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25)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25화(125/235)
#125 도로시는 왜 아빠 닮았어
#125 도로시는 왜 아빠 닮았어
이 세계의 생활은 동이 틀 때, 혹은 그 직전부터 시작된다.
하늘이 연한 먹물 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갈 무렵, 주환과 모험가들은 포획 준비를 시작했다.
기지에 있는 그물들을 모두 모아, 찢어진 곳은 없는지, 마수를 충분히 덮을 수 있는 크기인지 확인 해본다.
특히,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약해진 부위가 없는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썼다.
그물이 약하거나 끊어지면 기껏 마수를 잡아도 놓쳐버리고 만다.
주환과 모험가들은 일일이 그물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당겨보면서 놓치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해 나갔다.
그물 상태는 많이 나쁘지 않았지만 마수를 잡는 데는 충분치 않았다. 오래 사용했는지 여기저기가 약해져 있었다.
그런 그물은 리지가 있는 그룹으로 넘어갔다. 손질하는 팀이다.
그들은 표시된 부분에 그물을 잘라 더하고, 때로는 그물용 실로 구멍 난 부위를 바느질했다.
리지도 남자들 틈에 섞여 열심히 그물을 깁고 있었다.
도로시는 여기저기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심부름을 한다.
돗바늘처럼 생긴 커다란 바늘을 여러 개 들고 다니다 필요한 사람한테 갖다 주거나, 둘둘 말려 있는 그물용 실을 낑낑거리며 안고 다녔다.
그물 작업은 생각보다 꽤 시간이 걸렸다. 몇 시간 정도면 충분히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정오를 넘길 무렵에도 계속 이어졌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약간 아래로 이동할 무렵, 다른 토벌대에서 연락이 왔다.
머리 둘 달린 개 오르토스를 잡을 때 만났던 그웬의 그룹이 새끼 마수에 거의 근접한 모양이다.
주환은 모험가들을 이끌고 곧바로 그웬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
마수를 잡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교류와 끈끈한 동료의식이 필요하다. 최소한 손발이 맞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주환은 마차에 타는 대신 모험가들과 함께 걸었다.
가끔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오갔다.
여자가 있는 자리에서는 말 못 할 만큼 짙은 잠자리 농담이나, 다분히 허세 들어간 모험담도 이야기가 끊어질만하면 툭툭 나왔다.
이 세계나 지구나, 남자들이 모이면 하는 이야기들은 비슷한 모양이다. 길드 직원까지 그런 이야기에 한 마디씩 끼어드는 걸 보면 그런 것 같다. 딱히 모험가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라서인 거지.
길드 직원의 안내를 따라 한참을 가다 보니, 흙바닥에 우두커니 막대가 한 개 꽂혀 있었다. 색칠 같은 건 없었지만, 윗부분이 살짝 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안내원이 나무 막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는 저 나무 막대를 보면 알 수 있죠. 뒷사람을 위해서, 갈림길이나 헷갈릴 만한 지점이 나오면 꽂아두는 겁니다.”
하지만 표시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 짐이 된다. 그래서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를 사용하되 끝부분을 검게 태운다고 했다.
“사냥꾼들의 방식을 흉내 낸 거죠. 나무나 바위에 새기는 사냥꾼의 표식 대신 저렇게 하는 거예요.”
길드 안내원은 히죽 웃으며 막대기를 뽑아 숲에 휙 던졌다. 일단 찾아낸 뒤에는 아무나 쫓아오지 못하도록 버린다. 그게 원칙이라고 했다.
“모험가는 어쨌든 원한을 많이 사는 직업이니까요. 조심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특히나 여기는 국경이 가까워서 조심해야 하죠. 적병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안내원의 말을 들으며, 주환은 모험가들과 함께 조용히 걸었다.
모험가 길드는 틈만 나면 모험가들에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주입시키는 것 같다.
‘나도 길드 덕분에 이렇게 먹고사는 거고.’
생각해 보면 정말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게다가 길드에서는 모험가를 속이는 일도 없는 느낌이다. 다른 조직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어쩌면 모험가 길드의 진정한 목적은 조직의 번영이나 이익보다는 모험가들을 살리는 것이 아닐까.
처음 가입하는 사람에게 안내역을 붙여주고, 비명당근이나 마수 사체가 들어올 때마다 사소한 일이라도 시시때때로 교육하는 걸 보면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른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리는 세상 속에서, 이 모험가 길드만이 이타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안내원의 뒷모습을 보니 왠지 쑥스럽다. 주환은 공연히 눈 근처를 긁으며 먼 곳에 시선을 주었다.
베른의 영토는 국경에 가까울수록 사람 살기 어려운 곳이 많다. 땅덩어리가 워낙 광대하기 때문에 국경의 한쪽 끝은 끝없이 펼쳐진 숲과 산맥인데, 다른 쪽으로 가면 사막에 가까울 정도로 메마른 땅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런 말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주환 일행이 가는 길도 때로는 상당히 험난했다.
너른 흙길을 지나다 보면 다시 나무와 풀이 우거진 길이 나오고, 때로는 바닥이 거의 드러난 시냇물과 나란히 가게 되었다. 봄이 되면서 슬금슬금 기어 나온 풀들이 도로를 점령한 곳이 많았다.
리지는 어느새 마부보다도 마차를 잘 몰 정도로 능숙해졌지만, 때로는 그런 솜씨로도 쉽게 지나가지 못할 만큼 곤란한 길도 있었다.
어떤 때는 경사가 심해 가만히 서 있으면 뒤로 넘어갈 것 같은 길도 있다.
그럴 때마다 유니콘의 괴력은 큰 도움이 됐다. 늪이 나와도 그 엄청난 힘으로 마차를 끌고 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연화는 힘이 세다.
지켜보는 모험가들이 연화의 괴력을 목격할 때마다 손뼉을 쳤다. 물론 어김없이 내기도 오갔다.
거리 자체는 그리 멀지 않은데 길이 험한 곳이 가끔 나오기 때문에 하룻밤은 노숙을 해야 했다.
어디에선가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에는 달이, 눈앞에는 모닥불이 있다. 왠지 영화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 * * * * * * * * *
[너는 아빠를 닮았구나.]모험가 아저씨들 사이를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심부름을 하다 보면 열 사람 중 한 명은 꼭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기뻤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빠를 닮은 거야. 기쁘잖아.
하지만 저렇게 말한 뒤에는 꼭 한 마디를 더한다.
[엄마를 닮았으면 미인이 되었을 텐데, 하하하. 안됐지만, 그래도 실망하지 마라. 예쁜 것도 좋지만 튼튼한 게 장땡이지.]방금 전에도 그 소리를 들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아저씨들에게 소금을 조금씩 나눠주며 돌아다닐 때였다.
“….”
도로시는 고개를 숙였다.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어째서 도로시는 아빠를 닮았지? 엄마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엄청난 미인이 되었을 건데.
모닥불 앞을 터벅터벅 지나는데, 자신의 까만 그림자가 보였다.
커다랗다.
도로시보다 엄청 큰 것처럼 보였다.
“….”
진짜 아빠 같다. 미인 아니야.
팔을 들어 올리자, 그림자가 도로시를 따라 하는 것처럼 시커먼 팔을 움직였다. 왠지 겁이 더럭 났다.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머리 뒤쪽, 목부터 엉덩이까지 뭔가가 쭉 내려왔다. 차가운 뭔가가 몸속에서 뼈를 따라 달리는 것 같다.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로시는 저만치에 앉아있는 엄마와 아빠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바로 옆에서 쫓아온다.
머리 위에 있는 오즈의 그림자도 도로시를 쫓아오고 있었다.
“우왕!”
자기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깜짝 놀란 아빠가 도로시를 보았다. 아빠 얼굴이 오늘따라 커다랗게 보였다. 아빠는 팔도, 다리도 크고 굵다.
아빠만큼 키가 커지면 턱과 코밑에 수염이 까맣게 날지도 모른다. 아빠를 닮았으니까.
분명히 팔과 다리도 엄청나게 두꺼워질 거다. 아빠를 닮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더 서러워졌다.
도로시는 그림자한테 쫓기듯, 그림자와 함께 마구 달려가서 엄마 품에 와락 안겼다.
“엄마! 도로시는 왜 아빠 닮았어!”
* * * * * * * * * *
활짝 벌렸던 팔이 부끄럽다.
처음에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듯하던 도로시가 막판에 가서 리지의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인지 도로시는 자신이 아빠를 닮았다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엉엉 울면서, 도로시가 뒤죽박죽 뭔가 말하고 있다. 울음과 단어가 섞여서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가끔 들리는 단어를 조합해보면, 도로시에게는 수염과 두꺼운 팔다리가 날 모양이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지만 그림자가 쫓아오고 있다. 괴물이라는 건지, 아니면 아빠를 닮은 그림자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대체 무슨 뜻이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왜 도로시한테 수염과 두꺼운 팔다리가 나오는지, 들어도 모르겠어. 눈 뜬 채로 아이가 꿈이라도 꾼 건가.
“….”
리지가 아이 등을 토닥토닥하면서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눈썹은 찌푸리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웃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입술을 꽉 다물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라고 생각하지만 웃음이 터지는 걸 참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리지는 도로시의 말을 모두 알아들은 모양이다. 전후가 어찌 되는지, 왜 울고 있는지.
주환은 쪼그리고 앉아 도로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모자는 없는데 오즈가 그 위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도로시가 뛰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오즈도 왠지 대단해 보였다.
아이와 오즈를 함께 손바닥 안에 넣은 채 주환은 달래는 것처럼 말했다.
“도로시, 괜찮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울 것 없어. 분명히 괜찮을 거다.”
도로시가 눈물과 콧물로 엉망 된 얼굴을 들어 주환을 보더니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안 괜찮아…도로시는 수염 싫어…아빠는 좋은데…아빠 팔다리 나는 건 싫어…왜 도로시는 아빠를 닮은 거야…도로시도 미인 되고 싶은데….”
“….”
친부모가 아니라는 건 도로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왜인지 도로시는 자신이 주환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째서,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실제로는 전혀 안 닮았다. 동양인과 서양인이라 골격부터 다른 데다, 남자와 여자다. 닮은 구석이 있을 수 없지.
게다가 도로시는 귀여운 유형이었다. 얼굴 조형이 살짝 가운데로 몰려 있어서 오밀조밀하고 귀엽다.
리지가 러시아 인형이나 겨울 왕국의 엘사 같은 느낌이라면, 도로시는 아마 안나 타입일 것이다. 빨간 머리 앤 하고도 비슷한 것 같다. 주근깨는 없지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엘사와 안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리지와 도로시랑 비슷한 유형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는 거잖아.
나중에야 겨우 이야기를 뜯어 맞춰보고 도로시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알게 됐다.
“….”
도로시한테는 충격이었던 모양이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약간 기쁘다.
친 부모 자식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말이 나온 걸 거다. 만일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누구도 닮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어쨌든 친아빠와 딸처럼 보였다는 사실이 낯간지럽게 기뻤다.
그리고 딸이 아빠를 닮아도 남자처럼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아이한테 이해시킬 수 없어 약간 좌절했다.
“주환, 아이한테는 이게 아니면 저건 거예요. 검은 건 검은 거고 흰 건 흰 거죠. 아빠를 닮았는데도 여자로 예쁘다는 말은 도로시한테는 아직 이해가 되지 않아요.”
모 아니면 도라는 건가.
그날 저녁, 도로시는 거의 리지의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른 때라면 한 번 이상은 반드시 주환 팔에 매달려 흔들흔들 놀고, 캥거루처럼 안겨있곤 하는데, 가까이 오지 않는다.
약간 침울해진 주환에게 리지가 위로하듯 한 말이 오히려 치명타가 되었다.
“주환 곁에 있으면 더 닮을까 봐서 그러는 것 같아요. 하룻밤 지나면 다 잊어버리겠지요.”
“….”
도로시한테 아빠 닮았다고 한 놈, 다 나오라 그래. 일단 한 대씩 맞고 시작하자.
* * * * * * * * * *
다음 날, 두어 시간 정도 더 간 뒤에 그웬과 합류할 수 있었다.
그웬의 토벌대는 수가 적었다. 겨우 열 명 조금 넘는다. 제일 먼저 구성된 팀이기 때문에 모험가가 충분히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대신 그웬과 잭 외에도 마수 사냥꾼이 한 명 있었다. 일종의 소수 정예인 셈이다.
마수 사냥꾼은 주환보다 열 살 정도 위인 모양이다. 단단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웬하고는 아는 사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말이 거의 없다. 인사말조차 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특별히 주환 씨가 낯설어서라기보다는, 원래 과묵한 사람입니다.”
혹시나 기분 나쁠까 싶어서 그웬이 살짝 보충 설명을 한다.
그 마수 사냥꾼은 주환이 합류하자 잠시 뒤에 떠나버렸다. 다른 토벌대에 합류할 모양이었다.
“주환 씨가 있으면 이쪽의 전력은 충분하니까요.”
잭이 꼬리를 흔드는 개처럼 주환을 반가워하며 말했다. 얼굴이 늙어 그렇지, 행동은 귀엽다.
잠시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에는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웬이 주환을 한쪽으로 이끌었다.
“놈의 발자국을 추적하면서 이상한 점을 알게 됐지요.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주환 씨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요.”
그웬 그룹이 멈춰서 있는 곳은 산맥이 완만하게 끊어지면서 평지와 만나는 지점이었다.
그웬은 나뭇가지가 꺾이고 밟힌 지점으로 주환을 데려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쪽입니다. 직접 보세요.”
“….”
주환은 가까이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흙 위에 재처럼 검은 부스러기가 약간 떨어져 있었다.
발자국의 위치와 형태를 가늠해본 뒤, 검은 부스러기의 냄새를 맡아본다.
“이건….”
주환의 얼굴색이 약간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