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3화(13/235)
#013 부싯돌
주환은 늑대 가죽을 창고에 대강 널어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리지가 먼저 집안에 예쁘게 펼쳐 두었다. 집안에서 말릴 생각인 것 같다.
냄새가 심할 텐데 어째서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보물을 쓰다듬는 것처럼 늑대 털을 만지는 리지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건 그녀에게 상당히 큰 재산이구나.’
그녀에게 이 늑대 가죽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소중한 거다. 근처에 사는 사람 한 명 없는 산속인데도 창고에 두지 못할 만큼 소중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녀가 살아온 날을 잘은 모른다. 하지만 매우 곤궁한 삶이었던 것 같다. 여러 번 되풀이해 살짝살짝 늑대 털을 만지는 표정을 보면 지금까지 그녀가 어떻게 살아온 건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가끔 도로시가 리지의 옆으로 가서 함께 늑대 가죽을 들여다보았다.
속이 없어 쭈글쭈글한 늑대 얼굴이 신기한지, 도로시가 자꾸만 손가락으로 쿡쿡 늑대 코를 눌렀다.
그러면 리지도 함께 손가락으로 늑대를 찌른다. 그게 뭐가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 모두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가끔, 리지는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가죽을 들춰보거나 혼자서 끙끙거렸다. 가죽의 후처리가 필요하지만 그녀도 잘 몰라 고민하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런 건 차차 알아가면 된다. 팔지는 못하더라도 집에서 쓰면 되니까. 후처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못 쓰지는 않을 거다.
가죽을 널어놓은 뒤, 리지는 늑대 고기에 소금을 치기 시작했다.
고기를 절이면서, 가끔 지방에 시선을 준다. 왜인지 모르지만 지방을 보고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엔가 쓰이지 않을까 싶어 챙겨두었는데 잘한 모양이다.
짐 보따리에 있는 소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기를 소금에 절이고 나면 그다지 남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은 추운 계절이라 괜찮을지 모르지만, 더운 시기였다면 곤란했을 것이다.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들이 많구나.’
어떤 게 재산이 되는지, 어떤 식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교환하는지, 하루빨리 그런 일들을 몸에 익히고 싶다.
리지가 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동안, 도로시는 작은 몸으로 이리저리 집안을 돌아다니며 보따리의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꼬박꼬박 리지에게 가서 칭찬을 받는다. 두 사람의 모습이 귀여워서 잠시 바라보다, 주환은 몸을 일으켰다.
그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리지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 ####.”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왼팔을 가리키며 고개를 젓는다. 상처가 있으니 쉬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하지만 할 일이 태산이었다. 쉬고 있을 틈이 없다.
“괜찮아요. 잠시 쉰 덕분에 이제 별로 아프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살짝 뺨을 만지자, 리지가 고개를 홰홰 저으며 안된다는 표시를 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주환의 말뜻을 알아들은 것 같다.
하지만 정말 괜찮다. 아프지 않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마법 같은 불길이 사그라들었을 때부터 상처 부위는 피가 나지 않을 만큼 치료된 상태였다. 너덜너덜한 상처의 표면은 이미 꾸덕꾸덕하게 말라 있어, 덧날 염려도 없을 것이다.
걱정하는 리지를 떼어 두고, 주환은 집 밖으로 나왔다.
집안은 현재 냉돌이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어도 추운데 이대로 밤이 되면 그야말로 집안에서 동사하고 말 거다.
주환은 집 근처의 숲에서 굵고 잘 말라 보이는 나뭇가지를 찾아 집 앞으로 가져왔다.
집 밖에는 넓적한 통나무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나뭇가지를 놓고 도끼로 내리친다. 나뭇가지는 쉽사리 툭툭 끊어졌다.
이런 산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는 사람들이 모두 주워가지 않을까 싶었지만, 실제로는 여기저기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주 얕은 산 입구는 몰라도, 이렇게 안쪽으로 들어오는 장소까지는 마을 사람들이 거의 손대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이 한때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내는 바람에 전국의 산이 벌거숭이 민둥산이 되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집에 장작 패기용으로 보이는 통나무가 있는 걸 보면, 산지기가 산의 나무를 땔감으로 쓴 건 확실한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창고에 있는 장작을 모두 훔쳐 간 것도, 자신들이 벌목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산지기만 허용될 뿐, 마을 사람들에게 이 산을 벌목하는 건 금기인지도 모른다.
‘뭔가 함정이 있는 것 같아.’
집과 여자를 주고, 먹고살기 위한 물건을 제공한다. 거기에 사냥을 가르칠 선생까지 준비해 주다니, 이 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주환이 봐도 너무 후한 대접이다.
적어도 먹고살기 힘들어 남의 집 세간살이까지 모조리 가져가버리는 시골 마을에서 할 법한 일은 아니었다.
굳이 마을 사람이 아닌 외부인, 그것도 노예와 함께 온 사람에게 그런 걸 주어가며 산지기를 하게 하는 걸 보면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아니, 분명히 그렇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주환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만일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산지기이기 때문에 리지와 도로시가 그에게 주어졌다면 함정이라도 상관없어. 앞으로 무슨 일이 닥쳐도 그걸 해결하고 돌파할 뿐이다.
“….”
물론, 위험해 보이는 경우에는 만사 제쳐두고 가족과 함께 도망갈 생각이지만.
주환은 나뭇가지를 주우면서 장작으로 쓸만한 나무가 있는지 계속 살폈다.
너무 큰 나무는 제외한다. 해본 적도 없으면서 처음부터 거대한 나무를 도끼로 쓰러뜨릴 자신은 없었다. 경험이 쌓일 때까지는 적당히 굵으면서 너무 크지 않은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 크기의 나무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어느 게 연기가 덜 나면서 화력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주워들은 바로는 참나무가 땔감으로 좋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뭐가 참나무인지 모르겠다.
도토리가 달려있으면 그게 참나무라고 얼핏 들은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걸 알면 뭐 하나. 한겨울이다 보니 도토리 달려 있는 나무가 없는데.
이파리가 떨어진 겨울산의 나무들은 이거나 저거나 거의 비슷비슷하게 보였다.
주환은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나뭇잎을 밟으며 서성이다, 결국 참나무 찾는 건 포기하고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골랐다.
사등분하면 딱 알맞을 것 같은 굵기의 나무였다. 키는 사람의 세 배 정도, 굵은 밑동에서 올라온 가지가 양옆으로 뻗어 다시 팔뚝보다 굵은 가지로 이어져 있었다.
높다면 높지만 다른 나무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다른 나무는 그야말로 거대해서, 거인나라의 것처럼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그런 나무, 지구에서는 본 적도 없었다.
주환은 허리춤에 묶어놓았던 도끼를 풀어 나무 밑동을 찍기 시작했다. 워낙 힘이 세니 이 정도 나무는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고전했다.
나무가 단단하기도 했지만, 도끼를 사용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찍고 빼내고 다시 찍는 것이 어려웠다.
그냥 찍히면 그대로 나무속에 박혀 있는 거야. 그걸 빼내려고 하면 도끼날이 손잡이에서 빠질 것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 해졌다.
몇 번은 그렇게 헛손질하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도끼를 휘두르며 힘을 넣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사이, 어떻게 하면 도끼가 나무에 박히지 않고 제대로 찍고 다시 나오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빨 빠지듯 나무에 도끼 자국이 수없이 새겨진다. 어느 정도 됐다 싶어 힘껏 밀자, 우지끈 소리를 내며 나무가 옆으로 기우뚱했다.
하지만 제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너무 한쪽 방향에서만 도끼질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몇 번 도끼질을 넣은 후에야 나무가 제대로 넘어갔다.
주환은 근처에 있는 나무를 한 그루 더 베어냈다. 이번에는 한 번 해봤다고 조금 쉬웠다.
도끼질도 한쪽 방향에서만 넣는 것이 아니라 빙 둘러 가며 찍었다.
먼젓번의 나무는 밑동이 지저분하게 부러진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예쁘게 잘라졌다.
주환은 쓰러진 나무를 다시 도끼로 토막 내어 여러 번에 걸쳐 집으로 옮겼다.
모두 옮긴 뒤에는 집 앞 통나무 위에 나무를 놓고, 장작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크기로 다시 자르는 작업을 했다.
도끼로 내리칠 때마다 나무토막이 사방으로 튀어 도망간다. 나뭇가지를 자를 때와는 달랐다. 더 어렵다.
이 정도의 단순노동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는데, 싸움질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늑대에게 물어뜯긴 왼팔이 지끈지끈 아프다. 평상시에 사용하지 않는 근육을 써서인지 허리와 목, 어깨가 뻐근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 잠자기는 그른 게 아닐까 싶어졌다.
집으로 들아가자, 리지가 늑대 고기 손질을 끝낸 뒤 다른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물건들이 여러 개 있었다.
“### ##.”
그를 본 리지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왼팔의 상처를 보고,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또 허둥지둥 달려가 천에 물을 적셔 왔다.
“고마워.”
아까 익힌 말로 고맙다고 말한 뒤 받으려 하자, 리지가 물수건을 뒤로 빼며 손짓을 했다. 몸을 낮추라는 것 같다.
주환이 바닥에 앉자, 리지가 얼굴과 목, 팔을 물수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고마워#, ##.”
리지와 함께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도로시가 또르르 달려오더니 두 손에 물을 약간 묻혀서 주환의 얼굴에 철퍽철퍽 문질렀다. 도로시도 닦아주는 모양이다. 실제로는 오히려 구정물을 묻혀 지저분하게 만든 것 같지만.
리지가 킥킥거리고 웃으면서 다시 주환의 얼굴을 닦았다. 도로시가 뭔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주환을 보았다.
“도로시, 고마워.”
아이의 반짝거리는 눈을 보고 주환이 말하자, 도로시가 다시 구정물 묻은 손을 그의 얼굴에 발랐다.
리지가 웃는다. 그 웃음소리에 이끌리듯이 주환도 웃자 도로시까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그렇게 웃고 있다가, 주환은 바닥에 두었던 장작을 집의 중앙으로 가져갔다.
중세의 난방이 모두 이런 건지, 아니면 이 오두막만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이 집은 벽난로가 없이 중앙에 화덕이 있었다.
바닥을 두껍게 해서 불 피울 자리를 만든 뒤, 다시 불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벽돌로 둘러쌌다.
화덕 자리에는 뭔가 거는 고리가 달려있는 굵은 쇠막대가 허공을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에 솥 같은 걸 걸어 사용하는 것 같다.
연통이나 굴뚝은 없었다. 그저 높은 천장 가운데가 뻥 뚫려 있을 뿐이다. 불을 피우면 그 위쪽으로 연기가 빨려나가게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서야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불도 피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주환은 사냥꾼 작업실에 있던 삽을 가져와 화덕의 재를 치우고 정리한 뒤, 장작을 여러 개 놓았다.
거기까지 하고 나서야 주환은 자신에게 불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작은 있는데 불을 피우기 위한 불씨가 없다. 너무도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쪽은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성냥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어쩌나 싶어 당황하는데 리지가 어디에선가 가죽 주머니를 가져왔다.
가죽 주머니 안에서 리지가 꺼낸 건 ‘C’자 형의 쇠붙이와 대리석 비슷하게 생긴 돌, 그리고 나무껍질을 실처럼 잘게 찢어놓은 것으로 보이는 뭉치였다.
리지가 그걸 주환에게 내밀었지만, 뭔지 전혀 모르겠다. 주환의 반응을 보고 리지가 약간 놀란 것 같았다.
그녀는 주환에게 뭔가 말했지만 통하지 않자 자신이 직접 하기로 한 모양이다.
리자가 나무껍질을 바닥에 놓고, 쇠붙이와 돌을 가볍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작은 불씨가 톡톡 튀어 바닥에 떨어진다.
잠시 그렇게 불씨를 튀기자, 나무껍질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제야 주환은 그게 부싯돌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싯돌이라는 건 돌멩이 두 개를 부딪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쇠붙이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리지가 조심스럽게 손을 파닥거려 나무껍질의 불을 키웠다. 그 뒤에는 집안에 남아있던 지푸라기에 불을 옮긴다. 마침내 장작에 불이 붙은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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