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3)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23화(123/235)
#123 베른 변경백의 이름
#123 베른 변경백의 이름
“변경백작님의 밑에서 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큰 영광일 것입니다. 이 땅을 수호하는 가문의 칼이 되는 것은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명예로운 일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일개 촌부, 명예로운 삶보다는 아내, 딸과 함께 조용히 사는 것이 소망입니다.”
“….”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변경백작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 마법으로 주위를 탐지하고 있기 때문에 변경백의 행동은 손에 잡히는 것처럼 알 수 있었다.
마력 탐지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섬세하게 알 수 있다. 변경백작이 무슨 행동을 하든 순식간에 안다.
그래서 지금 변경백작의 몸에 마력이 차올라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공격하기 직전일 것이다. 변경백작의 팔에 마력이 몰려 있었다.
강하다. 이 변경백작, 아마 강하다.
마력은 주환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자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혹은 자신만큼 마력이 많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마력과 다른 종류의 강함이 느껴졌다. 아마 전쟁터의 불사신 같은, 그런 느낌일 거다.
지구에서 조폭에 맞설 때 그런 느낌이 드는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서울 유흥가에 한 발을 담그고 살던 유명한 놈들의 두목이었다.
그자와 부딪쳤을 때 형편없이 두들겨 맞았다. 간신히 무승부로 끝냈지만, 아마 그 남자의 부하가 한 명이라도 참가했다면 지는 건 둘째치고 아마 죽었을 거다. 그 조폭 두목이 그걸 금지했기 때문에 겨우 살았다.
이 변경백작에게서는 그때의 강함이 느껴졌다. 마력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기백 때문일 거다. 압도적인 자신감이 이 변경백작의 뒤를 받치고 있다.
주환은 손끝, 어깨, 팔, 모든 곳에 마력을 담았다. 하지만 밖으로 새지 못하게 최대한 막는다.
아마 변경백은 주환이 마력을 모으고 있는 것조차 모를 거다. 아니, 느낌으로 알고 있으려나.
피부가 당장이라도 터져나갈 것처럼 저릿저릿 해졌다. 숨을 억제하면서, 조용히 호흡을 반복한다. 두근두근,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반응할 수 있다.’
오즈와 연화에게는 이미 여관에 있을 때 리지와 도로시를 부탁해 두었다.
오즈는 도로시의 곁에서, 연화는 리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다.
변경백작의 부하가 공격을 해도, 혹은 변경백작이 주환 아닌 리지와 도로시를 공격해도, 반드시 오즈와 연화가 반응해 준다. 주환은 그저 그들을 지키기 위해 제대로 싸우기만 하면 된다.
핏줄 뛰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주환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어느 순간, 팽팽하던 실이 끊어진 것처럼 변경백작의 몸이 움직였다.
변경백 손에 모여 있던 마력이 주환을 향해 쏘아졌다.
채찍 같은 바람이 주환의 머리를 덮친다.
주변에서 짧은 비명소리가 터지는 걸 들으며, 주환은 몸에 갇혀있던 마력을 풀었다. 움직이지 않은 채 마력이 주환의 몸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팡! 두 사람의 마력이 부딪치면서, 거대한 소리가 울렸다. 마력과 마력이 서로를 밀어낸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튀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아마 주변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충격을 받았을 거다.
‘하지만….’
주환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연화와 오즈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변경백에게 살의가 없었다는 뜻이다.
만일 변경백이 조금이라도 주환을 죽일 생각을 했다면 연화는 곧바로 변경백을 죽였다. 분명히 그랬을 거다. 지금도 연화는 똑바로 눈동자를 이쪽으로 향한 채 미동도 않고 있으니까.
그렇게 됐다면 아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살게 되었겠지. 다행이다.
‘하아, 정말 마음 놓았어.’
주환의 허리에서 약간 힘이 빠졌다.
그 순간, 변경백의 웃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변경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짧게 웃은 뒤 입을 열었다.
“마력만 있는 멍청이는 아닌 것 같군. 실력과 배짱은 물론이고, 참을성과 판단력도 있어. 자네는 좋은 군인이 됐을 걸세.”
변경백은 말머리를 돌리며 힐끔 연화를 보았다.
“모험가 길드에서 산타를 신봉하고 있는 건 유명한 일이지. 우리 영지에서는 길드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네. 산타 등급을 강제로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주환이 고개를 들자, 변경백이 작은 소리로 웃었다.
“앞으로 자네는 여러 귀족과 얽히게 될 걸세. 산타 등급이 나왔다는 사실은 내가 가장 먼저 알았지만, 슬슬 다른 곳에도 퍼질 시기야. 그렇게 되면 귀찮은 일이 많아질 테지. 그때는 내 이름을 대게나. 아무 대가나 압력 없이 우리 베른의 이름을 빌려 주지.”
뭐라고 대답할 겨를도 없이 변경백작은 떠나버렸다.
단순히 주환을 보기 위해서 왔던 모양이다. 변경백과 부하들은 마을에 들어가지 않은 채 거친 땅을 달려가 점점 멀어졌다.
‘뭐였던 거야.’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는데, 조금 기가 막혔다. 만일 연화나 오즈가 변경백작을 죽였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을 거다. 한데 단순히 주환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던 거라면….
‘저 변경백작, 바보 아닌가. ‘
안내원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크게 숨을 쉬었다.
“하아, 정말, 심장이 멈춰 버리는 줄 알았네. 물론 변경백작이 실력행사로 나올 만큼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놀랐어요.”
핼쑥한 얼굴로 안내원이 웃었다.
“베른 변경백령은 워낙 넓고 광대한 데다 마수가 많이 나와서 모험가 길드가 없으면 안 됩니다. 병사 만으로는 영지 경영 자체가 불가능해요. 게다가, 방금처럼 튀는 행동을 하긴 하지만, 변경백 님은 괜찮은 편이죠. 싹둑싹둑 사람 목을 잘 자르기는 하는데, 이유 없이 죽이지는 않거든요.”
“….”
그게 괜찮은 건가.
주환의 얼굴이 떨떠름했던 것 같다.
안내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귀족 중에는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영민을 죽이는 사람도 가끔 있어요. 영민은 굶주리는데 사치하려고 세금을 올리는 영주도 굉장히 많고요. 하지만 변경백님은 그런 형편없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군비 때문에 세금은 무겁지만, 자기 사치를 위해 영민을 괴롭히지는 않죠.”
“….”
“귀족 치고는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아랫사람은 고생하겠네요. 저렇게 훌쩍 훌쩍 쏘다니면.”
“하하. 뭐, 그렇죠. 게다가 성격도 조금 불같다고 합니다.”
“….”
전혀 괜찮은 사람처럼 들리지 않는다. 저 정도로 이런 평가가 나올 정도면 다른 귀족은 죄다 쓰레기인 모양이다.
“다른 영지로 갈 때는 조심해야겠군요.”
“하하. 그렇게 나쁜 귀족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안내인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글쎄, 주환은 웃음은커녕 미소도 나오지 않는다. 잘못해서 변경백을 죽였으면 인생, 그대로 나락 가는 거였다.
주환과 변경백작의 마력이 부딪친 여파로 나가떨어졌던 모험가 중 몇 명이 끙끙거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이미 벌떡 일어나 있는데, 몇 명은 넘어지면서 조금 다친 모양이다. 한 명은 허리를 다쳤는지 바닥에 누운 채 우는소리를 하고 있었다.
‘허리를 다쳤으면 중상이지.’
주환은 다른 사람 모르게 살짝 치유마법을 흘렸다. 아주 조금, 간신히 치료만 될 정도로.
하지만 허리를 다친 모험가는 계속해서 울상이다. 지금은 많이 아프지 않을 텐데, 원래 엄살이 심한 사람인 것 같다.
기가 막혀서 그 사람 얼굴을 바라보다, 주환은 문득 마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즈가 삐이, 삐이, 작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
* * * * * * * * * *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는지, 가슴에 손을 대자 파닥파닥 피부가 튀는 것 같다.
이곳으로 떠나기 전, 주환은 한 가지 약속을 하게 했다.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된다고, 리지와 도로시 두 사람 모두에게 맹세를 받았다.
절대로 오즈와 연화 곁에서 떠나지 말 것.
리지는 그 말속에 있는 뜻을 알고 있었다. 혹시 주환이 위험에 빠지더라도 무심코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마 자신이 죽으면 연화를 타고 도망가라는 뜻도 들어있었을 거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주환은 최악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리 정해놓는다. 왠지 그게 너무 슬프게 보였다. 마치 항상 비극만 겪어온 사람이 말하는 것 같잖아.
주환은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부모님이 묻혀 있는 곳도 지금까지 몰랐다고 하면, 어쩌면 굉장히 슬픈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 최악의 경우에도, 저 사람 눈앞에서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환이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더라도, 최소한 그에게 그런 슬픔을 주어선 안 된다고.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다. 변경백 때문에 주환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이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다.
다른 남자들과 얽혔을 때와는 다르다. 상대는 대귀족님인 거야. 아무리 주환이 강하더라도 죽고 만다.
그렇게 생각하자, 도움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도 아는데, 머리가 얼어버린 것 같다. 그저 주환 곁으로 가야 한다, 주환이 위험하다는 것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차 안에서 뛰쳐나가지 못했던 건, 갑자기 도로시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뛰어나갔을 거다. 그리고 주환과 변경백 사이에서 있었던 마력 폭발 때문에 다쳤을지도 모른다. 지금 주환 근처에 뒹굴고 있는 모험가들처럼.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지만 언제쯤 깨어나는 걸까. 아주 조금 걱정이 됐다. 많이는 아니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만 걱정이 됐다.
도로시를 이렇게 한 건 다름 아닌 연화였으니까.
아까 변경백과 주환이 만났을 때, 도로시도 리지와 거의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도로시는 산속에 있을 때 매일 오즈와 함께 자신들끼리 훈련을 했다. 도로시가 명령을 내리면 오즈가 뭔가를 구부리거나 부러뜨렸다. 처음에는 나뭇잎 같은 것뿐이었지만 나중에는 나뭇가지와 가느다란 쇠 같은 것도 구부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경험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주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에는 다른 모험가나 마을 사람들 때와는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도로시는 아빠가 위험하면 자신이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예전에는 무서워만 할 뿐이었지만, 이제 자신에게는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도로시는 겁도 없이 오즈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뛰어나가려고 했다. 오즈까지 나가려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연화가 도로시를 잠재웠다. 마차 안의 동향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는지, 아니면 오즈와 연화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그런 건 모르겠다. 마차 안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도로시 이마에 작게 빛나는 붉은 무늬가 뜬 걸 보면 분명 연화였을 거다. 오즈가 그걸 보고 깜짝 놀라더니, 나가려다 멈췄으니까.
리지는 도로시 가슴에 가만히 귀를 댔다. 콩닥콩닥, 작은 심장이 뛰고, 가끔 입에서는 잠꼬대까지 흘러나왔다.
어쩌면 행복한 꿈을 꾸는 걸까. 연화가 일부러 좋은 꿈을 꾸게끔 해준 건지도 모른다. 루돌프라는 건 정말 마법 같은 아이들인 모양이니까.
꿈틀 눈꺼풀 밑이 움직이더니 도로시가 꿈속에서 작게 웃었다.
그래, 그러니까 정말 걱정하지는 않지만.
옆에서 오즈가 삐이삐이 울었다. 걱정말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도 걱정이 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이를 쫓아서 뛰어나가려고 했던 걸 반성하는 건지.
괜찮아, 그렇게 오즈에게 말해준 뒤 다시 한번 아이 가슴에 귀를 갖다 대는데, 마차 문이 활짝 열렸다.
주환이 환한 빛을 등에 인 채 안을 바라보고 서 있다.
“무슨 일이야?”
주환의 눈이 도로시를 잡았다.
아, 걱정스러워하는구나.
리지는 재빨리 상황을 설명했다.
이마에 붉은 무늬가 떴어요, 잠꼬대도 하는 걸 보면 자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두서없는 설명을 하자, 주환이 재빨리 아이의 몸에 손을 댔다. 치유 마법을 사용해보는 모양이다.
잠시 뒤, 안심한 듯 숨을 토하고 주환이 중얼거렸다.
“정말, 말을 잘 듣는 건 좋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니.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잖아.”
연화 이야기겠지.
주환이 너무 평소처럼 말해서 약간 이상해 보였다.
변경백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다. 리지 같은 평민은 평생을 살아도 한 번 보지 못할 만큼, 구름 위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똑같이 눈코 입이 달리고 팔다리가 달려있지만, 전혀 다른 존재라는 느낌이다.
오래전, 아버지는 귀족님들이 싸는 똥에서는 금이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외진 곳에 자리한 마을에서는,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지만, 리지 역시 정말로 그 사람들의 몸에는 뭔가 자신과 다른 게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법사와 귀족이라는 건, 어디가 다른지 몰라도 어쨌든 자신 같은 평민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을 바로 앞에서 보고, 말을 하고, 심지어 마력까지 부딪치며 싸웠는데, 주환은 괜찮은 걸까?
리지의 얼굴이 너무 심각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주환이 문득 웃었다.
“리지, 얼굴이 무서워.”
“…괜찮아요?”
“괜찮아.”
주환은 그렇게 말한 뒤, 리지와 도로시를 안고 다시 작게 웃었다. 들릴락말락, 주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 조금 쫄았어.”
“…나도 엄청 무서웠어요.”
리지가 말하자, 주환이 부드러운 눈으로 도로시의 잠든 얼굴을 보았다.
“용감했던 건 도로시뿐이었나.”
정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빠를 구한다며 뛰쳐나가려 했던 도로시의 얼굴을 떠올리고, 리지는 주환의 가슴에 머리를 톡 기댔다.
“내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요.”
“하아, 나도.”
아이라는 건 아무리 정색하고 약속을 해도 뒤돌아서면 까먹는다. 이번에는 자신도 할 말은 없지만….
두 사람이 함께, 다시 한번 길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