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46)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46화(146/235)
#146 누구야 너?
#146 누구야 너?
이상을 눈치챈 것은 야생 멧돼지를 막 잡았을 무렵이었다.
*
숲길을 달려 한참 동안 사냥감을 추적했다.
귀족의 사냥은 사냥꾼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더 거칠고 난폭하다. 아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락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냥 방식, 정식 사냥꾼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
“….”
약간 떨어진 곳에서 사냥개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다른 귀족들은 멀리 뒤쳐져 있는데, 몰이꾼만이 주환과 변경백을 제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장신구와 마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귀족들과 달리, 몰이꾼은 몸 하나만으로 말에 오른다. 그만큼 속도가 빨랐다.
개 몰이꾼들이 휘익 휘익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었다. 멀리 떨어진 개들에게 뭔가 명령을 내리는 것 같다. 개들의 소리가 더욱 난폭하고 요란해졌다.
조금 달리자 멧돼지의 모습이 보였다. 사냥개들이 커다란 야생 멧돼지를 나무가 많은 구석에 몰아넣은 참이었다.
몇몇 사냥개들이 멧돼지의 다리와 몸을 물어뜯고 있다. 대부분의 개는 앞뒤를 막으며 심하게 짖어댔다.
멧돼지는 이리저리 방황하며, 어떻게든 개를 떨쳐내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변경백이 그 모습을 보면서 말을 탄 채로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흥분한 모양이다. 말도 분위기에 취한 듯 푸득 푸득 소리를 내며 거칠게 콧김을 뿜어댔다.
몰이꾼들이 휘익, 휘익, 휘파람으로 신호를 주자, 몇 마리의 개가 자리를 바꾸어 멧돼지를 압박해간다.
다른 귀족들은 아직 근처에 도착하지 않았다. 변경백이 주변에 시선을 주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저놈은 자네와 내 것일세.”
변경백이 사납게 웃으며 화살을 꺼내자, 개 몰이꾼들이 다시 휘파람을 짧게 불었다.
그 소리를 듣고 개들이 멧돼지에서 조금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멧돼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방에서 요란하게 짖고 있었다.
“화살을 꺼내게.”
변경백이 주환에게 말하며 훌쩍 자신의 화살을 날렸다. 강한 바람을 타고 변경백의 화살이 멧돼지의 급소에 꽂힌다. 바람 마법을 사용한 것 같다. 멧돼지에 박힌 화살보다 구멍이 크다. 붉은 피가 상처에서 넘쳐흘렀다.
하지만 멧돼지는 여전히 서 있었다. 화살 한 대 정도로는 쓰러지지 않는다. 애초에 변경백도 멧돼지가 죽을 만큼 강한 마력을 화살에 담은 것은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짐승을 죽이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니까.
주환도 변경백을 따라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조금 강하게 마력을 담았다. 이게 귀족의 오락이라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그걸 즐길 마음은 되지 않았다. 그냥 깨끗하게 고통 없이 죽여주고 싶었다.
멧돼지의 비명소리가 꽥꽥 숲을 울리고, 개들의 흥분이 더욱 거세졌다. 주환의 화살을 맞은 멧돼지가 둔하게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변경백이 히죽 웃는다.
“확실히, 자네는 귀족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 멋이 없어.”
“….”
멧돼지를 단번에 죽여버린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주환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약간 숙였다. 흥을 깬 것 같아 조금 미안해졌다.
뒤늦게 다른 귀족들이 도착했다. 사냥감을 자랑하는 변경백의 목소리와 아쉬워하는 귀족들의 소리가 어우러졌다. 큰 웃음소리가 사람들 입에서 터져 나온다.
주환은 멧돼지의 눈동자에서 힘이 조금씩 빠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숲에 진동하는 피 냄새, 파티에서와는 달리 거칠게 행동하는 귀족들, 침을 흘리며 흥분해서 짖고 있는 개, 쓰러져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멧돼지.
한 번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걸 데자뷔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자신이 먼 옛날로 돌아가 과거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아니, 달라, 조금 다르다. 사람이 더 많았다. 멧돼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쓰러진 것은….
꿈을 꾸는 것처럼 멍한 상태에 있는데, 갑자기 연화의 뿔이 연한 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주환은 망상 같은 상태에 빠져 있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뿔에서 빛이 나고 있지만, 연화가 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힘을 쓰려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누군가에게 공명하는 것 같다.
“왜 그러니?”
주환이 묻는 순간, 연화가 크게 울면서 앞발을 들었다. 허공을 밟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인다.
모두가 깜짝 놀란 상황에서, 연화가 휙 몸을 돌렸다. 주환의 명령을 듣지도 않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은 오즈 때문이다. 아, 리지와 도로시에게 무슨 일이 있구나. 금방 알았다.
주환은 연화의 등에 납작하게 붙은 채 고삐를 바짝 당겼다. 사냥할 때와 달리 엄청난 속도로 달린다. 바람이 칼처럼 주환의 피부를 긁어댔다.
바람으로 둥글게 벽을 쌓아 칼바람을 막고 잠시 달리자, 연화는 순식간에 숲을 빠져나갔다. 아주 잠깐 달린 것 같은데, 멀리 원뿔처럼 생긴 천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부서져 내려앉아 있었다. 그 주위, 의자와 탁자도 모두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다. 분명히 오즈가 한 것이다. 가슴이 크게 뛰고 손바닥에 땀이 뱄다.
‘리지와 도로시는….’
난장판 된 가운데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시선이 갔다. 가운데 둥글게 사람이 비어 있는 곳이 있었다.
리지의 모습은 금방 찾았다. 서 있는 뒷모습에는 아무런 혼란도 없다. 머리 모양도, 옷도 멀쩡하고, 피가 묻지도 않았다.
도로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즈 옆에서 뭔가 소리치고 있었지만 멀쩡해 보였다.
하아,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안심한 상태에서 확인하자 겨우 마차와 리지의 중간쯤에 서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옷은 이 세계의 것이지만 검은 머리와 피부색으로 동양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 여자가 용사인가.’
오즈는 리지 바로 앞에 선 채 용사를 위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일의 발단은 용사인 것 같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연화가 크게 도약하며 허공을 날았다. 마치 날개가 달린 것 같다. 주환은 모여 있는 사람들과 리지를 훌쩍 넘어 용사 앞에 섰다.
여전히 오즈가 날이 선 반응을 보이며 뿔을 빛내고 있었다. 여차하면 곧바로 용사를 공격할 것 같다.
아직까지 직접적으로 죽이려고 하지 않은 건 아마 저 여자에게 리지를 해치고자 하는 마음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위협이라 판단한 거겠지. 이 정도로 난장판을 벌여 놓은 걸 보면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리지와 도로시는 괜찮은가. 다시 한번 정면에서 확인했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다만, 리지가 조금 이상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다. 길 잃은 아이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얼굴색도 좋지 않다. 보통 때도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해져 있었다.
혹시 용사가 무슨 짓을 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 꼭대기에서 차가운 것이 내려왔다.
용사가 그에게 말을 건 건 그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주환 씨. 저, 기억해요?]한국말이다. 역시. 타이론의 용사 두 명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구나.
주환은 연화의 고삐를 잡아당겨 몸을 돌렸다.
용사가 연화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중얼거렸다.
[유니콘? 진짜 유니콘이야? 대단하다.]용사가 눈을 치뜨며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저건 셀카 찍을 때의 얼짱 각도라는 걸 거다. 예전 회사 다닐 때 같은 부서 여직원이 곧잘 저런 식으로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이 아닌 실제 사람을 보면서 저러는 건 처음 보았지만.
용사는 반짝거리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탁자며 천막까지 부서져내려 주변이 온통 아수라장인데, 이 여자는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강심장인지, 아니면 무딘 것인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주환의 감각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주환 씨, 정말 대단하네요. 루돌프가 두 마리라니. 한 마리만 있어도 굉장한 거라고 들었어요. 나는 그런 것도 하나 없이 여기에 오는 바람에 정말 곤란했는데. 나, 유니콘 처음 봐요. 한 번 만져봐도 될까요?]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다. 용사라는 건 금방 알았지만 처음 보는 여자다. 무엇보다, 주환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밝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걸 마음대로 파헤쳐진 거야. 짜증이 확 치밀었다.
“누구야 너?”
자기도 모르게 거친 말이 나갔다.
[어.]용사가 약간 당황한 것처럼 움찔하더니,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 그렇게 말하니, 설마, 그 커플인가.
산타와 헤어지고 전철에 탔을 때, 주환 맞은편에 행복해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지금 여자의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본 듯한 얼굴인 것도 같다. 부러웠기 때문에 두 사람의 모습이 약간 뇌리에 남아 있었다.
“….”
그 남녀가 같이 이곳에 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커플은 주환 때문에 이곳에 휩쓸려온 건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놈의 산타. 이런 곳에서까지 일의 마무리가 허술한 건가.’
주환이 직접 끌고 온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산타의 잘못이지만, 그래도 원인을 따져보면 자신 때문이다.
주환과 달리 저쪽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끌고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주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즈가 무엇 때문에 저렇게 경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여자에게 나쁜 마음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눈치가 없고 뭔가 조금 이상한 느낌일 뿐이다.
‘이쪽에 피해가 없다면 적대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고 해서 아는 척해 줄 생각은 없지만. 오즈와 연화가 경계한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모르는 상황에서 가족을 이 여자에게 가까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주환은 훌쩍 연화에게서 내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신과 용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뭔가 가십거리가 생겼다 싶은지 사람들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주환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을 알아봤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예쁘네요, 유니콘이라는 거.]용사가 살짝 손을 뻗어 연화를 만지려고 했다.
하지만 연화는 그걸 피하며 험악하게 푸드득거렸다. 허공에 발을 들어 올리며 지금 당장이라도 용사를 밟아버릴 것 같다. 오즈보다도 반응이 험악했다.
용사가 깜짝 놀란 것처럼 몸을 틀면서 비틀거렸다. 바로 근처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왜인지 주환 쪽으로 쓰러진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녀의 허리를 받치는 순간, 용사가 작게 비명을 지르며 품속으로 살짝 들어왔다.
아, 짜증. 밀어버릴까.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여자에게 그럴 수는 없다.
주환은 용사를 품에 넣지 않으려고 몸을 약간 뒤로 물렸다. 그 바람에 주환의 손이 그녀의 살갗을 살짝 스쳤다.
“!”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핏속으로 수천 마리의 뱀이 들어오는 것 같다. 미끈미끈한 것이 전신을 휘감아 피부를 꽉 죄었다.
이 느낌, 이 감각을 아는 것 같다. 어둡고 축축, 안 좋은 것이다. 고통과 원망, 괴로움이 가득한….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주환은 용사를 확 밀쳤다.
“꺄악!”
용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기우뚱 넘어갔다. 이런, 너무 당황했다. 주환에게 이 여자를 상처 입힐 의도는 없었다.
용사가 쓰러지기 직전, 주환은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을 사용해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세우면서, 하지만 그래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주르륵 더 밀었다.
용사는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3, 4 미터 정도 멀어졌다.
용사가 바로 앞에서 사라지자, 오즈가 겨우 안심한 것처럼 삐잇, 삐잇, 소리를 냈다. 이제 할 일을 끝냈다는 것처럼 도로시 위로 톡톡 뛰어 올라간다.
자신이 순간적으로 느꼈던 그 괴이한 감정은 착각이 아니었다. 오즈의 행동이 그걸 말해준다. 저 용사에게는 뭔가 이상한 것이 있다. 일반 사람은 느끼지 못하지만, 연화와 오즈는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뭔가가 있다. 아마 그것이 그녀의 능력일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어, 오즈, 이제 끝났어? 괜찮아? 하지만 그러면 안 돼. 엄마한테 혼난다구. 음식은 중요한 거야. 땅에 버리면 안 돼. 탁자도 의자도 엄청나게 많이 부러졌잖아. 저게 다 돈이야. 알겠어? 저런 걸 어, 소올? 소홀?히 하면 가난뱅이가 되는 거라구.”
도로시가 오즈를 품에 안으며 쫑알쫑알 잔소리를 했다. 리지가 평상시에 하는 말과 비슷하다. 엄마 흉내를 내는 모양이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귀엽게 삐죽삐죽거렸다.
리지보다 용사에게 가까이 있었던 도로시에게 뭔가 영향이 가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괜찮은 것 같다.
주환은 용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만치 밀려난 용사의 얼굴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근처에 있던 노신사가 당황해서 용사를 에스코트하고 있다. 옷에 새겨진 문장과 얼굴 생김새를 보면 공작인 모양이다.
용사가 넓게 퍼진 드레스를 물결처럼 흔들며 가까이 다가왔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공작의 손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물러서라.”
주환은 조용히 말하고 리지와 도로시 앞에 바람을 일으켰다. 혹시라도 저 용사가 가진 것이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벽을 세운 뒤, 몇 발자국 그녀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