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37)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37화(137/235)
#137 저 사람들 싫어
#137 저 사람들 싫어
힐끔 길드를 쳐다보고, 수다쟁이가 한숨을 쉬었다.
“국경에 있는 숲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는 허가를 받으려고 문의를 해두었거든요. 그랬더니 변경백작의 초대장이 왔어요. 그냥 허가만 바랐는데, 하아, 뭐, 카일이 그러자고 했겠지요. 어쨌든 참석하면 허가는 그대로 내려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주환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떤 초대장인가요? 접견인지, 아니면 파티나 다른 종류의 초대장인지….”
“파티예요.”
“….”
“큰 파티는 아니고 변경백작가 사람만 참석한다고는 하는데, 그건 믿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게 정기적으로 열리는 파티거든요. 아마 연줄을 이용해서 다른 귀족들도 좀 참가할 겁니다.”
수다쟁이가 히죽 웃었다.
“변경백 측에서야 이번에는 가문 사람만 참가했으면 하겠지만 파트너로 슬쩍 끼어드는 방법도 있고, 찾아보면 방법은 가지가지니까요. 슬슬 산타급이 나왔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으니, 아마 다른 귀족들도 꽤 몰려들 겁니다. 늑대굴인 거죠.”
주환은 약간 망설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국경 지대를 조사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변경백과의 접견이라면 모를까, 다른 귀족들도 모두 참석하는 파티는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다.
주환의 마음을 짐작한 듯, 수다쟁이가 말을 꺼냈다.
“참석하는 경우의 준비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옷은 변경백 측에서 준비할 거예요. 참석할 때 주환 씨 혼자만 덜렁 보내는 일은 당연히 길드에서도 하지 않구요. 이쪽에서도 몇 사람 따라갑니다.”
“매너 쪽은 어떻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가면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물론 그쪽도 신경 쓰면 좋기는 하죠. 그건 밀러 상회의 도움을 받으면 될 거예요. 레너드 씨가 평민에 사냥꾼 출신이라 젊었을 때 급히 매너 교육을 받았다고 들었거든요. 그 선생님을 소개받으면 급한 대로 얼추 모양새는 갖출 수 있을 겁니다.”
수다쟁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주환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주환 씨는 나를 놀라게 하는군요. 그런 쪽에까지 신경이 돌다니. 보통 사람은 덜렁덜렁 그냥 가서 창피를 당하죠.”
수다쟁이가 히히 작은 소리로 웃는다.
뭐, 주환 역시 혼자라면 그냥 가서 창피 좀 당하고 만다. 굳이 매너까지 익히면서 노력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창피 당한다 하더라도 털끝만큼도 신경 쓰이지 않고.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리지가 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 아픈 일을 당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수다쟁이의 말을 들어보면, 귀족의 파티는 주최 측에서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빠듯하긴 해도 대강 준비할 시간은 있었다.
“아무튼 참석한다고 결정되면 뒷받침은 길드에 맡겨주세요. 귀족과의 이런 접촉은 길드에서도 좋은 연결을 만들 기회거든요. 주환 씨에게 큰 부담이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요. 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고. 참석합시다.”
리지가 불안한 듯 주환의 옷을 살짝 잡아당겼다. 귀족의 파티라니, 그녀에게는 평생 인연 없다고 생각한 일이었을 거다.
걱정 말라고 등에 손을 더하자, 리지는 몸을 작게 움츠리며 그의 옆구리에 바짝 붙었다.
얼추 대강의 일을 확인한 뒤, 주환은 수다쟁이와 함께 길드로 들어갔다.
*
주환은 접수대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서류가 잔뜩 쌓인 구석으로 향하자, 작은 테이블과 긴 나무 의자가 있는 장소가 있었다. 한쪽에는 모포 몇 개가 작게 접혀 있었다. 길드 직원들이 피곤할 때 쪽잠을 자는 공간인 모양이다.
그곳에 덩그라니,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어, 저 사람은.’
아까 광장에서 만났던 남자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휘청휘청하더니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 단순히 오랜 여정에 지쳐서 그랬던 모양이다.
남자는 주환을 보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주환이 산타 등급 모험가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이 사람은 변경백님의 보좌관입니다. 초대장을 가지고 오셨어요.”
수다쟁이가 새침한 얼굴로 소개를 하고, 간단하게 인사가 오갔다.
보좌관은 어딘지 모르게 허둥지둥하는 모습이었다.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고,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닫았다.
그런데 초대장을 주지 않는다. 언제 주려는 거야.
몇 번이나 그렇게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더니, 겨우 말할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보좌관의 눈동자에 힘이 실렸다. 보좌관의 입가가 살짝 긴장되며 열렸다.
그리고 보좌관이 말을 막 꺼내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길드 문이 활짝 열렸다.
“아빠!”
도로시였다. 이제 완전히 이 마을이 제집 앞마당처럼 된 도로시가 탁탁탁 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오, 아가씨 출근했나.”
“아빠는 저 안쪽에 있다.”
“도로시 왔구나.”
“오늘은 유니콘한테 혼나지 않았니?”
접수대 너머에서, 모험가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아이한테 인사를 건넸다. 오즈와 연화 덕분에 도로시는 요즘 인기가 많다.
“응! 도로시는 끄떡 없어요!”
왠지 조금 이상한 대답을 하면서, 도로시가 쪼르르 안쪽으로 들어왔다. 리지의 등에 와락 붙는다.
보좌관의 눈이 커지더니, 다시 입이 다물어졌다. 도로시를 본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마 정확하게는 오즈를.
보좌관의 눈이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오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수다쟁이의 재촉을 받고, 보좌관이 겨우 초대장을 주었다. 초대장은 밀랍으로 봉해져 있었다.
이제는 얼추 끝났으니 나가도 되는 걸까 생각했을 때, 보좌관이 갑자기 주환에게 고개를 숙였다.
“주환 씨, 우리 변경백작님은 굉장히 좋은 분이십니다. 이 나라를 지탱하고 이 영지를 적에게서 지키기 위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하시는 분이에요. 그분은 당신의 몸도, 당신 가족의 생명도, 이 영지를 위해 모두 투입해오신 분입니다. 변경백 님의 가문 모두가 그렇죠.”
보좌관의 허리가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갔다.
“전쟁이 임박해 있습니다. 힘든 상황이에요. 부디 그분을 위해 힘을 빌려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
보좌관은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왠지 파티에 가기 전부터 늑대굴이라는 느낌이다.
‘어쩐다.’
주환이 쓴웃음을 짓는데, 수다쟁이가 먼지라도 터는 것처럼 쉿쉿 손을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알겠는데, 이러는 건 매너 위반입니다. 보아하니 매년 한두 명 생기는 열성분자인 것 같군요. 분명히 카일 수석 보좌관이 당신한테 가라고 했을 테지요.”
보좌관이 번쩍 고개를 들더니 수다쟁이를 노려보았다.
“카일님이 나를 지명한 건 맞지만, 그분이 이런 일을 하라고 명령하신 건 아닙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
“알아요. 당신이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오지는 않았다는 것도 압니다. 분명히 씩씩거리면서 화를 냈을 거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어요. 추종자들은 변경백님이 뭔가 거절당하거나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화를 내니까요.”
수다쟁이가 싸늘한 얼굴로 보좌관을 보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카일 보좌관은 그런 것도 다 포함해서 생각하고 보낸 거죠. 이쪽에서는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몇 번이나 쓸만한 모험가를 그런 식으로 빼갔어요.”
“나는!”
“아, 됐고요. 할 일이나 합시다.”
수다쟁이는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초청장을 제대로 잘 받았다는 확인서에 길드 인장을 찍어 내밀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얼굴에 미소도 띠우고 뭔가 접대하는 것처럼 하더니, 수다쟁이의 행동이 전에 없이 퉁명스럽다. 속이 상한 듯 수다쟁이가 중얼거렸다.
“그냥 모험가나 하고 있었으면 그냥저냥 살고 있었을 사람이, 전쟁터에 가는 바람에 더 빨리 죽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구요. 모험가와 군인은 얼핏 보면 비슷한 것 같아도 완전히 다른 건데.”
그 말에는 보좌관도 기세가 죽었다. 그런 사정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중얼중얼, 작은 소리가 보좌관 입에서 샜다.
“…하지만 우리도 필사적입니다. 병사들은 계속 줄어들고…잘못하면 적을 막지 못하니까…그렇게 되면 한둘 죽는 걸로는 끝나지 않아요…모두가…여자도 아이도 남자도…다 죽어버리니까….”
수다쟁이는 힐끔 보좌관을 쳐다보고 고개를 돌렸다. 그 정도는 길드에서도 파악하고 있는 걸 거다.
안쪽으로 깊숙이 발을 디밀어 보면 어디에나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이쪽도 저쪽도, 각자의 입장이 다를 뿐이다.
주환은 살짝 숨을 쉬었다. 역시, 이곳은 살기 쉬운 세상이 아니다. 전쟁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곳에서 그런 게 사라질 리는 없겠지.
리지가 불안했던 것 같다. 주환의 몸에 더욱 몸을 붙였다. 주환 역시 전쟁에 끌려가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모양이다.
글쎄, 가족을 두고 전쟁에 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예전과는 사정이 조금 달라졌다.
부모님의 몸이 이곳에 있다.
이 마을 자체에는 큰 애착이 없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과도 약간 정이 생겼다.
여관집 여주인, 꼬마 녀석, 수다쟁이와 시장 거리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
목숨 걸고 지킬 만큼 소중한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는다고 알면 그냥 무시할 정도도 아니었다. 마음 한 귀퉁이에 가느다란 실이 걸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이 땅은 어느새 주환에게 지켜야 할 범주 가장자리에 들어와 있었다.
“….”
마법을 넓은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뭔가 고안해 봐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전쟁을 대비한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변경백과의 관계는 좋게 유지하는 것이 나으려나.’
주환은, 여전히 서로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수다쟁이와 보좌관을 바라보면서 작게 숨을 쉬었다.
보좌관과 수다쟁이는 투닥투닥 말로 싸우면서도 이런저런 서류와 일정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재봉사가 이 마을로 오는 모양이다. 주환과 리지, 도로시의 옷을 위해서다. 의복 준비가 가장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사이즈를 재고 원단을 선택한 뒤에도 가봉을 여러 번 해야 하거든요.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사 제치고 옷부터 제작해야 되죠. 이 서류를 읽어보면 꽤 유명한 재봉사를 불러주네요. 제가 알기로는 이 사람이 가장 빨리 작업하는 사람이에요.”
수다쟁이가 설명하면서 히죽 웃었다.
“이건 기합이 꽤 들어간 것 같습니다. 의복 쪽은 기대해도 될 듯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주환도 약간 기대가 된다. 리지는 평소에도 예쁘지만, 고운 옷으로 꾸며놓은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워지는 걸까. 조금 심장이 두근거렸다.
“….”
우와, 뭐야 이거. 왠지 굉장히 기대되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재봉사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여관은 방이 너무 좁아서 길드의 이층에서 재봉사를 만났다.
복도까지 놓여 있는 짐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안쪽으로 들어가면, 좁은 공간에 복작복작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건 이쪽으로. 아니, 아니, 그건 저쪽에 놔야지. 지금 당장 쓸 건 아니니까 우선 저쪽에 쌓아놔요.”
가운데 서서 지휘하는 사람이 재봉사인 것 같다. 팔자로 된 수염이 그림처럼 붙어 있는, 상당히 멋을 부린 중년 남성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수라고 한다. 남성복과 여성복, 두 팀이 왔다고 길드 직원이 알려주었다.
주환이 들어가자, 재봉사가 눈을 약간 크게 뜨더니 손가락으로 입술을 눌렀다.
“이건…. 정말 제 솜씨를 시험받게 될 것 같군요.”
말투가 묘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칭찬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비하하거나 우습게 생각하는 것도 아닌 듯한, 이상한 느낌의 말투였다.
재봉사는 주환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더니 호오, 하고 감탄을 흘렸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꾹꾹 누르면서 끙끙거리더니 물었다.
“좀 만져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렇게 하세요.”
재봉사는 주환의 목부터 어깨, 등, 허리와 다리까지 꼼꼼하게 만져보더니 끙 소리를 냈다.
“이건, 뜻밖이야. 의외로 잘 가겠어.”
“….”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성다운 목소리에 말투였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변했다. 재봉사의 말에 조수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을까요, 선생님? 이렇게 덩치가 크면 옷이 좀 안 예쁘게 나올 텐데요. 코트를 좀 길게 하는 게 좋으려나.”
“괜찮아, 좋아, 매우 좋아. 이 남자, 의외로 옷태가 날 것 같아. 근육이 잘 빠졌지 뭐야.”
재봉사가 이번에는 리지의 주변을 돌았다. 리지가 움찔하면서 고개를 숙이자, 재봉사가 말했다.
“부인, 얼굴을 들어주세요. 그래야 정말 좋은 착상이 떠오른답니다.”
“….”
리지가 살짝 주환을 보더니 고개를 약간 들었다.
“어머, 어머, 부인, 피부가 정말 하얗군요. 이거 정말….”
조수들도 리지를 둘러싸더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뼈가 가늘어요.”
“어깨를 드러내면 정말 선이 예쁘겠네요.”
“허리가 개미허리 같아요. 코르셋도 필요 없겠어.”
“분을 약간 바르면 그야말로 눈보다 희겠어요.”
조수들의 호들갑에 리지가 움찔하자, 가운데에 있던 도로시가 두 팔을 벌리며 조수들을 가로막았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수들의 시선이 도로시를 향했다.
“애매하네요.”
“피부가 좀 까무잡잡?”
“아, 이런 피부가 가장 어려운데.”
“어쩌죠?”
“머리색은 예쁘게 빠졌는데, 좀 부스스하네요.”
아무래도 도로시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다.
재봉사가 흠흠, 소리를 내며 곰곰이 도로시를 보다가 소리쳤다.
“이건 우리들에 대한 도전입니다. 변경백님의 말씀을 모두 들었죠? 이 세 사람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한 모습으로 만들어야 해요. 우리들의 손에 이 세 사람의 운명이 달려있는 겁니다.”
아니, 그건 과장이다. 고작 옷 따위에 운명이 달려있을 리가 없잖아.
도로시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의 말은 다 이해한 것 같다. 리지가 곤란한 표정으로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 저 사람들 싫어.”
도로시가 입을 잔뜩 내밀고 말하자, 리지가 살짝 재봉사와 조수들을 보았다.
그들은 원단 조각을 잔뜩 잘라 만든 샘플북을 펴놓은 채 열심히 뭔가 토론하고 있었다.
리지가 작은 목소리로 도로시에게 소곤거렸다.
“엄마도 싫어.”
이런.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