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3)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33화(133/235)
#133 희망의 용사님
#133 희망의 용사님
이 세계는 굉장히 삭막한 곳이다.
아버지가 딸을 팔고, 남편이 아내를 때려죽이고, 가문을 위해서 자식을 물건처럼 이곳저곳에 혼인시킨다.
여자가 더욱 살기 어려운 곳이지만, 남자라 해서 쉬운 것도 아니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쉴 새 없이 일하고, 그 삶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 힘들고 괴롭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 어린 사냥꾼을 위해 미끼가 되어 마수를 유인하고, 그 사이에 자신의 피로 소년을 덮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된 소년이 울면서 울면서, 목이 막혀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소리치듯 말했다.
아저씨가 나를 살리기 위해 죽었어요.
사냥꾼이 되려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호통치던 아저씨도 마수를 유인하러 혼자 떠났어요.
대장이 나를 살리기 위해….
미안해요.
잘난 척해서 미안해요.
평소에 말을 더 잘 들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해요.
나 때문에 죽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
주환은 눈을 감았다.
어쩌면 자신들이 이미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희생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수의 추적과 분노가 너무도 끈질겨, 자신들이 살 가능성은 없다고 알아버린 걸 수도 있다.
동료들의 죽음을 여러 번 겪어본 능숙한 사냥꾼, 모험가들이라면 그럴 수 있을 거다. 직감으로 알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어차피 자신들이 죽는다면 아이 하나라도 살려보자고, 떠밀린 것처럼 결정 내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민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여럿 있는 중에서 살 사람을 아이로 고를 정도로는 이타적이다.
소년이 갈라져 쉰 소리로 계속 미안하다고 외치며 우는걸, 사냥꾼들은 묵묵히 입을 다물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
주환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 소년에게 다가갔다.
소년의 몸도 완전히 성한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가 찢기고 긁혀 피가 흘렀다. 다리는 완전히 부러져, 하얀 뼈가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아프면 뇌가 몸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주환은 이상한 모습으로 꺾여 있는 소년의 다리를 잡았다. 이대로 치료해버리면 이상한 모습으로 붙어버린다. 제대로 모습을 갖춘 다음에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
소년은 여전히 꺽꺽 울고만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고 우느라, 목이 뒤로 꺾어질 것 같다.
주환이 하려는 행동이 뭔지 깨닫고, 형이 소년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아플 겁니다. 조금 참아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환의 말에 대답한 것은 형이었다. 형은 여전히 꺽꺽 우는 소년의 이마를 손으로 누르며 작은 소리로 동생에게 말했다.
“알아. 미안한 거, 나도 알아. 하지만 그만 울자. 네가 받은 은혜는 나중에 다른 아이에게 갚아주면 돼. 나도, 너도, 그렇게 하자.”
형이 하는 말을 귀로 흘리면서, 주환은 소년의 다리를 제대로 폈다. 다리에서 뿌득 소리가 나면서 소년이 비명을 질렀다.
지친 몸에 더 이상의 충격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눈이 하얗게 돌아가더니 소년의 몸이 축 늘어졌다.
어쩌면 이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 자고 깨어나면 고통은 없어져있을 테니까.
주환은 소년의 다리가 제대로 잘 붙을 수 있도록 최대한 뼈를 가지런히 맞춘 뒤, 몸에 손을 대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소년의 상처가 서서히 원래 상태를 찾아간다. 벌어진 피부 밑에서 뼈가 서로 이어져가는 것이 보였다.
예전에는 여러 번 치유를 되풀이해야만 가능하던 일이 이제는 단번에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마법이 능숙해진 것만큼, 치유 능력도 높아진 것 같다. 마력량이 늘어났다기보다는 활용하는 법이 능숙해진 느낌이었다.
지켜보던 사냥꾼들이 놀라워하며 웅성웅성 수군거렸다.
주환은 몇 번에 나눠 소년의 몸에 마력을 부은 뒤 손을 뗐다.
“중요한 상처는 모두 치료했습니다. 나머지는 체력에 달렸어요. 푹 쉬게 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여 주세요. 절대로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마법사님.”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주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 안내원이 수레를 몇 개 준비해 두었다. 이전에는 시체만 줄줄이 실려갔지만, 이번에는 산 사람이 한 명 수레에 올랐다.
그 수레를 호위하는 것처럼 사냥꾼들이 둘러싸고 서서히 숲길을 걸었다. 무겁던 사냥꾼들의 분위기가 아주 조금 밝아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본다. 소년이 살아 돌아가는 건 그 가족에게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끔 웃음소리가 튀었다.
사냥꾼들에게서 약간 떨어져 걷던 길드 직원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직원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가족들한테는 뭐라고 해야 하나.”
‘아, 그렇구나. 죽은 사람의 가족들에게는 길드 직원이 연락하겠군.’
죽은 사람과 친밀한 사냥꾼이나 모험가가 있으면 그 사람이 먼저 알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은 자의 예금이나 보상금을 전달하는 건 길드 직원이었다. 결국 모든 처리는 길드에서 해야 할 것이다. 비극적인 결말을 전하는 것도, 원망을 듣는 것도.
죽은 사람의 가족들 얼굴과 리지가 겹친다. 자신이 죽었을 때 길드에서 연락을 받는 사람은 리지가 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윗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
리지와 도로시는 토벌 기지로 사용하는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륵드륵 수레바퀴 소리와 함께 한참을 걷자 멀리 마을이 보였다. 주환은 표정을 조금 가다듬었다.
이렇게 형편없이 까매진 마음으로 아내와 아이를 만나고 싶지 않다. 두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밝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마을로 가까이 가자 도로시가 오즈와 함께 뛰어다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보였다.
“아빠!”
도로시가 주환을 보자 두 팔을 힘껏 흔들며 달려왔다. 치마를 펄럭이며 열심히 달려오는 모습이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작은 천사 인형 같다. 약간 개구진 천사.
주환은 두 팔을 활짝 벌려 도로시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아이의 시선이 시체에 닿지 않도록, 옆으로 돌려 한 팔에 안았다.
수레에는 두꺼운 천이 덮여 있지만, 그것이 시신이라는 것은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라고 모르지는 않을 거다.
한 박자 늦게, 오즈가 달려와 훌쩍 위로 뛰어올랐다. 도로시 품에 살짝 내려앉은 뒤, 오즈가 귀를 뒤로 젖히고 킁킁 주환의 냄새를 맡았다. 며칠만이라고 반가운 모양이다.
“엄마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있었니?”
“응! 아빠! 도로시 엄청나게 착했어요. 엄마랑 바느질도 했어! 도로시 완전 잘해. 아빠 옷도 만들어줄게.”
“그거 참 기대되는걸.”
주환이 웃자, 도로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시는 엄마보다 훨씬 바느질을 잘 한대. 엄마가 엄청 엄청 칭찬했어.”
그건 참 보고 싶다. 아이 머리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며 걷는데, 리지가 약간 떨어진 곳에 서서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리지의 시선이 살짝 시신이 담긴 수레를 향했다 금세 비뚤어졌다. 리지의 얼굴이 조금 흐려졌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며 방긋 웃는다.
“수고하셨어요.”
“혼자 아이 보느라 힘들었지?”
리지가 대답하기 전에 도로시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아니야, 아빠! 도로시는 아이 아니야. 이제 숙녀가 됐어. 바느질하면 숙녀란 말이야.”
“숙녀가 되기에는 좀 이른데. 도로시가 너무 어른이 되어버리면 아빠가 서운하잖아.”
주환이 웃자, 도로시가 솜사탕 같은 머리를 흔들며 활짝 웃었다.
“도로시가 숙녀가 되면 아빠는 숙녀 아빠인 걸! 그건 엄청 좋은 거야. 엄청 엄청 대단하다구.”
“….”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 같다. 도로시는 몇 마디를 더 하고는 훌쩍 주환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다시 오즈와 함께 달린다.
아이가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리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생존자는….”
“한 명 찾았어.”
“…수고하셨어요.”
리지가 주환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꽉 끌어안았다. 주환은 리지의 등을 가만히 안은 채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도로시가 깔깔 웃는다. 어느새 손에는 기다란 나뭇가지가 들려 있었다. 도로시가 호령할 때마다 오즈가 조금씩 나뭇가지를 똑똑 부러뜨렸다.
몇 사람의 사냥꾼이 도로시와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와 대화하면 현실이 조금 가시는 느낌이 든다. 바로 옆에 버젓이 있는 비극이 어쩐지 희미해지는 거다.
주환이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아마 다른 사람도 그런 기분일 거다. 어떤 세상에서도 아이는 구원이다.
*
토벌 기지에 아직 남아있던 물건을 모두 정리해, 다음 날 모두가 함께 기지를 떠났다.
시신은 다시 깨끗한 천으로 만든 커다란 주머니에 담겨, 몇 대의 수레에 나눠 실렸다.
목적지는 길드가 있는 모험가 마을이다. 그곳에서 보상을 받고 서류 작업을 마치면 이 길고 음울하던 의뢰도 끝이 난다. 덜컹거리는 시신 수레와 함께 가는 길은 매우 어둡고 우울했다.
* * * * * * * * * *
베른 모험가 마을 밖에는 여전히 피난민이 몰려 있었다. 마수는 토벌되었지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터전은 이미 파괴되어 갈 곳이 없어진 뒤다. 그 때문인지, 오히려 피난민의 숫자가 조금 더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주환은 다른 사람들과 헤어져 여관으로 향했다. 항상 머물던 방은 누군가가 이미 들어가 있어, 주환은 다른 방을 빌렸다. 토벌대에 참여했던 모험가가 여러 명 함께 한 방에 머무는 모양이다.
방에 여장을 풀고, 밑의 식당으로 내려가 그날의 특선 메뉴를 주문하고 나서야 겨우 어깨의 힘이 풀렸다. 왠지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리지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표정이 조금 느긋해졌다.
다만 그새 음식 가격이 작은 동전 한 개만큼 올랐다.
“미안해요. 물가가 많이 올랐지 뭐예요. 내릴 생각을 안 하네요.”
여주인이 미안해하며 한숨을 쉬었다.
“대신 고기를 듬뿍 드렸어요.”
오늘의 메뉴는 고기와 야채, 허브가 들어간 스튜에, 말린 무화과를 넣어 구운 빵이다.
둘 다 도로시가 매우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특히 무화과가 들어간 빵은 드물다. 어쩌다 한 번 정도 나오는 것이라 도로시가 특히 기뻐했다.
도로시는 다람쥐처럼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면서 스튜와 무화과 빵을 서둘러 먹고, 주환과 리지는 조금 느긋하게 식사시간을 누렸다.
식당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지금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보았던 중에서는 가장 많은 것 같다. 여관에 머무는 사람보다는 식사만 하러 온 사람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였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우리나라에도 용사님이 생겨서 다행이야.”
“하지만 원래는 타이론 왕국의 용사였다고 하던데.”
“타이론이 워낙 나쁜 놈들이라 뿌리치고 왔다잖아.”
“나는 우리 폐하께서 기사님과 병사들을 보내 구출했다고 들었어.”
“그래, 나도 그렇게 들었네.”
“원래 우리나라 용사님이었는데 놈들이 강제로 끌고 간 거라고 하더라구.”
“정말 다행이지. 그대로 저쪽에 잡혀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여자 용사님인데…. 진짜 험한 일 당했을 거야.”
“나쁜 놈들!”
토벌대로 다녀온 동안 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갑자기 적국의 용사님이 왜 이 나라에 왔다는 건지 모르겠다. 인터넷도 TV도 없으니, 이 세상에서는 소문을 듣지 못하면 그야말로 깜깜절벽 아무것도 모르게 되어버린다.
그때 여주인이 커다란 나무컵을 두 개 들고 다가왔다.
“아유, 수고했어요. 먼저 돌아온 모험가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죠. 엄청났다면서요. 이건 서비스예요. 마수가 잡혀서 다행이에요.”
나무컵에는 와인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고맙습니다. 한데 무슨 일이 있나요? 용사님이 우리나라에 왔다고 하던데.”
주환이 묻자, 여주인이 아이고 하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쳤다.
“그걸 모르셨군요. 우리 마을에 신전이 있는 건 아시죠? 중앙 광장에서 약간 들어간 곳에 있는 하얀 건물이요. 얼마 전에 그곳 신관님들이 말씀하셨다 하더라구요. 우리나라에 용사님이 오신다는 신탁이 있었대요.”
여주인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 나쁜 놈들이, 그 타이론 놈들 말이에요, 그놈들이 우리나라에 올 용사님을 어떻게 했는지 납치했다지 뭡니까. 뭔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끌고 갔대요. 그래서 타이론에 용사님이 두 명이나 있었던 거죠.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한 나라에 용사가 두 명이나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구만. 어째 이상하다 했어요.”
여주인이 씩씩거리며 주먹을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신전을 통해서 나라 전체에 그런 이야기가 퍼진 모양이다.
“헤에, 그렇군요. 참 별일도 다 있습니다.”
주환도 용사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들어보면 지구에서 온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동양인일 것이다.
‘한 번 정도 만나보면 좋겠는데.’
지구에 미련 따위는 없지만, 같은 곳에서 온 사람이다. 약간의 흥미 정도는 있었다.
‘혹시 또 모르지. 적국이었을 때는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같은 나라에 있는 거면….’
게다가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혹시 이곳에 온 용사가 정말로 네크로맨서인지, 만일 그렇다면 자신이 만들어낸 언데드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는가 물어보고 싶었다.
그토록 잔인한 일을 지구에서 살아온 사람이 알면서 행할 것 같지는 않았다.
만일 술자가 잘 모르고 있다면 알려야 할 것이다.
“용사님이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도 생길 거예요. 용사님은 신의 선물이죠. 옛날부터 그랬어요. 용사님이 오시면 풍년이 들고 가뭄에는 비가 내리죠. 마수는 줄어들고요. 그분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축복을 내리실 겁니다.”
여주인이 밝게 웃었다.
마을 밖에는 여전히 피난민이 있고, 가뭄이라 비는 모자라다.
물가는 점점 올라 사람들이 먹고 살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분위기가 묘하게 밝다 했더니 용사 덕분이었던 모양이다.
‘무엇이든 사람들의 희망이 되어준다면 좋은 일이지.’
주환은 빙그레 웃었다.
“용사님이 오셔서 다행이네요.”
“그렇죠. 요새는 나쁜 일만 가득이었는데 정말 다행이에요.”
여주인이 커다란 발소리를 내며 힘차게 식당을 가로질러 갔다.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가져다주는 여주인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