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1)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31화(131/235)
#131 생존자 수색
#131 생존자 수색
먹물을 부은 듯 까만 하늘에는 지구보다 밝고 큰 달이 떠 있었다. 태양과 똑같이 노란색인데도 달빛은 왠지 차갑고 서늘한 느낌이다. 새침하게 거절하는 느낌이 이 세계의 사람들 같았다.
뚜벅뚜벅. 적막한 어둠 속,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정화는 깜짝 놀라 달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숙였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망토가 이마를 덮는다.
‘설마…. 왕궁에서 추적을 해온 걸까.’
심장이 고무줄처럼 줄었다 커졌다, 벌렁벌렁거린다. 너무 긴장해서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어, 어쩌지.’
무섭다. 그 외롭고 추운 별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이정화는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
타이론의 커다란 궁에서 작고 초라한 별궁으로 옮겨진 뒤, 어느 날 호위 기사가 그녀의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매일 식사와 갈아입을 옷, 물건 등은 준비되었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시녀도 하인도, 그녀가 자는 동안 잠시 들어와 청소하고 나갈 뿐이다.
호위 기사가 더 이상 오지 않게 되자, 말을 나눌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어졌다.
깨어나면 그녀는 덜렁 혼자, 목이 터져라 사람을 불러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마치 혼자 궁 안에 버려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할 사람도 없이 혼자 그 넓은 별궁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매일, 매일, 그런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비롯한 모든 물건의 배급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정말 별궁에 갇혀 죽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사람을 만났다. 불쌍하도다, 불쌍하도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그 사람이 말했다.
이 나라 타이론은 어찌하여 신이 보낸 용사님을 이리 가혹하게 대하는 걸까요. 신이 두렵지도 않은 건지, 벌 받을 겁니다. 분명히 이 나라는 천벌을 받고 말 거예요.
그 사람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아무도 몰라주는 그녀의 괴로움을 그 사람만이 알아주었다. 공감하고 이해했다. 정화의 마음이 그에게 옮겨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사람이 왕궁에서 떠나자고 말했을 때는 진심으로 안심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디든 함께 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어. 호위 기사나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평범하게 생기고 별다른 특징도 없는 것 같았지만, 그래서 좋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고 무난한 사람이라면 그녀를 버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남자가 시모니 왕국 사람이라는 사실은 왕궁을 나온 뒤에 알게 되었다.
[용사님을 간절히 원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용사님이 내려오지 않았어요. 왕께서도, 신관들도, 국민들까지, 모두 용사님을 바라고 있습니다.]남자와 부부처럼 함께 사는 것도 괜찮지만, 용사로 대접받을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두 명의 용사 중 하나가 아니라 한 나라의 유일한 용사가 되면 더 이상 버려질 염려도 없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남자의 고국에 가기로 했다.
그녀의 모습은 이 나라에서 매우 드문 것이라고 한다. 남자는 타국의 용병으로 가끔 비슷한 사람이 있지만 여자는 거의 없다고. 그래서 망토로 모습을 숨기고, 마차와 말을 타고 이동했다.
익숙하지 않은 말과 진동 심한 마차 때문에, 엉덩이는 불이 난 것처럼 아프고 매일 멀미를 했다.
중간중간 그 남자 외에 다른 사람도 합류했다. 때로는 그 남자가 빠지고, 다른 남자나 여자가 그녀의 옆을 채웠다.
이 나라는 적국이라 곳곳에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때로는 검문을 피해 짚이 많은 마차에 숨어서 문을 통과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곤란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타이론의 별궁에서 그녀를 데리고 나왔던 남자가 갑자기 미쳐버렸던 것이다.
중간에 합류한 남자에게 배신자라고 뭔가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칼을 빼들었다. 그 뒤에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어디에선가 와서 정화를 데리고 그 아수라장을 빠져나온 것 외에는 단편적으로만 떠오른다. 섬뜩한 피 냄새와 쩍 벌어져 있던 상처, 이상하게 허옇게 보이던 근육….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정화를 데리고 온 남자와 여자가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라고 말한 뒤 가버렸다. 혼자 커다란 도시의 외딴 골목에 남겨졌다.
*
정화는 고개를 숙인 채 골목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자신을 지나쳐가기를 기다렸다. 잘근잘근 손톱 물어뜯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초조해 심장이 타는 것 같다.
괜히 떠난 걸까. 어떻게 하면 좋지. 그냥 그곳에 머물고 있었으면 적어도 이런 위험에 빠지지는 않았을 텐데, 선택을 잘못했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데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화는 손톱을 물어뜯다 말고 그대로 동작을 멈췄다. 지나갈 줄 알았던 사람의 발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
콩닥콩닥 심장이 튄다. 이 세계의 치안은 그리 좋지 않다. 한밤에도 돌아다니는 지구와는 다르다. 이런 한밤에 돌아다니는 건 남자에게도 위험하다.
‘어, 어쩌지. 어쩌면 좋아.’
당황해서 점점 머리가 아래로 수그러들었다. 발 앞에 있는 신발에만 신경이 쓰였다.
“고개를 들어주세요. 당신을 마중 온 사람입니다. 정화 씨.”
“!”
자신의 이름을 듣고 확 고개를 올리자, 평범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이곳은 윈드 왕국의 국경과 가까운 곳입니다. 당신은 이쪽에서 신분을 속여 윈드로 이동한 뒤에 다시 시모니로 넘어가게 될 거예요. 그동안은 내 애인 행세를 하게 됩니다. 잘 부탁해요.”
남자는 부드러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위협하는 기운은 어디에도 없었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인상이다.
지금까지는 계속 모두가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정화 역시 계속 불안정했다. 언제 누군가에게 들킬까 싶어 계속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남자 앞에서는 마음이 놓인다. 괜찮은 것 같다. 우르르 안심이 쏟아지자, 허리에서 힘이 빠졌다.
정화가 무너지듯이 바닥에 주저앉자, 남자가 작은 소리로 실례,라고 말하더니 그녀를 일으켰다.
“자리를 옮깁시다. 이곳은 조금 위험해요. 급해서 여기에 데려온 모양인데, 사람은 거의 다니지 않지만 그 때문에 누가 죽어도 아무도 눈치 채주지 않습니다. 험한 일을 당하면 그대로 묻히는 거죠.”
남자는 담담하게 말한 뒤 정화를 데리고 골목을 조금 걸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 마차가 서 있었다. 마차에 둘이 함께 오르자 마부가 곧바로 말을 움직였다.
남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정화 역시 할 말은 없었다. 애초에 이 나라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정화는 남자와 나란히 앉은 채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반쯤 열린 창문에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문득 남자 쪽을 보았다.
남자는 반대쪽 창밖을 보면서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버릇인 것 같다.
‘어!’
정화의 눈에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 돌고 있는 작은 알맹이가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무슨 열매의 씨앗인 것 같다.
달빛을 받아 레몬색으로 빛나는 씨앗은 남자의 손가락을 따라 빙글빙글 무릎 위에서 돌고 있었다.
이것도 마법인가. 신기하다. 아무 말도 없는 마차 속에서, 정화는 한참 동안 남자가 돌리는 씨앗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온 뒤로 가장 온화하고 평화로운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부터는 순식간에 일이 진행되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정화는 그 남자와 함께 국경을 넘었다. 남자는 무슨 상인이었던 것 같다. 커다란 짐을 여러 개 마차에 싣고 있었다.
검문하는 병사들과 이 남자가 여러 번 보았던 사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낄낄 웃으며 농담을 잠시 하고, 남자는 타이론과 윈드 왕국의 국경을 넘었다.
누군가에게 들킬까 싶어 마차 속에서도 망토를 꾹 눌러쓰고 있었지만, 아무도 마차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창문에 얼굴을 대는 시늉만 하고 통과시켰다.
그 뒤, 윈드 왕국 안에서는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눈과 머리카락을 숨기기 위해 망토는 계속 두르고 있었지만 이 세계에 온 뒤로 계속 느끼던 긴박감은 더 이상 없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온 뒤로 처음 느끼는 평화로운 감정이었을 것이다. 남자를 만난 뒤부터, 왠지 마음이 안심되어 불안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남자가 내게 행운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사람인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국경을 넘을 때 사용하던 이름이 있지만, 그것이 본명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다만, 여행하는 도중, 딱 한 번 국경에서 사용하는 게 아닌 이름을 누군가가 언급한 적이 있다. 아마 남자가 가장 신뢰하는 부하였을 것이다.
정화가 귀를 곤두세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두 사람이 소곤소곤하는 와중에 문득 ‘앤리’라는 이름이 들렸다.
‘앤리.’
아마 그것이 남자의 진짜 이름.
정화는 남자의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마침내 목적지였던 시모니 왕국의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은 이전에 봤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벽과 문이 있고, 병사들이 있다. 줄을 서서 마차가 문 앞에 이르면 서류를 건네고 나간다. 그러면 다시 저쪽 나라의 문이 있었다. 이전과 다른 것은 그 문을 지난 다음이었다.
훌륭한 옷차림을 한 남자들과 시녀로 보이는 여자들이 줄을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처음 이 세게에 왔을 때 영접해 주던 그때 같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나밖에 없어.’
심장이 팝콘처럼 톡톡 튀어 올랐다. 그래, 이곳에는 자신밖에 없다. 이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 남자 용사 없이, 그녀 혼자였다.
그녀를 영접하러 온 사람들이 깊숙이 허리를 접으면서 용사가 시모니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자, 정화의 얼굴에 겨우 미소가 떠올랐다.
* * * * * * * * * *
언데드 마수가 모두 죽은 것이 확실해지자, 토벌대에 참가했던 모험가들은 대부분 길드로 돌아갔다. 토벌 기지에 있던 물건들도 정리가 시작됐다. 모두 수레에 실어 길드로 가져갈 것이다.
하지만 주환과 사냥꾼들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두 번째 토벌대의 생존자와 시체를 찾아내는 일이다.
이것은 길드가 추가로 낸 의뢰이기도 했다. 생존자를 찾아내고, 치료할 수 있는 한도까지 치유한다. 금액은 모두 변경백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들었다.
마수 사냥꾼으로 활동은 시작했지만, 주환은 이제 겨우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생존자 수색을 지휘하는 건 그웬이 맡았다.
“생존자가 있다면 아마 사냥꾼일 겁니다. 일반 모험가로서는 마수의 사냥 능력을 속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짐승에게서 도망치는 것은 냄새를 지우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보통 사람은 체취를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이번 마수는 냄새를 잘 맡는 놈이었다. 모험가는 물론이고 사냥꾼이 살아있을 확률도 극히 낮다고, 그웬이 거듭 말했다.
추적이 진행되면서, 주환은 그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암담해졌다.
갈기갈기 찢긴 시체 한 구는 나무 위에서 발견되었다. 아마 도망친 것을 마수가 쫓아 그대로 물어뜯은 모양이다. 몸이 절반만 나무 위에 있었다. 나머지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시체는 시내를 건너 숲에서 발견되었다. 모험가였다. 체취를 없애기 위해 물에 들어갔었지만 마수의 코를 피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생존자를 찾으려던 수색대는 하나씩 시체만 거듭해서 발견해갔다.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어쨌든 몸이 있다면 주환의 마력 탐지로도 알아낼 수 있다. 실제로 몇 구의 시체는 주환이 탐지 마법으로 찾아냈다.
하지만 광범위한 산을 탐지 마법으로 훑으면서 모두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사냥꾼들이 사방으로 퍼져 어디에선가 단서를 발견하면, 그 단서를 쫓아 주환이 탐지 마법을 사용해 수색하는 방식으로 어느새 정착되었다.
며칠을 그런 식으로 수색해서 17명의 토벌대 대부분은 찾았다. 남은 것은 세 명뿐이다. 토벌대 대장을 맡았던 젊은 마수 사냥꾼과 사냥꾼 두 명이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뒤, 사냥꾼 한 명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남은 것은 두 명뿐.
살아있는 사람을 발견할 거라는 희망은 거의 사라졌다. 그저 죽음을 확인한다는 의미만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다음 날 오후 두 번째 토벌대의 대장이었던 마수 사냥꾼의 시체를 발견했다.
상체와 하체가 반쯤 분리된 상태로 숲 속에 엎어져 있었다. 약간의 경사가 있고, 덤불이 우거진 곳이었다.
수색에 참가했던 사냥꾼들의 입에서 암울한 숨이 흘러나왔다.
주환은 마력 탐지를 펼쳐 사방을 확인한 뒤, 고개를 떨궜다.
“이 밑에 시체가 한 구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굴 같은 게 있는데 그 안에 사람의 시체가 있어요.”
대장의 시체는 마치 그 굴의 입구를 덮고 있는 것처럼 놓여 있었다. 어쩌면 굴 안으로 도망치려다 죽은 건지도 모른다. 지독한 피비린내에 목구멍 속에서 쓴 것이 올라왔다.
그때였다.
굴속에 있는 시체가 손을 조금 움직였다.
마력 탐지를 펼치고 있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설마! 살아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