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60)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60화(160/235)
#160 잘못된 원한
#160 잘못된 원한
이 세상은 강자의 천국이다. 힘이 있으면 뭐든 마음대로다.
여자, 돈, 화려한 생활.
자신이 네크로맨서라고 알게 된 이후부터, 원해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죽은 것들을 되살리는 작업만 손에서 놓지 않으면 뭐든지 마음대로, 어떤 것도 손에 들어왔다. 모두가 우러러본다. 두려워했다.
“이리 와.”
태형은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는 여자에게 손을 뻗었다.
얼마 전 시종 앞에서, 이전의 여자는 질렸다고 투정처럼 중얼거린 적이 있다. 며칠 뒤 훈련을 마치고 텐트에 돌아와 보니 여자가 바뀌어 있었다.
먼저 여성보다 외모는 약간 떨어지지만 피부가 하얗고 고운 사람이다. 먼저 여자는 톡톡 튀는 매력이 있었지만, 이 여성은 조용하고 귀여운 편이었다.
그녀를 품에 안고, 태형은 문득 정화를 떠올렸다.
‘잘 지내고 있을까. 헤어질 때는 좀 불안한 상태였는데.’
그녀를 정말 오랫동안 좋아했다. 그녀는 나비 같은 사람이다. 화려한 날개를 퍼덕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이 남자를 좋아하다 싫증이 나면 새로운 남자를 찾았다. 누군가에게 정착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정화는 싫고 좋은 게 명확하다. 싫은 일은 명확하게 싫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싫은 것 같기도 하다. 입만 열면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웃으면서 싫어하는 일을 줄줄이 말하는 여자였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은 게 더 많은 여자.
모든 것이 불평이고, 모든 것에서 트집을 잡았다. 남들이 볼 때는 짜증 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우물쭈물 속으로 감추는 자신과 다른 점에 끌렸다. 타인이 싫어하는 걸 아랑곳하지 않고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그런 정화의 모습이 자신은 부러웠던 것 같다. 그녀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사랑했다.
그녀는 여러 남자를 사귀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항상 태형에게 돌아왔다. 아직도 날 좋아해? 그렇게 물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온다.
그때마다 이 여자의 마음에 정말 들어가 있는 건 자신 뿐이라고 태형은 기뻐했다.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보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남자와 남자를 사귀는 사이에 아무도 없어지면 잠시 들러 외로움을 달래는, 버리기는 아깝지만 완전히 자기 것으로 두기는 싫은 정도의 남자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도 정화에게는 단 한 명이었다. 그녀는 같은 남자를 두 번 만나지 않는다.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오직 자신만이 그녀의 곁에 계속 머물렀다. 여러 번, 여러 해를 거듭해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은 건 자신밖에 없었다.
‘하아.’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와서 변해버렸다. 타인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던 정화 특유의 매력이 없어졌다. 뻔뻔할 만큼 이기적이던 그녀가 남의 눈치를 보고 주눅이 들었다. 우물쭈물하던 태형의 성격이 전염된 것 같다. 꼴 보기 싫어졌다.
‘왜 그렇게 된 걸까.’
그녀 곁에 있을 때는 이런 의문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었다. 한 번도 그녀를 힐난하거나 험한 소리 한 적이 없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정신없이 그녀에게 고함치고 있었다.
‘이상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느낀다. 이렇게 멀어지고 시간이 흘러 그때를 돌아보니, 당시의 자신은 비정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뭔지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됐는지, 대체 왜 그렇게 정화가 짜증 나고 귀찮게 느껴졌는지….
‘돌아가면 화해하자.’
그래, 그러는 게 좋다. 지금의 그녀는 입지가 좁다. 네크로맨서로 자리 잡은 그와 달리, 정화에게는 아무 능력도 없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계속 초조해하고 있었다.
“왜 웃고 계세요?”
품에 안고 있던 여자가 그의 품을 파고들며 물었다.
“뭐? 내가 웃고 있었어?”
“네. 조금 이상한 표정으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자 뺨의 근육이 한쪽으로 뭉쳐 있었다. 여전히 웃고 있었던 모양이다.
태형은 손바닥으로 입가를 숨겼다. 어쩌면 자신은 변했는지도 모른다. 뭔가가 속에서 깨지고 비틀어진 것 같다. 문득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던 자신의 마음속이 드러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돼. 정화의 초라해진 모습이 즐겁다니,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잖아.’
왠지 소름이 끼쳤다. 뭔가가 이상한데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다.
“저, 저기, 용사님. 괜찮으세요?”
여자가 겁을 먹은 듯 몸을 굳히며 물었다.
태형은 여전히 웃고 있는 입을 가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아.”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 좋다. 소름 끼치고,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걸 허용하는 자신이 있었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항상 화려하게 꽃 피던 정화가 점점 시들해지고 있으니까. 태형의 마음 한구석은 그것이 못 견디게 즐겁다.
‘조금 더….’
그래, 조금만 더 있으면, 그녀는 모두에게 고립당하고, 결국 태형밖에 남지 않게 될 것이다.
보잘것없어진 정화의 앞에 구원자처럼 나타나 손을 내미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자, 결국 참고 있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날 밤늦게, 왕의 사자가 왔다며 시종이 잠자는 그를 깨웠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늦은 밤에 사람을 깨우는 거야?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면 안 되나?”
“죄송합니다, 용사님.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
태형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늦게까지 여자와 어울려 술을 마신 터라 머리는 멍하고 목은 깔깔하다. 한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중요하긴 무슨…. 기껏해야 언데드에 관한 이야기겠지. 뭐, 뻔해.’
매번 똑같다. 중요한 이야기라고 해서 긴장하고 들어 보면 마수를 조종해 보라고 다그치는 말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나라는 오래 이어온 전쟁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왕은 태형이 언데드 마수로 구성된 군대를 만들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쳇.’
그게 자꾸만 다그친다고 될 일인가. 네크로맨서라는 게 말은 쉬워 보여도 실제로는 굉장히 힘들다.
마수를 되살리는 것 자체가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았다. 언데드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녹아버리는 놈도 있었다.
‘여기까지 성공한 것만도 대단한 건데.’
조금 더 진행을 늦추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작업의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는 걸 보여준 뒤 서서히 진행했으면 저들도 네크로맨서가 공짜로 놀고먹는 직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어.’
태형은 불만을 감추지도 않고 언짢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시종이 재빨리 태형의 머리를 손질하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흐트러진 옷까지 모두 살핀 뒤에야 시종은 가볍게 절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 세계에서 귀족이나 귀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옷 입는 것, 물건 드는 것까지 모두 시종이 알아서 했다.
처음에는 조금 귀찮았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이제는 불가능할 것 같다.
‘정말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간사해.’
태형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천막의 입구를 젖히고 들어온 사람은 이전에도 몇 번 본 관리였다. 이곳에 온 뒤로는 만난 적이 없지만, 왕의 측근이다.
‘이상하네. 항상 다른 사람이 왔는데.’
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관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한 얼굴이었다.
“용사님!”
관리가 그를 부른 뒤, 입을 뻐끔뻐끔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러십니까?”
왠지 초조해서 묻자, 관리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비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정화님이….”
“!”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최근 그녀의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몇 번 일어났었다. 자살한 사람도, 미친 사람도 있었다.
“정화에게…무슨 일이 있습니까? 혹시 누군가가….”
관리가 붉게 물든 눈을 내리며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그…적국에서…시모니에서…정화님을 납치했습니다.”
“뭐?”
“죄송합니다. 저희 잘못이에요. 용사님이 왕도를 떠난 뒤 정화님이 너무 우울해하셨기 때문에 별궁으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태형은 관리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경비병들이 교대하는 시간을 노렸다고 한다. 그 시간이 가장 경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왕궁의 외곽에 자리한 별궁은 작고 소박한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경비병의 수도 적었던 모양이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람 많은 곳보다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이 나을 것이라 생각해서 궁을 옮긴 것인데….”
“그녀는…어떻게 됐는지 압니까? 무사합니까?”
“…그게…생명에는 아무 위험이 없을 겁니다. 시모니 왕국에서도 용사가 필요해서 납치…아니…그리 한 것일 테니까요. 다만 아무래도 여성분이다 보니….”
관리가 말을 흐리는 것을 들으며, 강태형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의자를 발로 찼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그놈들! 당장 죽여버리겠어. 그 나라 전체를 언데드로 만들어주마.]태형이 천막 밖으로 뛰쳐나가자, 관리와 병사들이 황급히 그를 잡았다.
“용사님! 참으십시오! 이대로 혼자 쳐들어가면 개죽음당할 뿐입니다. 지금은 참으셔야 합니다.”
관리가 뒤에서 태형을 두 팔로 꽉 안았다. 어떻게 했는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마력을 사용한 건지도 모른다.
“놔! 놔라! 이 개새끼들을 내가!”
“폐하께서도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으실 겁니다. 당장 군대를 일으켜 정화님을 되찾으러 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발! 폐하가 이곳에 군대를 이끌고 오는 걸 기다려주세요. 그래야 정화님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정화가 시모니 왕국에서 무슨 고초를 겪고 있을지 모른다. 이 세계에서, 아무 능력도 없는 정화의 가치는 없다. 기껏해야 마력 있는 아이를 낳는 용도 정도일 것이다. 그걸 알 정도로는 태형도 이 세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쪽도 용사가 자신들 품에 있다는 걸 백성들에게 선전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처음에는 강제로 뭔가 하려고는 하지 않을 거예요. 좋은 말로 구슬려 자신들 편으로 만들려고 할 겁니다. 이용 가치가 없어질 때까지는 괜찮아요.”
“….”
“그때까지 준비하고 구해내면 됩니다. 조금만 참으시면 곧 만나실 수 있어요. 폐하께서 군대를 이끌고 오실 때까지, 우리는 이곳에서 정화님을 구할 준비를 합시다.”
“….”
빌어먹을. 어째서 헤어질 때 그토록 매정하게 굴었을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웃으며 받아들이는 건데.
태형은 보이지 않는 먼 국경 쪽을 노려보았다.
“시모니…용서하지 않는다.”
태형이 이를 갈며 중얼거리자, 관리가 안심한 듯 숨을 쉬었다.
“조금만 인내해 주세요. 금방입니다. 금방 구출할 수 있어요. 그때까지 당신은 이곳에서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합니다. 마수는 힘들었지만 사람의 시체를 이용하면 제대로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군대를 만들면서 기다립시다.”
관리가 태형의 귓가에서 소곤거렸다.
* * * * * * * * * *
산타벼룩은 일단 잠이 들자 깨어나지 않았다. 쿠르르 쿠르르, 이상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운 모양이다. 리지와 도로시는 틈만 나면 작은 나무 상자에 넣어둔 산타벼룩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인형놀이를 하는 기분인지도 모른다.
‘팅커벨 같은 요정이었으면 나도 계속 쳐다봤을지 모르지.’
주환이 볼 때는 전혀 귀엽지 않은데, 리지와 도로시는 동글동글 털투성이가 너무 귀엽다고 난리였다.
허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변태 할아범 같은 느낌이 없어졌다. 그냥 털뭉치 인형 느낌이다. 귀엽다는 기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긴 한데…. 어쩌면 할아버지 목소리였기 때문에 변태 느낌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산타벼룩이 깨어나 뭔가 알아내기 전까지는 별 수 없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수밖에.
“…리지, 왜 그래?”
아까부터 리지의 표정이 이상하다. 꼭 썩은 만두를 먹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리지가 애써 주변을 보지 않으려고 하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 불안한 얼굴이 되어 그를 살짝 쳐다본다.
“저기, 주환, 그, 이상한 습기는 괜찮아진 거 맞죠?”
“그래, 리지. 이제 전혀 문제없어.”
“그런데 왜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비가 올까요?”
리지가 어딘지 모르게 울상인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땅에 보슬보슬 안개 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만 도넛처럼 그 가운데에 있는 마차에만 비가 내리지 않는다.
주환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한 거야, 리지. 괜찮아. 예전처럼 조종을 못하는 게 아니니까.”
“정말이에요?”
“그래, 걱정할 것 없어. 다른 마법하고 똑같아. 이건 내 뜻대로 움직여.”
“…그러면 다행인데.”
리지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바짝 주환의 곁으로 몸을 붙였다.
그런 아내를 안아주면서, 주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겠지.’
어쩌면 자신은, 혹은 자신의 일부는 악신이다. 악신의 환생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악신이 이 세상에 남긴 뭔가가 들러붙은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
‘그냥 내가 악신일 거야.’
뭐가 어떻게 되어 지구에 있던 자신이 이 세계의 악신인지는 모르겠다. 악신이었던 기억은 전혀 없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 도리도 없다.
그래도 자신이 악신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얼마 전 그의 몸 안으로 악신의 눈물이 스민 뒤에 확신하게 되었다. 아, 이것은 원래 내 것이었구나,라고.
이 세계의 사람이 고통받는 건 악신이었던 자신 때문이다. 악신이 내린 저주가 이 땅을 메마르게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인간이 악신에게 했던 일을 변호하려는 생각은 없다. 악신이 너무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 당시의 악신이었다 해도 아마 똑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다만, 옛 기억이 전혀 없는 주환은 악신과 그 부인을 불쌍히 여기기는 해도, 자신과 똑같은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리지의 남편, 도로시의 아빠일 뿐이다. 악신과 그 부인을 동정하는 단순한 인간이다.
그래서 악신과 동일하게 인간을 증오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인간은 이미 없는데,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리지와 도로시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해주고 싶다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행복하니,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게 된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선해서가 아니라, 지금이 행복하니까 너그러워졌다.
적어도, 메마른 땅을 돌아다니며 비를 내리게 할 정도로는.
‘뭐, 어차피 힘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물마법은 다른 마법과 달리 마력을 소비하지 않는다. 몸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비가 조금 내렸으면 좋겠다, 생각하면 비가 내렸다. 공기 중으로 악신의 눈물이 퍼지면서 공기 중의 수분이 따라붙는 느낌이었다.
겁먹은 다람쥐처럼, 리지가 살짝 그의 얼굴을 살폈다. 이전의 일로 리지는 완전히 겁쟁이가 된 것 같다. 불쌍한…. 주환은 아내를 껴안듯이 감쌌다.
“리지, 걱정할 것 없어. 정말로 이건 내가 부리는 마법일 뿐이니까.”
리지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다. 고삐를 잡은 리지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
커다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묻는 리지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겨우 그녀가 미소 지었다.
이걸로 가뭄이 조금 해소되었으면 좋겠네요,라고 리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될 거다. 단기간에는 안 될지 몰라도, 주환의 발길이 닿는 지역마다 아마 악신의 저주는 조금씩 풀려간다. 마치 얼어붙어 있던 시곗바늘이 서서히 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