.”
“하하. 역시 주환 씨는 조금 이상해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반응은 두 개죠. 하나는 펄펄 화내는 사람, 다른 하나는 수긍하는 사람.”
당연하다. 반응은 둘 밖에 없지.
“수긍하는 사람도 두 종류예요. 하나는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죠. 그런 보고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화도 안 나는 거예요. 모르니까. 반면에 무슨 뜻인지 이해한 사람은 그냥 포기한다는 느낌이에요. 세상이 다 그렇지 라는 느낌이랄까. 귀족한테 평민이 꼼짝 못 하는 거랑 비슷한 반응이죠.”
“….”
“하지만 주환 씨는 뭔가 느낌이 다릅니다. 뭐랄까. 그게 필요한 걸 안다고 해야 하나. 음, 그렇지, 꼭 길드마스터 같습니다.”
그야 직장 생활 몇 년 해보면 위에는 상사 있고, 밑으로는 부하가 생긴다. 당연히 위쪽 아래쪽 입장을 다 경험하면서 양쪽 모두 대강 알게 될 것이다.
잠시 동안 마차를 몰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안내인이 멀리에 시선을 주고 말했다.
“도착했네요. 저기가 첫 번째 토벌기지죠. 제일 처음에 마수가 발견된 곳입니다.”
주환은 멀리 보이는 마을을 보았다. 작고 초라한 곳이다. 나무 울타리가 있지만, 부서지고 무너진 곳이 많다. 다른 곳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 남자와 꼬마의 마을인가.’
길드로 가는 길에 만났던, 아들은 팔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하던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족 모두가 죽었다며 울고 있었던….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던 주환은 마을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눈길을 좁히고 바라보던 주환의 얼굴이 약간 찌푸러졌다. 토벌대인가 생각했었는데 아니다.
“병사들이군요.”
“어.”
안내인도 몰랐던 모양이다. 가만히 마을을 바라보던 안내인이 한숨을 쉬었다.
“변경백작께서 와계신 모양입니다.”
“변경백이면 대귀족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움직이는 것치고는 병사가 적은 것 같은데요.”
주환의 말에 안내원이 히죽 웃었다.
“이곳 영주님은 뼛속부터 군인이시죠. 과거에는 베른 변경백령 전체가 전쟁터였던 적도 몇 번 있었어요. 국경 쪽은 거의 항상 작은 전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영주님 일가는 대대로 그런 편입니다. 그래서 중앙 귀족처럼 줄줄이 수행원을 달고 다니지 않아요. 몇 명만 데리고 적병이나 마수를 추적하는 일도 가끔 있죠.”
“….”
토벌대 행렬이 점점 마을에 접근하자, 상대편에서도 이쪽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마을 안쪽에서 커다란 말을 탄 남자 한 명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머리는 허옇지만 상당히 건장한 사람이다.
남자 뒤쪽으로, 말 탄 병사 몇 명이 허둥지둥 따라왔다.
“어!”
안내원이 당황한 듯 한 마디 소리를 내더니 훌쩍 말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모험가들도 걸음을 멈추고 웅성거린다.
‘저 사람이 변경백작인 모양이구나.’
주환은 마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모험가한테 귀족이 함부로 손을 대지는 못한다고 해도 신분에 따른 차별은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 같다.
변경백작이 가까이 오자, 몇몇 모험가가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대부분의 모험가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다.
변경백작은 거칠게 말을 몰아 단숨에 주환의 앞까지 오더니 홱 말머리를 제쳤다.
말이 높은 울음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멈춘다. 훈련이 잘 된 것 같다.
주환의 머리 위에서 낮은 목소리가 내려왔다.
“그대가 치유마법사인가? 산타급 모험가라고?”
귀족은 나름대로의 작법이 있다고 들었다. 말할 때도 그렇다고 하던데, 이 변경 백작은 그런 걸 모두 날려 버리고 핵심만 말하는 성격인 모양이다. 그냥 정중한 말투를 사용하는 모험가 같다.
주환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예, 주환이라고 합니다.”
“그대, 내 밑에서 일할 생각은 없는가? 대우는 최고로 한다. 길드의 산타급은 특별한 거라고 알고 있어. 그만한 대우를 해주지.”
대답은 정해져 있다.
주환이 바라는 것은 부귀영화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보내는 단출한 생활이다.
매일 같은 일상을 보내고, 저녁에 가족이 모여 앉아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주환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