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7)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7화(17/235)
#017 이 세상 어디에나 나쁜 놈이 있다
식사를 마친 뒤, 거스는 주환을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거스는 마을 쪽으로 향하지 않고 산과 평지가 맞닿아 있는 곳을 죽 따라 걸었다.
키 큰 나무들이 드물어지고 앙상한 가지의 작은 나무들이 많아졌다. 덩달아 나뭇잎도 줄어들었다. 대신 자갈이 많아져 미끄러운 겨울산을 걷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기우뚱 기우뚱 미끄러질 뻔하면서, 주환은 거스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숲길을 걸었다.
주환과 달리, 거스는 평지를 걷는 것처럼 가뿐하게 움직였다. 다리 하나를 절룩거리는데도 주환보다 빠르다. 산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가자, 다시 드문드문 나무가 높아진다. 자갈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약간의 평지가 나오자 허물어질 것처럼 보이는 작은 집이 보였다.
“#####.”
거스가 그곳을 가리키며 뭔가 말했다. 자신의 집이라는 뜻인 것 같다.
거스는 주환을 집 앞에서 잠시 기다리게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삐거덕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잠시 뒤에 나온 거스의 손에 기다란 활이 두 개 들려 있었다.
이상하게 생겼다. 주환이 알고 있는 활은 D자 형이나 C자형처럼 구부러진 형태인데, 거스가 들고 나온 건 일자형이었다.
활이라기보다는 나무 판때기를 넓적하고 길게 깎아 거기에 줄을 매달아 놓은 것 같다.
그나마 가운데의 손잡이 부분이 옴폭하게 깎여 있으니 활이라는 걸 알았지, 그것조차 없었다면 그냥 줄 달아놓은 판때기처럼 보였을 거다.
게다가 무지하게 길었다. 거스의 키를 살짝 넘어서는 정도로 길다. 거의 2미터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주환의 키와 거의 비슷했다.
거스가 한 개를 주환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약간 떨어진 나무와 자신의 활을 번갈아 손가락질했다. 잘 보라는 듯 손짓으로 여러 번 반복해 가리키며 말한다.
“##.”
“잘 봐.”
주환이 따라 말하자 거스가 주름진 얼굴에 히죽 웃음을 지었다.
거스는 주환이 자신을 지켜보는 걸 확인한 뒤, 활을 쥐고 나무에 시선을 주었다.
나무를 보면서, 거스가 가만히 숨을 쉰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다시 숨을 빨아들였다. 몇 번 그렇게 호흡을 고르더니 마침내 조용히 활을 들었다.
왼손으로 활을 잡고 화살 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당긴다.
화살은 대나무로 된 것 같다. 마디가 보이는 걸 보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마디가 울퉁불퉁하지 않게 잘 다듬어져 있고, 색은 진한 갈색이었다. 광택이 약간 있는 걸 보면 뭔가를 칠한 건지도 모르겠다. 화살 꽁무니에는 새의 깃털이 두 개 달려 있었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화살의 촉 부분은 둥글게 되어 있었다. 흔히 보이는 삼각형의 촉이 아니다. 그냥 나무가 둥글게 깎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쩌면 연습용일까. 활도, 화살도 처음 보는 처지라 저게 어디에 사용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표적을 노려보는 거스의 표정이 밀랍인형처럼 보였다. 생명 없는 고목나무처럼, 주름 패인 얼굴에서 시간이 사라져 있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다.
잠시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던 거스가 손가락을 놓았다. 나무를 표적으로 삼은 활이 쏜살같이 날아간다. 나무 기둥의 정중앙에 화살이 박혔다. 그 순간까지, 거스의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가 매우 잘 쏘는 거라는 사실은 알 것 같다. 활을 쏘는 모습은 노인답지 않게 꼿꼿하고 조용하고, 어쨌든 멋있어 보였다.
거스가 쏜 화살은 나무에 박혔다 잠시 뒤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마 촉이 나무이기 때문에 깊이 박히지 않은 것 같다.
거스가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이고, 주환에게 해보라는 듯 자리를 내주었다.
주환이 그를 흉내 내 활을 잡고 서자, 거스가 자세를 제대로 잡아 주었다.
거스가 했던 행동을 떠올리면서 화살 없는 활을 팽팽하게 당긴다. 숨을 고른 뒤 활시위를 놓자, 거스가 고개를 젓더니 다시 시범을 보였다.
“####.”
거스의 말과 행동을 가만히 보니, 아마도 움직이지 말라는 뜻인 것 같다. 이상하네.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활시위 잡고 있던 손가락만 살짝 움직였는데.
하지만 여러 번 같은 동작을 되풀이하는 동안, 주환은 자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카락 흔들리는 정도이긴 하지만 어쨌든 몸이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몸이 금방 따라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는 계속해서 활시위 놓는 걸 연습했다. 활을 쏘려면 인간이 아닌 석상이 되어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활 쏘는 거, 개어려워.
*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는데, 거스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산 쪽을 가리켰다. 이제 끝났으니 돌아가라는 말인 것 같다.
활은 주는 것 같다. 계속 연습하라고, 거스가 손짓 발짓으로 말했다. 오늘 걸어다니며 배웠던 발동작도 연습하라는 모양이다. 뭐, 그거야 거스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한다.
주환이 활을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하자, 거스가 빠른 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길안내를 위한 거라기 보다는 몸의 동작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다.
주환은 거스의 행동을 눈여겨 보고 따라 걸으면서 오늘 배웠던 단어와 동작, 활쏘는 걸 머릿속으로 연이어 떠올렸다.
부지런히 배워 익히자. 일초라도 빨리 한 사람 몫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내와 딸을 풍족하게 먹여 살리는 남자가 되고 싶어.
***
하늘은 파래. 눈은 하얀 색, 리지 머리는 반짝반짝, 주환의 머리는 까맣고, 고기는 누런색이다.
도로시는 벌렁 침대 위에 누웠다. 높은 천정의 나무를 보고, 다시 뻥 뚫려 있는 지붕의 구멍을 보았다. 연기가 폴폴 올라가 구멍으로 빠져 날아갔다.
옆에 있는 화덕에서는 빨간 색, 노란 색으로 불이 뻗고 있다. 따뜻해. 졸립다.
“꺼억!”
입에서 소리가 나더니 퐁, 하고 뭔가가 빠져나갔다. 냄새가 지독하다. 도로시는 코를 쥐고 몸을 뒤집었다. 배가 침대에 닿자 이번에는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배가 너무 불러서 터져버릴 것 같다.
“후아아아.”
길게 숨을 쉬자, 집안을 돌아다니던 리지의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리지는 주환이 온 뒤로 자주 웃는다. 그전에는 리지와 도로시 둘다 웃지 않았다.
‘좋아.’
리지가 웃는 건 좋다. 리지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뭔가 따뜻한게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꼭 화덕 옆에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배부르다.’
점점 더 배가 뚱뚱해지는 것 같다. 뱃속에서 고기가 무럭무럭 커지는 느낌이야. 도로시는 배에 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맛있었지. 귀리가 그렇게 맛있는 건 줄은 몰랐다. 항상 맛없는 거라고만 생각헸는데.
원래 아침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해가 하늘에 높이 떠 있을 때 굉장히 배가 고파지면, 그때부터 다시 한참 있다가 귀리 죽을 조금 먹었다.
하지만 오늘은 주환이 나가자마자 밥을 먹었다. 리지가 곤란한 듯 철판을 보고 너무 많이 있다고 중얼거렸다. 왜 곤란한지 모르겠어. 철판에는 밥이 많이 있었는데. 밥 많은 게 왜 곤란한 거야? 도로시 생각에 곤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둘이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이 있었으니까.
“헤헷.”
도로시는 눈을 감은 채 볼록 나온 배를 살살 손으로 문질렀다. 밥이 아직 조금 남아 있다. 빨리 배가 들어가서 또 먹었으면 좋겠다.
문득 주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환이 나가면서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 아버지는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일이다. 너무 기뻤다.
“….”
주환이 온 뒤로는 벌써 두 번이나 배불리 고기를 먹었다. 너무 좋아. 한데 주환은 누구일까. 잘 모르겠다.
리지는 아빠의 아내라고 했는데, 그 뒤에 온 주환이 누군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리지의 남편이라고 촌장님이 말했지만, 그러면 도로시한테는 뭐가 되는 걸까. 궁금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면 언젠가 주환은 가버리는 건가. 주환은 리지의 남편이니까 리지만 데리고 가나? 그러면 도로시는 어떻게 되는 거지?
“….”
밤에는 고기에 토끼 귀와 발이 생겨 도망가는 꿈을 꾸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지만, 정말 도망갔을지 몰라 허둥지둥 고기 담은 그릇을 확인했었다. 다행히 발이 없었어. 고기는 얌전하게 그릇 속에 있었다.
그 꿈이 생각나자 조금 불안해졌다. 어쩌면 꿈에서처럼 리지도 주환과 함께 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집안을 돌아다니던 리지의 발자국 소리가 어느새 없어졌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주환이 데리고 가버렸는지도 몰라. 어쩌면 도로시만 혼자 남겨두고 두 사람은….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천둥처럼 울렸다. 이 쓸모없는 것! 아버지는 항상 쓸모없는 계집애라고 도로시를 욕했다.
남자아이면 좋았는데, 그러면 사냥꾼으로, 일꾼으로 기를 텐데, 여자아이는 쓸모없어. 음식만 축내지. 시끄러워, 울면 어디엔가 버려 버린다.
항상 그렇게 말했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진짜 집밖으로 쫓겨난 적도 있었다. 캄캄한 곳에서 엄청나게 울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캄캄하고, 부엉부엉 소리가 났다. 어디에선가 멀리에서 늑대도 울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닌가. 그건 집안에서 들었던 소리일까. 몰라. 하지만 분명히 집밖에서 울고 있었던 기억이….
도로시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찾아야 해. 리지를 찾아야 한다. 리지가, 새엄마가 도로시를 버리고 가기 전에 쫓아가야지 돼.
침대에서 내려와 가장 먼저 고기 담은 통으로 달려갔다. 고기는 중요하다. 도로시를 버리고 가더라도, 고기는 버리지 않을 거야. 반드시 가져간다.
다행히 통 안에 있는 고기는 그대로였다. 늑대 털도 남아있었다. 그러면 괜찮아. 아마 밖에 일하러 갔을 거다.
“….”
그래도 불안해서, 도로시는 타박타박 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문을 열기 전에 남자들의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다. 싸우는 것 같아. 남자들이 무서운 목소리로 뭔가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문에 귀를 대고 들어봤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언뜻 고기라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도로시는 옆으로 달려가 나무 덧창을 조금 열었다.
문 근처에 커다란 남자가 세 명 서 있다. 남자들 옆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예전에 본 적이 있는 남자들이다. 아버지를 찾아왔었다. 아버지는 저 남자들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아직 새엄마가 살아있을 때 남자들이 오자, 아버지는 새엄마와 자신만 놔두고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그 뒤에 돌아온 아버지는 새엄마를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때렸다. 결국 새엄마는 아버지에게 맞은 뒤부터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렸지.
‘리지.’
리지는 괜찮을까. 새엄마처럼 주환에게 맞아 죽으면 어쩌지. 주환은 때리지 않나. 아버지가 아니니까 괜찮을까.
남자들이 리지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남자들의 손에 도끼와 낫,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무섭다. 뭔가 안 좋은 게 생길 것 같아.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과 새엄마, 예전에 보았던 저 남자들의 얼굴이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제일 앞에 있던 남자가 집쪽을 보더니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제대로 대답하라니까! 뭐야, 이 냄새!
그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또 말한다.
“네가 고기를 훔친 거잖아.”
리지가 남자들을 향해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남편이 사냥해온 거예요.”
하지만 남자들은 믿지 않는 것 같다. 번갈아가며 소리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사냥이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이 계집애, 남편도 죽어 오갈 데 없어진 걸 새 남편 찾아주고 먹고살게끔 해줬더니 도둑질을 해!”
“하아, 정말 기가 막히는군. 우리는 도둑년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망치며 못 같은 공구까지 가져와 줬다구.”
“이봐! 집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좋겠어. 뭘 훔쳤는지 보자구.”
“진짜 아니에요. 정말로 남편이 사냥해온 거예요.”
남자들이 무서운 얼굴로 소리치고, 리지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남자들이 강제로 집에 들어가려고 하자, 리지가 두 팔을 펼쳐 문을 막았다.
하지만 남자들은 리지를 밀어서 바닥에 쓰러뜨리더니 문을 발로 찼다. 쾅! 쾅! 커다란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퍼졌다.
‘무서워. 무서워.’
어쩌지, 어떻게 하면 좋지. 남자들이 들어온다. 아버지보다 커다란 남자들이 집안에 들어온다.
도로시는 나무창에서 떨어져 집안을 두리번거렸다. 다리가 떨려서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히이, 히이, 이상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울면 안 되는데, 그러면 때릴 텐데, 하지만 손으로 입을 막아도 울음소리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어쩌지. 시끄럽다고 맞는다. 아버지처럼 주먹으로 때릴 거야. 발로 찬다. 무섭다.
도로시의 눈에 커다란 침대가 보였다. 주환과 리지, 도로시가 셋이서 자도 자리가 남을 만큼 큰 것이다.
‘저기에 숨으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도로시는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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