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5)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45화(145/235)
#145 만남
#145 만남
이 나라 사람은 살아있을 때 용사를 볼 확률이 거의 없다. 단순히 평민이라던가, 낮은 신분이라서가 아니라, 용사가 이 세계에 나타나는 기간 자체가 백 년 혹은 몇 백 년의 사이를 두기 때문이다. 용사는 전설 속의 유니콘만큼이나 희귀하고 드문 존재였다.
그래서였을 거다. 이 나라 사람과 많이 다른 외모를 보고도, 사람들은 주환을 용사라거나, 용사와 같은 나라, 같은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온 용병 중에 주환과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 드물게 있다고 한다. 모두가 주환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리지는 그런 용병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런가 보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조차도, 진짜로 주환과 같은 모습의 용병을 본 일이 있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본 적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저 모두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아마 주환이야말로 그들이 처음 본,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
리지의 심장이 불길하게 뛰었다. 용사는 주환과 같은 나라의 사람이다. 이상하게 빙빙 돌던 이야기가 이어진 느낌이었다.
용사가 주환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었다. 주환을 알고 있다고 한다. 주환은 전혀 모르는 여자라고 말했지만, 단순히 그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저 여자는….
‘혹시 이전에 사랑했던 사람은 아닐까.’
심장이 튄다. 만일 그렇다면 어쩌지. 주환은 정이 깊은 사람이다. 만일 아는 사람이라면, 혹은 사랑했던 여자라면, 분명 주환은 모른체 하지 않는다.
부모님의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던 주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마 그때 주환은 자신과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만일 같은 곳에서 온 사람이, 여자가 불쑥 나타난다면, 주환은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어쩌지, 어쩌지. 리지의 마음이 이리저리 물 위에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자가 용사인가.”
“폐하께서 왕궁 안에 가둬뒀다는 소문이 있던데.”
귀족 중에도 용사를 본 사람은 드문 모양이다. 대부분 깜짝 놀란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금세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뭔가 조금.”
“저 여자, 산타급 모험가와 비슷하지 않은가.”
“같은 나라의 사람인 것 같은.”
“설마, 그럴 리가 없지. 용사는 다른 세계에서 소환되는 건데.”
“설마.”
“산타급 모험가도 소환된 사람인 것은….”
“그럴 리가.”
역시, 모두의 눈에도 주환과 저 여자는 같은 나라 사람으로 보이는구나. 자신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다.
도로시가 리지의 옆으로 바짝 붙어서더니 손을 흔들었다.
“엄마, 저 사람 머리랑 눈이 아빠랑 똑같아.”
그래, 그래, 정말 그렇다. 리지는 도로시의 손을 꼭 잡았다. 어쩌면 저 여자는 우리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지도 몰라.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저 여자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저절로 도로시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용사는 마차에서 내리자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치 누구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진한 갈색 머리를 예쁘게 한 곳으로 모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색색 보석이 박힌 장식이 꽂혀 있고, 드레스는 가슴이 깊게 파였다.
리지가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 같다면, 저 여자는 왕궁 정원에 피어 있는 화려한 꽃일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시원찮은 들꽃조차 약간 시들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공작님이 힐끔 리지와 도로시를 보았다. 도로시 품에 안겨 있는 오즈를 보고, 공작이 용사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문득 용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표정이 확확 바뀐다. 그 짧은 시간 종안, 파티에서 본 누구보다도 얼굴이 반짝반짝 수시로 바뀌었다. 통통 튀는 화려한 불꽃같다. 외모 만이 아니라, 그런 표정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사가 공작의 귓속말을 들으면서 리지에게 시선을 주었다.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마치 평가하는 것처럼 자세히 리지를 뜯어본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용사의 눈동자에서 안심하는 빛이 보인 것 같다.
아, 그렇구나. 이건 다른 여자들이 리지를 보는 것과 똑같은 의미다. 주환에게 자신이 어울리는 건지 확인한 거다.
심장에 돌을 얹어놓은 것 같다. 빡빡하게 몸을 감싼 코르셋이 살아 움직이는 뱀 같다. 점점 더 조여와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안 그래도 균형이 맞지 않은 주환과 자신의 사이다. 상대가 주환과 같은 나라에서 온 용사라면 겨루기 전부터 져버린 것이 아닐까.
헐떡거리던 리지가 약간 휘청하자, 용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했다.
[뭐, 당신 괜찮아?]아, 당첨. 틀림없다. 주환과 같은 나라 사람이다. 이건 주환이 가끔 혼잣말할 때와 똑같은 언어였다.
“아빠랑 같은 말을 하잖아!”
도로시도 깜짝 놀라 외치고 있었다.
용사는 잘못 말했다는 것처럼 혀를 쭉 내밀더니 피식 웃었다.
“그, 마수 굉장히 귀엽다.”
약간 어색한 말투로 말하던 용사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언어를 바꿨다.
[아, 이 나라말은 발음이 너무 어려워. 타이론보다 힘들다. 전에 본 뿔토끼는 전혀 귀엽지 않고 엄청 컸는데, 그건 굉장히 작고 귀엽네. 주환 씨 거겠지?]용사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리지 쪽으로 몇 걸음 다가왔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공작의 마차는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용사와 리지 사이에는 상당한 공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공간을 넘어, 주환이라는 이름은 단단히 리지의 귀에 들어왔다.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왠지 친밀한 것 같은 분위기다. 역시 이 여자, 주환을 아는 게 아닐까. 가슴이 에이는 것처럼 아파왔다.
나에게 하는 것처럼 이 여자에게도 다정하게 말을 걸어줬나요, 다정하게 웃어줬나요.
그런 말이 멋대로 머릿속을 떠돈다. 주환에게 그런 말 할 자격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데. 이런 말을 하면 주환이 기가 막히겠지. 무엇보다 잘 알지도 못하는 과거의 일이다. 그래도 생각이 멈춰지지 않았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에 구멍이 뚫릴 것 같다. 아프다. 아마 질투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루돌프라는 거지? 그거? 주환 씨 거.”
용사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도로시 품에 있는 오즈를 보았다. 용사는 주환과 달리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말투였다.
“정말 귀엽다.”
용사가 반짝반짝 웃으면서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그것을 막으려는 것처럼, 다니엘이 한 발 리지의 앞으로 나갔다. 다니엘이 용사를 향해 정중히 몸을 숙였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부인께서는 몸이 안 좋은 상태라 이 자리를 물러나던 참이었습니다. 의원의 진찰을 받으러 가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만 실례를.”
하지만 다니엘의 말은 도중에 끊겼다. 공작이 시선만 살짝 옮겨 다니엘을 보았다.
“물러가라, 다니엘. 시종 주제에 용사의 앞을 가로막는 게 아니다.”
“….”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숙였다.
아, 이 공작님은 변경백과는 다르다. 평민을 평민으로, 벌레로 아는 사람이다. 자신을 힐끔 보는 공작의 시선에 리지의 몸이 움찔 튀었다.
공작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용사를 보았다.
“사냥에 나간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 테니, 천막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습니까.”
“아, 저는 괜찮아요, 각하. 나, 저 여자를 좀 보고 싶기도 했고, 주환 씨가 없을 때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해요.”
용사가 공작에게 하는 말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사람들이 또다시 웅성거린다. 용사와 주환 사이에 뭔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용사는 그런 분위기 따위는 모르는 것처럼 리지를 바라보고 방긋 웃었다.
리지는 이렇게 그녀를 보고 마음이 어지러운데, 용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어딘지 모르게 포용력 있는 얼굴이었다. 마치 자신이 주환 씨의 부인인 것처럼. 또다시 가슴이 찌리리 아파졌다.
잠시 떨어져 있던 밀러 상회의 레너드가 온 것 같다. 힘없이 고개를 숙인 리지의 시선 가장자리에 레너드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이 보였다.
“주환 씨 일로,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용사가 말하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이야기? 리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한 발 한 발 용사가 가까이 걸어와, 마차와 리지 중간쯤에 섰을 때였다.
갑자기 도로시 품에 안겨 있던 오즈가 귀를 움찔거렸다. 그리고 냄새를 맡는 것처럼 파닥파닥 사방으로 얼굴을 움직이더니 훌쩍 땅으로 뛰어내렸다.
“어, 오즈!”
도로시가 부르는 데도 반응하지 않고, 오즈는 곧바로 리지 앞으로 튀어나갔다.
“삐잇!”
오즈는 짧게 소리를 내고 곧바로 뿔을 빛내기 시작했다. 붉은빛이 아롱아롱 뿔에서 맺혀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와! 예쁘다. 이거 네가 하는 거니? 루돌프가 이런 거야?”
용사가 환하게 웃으며 오즈에게 말을 걸고, 몇 걸음 더 다가왔다.
그 순간, 용사 근처에 있던 의자의 다리가 툭 부러졌다. 한 개, 두 개, 의자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으로 넘어졌다.
용사가 깜짝 놀라며 그것들을 보는 동안에도, 사방에서 의자 다리가 부러져 넘어지고 있었다.
삐이, 오즈의 소리가 짧게 울렸다. 화가 난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반영하는 것처럼, 물건들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의자뿐만이 아니다. 스푼과 그릇,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깨진다.
그리고 마침내는 탁자까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음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뭐야!”
“저 뿔토끼가 하는 건가.”
“맙소사.”
사람들이 놀라 소리치는 가운데, 도로시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오즈의 옆으로 가서 꽥꽥 소리 지른다.
“오즈, 왜 그래!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야! 저게 다 돈이야! 얼마나 비싼 건지 알아?”
하지만 오즈의 행동은 여전하다. 도로시를 보는 대신, 용사만 노려보고 있었다. 평상시 같지 않다.
“삐이이이이.”
오즈가 날카롭게 내는 소리를 듣고, 도로시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용사에게 외쳤다.
“어, 아줌마, 오지 마세요. 엄마한테 오지 마. 오즈가 싫어해. 저리 가래요.”
도로시의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용사와 리지 근처에 있는 원형 천막의 기둥이 무너져 내렸다. 흙먼지가 천막 사이를 뚫고 허공으로 올라온다. 이대로 두면 이곳에 있는 모든 천막이 부서질 것 같다.
“오, 오즈, 정말로 네가 이러는 거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로 이 모든 것을 오즈가 하는 걸까.
그저 돌멩이 같은 거나 부러뜨리며 도로시와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도로시와 함께 혼나면 시무룩해지는 착한 오즈가? 이상해. 믿을 수 없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멀리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람이 분 것 같다. 천막 때문에 일어났던 흙먼지가 리지의 주변에서 휙 날아올라 멀리 휘몰아치며 사라졌다.
리지 쪽을 향해 아슬아슬 쌓여 있던 천막의 잔해가 반대편으로 누우면서 와르르 쏟아졌다.
여자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다친 사람은 없지만 다들 놀란 모양이다.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천막이 방향을 바꾸어 넘어갔으니까.
하지만 그 옆에 있는 공작은 냉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라지 않은 것 같다. 공작의 시선은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똑바로 오즈를 향해 있었다.
이 바람은 주환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정면에 있는 용사의 얼굴만 눈에 들어온다.
리지 조금 앞에 있는 용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용사의 눈동자에 반가움의 빛이 떠 있다. 용사의 붉은 입술이 방긋 웃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 사람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머리 위에서 빛이 사라지고 그늘이 졌다. 고개를 위쪽으로 들자, 하얀 말의 배가 보였다. 아, 자기도 모르게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환.”
입에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순간, 유니콘이 훌쩍 그녀의 위를 날아 용사의 앞에 내려섰다.
연화가 땅바닥을 거칠게 밟으며 히잉 히잉, 흥분한 소리를 냈다.
주환이 연화 등에 탄 채 뒤를 돌아보았다.
“리지, 괜찮아?”
주환의 시선이 리지와 도로시, 오즈를 차례대로 훑는다. 모두가 무사한 것을 보고 안심한 것처럼 주환의 날카롭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얼굴을 보고 나서야 겨우 불안하던 마음이 약간 진정되었다. 용사를, 저 여자를 보고도, 남편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와 도로시를 우선으로 생각해 준다.
“다행이다.”
자기도 모르게 포로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자, 주환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다. 괜찮아? 그렇게 묻는 것 같다.
괜찮아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물어봐 주었으니까. 괜찮으냐고, 가장 먼저 그녀와 도로시를 보고 확인해 주었으니까.
안심이 되자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너무 긴장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안젤리카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용사가 기쁜 듯이 웃는 얼굴로 주환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주환 씨. 저, 기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