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3)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53화(153/235)
#153 싹 틔우는 남자
#153 싹 틔우는 남자
모든 지역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막처럼 메마른 땅만 펼쳐져 있었다. 이쪽도 저쪽도 바닥이 쩍쩍 갈라져 거북이 등처럼 되었다.
“아빠, 도로시 생각에는 저쪽이야.”
도로시가 어디를 봐도 똑같은 지역 한 군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주환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도로시가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말했다.
“진짜야, 아빠. 도로시가 알아. 저기 맞아요.”
도로시가 열심히 손가락을 흔든다. 하지만 도로시의 몸이 흔들리면서 어느새 손가락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도로시가 저렇게 말하기도 하고…저쪽으로 가볼까?”
“…그럴까요?”
어차피 이쪽으로 가나 저쪽으로 가나 마찬가지다. 어디가 어딘지 전혀 모른다. 벼룩이 튀는 곳으로 간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주환과 리지는 길을 잃었다.
지금은 정처 없이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제대로 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바위를 찾고 그림과 흡사한 곳도 몇 군데나 찾아냈다.
문제는 이 지역이 너무 메말라서인지, 아니면 가뭄 때문인지, 표지판 역할을 하는 나무나 지형이 없어지거나 변해버린 데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주환과 리지가 길 찾는데 서툴 뿐인 지도 모르고.
어쨌든 여긴가 저긴가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주환과 리지는 어느새 엉뚱한 곳에 서 있었다.
“….”
그런 것 같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니 전혀 엉뚱한 곳인지, 아니면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가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먹을 것은 충분하고, 여차하면 사냥을 하면 된다. 물도 마차 옆에 부착된 큰 통에 제대로 준비되어 있다. 당분간은 사막을 돌아다녀도 죽을 일은 없었다.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물이라면 지금 주환의 몸에서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중이기도 하고, 진짜로 걱정 없다.
하지만 역시,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은 불안했다.
변경백령의 숲과 대지는 굉장히 넓다. 잘못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아무도 없는 곳을 헤매며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정말로 끔찍해졌다.
‘뭔가 발견해야 할 텐데.’
약간 걱정하면서 마차를 몰다 보니, 마력 탐지에 몇 명의 사람이 걸렸다.
“연화야, 가자.”
사람들의 흔적을 놓칠까 싶어 자기도 모르게 조급해졌다.
주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연화가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다.
공기가 옆으로 휙휙 지나면서 리지와 도로시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어!”
연화가 빨리 달리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한 도로시가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이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몸을 쭉 위로 늘였다.
“아하하하하! 도로시는 화살이다!”
굉장히 기쁜 모양이다.
‘연화가 이것보다 몇 백배는 빠르게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더 놀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리지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굳은 듯 앉아 있었다. 도로시와 달리, 리지는 빠른 게 무서운 것 같다.
*
그렇게 잠시 달려서 만난 사람들은 굉장히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 와서 찢어진 옷을 기워 입는 건 여러 번 보아왔고, 처음에는 리지와 도로시도 그런 옷을 입었다.
지금도 리지는 옷이 찢어지면 보이지 않도록 잘 고안해서 천을 대고 누비거나 깁는다.
리지는 작은 옷 조각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것 같은 옷감은 주머니나 걸레가 되고, 어떤 건 천 사이에 넣고 누벼 솜처럼 활용되었다.
그녀에게는 현재 사용하는 모든 것이 귀하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은 그런 경지를 넘어섰다. 그냥 누더기다. 어느 것이 옷감이고 어느 것이 실인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
리지도 주환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 모습,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리지가 처음 모험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물가를 듣고 놀라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군.’
이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리지에게 베른 모험가 마을의 물가는 그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쌌을 거다.
겨우 그 당시의 리지 마음을 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리지도 옛날 생각이 난 모양이다. 힐끔 얼굴을 바라보자 우울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 모습에 자신을 대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몸에서 물이 생기지만 않으면 안아줬을 텐데.’
한숨이 샜다.
초라한 사람들 중에는 몸집이 작은 소녀가 한 명 있었다.
모두가 말랐지만, 그 소녀는 더욱 비쩍 마르고 얼굴이 창백했다. 핼쑥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거다.
비쩍 마른 탓에 소녀의 눈이 더욱 커 보인다. 눈동자에는 아직 힘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퀭한 느낌이었다.
‘어딘가 아픈 게 아닌가.’
왠지 조금 마음에 걸렸다.
소녀는 쭈뼛거리며 힐끔힐끔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연화가 있는 데도 주환의 모습이 더 신기한 모양이다.
‘…허긴 사람 몸에서 물이 생기고 있으니.’
주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에게 정중히 물었다.
“실례합니다. 우리는 푸른뱀 마을이라는 곳을 찾고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소녀와, 그 뒤에 서 있던 남자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어, 그거 우리 마을인데.”
“그런 마을은 처음 들어봅니다.”
소녀가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본다. 남자의 얼굴이 조금 무섭게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이들의 마을은 상당히 폐쇄적인 것 같다.
‘저 아이가 공연히 혼나지 않아야 할 텐데.’
마차는 사람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주환은 훌쩍 마차에서 내렸다. 피부에 모여있던 습기가 물이 되어 주르륵 땅으로 흘렀다.
사람들이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굉장히 이상해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 엄청나게 이상하지, 이런 인간.
주환은 사람들을 향해 몇 발자국 앞으로 나갔다.
“끄아아아악!”
주환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여자 한 명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심리적인 안전선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이 정도 거리면 안전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주환은 아마 그 거리를 너무 급하게 좁혔던 것 같다.
주환은 당황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닙니다. 저는 마수 사냥꾼입니다. 저희 가족은 마수의 이야기들을 모으고 있어요. 푸른뱀 마을에 마수가 나타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하기에 그걸 좀 들으려고 왔습니다.”
“….”
역시 괴물 같은 걸로 보이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겁을 먹은 듯 가만히 주환을 보았다.
마을이 어딘지 물어볼 상황이 아닌 것 같다. 그가 한 마디만 더 하면 모두 다 도망쳐버리는 게 아닐까.
주환이 난감해하는 동안, 리지가 재빨리 마차 뒤쪽으로 돌아갔다.
마차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리지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고기를 얇게 잘라 소금에 절여 훈제한 게 들려 있었다.
두어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분량으로 소분해 천주머니에 넣어둔 것이다. 주환과 도로시가 먹는 양 기준이기 때문에 상당히 많다.
리지가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주환의 눈을 보았다.
당연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 주환이 그러라는 뜻으로 부드럽게 웃자, 리지가 푸른뱀 마을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하루 이틀 정도만 마을에 머물게 해 주면 이 고기와 밀가루를 조금 드릴게요. 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께도 뭔가 사례를 할 거예요.”
리지가 주머니 입구를 펼쳐 속의 고기를 보였다.
“….”
조금 거리를 두고 있던 남자가 난처한 듯이 옆에 있는 여자 두 명을 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오고 간 뒤, 남자가 주춤주춤 가까이 다가왔다.
다른 사람과 달리 소녀는 그다지 주환이 무섭지 않은 모양이다. 삼킬 듯이 고기만 보고 있었다. 스릅, 소녀의 입가에 침이 흘렀다.
이들의 생활이 어떤지 알 것 같아 마음이 조금 아팠다.
남자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머무는 거야, 뭐, 괜찮습니다. 하지만 별거 없어요. 그저 마수가 마을에 내려왔던 적이 있었던 것뿐입니다. 다른 마을에서도 흔히 그러잖아요.”
남자가 조금 난처하다는 얼굴로 물지게를 보았다.
“저, 그런데 우리는 물을 길러 가던 중이라 마을로 안내하기 어려워서.”
말꼬리를 흐리면서 소녀를 본다.
“네가 안내해라. 알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알지?”
알지, 라는 말에 유난히 힘을 담는다.
소녀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고기 주머니에 손을 뻗었다.
리지가 주환 뒤쪽으로 물러나면서 말했다.
“이건 마을 촌장님께 드릴게요. 밀가루도 꺼내 드려야 하니까요.”
“…뭐…나한테 줘도 되는데…내가 떼먹을 것도 아니고….”
조금 실망한 것 같다. 남자가 중얼거리며 물지게를 진 채 몸을 돌렸다. 다른 두 명의 여자도 아쉬운 표정이었다.
남자와 여자들은 물통을 덜렁거리며 마른땅을 걸어갔다.
조금 걷던 남자가 힐끔 뒤돌아보았다.
소녀의 물지게를 마차 옆의 수납공간에 올리다, 주환과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남자는 어색하게 눈을 피하더니, 허둥지둥 발을 옮겼다.
‘그냥 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것뿐인데, 뭔가 좀 이상하네.’
소녀를 마부석에 태우기 위해서, 리지와 도로시가 조금씩 옆으로 당겨 앉았다.
“어, 저도 마차에 타나요?”
“그래, 당연하지.”
설마 걸어서 안내하려고 했던 걸까. 주환이 깜짝 놀라자. 소녀가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나, 이런 마차 처음 타봐요. 마을에는 이런 게 없거든요. 수레는 타봤는데 지금은 마을에 말이 없어요. 촌장님이 행상인 아저씨한테 말을 샀는데, 몇 년 있으니까 금방 죽어버렸거든요.”
“….”
그건 병든 말을 샀거나 너무 늙은 말을 산 걸 거다. 근처에 큰 마을이 없다 보니 행상인이 속이거나 폭리를 취하는 모양이다.
소녀가 눈부신 듯 연화를 보고 중얼거렸다.
“말이 죽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눠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
먹는구나. 무슨 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데.
연화가 힐끔 소녀를 노려보았다. 어쩌면 소녀의 눈빛에서 뭔가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마부석에 모두 오르자, 소녀의 안내로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좁아진 자리 때문에 주환 곁에 바짝 붙게 된 도로시가 치마 앞주머니 속에 얼굴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오즈, 축축해도 조금만 참아. 어쩔 수 없어. 아빠한테 비구름 있는 동안은 참아야 해.”
리지 옆에 앉아있던 소녀가 고개를 쭉 빼고 주머니 쪽을 보았다.
“그 안에 뭐가 있니?”
“오즈가 있어요.”
“오즈가 뭔데?”
“토끼야.”
뿔 자가 빠졌다. 하지만 도로시는 의기양양하다.
소녀가 약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토끼? 기르는 거야? 안 잡아먹어?”
“어…먹어? 오즈를?”
“…토끼라면서?”
“….”
도로시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아빠, 오즈 먹으면 안 돼요. 오즈가 아프대.”
“….”
안 먹어, 도로시.
그리고 오즈는 토끼가 아니라 뿔토끼다.
그렇게 말해주려다, 주환은 입을 다물고 툭 도로시 머리에 손을 얹었다. 요 녀석, 그동안 요리조리 아빠를 피해 도망 다녔겠다.
“아빠! 도로시 다 젖잖아!”
“알아.”
주환이 히죽 미소 짓자, 도로시 눈이 동그래지더니 깔깔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던 소녀가 가만히 주환과 도로시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
마을은 멀지 않았다. 조금만 방향을 틀었다면 찾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한데 이상하게 이 마을에는 울타리 벽이 없었다. 아무리 가난한 마을도 오랜 세월 지나면서 나뭇가지 하나라도 꽂아 벽을 만든다. 이렇게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마을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외진 곳이라 누가 침입도 하지 않는 건가?’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도적이나 약탈자는 없더라도, 적어도 짐승이나 마수는 있을 것이다.
비록 울타리가 너무 허술해 그런 것들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한다 해도,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그렇다. 어쨌든 뭔가 방어를 위한 물건을 만들게 된다.
리지도 이상했던 모양이다. 소녀에게 왜 울타리가 없는지 묻고 있었다.
“어…저기…그게….”
소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다 옷 위로 허벅지를 북북 긁었다. 난처한 얼굴로 힐끔 리지를 보고 말한다.
“필요 없거든요. 울타리 만들 사람도 없고.”
“…필요없다고?”
리지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아니…잘 몰라요.”
소녀가 너무 난처해하자 리지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하지만 필요 없다는 말은 이상하게 주환의 귀에 남았다.
“….”
보통의 마을은 외벽 밖이나 집 근처에 밭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땅이 너무 메말라서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환의 마차가 가까이 가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건물 뒤쪽에서 사람이 불쑥 나왔다. 머리도, 수염도 하얀 남자였다.
“저분이 촌장님이세요.”
소녀가 말하고 후다닥 마차에서 내렸다.
여자애가 촌장에게 달려가 뭔가를 설명하는 동안, 마을 안쪽에서 몇 명의 남자가 더 나왔다.
남자들의 시선이 주환과 리지, 도로시를 꼼꼼하게 살폈다.
아까 만난 남자의 태도에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초리에 상당히 날이 서 있다. 전혀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보통은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여행객을 환영한다고 들었는데 이상할 만큼 경계가 심하다.
“두 사람 모두 마차에서 내리지 마.”
주환은 리지와 도로시에게 주의를 주고 훌쩍 마부석에서 내렸다.
주환의 몸에서 투두둑 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에 스몄다.
마을 사람들에게 가까이 걸어가자, 주환의 발이 닿는 부위마다 철벅철벅 소리가 날 만큼 순식간에 젖었다.
마을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본다.
‘그래도 도망가지는 않네.’
가까이 다가간 주환이 촌장에게 뭔가 말하려는 순간, 사람들의 눈동자가 접시만큼 커졌다.
“저, 저, 저기….”
“…당신은 대체 뭐요?”
그때 뒤쪽 마차에서 도로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싹 나왔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뒤돌아보자, 주환의 발자국이 생긴 곳마다 초록빛 작은 싹이 톡톡 튀어나와 있었다.
이거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거야. 이제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빠, 대단하다! 비구름도 있는데 싹도 막 나오잖아.”
“….”
도로시는 굉장하다, 대단하다 소리치면서 난리지만, 주환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아무래도 인간에서 너무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