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4)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54화(154/235)
#154 마을의 비밀
#154 마을의 비밀
시간이 흘러도 오즈와 연화가 아무 반응하지 않는 걸 보고, 주환은 이 마을이 다소 이상하기는 해도 위험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도 처음과 달리 은근해졌다. 아마 주환이 걸을 때마다 여전히 싹이 돋기 때문일 것이다.
농사짓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미신을 곧잘 믿는다. 걷는 발자국마다 싹을 내는 주환을 홀대하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마을에서 며칠 묵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리지는 마차 안에서 얇은 이불 몇 장을 챙겼다. 약간의 음식과 옷도 몇 벌 꺼냈다. 주환은 잠들어있을 때도 물이 생긴다. 중간중간 이불을 갈아야 했다.
주환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잠든 상태에서도 그렇게 젖어 있으면….
끔찍한 상상이 언뜻 떠올라, 리지는 서둘러 머릿속의 생각을 지웠다.
주환은 모든 면에서 강한 사람이다. 치유 마법사이기도 하니까, 쉽게 병에 걸리거나 죽지 않는다.
‘괜찮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잘 해결될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갑자기 물이 모두 없어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지도 몰라.’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항상 능력을 손쉽게 사용하던 주환이 이번에는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주환의 몸에서 생기는 수분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마치 모여드는 물에 서서히 빠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냐, 아냐. 그렇지 않아.’
리지는 강하게 머리를 젓고 마차에서 나왔다.
물 때문에 마차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된 주환이 밖에서 기다리다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지금 가장 불안한 사람은 주환일 텐데, 그런 티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몸에 수분이 모이기 전보다 훨씬 다정하고 장난꾸러기처럼 된 것 같다. 그 모습이 마치 일부러 밝아 보이려 하는 것 같아서 마음 아팠다.
리지는 불안해지는 마음을 숨기면서 밝게 웃었다.
주환이 습관적으로 짐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다 멈칫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스윽 손을 내린다.
“….”
남편의 손에, 리지는 짐을 건네주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젖어도 되니 평상시처럼 도와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매번 물건이 젖어서는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으니까. 마음과 달리 현실은 냉정하다.
게다가 주환은 가족과 접촉하면 순간적으로 물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의 마음이 수분의 양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어쩌면 가족과 닿을 때 기뻐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접촉하는 것도, 짐을 만지는 것도 서서히 피하게 된 남편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제발,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음이 아우성친다.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꾹꾹 밟아 밀어 넣으며, 리지는 남편 옆에 나란히 섰다.
적어도 불안과 고난을 함께 지고 걸어가겠다는 혼자만의 각오를 다져본다.
“갈까요?”
리지가 싱긋 웃으며 묻자, 주환이 한 발 내디뎠다. 리지는 그 걸음에 맞춰 종종 걸었다.
숙소는 안내를 맡은 소녀의 집이다. 헛간을 빌리는 게 아니라 그 가족의 집안에 머물기로 했다. 그 집의 헛간은 여러 해 동안 손보지 않은 상태여서 사용할 만한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
아마 그 소녀 집안이 이 마을에서 가장 힘이 약한 모양이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 주환을 머물게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평범하지 않은 주환의 몸이 아마 두려웠을 것이다.
평범에서 벗어나는 건 기피된다. 고향 마을에서도 그랬다. 생각이든 모습이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과 다르면 따돌림당하고, 힘이 강한 자라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고 새싹 틔우는 존재를 홀대할 수도 없으니 가장 힘없는 사람에게 떠넘긴 거다.
리지는 소녀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도로시를 확인했다.
도로시는 아빠 발자국에서 자꾸만 돋아나는 새싹이 신기한 모양이다. 발자국을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안녕, 안녕, 말을 걸고 있었다.
오즈가 그 뒤를 열심히 쫓는다.
연화는 바보 쳐다보듯 멀리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새 발자국에 돋은 새싹이 더 많아졌다. 발 모양을 따라 빼곡하게 솟은 싹이, 마치 어미한테 입 벌리고 먹이 조르는 새끼 새처럼 벌어져 있었다.
‘굉장히 빨리 자라는 것 같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 몸에서 물이 나오고, 발자국에서 새싹이 돋는데, 풀의 성장이 조금 빠른 정도야 그리 신비할 것도 없다.
리지는 고개를 돌렸다.
* * * * * * * * * *
열려있는 문 너머의 집은 바닥을 따로 만들지 않고, 맨땅에 벽과 지붕을 올린 상태였다. 이런 집은 의외로 흔한 것 같다. 리지의 고향 마을은 대부분이 이렇다고 들었다.
“아버지! 손님 왔어요.”
소녀가 안쪽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주환은 자신의 몸에서 물이 뚝뚝 흘러 조금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다. 시간을 끈다고 물이 적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주환은 한숨을 뱉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한 발 들어서자마자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겼다.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역하다.
주환은 표정이 변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집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남새의 원인은 사람인 것 같다.
한쪽 벽에 나무 침상이 놓여 있고, 거기에 중년 남자가 누워 있었다.
병색이 짙다.
한눈에 보기에도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남자의 몸에는 작은 누더기 이불이 덮여 있었다. 이불이 작아 삐져나온 발이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다.
발의 색이 흙빛이었다.
어쩌면 그대로 썩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환이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하자, 중년 남자가 머리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파리한 얼굴로 히죽 웃는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이 집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별말씀을요. 집에서 묵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제 몸이 이래서 죄송합니다.”
주환은 물이 줄줄 흐르는 몸을 보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여기는 바닥이 맨땅이니까….”
그때, 도로시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이제 새싹 쫓아다니며 인사하는 놀이는 끝난 모양이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지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3, 2, 1….
문이 활짝 열리고 도로시가 뛰어들어온다. 어느새 머리에는 오즈가 올라가 있었다.
“엄마, 아빠! 오즈가 배고프대요!”
도로시가 자신의 이름을 오즈와 맞바꿔 소리쳤다.
중년 남자의 퀭한 눈이 약간 둥글어졌다. 소녀가 남자에게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봐요, 아버지. 토끼에 뿔이 있죠.”
“허어…처음 봤네. 여기는 마수가 오지 않.”
남자가 말을 하다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마수가 오지 않는다고?’
마수가 드물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있게 마수가 오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수다쟁이가 적어준 종이에는, 몇 백 년 전쯤 이곳에 마수가 여러 마리 내려왔다고 적혀 있었다.
마을의 울타리는 완파되고 집도 반 이상 부서졌다고 한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 한 채도 없었다고 하니, 반 정도 남은 집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마을은 여기저기 셀 수 없이 많다. 한데도 푸른뱀 마을이 기록으로 길드에 남아있는 이유는 사람이 거의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른다고 적혀 있었다.
‘어쩌면 싹이 나는 것도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 땅이 원인일지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는 싹이고 뭐고 땅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이 마을뿐이다. 당연히 이 땅을 의심하는 것이 먼저였다.
‘뭐야, 나는 단순히 물만 나오는 거였어.’
아니, 그것도 상당히 이상하기는 한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계속 내리는 비처럼 우중충하던 기분이 조금 맑아졌다. 뭔가 뿌연 안개가 거둬진 느낌이 들었다.
리지가 이상한 듯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미친 거 아니야.
그런 뜻으로 고개를 조금 끄덕여 보인 뒤, 주환은 중년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거래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
주환이 말하자, 부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주환을 보았다.
이 소녀와 남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순박한 것 같다. 거짓말도 잘 못한다. 생각한 게 그대로 얼굴에 나오고, 자기도 모르게 비밀을 입에 불쑥 담았다.
누군가가 보면 바보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환의 마음에는 이들이 좋아 보였다.
마차에서 자지 않고 굳이 마을 집에서 숙박을 한 건, 음식이나 돈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부녀에게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거짓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기꾼처럼 고기 조각 몇 개 쥐여주고 마을이 비밀로 하는 이야기를 훔치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치유 마법사예요.”
“에엑?”
“뭐, 그렇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주환의 말에 도로시가 통통 뛰어와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아빠는요, 엄마 손이 거칠해진 걸 매일 깨끗하게 고쳐줘요. 그래서 엄마 손이 엄청 예쁘거든요.”
“….”
도로시, 네가 자랑하면 어쩐지 매번 굉장히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아니? 이 아빠가 가장 하급 치유사처럼 보인다.
리지가 도로시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리지의 시선이 중년 남자의 다리를 향해 있다. 소녀와 남자에게, 괜찮다 고칠 수 있다는 뜻으로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말도 안 돼.”
남자와 소녀가 중얼거렸다.
“할 수 있어요.”
주환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끝에 마력을 조금 모았다.
다행히 이 마을은 굉장히 외진 곳이다. 소녀가 본 외지인은 행상인 외에 주환 가족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런 곳에서는 치유 마법을 조금 헐값에 사용해도, 혹은 돈이 아니라 이야기 듣는 게 치유의 대가가 된다 해도, 다른 곳의 치유 마법사와 충돌할 일은 없다. 어차피 치유 마법사 자체가 이 근처에 없으니까.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마법사를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다른 지역의 가격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 남자는 주환이 떠나면 아마도 금방 죽어버린다. 소녀도 조금 아까 기침을 계속하는 걸 보면 폐병이 아닌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어머니도 기침을 많이 하다 죽었다고 하고,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업계 질서가 어떻고 저떻고 해도, 알 게 뭐야,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가 너무 이 세계에 순응하고 살았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뭔가 하지 않으면 구정물은 그대로 구정물로 남을 뿐이다.
이 세계를 개혁하겠다는, 그런 거창한 생각 따위는 없지만,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 정도의 자유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주환은 소녀의 몸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 마력을 조금 주입해 보니 확실히 이 아이는 아프다. 병명까지는 모르지만, 아마 주환의 생각대로 폐병인 것 같다.
“뭐, 뭐, 뭐, 뭐야, 이거. 아버지! 뭐가 막 몸속을 돌아다녀요.”
소녀가 깜짝 놀라더니 흘러내리는 것처럼 주르르 바닥에 앉았다. 놀라서 다리의 힘이 풀린 모양이다.
“이 아이도 아프네요. 어머니가 기침을 하다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결핵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병색 짙은 중년 남자의 얼굴이 더욱 핼쑥해졌다.
“아, 안 돼요, 이 아이는.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어쩔 수 없지만, 이 아이는….”
“당신의 다리와 아이의 기침을 고쳐드리겠습니다. 대신 마수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자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소녀가 허둥거리며 남자를 부축한다. 남자는 간신히 상체를 조금 일으킨 뒤 고개를 숙였다.
“하, 하지만, 그 비밀을 우리가 말했다는 사실을 알면 마을에서 살 수 없습니다. 쫓겨나요. 이런 벽지에서 쫓겨나면 우리는 그대로 굶어 죽습니다.”
“괜찮아요. 당신이 중요한 이야기를 모두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서만 조금 주면 돼요. 우리가 어디를 조사해야 할지, 무엇을 보면 될지.”
슬쩍 리지를 보자, 그녀는 어느새 도로시 귀를 양손으로 꼭 막고 있었다. 도로시가 불쑥 어디에선가 누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리지의 눈치가 나날이 빨라진다.
‘귀여워.’
몸집 작은 리지와 더 작은 도로시가 한데 뭉쳐 있으니 귀여운 동물의 왕국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몸에서 물이 나오고 있지 않다면 자기도 모르게 안아 버렸을 텐데, 아쉽다. 벌써 며칠째 리지에게 닿지 못한 건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주환은 우울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남자와 소녀를 보았다. 흥정 같아서 미안합니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속삭이는데, 남자가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다른 사람이 없는 데서.”
남자가 소녀를 힐끔 보고 말했다. 어쩌면 여자나 아이에게는 알려주지 않는 이야기도 있는지 모르겠다.
주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녀의 몸에 살짝 손가락을 댔다. 이 아이의 치료는 쉬웠다. 마력은 없으니 충돌이 일어날 일도 없다. 그저 아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적은 양의 마력을 조금씩 주입해 치료하면 끝이었다.
“몸이 따뜻해요.”
신기한 모양이다. 소녀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서 보고 어깨를 움직여 보았다.
“몸속이, 이렇게, 화악, 뜨거워지는 느낌이….”
아버지에게 설명하는 소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눈동자의 힘이 아까와는 다른 것 같다.
‘뭐, 느낌이 아니라 진짜겠지.’
우리의 몸은 정말 솔직해서, 입은 거짓말을 해도 몸은 속일 수 없다.
“우리는 저쪽으로 가서 식사 준비를 할까?”
리지가 소녀와 도로시를 데리고 집의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들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피한 뒤, 주환은 남자의 다리에 놓인 이불을 들췄다.
살이 썩어가고 있다. 심하다. 이런 상태로 용케 아직까지 살아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고통이 심할 텐데,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남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괜찮아요.”
“….”
“이 마을 사람은 다른 곳보다 고통을 적게 느낍니다. 병이 들어도, 죽기 직전까지 아주 많이 아프지는 않아요.”
주환은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썩어 문드러진 부위에 마력을 조금 흘려 넣었다.
“모두 마을이 비밀로 삼고 있는 밭 때문이죠.”
“….”
“아주 오래전에 마수가 여러 마리 내려왔대요.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답니다. 그 당시에는 아직 마을 주변에 물도, 경작할 만한 땅도 조금은 남아있었대요. 이렇게 몽땅 마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주환이 마력을 조금씩 더 주입하자, 남자가 얼굴을 약간 찡그렸다.
“왜요? 아픕니까?”
“아니요. 간지러워요. 발가락이. 이상하죠. 발가락 따위, 최근에는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아무 감각도 없었는데.”
남자가 웃는다.
마수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밭에 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몇 명 없었다고.
하지만 냄새를 맡고 마수가 사람들이 있는 밭으로 달려왔다. 모두가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을 때, 손가락보다 작은 뭔가가 도와줬다고 한다.
“날개가 달렸다고 합디다. 사람 모습인데 날아다닌데요.”
마을의 여자가 바로 전날 우연히 그 생물을 도운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날개 달린 생물의 말로는 거미줄에 걸렸는데 여자의 도움으로 빠져나왔다고 했다. 여자는 알지도 못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고마워했죠.”
마을은 모두 파괴되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다행히 약탈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식량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건물 잔해를 치우면 어쨌든 먹을 건 되찾을 수 있다.
“술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해서, 누군가가 집에서 빚은 술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몸집이 작은 생물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먹는 컵으로 한 잔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참으로 무서운 거죠.”
술에 취한 생물이 하하 웃으며 바닥을 구르자 마수에게 짓밟힌 작물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생물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자신의 종족은 죽어도 이 세상에 좋은 일을 한다고 떠벌렸다.
“죽은 몸을 땅에 묻으면 그 부분의 땅이 비옥하대요. 매년 가장 훌륭한 작물을 얻을 수 있고, 뭘 심어도 병에 걸리지 않고 튼튼하게 잘 자란답니다.”
주환이 여러 번 적은 마력을 돌린 덕분에 남자의 상처가 조금씩 낫기 시작했다.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아가는 상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주환을 보았다.
“이런 능력,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마세요. 사람은 끔찍한 존잽니다.”
남자가 슬픈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