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57)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57화(157/235)
#157 산타벼룩
#157 산타벼룩
도로시가 다시 새싹을 향해 소리쳤다.
“걱정하지 마! 우리 아빠가 구해줄 거야. 우리 아빠는 엄청나게 강하다구! 치유 마법사야! 널 살려줄게!”
새싹한테 마음대로 약속하면 안 된다. 누구한테도 마음대로 약속해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나쁜 사람한테 계약당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주환은 몸을 조금 굽혔다. 도로시가 작은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를 향해 팔을 벌린다. 하지만 도로시는 주환 앞에 도착하자, 바로 앞에서 주춤하며 섰다.
“아빠, 이제 물 안 나와?”
“그래.”
그제야 도로시가 활짝 웃으며 주환의 몸에 와락 달려들었다.
“아빠다!”
“….”
“아빠, 도로시가 구해준다고 했거든. 그래서 새싹 구해줘야 해. 살려달래.”
“…도로시, 새싹이든 사람이든, 누구한테든, 함부로 약속하면 안 돼.”
“왜?”
“이 세상에는 나쁜 것들이 많으니까. 나쁜 마음을 먹고 뭔가 약속하게 하면 어쩌니.”
“….”
도로시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끄덕였다.
“응, 알겠어, 아빠. 도로시도 알 것 같아. 약속하면 자꾸만 그게 또 생길까 봐 걱정해야 하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로시가 납득한 것 같으니 일단 넘어간다. 무엇보다, 지금은 물마법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신경이 거기에 미치지 않았다. 그저 기쁘기만 하다.
“우리 도로시, 굉장히 오랜만인 것 같구나. 이렇게 안아보니 그새 많이 큰 것 같아. 묵직해졌네.”
“아빠! 도로시 무거워?”
“…아니.”
여자애라고, 무겁다는 말은 싫은 것 같다. 주환은 작게 웃었다.
“우리 도로시는 새털처럼 가볍네.”
“새털은 싫은데.”
“왜?”
“새털만 있으면 어떻게 해? 몸이 없으면 날지도 못하고, 도로시가 새털이 되면 고기도 못 먹고…또….”
도로시에게 새털 같다는 비유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나이의 아이는 뭐든 말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아!”
도로시가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반짝 들었다.
“아빠! 새싹! 새싹 구해주세요!”
“….”
지금이라면 도로시가 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새싹은 어떻게 구하면 되는 거니? 옆에서 리지와 소녀가 깔깔 웃고 있었다.
도로시가 자신감 있게 오즈를 보고 외쳤다.
“오즈! 네가 나설 차례야!”
오즈가 이상하다는 듯이 귀를 쫑긋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작은 털투성이가 바닥을 구르는 것처럼 쪼르르 달려와 새싹 앞에 섰다. 새싹의 냄새를 킁킁 맡아본다. 뭔가 있는 모양이다.
“힘 내, 오즈! 새싹의 목숨은 너한테 달려있어! 힘내라, 힘!”
도로시의 명령 때문인지, 아니면 계속 힘내라고 도로시가 응원하기 때문인지, 오즈가 굉장히 열심이다.
‘뭐, 정말로 뭔가 찾아내는 건가.’
설마 비명당근 때처럼 뭔가 바닥에서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갑자기 오즈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아빠! 오즈 따라가야 해! 아빠!”
그렇게 급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도로시는 굉장히 조급한 모양이다.
리지는 아이 장난에 어울려준다는 생각인지 웃고 있었다.
도로시의 재촉을 받으며 밖으로 나가자, 맑은 아침 햇살이 사방에 퍼져 있었다.
집 앞 땅에는 핏자국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중년 남자는 불이 조금 남은 잿더미 앞에 앉아있었다.
“어?”
도로시가 핏자국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팔짱을 끼고 주환에게 딱 붙어 있던 리지의 몸이 굳었다.
그저 바닥에 뭐가 있네, 하고 놀란 도로시와 달리, 어른인 리지는 금세 바닥의 핏자국이 뭘 뜻하는지 알아차린다.
하지만 곧바로 연화가 옆으로 다가와 두 사람의 시야를 가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묻는 것처럼 리지가 주환을 올려다본다.
주환은 쓴웃음을 짓고, 품 안의 도로시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오즈를 쫓아가 볼까.”
“응! 아빠, 빨리! 빨리! 잘못하면 새싹이 죽어버려!”
아이의 관심은 정말 간단하게 이리저리 옮겨간다. 도로시는 조금 전 보았던 핏자국에는 어느새 시선도 주지 않았다.
주환은 소녀가 아버지에게 달려가는 걸 곁눈질로 보면서, 오즈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저 부녀는 어찌 되는 걸까, 잘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마음이 우울해졌다.
오즈는 마을 중심을 한참 지나 외곽으로 달려갔다.
띄엄띄엄 서 있는 집을 주환이 한 채 지나칠 때마다, 누군가의 시선이 몰래 그의 모습을 살폈다.
아마 밤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던 여자들, 혹은 아이들일 것이다.
‘죽었어야 할 사람이 어째서 저렇게 당당히 걷고 있는 건가 하고, 다들 두려움에 떨고 있겠지.’
보복을 당하는 걸까, 저 남자는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할까, 그런 생각으로 뒤늦게 겁이 난 걸 거다.
그 안에는 습격에 참가하지 못한 남자도 몇 명 있겠지만, 살의를 가진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슬슬 뒤따라오는 연화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새벽이라는 느낌이었지만, 이제 완전한 아침이다. 사막 같은 이 땅에도 새가 사는지, 어디에선가 새소리가 들렸다.
문득 연화가 고개를 돌려 한 집을 보았다. 어쩌면 그 집의 누군가가 주환에게 악감정을 품었을까.
주환은 도로시를 왼팔에 옮겨 안고 연화의 등에 팔을 뻗었다. 툭툭 연화의 등을 두드려준다.
“괜찮아.”
며칠간 가족을 힘들게 하던 몸마법을 해결했다. 리지와 도로시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이 마을 여자와 아이쯤은 너그럽게 넘어가도 된다.
그렇게 속으로 말을 건네자, 연화가 조용히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래, 착한 아이다.’
주환은 다시 한번 연화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을 외곽으로 가자, 제법 높은 울타리가 길게 세워져 있었다. 사람 시선보다 약간 높다.
입구를 막고 있는 천을 들추고 들어가자, 푸른 초원 같은 밭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밭 중에서 가장 풍성한 것 같다. 만원 버스에 미어터지는 승객처럼 밀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것이 바로 작은 생물을 심었다는 그 밭인 모양이다.
밭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이곳에서는 마을 외벽 대신, 밭에 울타리를 만들었던 것 같다.
“굉장하네요.”
리지가 멍하니 밭을 보고 중얼거렸다.
몸집이 작은 오즈는 밀 사이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도로시가 애가 타는 듯 목을 길게 빼고 이리저리 밭을 쳐다보았다.
“오즈는 어디로 갔지? 너무 늦어서 새싹이 죽으면 어떻게 해”
그때 발밑에서 밀을 해치고 오즈 얼굴이 톡 튀어나왔다.
“삐이!”
뭔가 찾은 모양이다. 쫓아오라는 듯 폴짝폴짝 오즈가 다시 밭으로 뛰어갔다. 토끼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오즈가 가는 방향으로 밀이 파르르 흔들리며 길을 만들었다.
어쩔 수 없다. 오즈가 찾아낸 것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주환은 천천히 밀밭 속을 걸었다.
어느 정도 밀밭 속을 걸어가자, 오즈가 멈췄다. 사방이 밀로 가득한 가운데서 땅을 파기 시작한다.
파파파파, 흙이 밖으로 튀어나와 쌓이고, 작은 구멍이 점점 깊어졌다.
잠시 뒤에는 오즈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흙만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흙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안쪽에서 굴을 파고 있는 모양이다.
1미터, 2미터…. 한 3,4 미터 이상은 파고 들어간 것 같다.
이제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무렵, 뭔가가 구멍에서 파르르 솟구쳐 날아올랐다.
“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 죽는다. 나 죽는다, 팽! 술 먹고 잠들었을 뿐인데 왜 땅속이야, 팽! 또다시 술 먹고 개가 된 건가. 그래서 토사가 무너진 곳에 묻혀버렸나, 팽!”
구멍에서 하늘로 튀어나온 건 손가락보다도 작은 생물이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잠자리 날개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물의 모습이 이상하다. 보통 이런 생물은 팅커벨처럼 예쁜 인간형의 여성이 아닌가.
한데 어째서인지 이 녀석은 흰 털을 동글게 빚어 만든 인형처럼 생겼다. 동글동글한 몸에 흰 수염 같은 털이 잔뜩 붙어 있었다.
동글동글 뚱뚱해서, 꼭 작은 털뭉치 두 개를 붙여 놓은 것 같다. 거기에 통통한 팔다리를 붙이면 딱 이놈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벌거숭이 변태 할아버지 느낌이 났다.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그렇다.
주환의 품에 안겨있던 도로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팽! 언제 여기에 왔어?”
주환은 도로시의 얼굴을 보았다. 도로시는 이 이상한 생물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언제? 주환과 함께 있을 때는 아니다. 도로시가 이상한 생물을 만났는데도 주환이 모를 만큼 오래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다.
언뜻 옆에 있는 리지를 보았지만, 그녀도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모양이다.
도로시는 주환과 리지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 같다. 굉장히 당황해서 두 팔을 양옆으로 벌려 주환과 리지 앞을 막았다.
팽이라는 생물이 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도 같고, 주환과 리지를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팽! 이제 필요 없어. 새엄마 새아빠는 이제 안 줘도 돼. 진짜로 더 이상 필요 없거든. 지금 엄마 아빠면 돼! 죽이지 마!”
뭐? 주환은 도로시와 팽이라는 생물을 번갈아 보았다.
팽이 파닥파닥 요란하게 날갯짓하며 도로시 머리 위에서 빙그르 돌았다.
“뭐, 뭐, 뭐라는 거야, 이 꼬마는! 팽! 나를 무슨 살인자처럼 말하는데, 웃기지 마시라구! 팽! 이 덩치를 봐봐. 이렇게 작은데 내가 저렇게 커다란 인간을 어떻게 죽이니! 팽!”
화가 난 듯 팽이 빠르게 파닥거리며 허공을 난다.
“따져볼 것은 아주 많지만, 팽! 우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팽! 입이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내가 어디를 봐서 팽이냐구요! 팽! 나한테는 엄연히 산타벼룩이라는 거룩한 종족명이 있는 겁니다. 팽! 알겠어요? 이 인간 꼬맹이야? 팽!”
산타벼룩. 뭔가 이상한 게 나왔다. 그리고 확실히, 다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산타와 붕어빵처럼 닮은 것 같다. 빨간 옷과 모자만 빼고 얼굴에 털을 더 붙이면 된다.
“어, 미안해, 팽. 산타벼룩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잖아. 그래서 몰랐어. 말할 때마다 꼭 팽이라고 하니까 팽인 줄 알았지.”
산타벼룩이 흥, 흥, 콧바람을 일으키며 도로시의 코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팽! 이 말을 꼭 해야겠는데, 팽, 난 너를 모른다! 팽!”
“어!”
“하지만 이건 경고해야겠네. 팽! 우리를 만난 걸 떠벌렸겠다. 팽!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한다고 말하지 않았나? 팽?”
“저주받아.”
“그렇다, 팽!”
도로시가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꽉 막았다. 뒤늦게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을 떠올린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아무에게나 약속하지 말라고 했을 때 이상한 말을 했지.’
약속하면 그게 또 생길까 봐 걱정해야 한다고 했던가.
‘설마…이런 산타벼룩한테 새엄마 새아빠를 달라고 부탁한 건가…그래서….’
아니, 아니지. 그건 아닐 거다. 설마 그래서 도로시의 친부가 죽었다던가, 그런 일은 없겠지. 아까 산타벼룩도 자신에게 사람을 죽일 힘은 없다고 말했고.
주환은 손끝에 바람을 모았다. 팔을 뻗어 날아다니는 녀석의 몸을 잡는다.
산타벼룩은 재빨리 피하려고 했지만, 바람으로 주위를 굳힌 터라 도망치지 못했다.
“뭐, 뭐, 뭐냐, 인간! 놓아라! 팽! 저주할 테다, 팽!”
“그거 진짜인가?”
“뭐, 뭐 말이냐. 팽!”
“우리 애를 저주했다는 거.”
“….”
“너희들, 저주할 능력이 있는가? 사람을 죽일 수 있어? 그렇다면 너를 죽이면 저주가 풀리나? 아니면 도로시가 만난 놈을 잡아 죽이면 돼?”
“….”
산타벼룩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주환은 손가락에 힘을 조금 담았다. 위협이다.
어버버, 입만 벌렸다 닫았다 하던 산타벼룩이 정신없이 머리를 저었다.
“거, 거짓말입니다, 팽! 저주 같은 건 할 수 없어요, 팽! 우리의 신념, 우리의 행동 지침은, 은혜에는 은혜를, 원한에는 용서를, 입니다, 팽! 저주는 그저 허세일 뿐,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한 허풍입니다, 팽!”
품 안의 도로시가 휴, 하고 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도로시 이제 죽는 줄 알았어.”
리지가 불안한 듯 산타벼룩과 도로시를 번갈아 보고 말했다.
“도로시, 앞으로는 아무 하구나 약속하면 안 돼. 소원도 함부로 빌지 말고.”
“응, 엄마.”
도로시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산타벼룩을 힐끔 보았다.
“하지만 엄마, 그 팽은 굉장히 착한 팽이였어. 똑같이 생겼지만 이거랑은 달라. 그 애는 새한테 다쳐서 떨어졌거든. 도로시가 도와줬더니 많이 고맙다고 했어. 그래서 소원을 들어준댔어요. 고마우니까.”
도로시가 살짝 주환과 리지를 훔쳐보더니 우물우물 말했다.
“그때는 아버지가 더 무서워져 있었거든. 리지 엄마 오기 조금 전에. 매일 화내고 도로시가 보이면 발로 찼어요. 그래서 팽한테 새아빠랑 새엄마를 달라고 했더니 리지 엄마가 오고, 또 아빠가 온 거야. 그 팽은 나쁜 팽이 아니에요. 도로시 소원을 들어줬어.”
주환에게 잡혀 있던 산타벼룩이 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렇지, 팽! 우리는 은혜를 반드시 은혜로 갚는다, 팽!”
산타벼룩이 잡힌 채 날개를 빠르게 퍼덕였다. 흥분했는지 얼굴을 빨갛게 하며 외쳤다.
“우리가 누구? 팽? 우리는 자랑스런 산타벼룩! 팽!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아버리는 은혜 갚는 산타벼룩! 팽!”
산타벼룩이 주환의 손바닥 안에서 정신없이 파닥파닥 날개를 움직였다. 입으로는 같은 말을 계속 외친다. 팔다리를 정신없이 흔들고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작은 생물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물론 손안에 있는 이 녀석은 단순히 흥분해서 날갯짓하는 것뿐이지만. 하는 행동이 마치 작고 날갯짓 빠르기로 유명한 벌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