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8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89화(189/235)
#189 도로시와 리지의 전쟁
#189 도로시와 리지의 전쟁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하루 종일 바늘땀을 보고 있으면 눈이 빙글빙글 돈다.
이러다 정말로 눈알이 빠질 것 같아서, 리지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제 금세 왕도에 도착한다. 쉴 틈이 없다.
리지는 뻑뻑한 눈두덩을 손가락으로 문지른 뒤 다시 눈을 떴다.
‘마무리를 서두르지 않으면….’
변경백과 다니엘은 물론 다른 영주들도 모두 가문의 문장을 지니고 있었다.
옷에도 있지만 방패와 다른 물건에도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들만큼 중요한 사람이면서도 주환에게는 문장이 없다.
귀족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왠지 그것이 안타까워서, 리지는 자신이 뭔가 해줄 수는 없을까 출발할 때부터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가 문장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런 건 만드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리붸 노부부에게 들었다. 마음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무슨 규칙 같은 게 있다고 한다.
그래도 뭔가 해주고 싶었다.
세탁부 일을 하겠다고 나서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은 두고두고 리지의 마음속에 후회를 남겼다.
그 일을 만회할 만큼의 것은 아니어도 그래도 뭔가 하고 싶다, 이렇게 바보 같은 나도 뭔가 해줄 수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간신히 떠올린 게 루돌프의 자수였다.
귀족 여성들은 남편이 전쟁터에 떠날 때 무사히 돌아오라는 뜻으로 말발굽을 옷이나 손수건에 자수해 보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보다 주환을 잘 지킬 수 있는 루돌프들을…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환을 지키는 아이들.
그 루돌프들이 있으면 주환은 안전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된다.
문장 대신 그 아이들을 데려가게 하자.
루돌프를 본뜬 자수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부적이 될 거다.
오즈와 연화, 산타벼룩의 모습을 모두 한데 뭉뚱그린 수호동물을 자수하자고 생각했다.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까지가 길었을 뿐, 그렇게 결정하면 그 뒤는 순식간이었다.
뿔토끼의 얼굴에, 아름다운 갈기를 가진 말의 몸, 산타벼룩의 날개.
자수의 도안을 그렇게 정하고 밤낮없이 마차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자수를 놓는다.
언니처럼 솜씨가 좋았으면 좋으련만, 리지의 자수는 그저 그런 편이다.
손도 느리지만 그다지 아름답게 되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음을 담아 한 땀 한 땀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자수를 하다 보면, 왠지 이 손수건의 생물이 정말로 주환을 지켜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도로시가 제안한 대로 루돌프 생물 앞에는 비명당근을 병사로 의인화해 수놓았다.
도망치는 비명당근을 쫓아가는, 날개 달린 뿔토끼 얼굴의 말.
‘… 뭔가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비명당근이 좋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역시 이건 좀 이상했을까.
하지만 도로시가 꼭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비명당근은 비싼 거니까 그걸 잡으면 부자가 되고 그게 곧 행운이라는 논리다.
도로시와 이야기할 때는 가족의 마음을 모두 담는다는 의미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수를 다하고 보니 실수가 아니었을까, 이대로는 웃음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다.
왕도는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리지는 작게 한숨을 쉰 뒤,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한 방울 냈다.
조심조심 핏방울로 뿔토끼 뿔을 물들인다.
아주 어릴 때 마을 여자가 하는 얘기를 언뜻 들은 적이 있다.
피에 강한 소망을 담아 남자의 옷에 묻히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여자한테 마음을 빼앗긴 남편을 되찾기 위한 주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래도 그 말은 오랫동안 리지의 마음에 남아있었다.
‘부디 무사하세요, 주환.’
어디 부족한 곳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뒤, 리지는 눈을 빛내며 기다리는 도로시에게 손수건을 보였다.
“어떠니, 도로시?”
도로시가 활짝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비명당근이 굉장히 맛있게 되었어. 굉장히 비쌀 거야. 아주 멋져.”
“….”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은 그쪽이 아니었지만.
도로시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리지는 작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한 뒤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주환은 다니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니엘을 보는 남편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눕는 것을 보고, 리지의 마음이 조금 설레었다.
다소 험악해 보이는 저 사람의 눈매가 부드럽게 눕는 순간이 좋다.
잠깐이지만 그렇게 될 때, 주환은 굉장히 부드러운 표정이 된다.
평상시의 얼굴과 그 표정의 낙차가 가슴 설레어, 리지의 마음은 몇 번이나 거듭해 사랑에 떨어진다.
주환과 눈이 마주쳤다.
더욱 부드럽게 남편의 눈이 미소를 그렸다.
다니엘과 몇 마디를 더 나눈 주환이 행렬을 거스르며 마차를 향해 다가왔다.
“리지, 조금 뒤면 왕도의 성벽이 보일 거야. 잠시 오즈와 산타벼룩을 데려가지만 곧바로 이곳에 다시 되돌릴 테니까… 그 아이들 곁에서 떠나지 말아 줘.”
“네.”
“도로시, 너도 알겠니?”
“응, 아빠! 오늘을 위해서 도로시가 오즈를 훈련시켰으니까. 방해는 하지 않아.”
흥분한 도로시가 주환의 말을 잘못 들은 것 같다.
어쩌면 앞부분의 오즈를 데려간다는 말만 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항상 특훈 한다며 오즈와 돌아다니는 도로시에게, 주환이 작은 임무를 준 것은 이 행렬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도로시, 너 밖에 할 수 없는 임무를 줄게. 오즈가 단단한 물건을 최대한 많이 부술 수 있도록 함께 특훈을 해줄래? 아주 커다란 물건을 부술 수 있도록.]좋아하는 아빠에게 특별한 부탁을 받은 것이 기뻤을 것이다.
도로시는 오즈와 함께 돌아다니며, 길가의 바위, 버려진 나무판자와 수레바퀴 같은 것들을 부수어왔다.
아이에게는 고될 수 있는 행군을 아무 말썽이나 지루함 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주환이 준 임무 덕분이었을 거다.
어쩌면 주환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 말대로 도로시 엄청 열심히 했어. 진짜야. 아, 그렇지! 아빠, 보여줄까? 오즈가 얼마나 잘하는지?”
창가로 바짝 다가앉은 도로시가 무릎에 앉힌 오즈의 겨드랑이를 잡아 상체를 올린다.
아빠한테 자랑하고 싶어 몸이 쑤시는 것 같다.
주환이 연화의 등에 몸을 납작하게 붙이고 손을 뻗었다.
도로시의 솜털 같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환이 웃었다.
“잠시 뒤면 알게 될 거야. 모두에게 보여주자.”
“좋아!”
도로시의 눈이 반짝반짝한다.
리지는 주환이 몸을 일으키자, 서둘러 옆에 두었던 손수건을 내밀었다.
“이거, 부적처럼 가지고 계세요.”
“리지, 계속 몰래 하던 게 이거였어?”
“… 네. 솜씨가 없어서 조금 부끄럽지만… 부적이에요.”
주환이 손수건을 펼쳐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토끼 얼굴에 말의 몸, 날개. 루돌프를 합친 거네.”
도로시가 작은 손을 뻗어 구석의 비명당근을 가리켰다.
“아빠, 그건 도로시가 생각한 거야. 멋지지?”
“그래. 팔다리 달린 비명당근이라…. 정말 멋있는데.”
주환이 웃는다.
그리고 수건 구석에 놓인 문자를 보고 눈을 가느다랗게 했다.
“이건 내 이름이군.”
“그래요. 당신이 전에 가르쳐 준 거.”
손수건 구석에는 작게 주환이 가르쳐준 낯선 문자를 새겼다.
[주환]기묘하게 생긴 그 문자가 자신의 이름이라고 했다.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걸까.’
시모니 왕국의 문자와는 다르게 생긴 복잡한 글자가, 주환의 눈에 너무 서툴러 보이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했지만, 주환이 굉장히 기뻐하는 표정으로 웃는 걸 보고 안심했다.
제대로 했어.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있다.
주환은 손수건을 손목에 둘러 묶은 뒤, 거기에 입술을 눌렀다.
“고마워, 리지.”
왠지 부끄럽다.
얼굴에 직접 키스한 것보다도 훨씬 부끄러웠다.
“… 조심하세요.”
리지가 사그라드는 듯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는데, 옆에서 도로시가 포로로 중얼거렸다.
“아빠, 그거 멋지다… 엄마, 도로시도 저런 손수건 만들어 주세요. 도로시도 저거 할래.”
글쎄요, 그건 여자가 해서 멋있을 행동은 아닌 것 같지만.
주환이 웃는 소리를 들으며 리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로시한테도 한 개 만들어 줄게.”
“좋았어!”
주환이 손을 뻗자, 털 속에 산타벼룩을 숨긴 오즈가 폴짝 그 위로 뛰어올랐다.
“오즈! 힘내서 일하고 와!”
“삐이!”
도로시와 오즈는 기쁜 것 같다.
빙그레 웃으며 몸을 돌리는 주환을 보면서, 리지는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부디 조심하세요. 그리고 승리를….’
톡톡 뛰어 연화의 머리로 올라간 뿔토끼를 보고 병사들이 큰 함성을 지른다.
드디어 멀리에, 하얀 구름을 이고 서 있는 왕도의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 * * * * * *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뛴다.
한스는 멀리 보이는 성벽을 노려보았다.
오늘이다.
드디어 오늘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지 보여줄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오늘을 놓치면 자신은 완전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혼담도 없어진다.
‘… 예뻤지.’
한스는 이곳으로 오기 전에 잠깐 얼굴을 보았던 여성을 떠올렸다.
나이 40의 쭈그러진 노총각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예쁜 사람이었다.
나이는 스물여섯.
딸 많은 집에서 지참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혼기가 늦었다고 한다.
위의 언니들을 연달아 시집보내고, 돈이 좀 모이기를 기다리다 그만 스물을 넘긴 모양이다.
평민은 귀족보다 혼인이 이르다.
귀족은 15세 정도부터 2,3년 정도 상대를 찾아 약혼을 한 뒤 20살이 되기 전에 정식으로 혼인을 맺는 경우가 많지만, 평민은 약혼 없이 그대로 결혼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물을 넘겨버리면 그만큼 상대 찾기가 어렵다.
후처나 첩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 여성의 아버지는 그걸 좋다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좋은 아버지야.’
상인의 딸이라고 했다.
상가 일을 도우며 좋은 상대를 기다리다, 정 안 되면 그대로 눌러앉아도 좋다고 아버지가 말해주었다며 수줍게 웃고 있었다.
‘꼭 결혼하고 싶다. 다른 여자가 아닌 그녀하고… 꼭….’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하고나 결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좋은 여자를 만나면 눈이 다른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이 사십이 되어서야 겨우 그걸 알았어.
아내는 그저 치마만 두르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를 만나버린 지금은 이제 그걸로는 안 된다.
그녀를 원해.
정말로 그녀가 필요하다.
‘… 이제 정말로 오른손과 결별하고 싶다.’
열심히 하자.
오늘이 아니면 죽을 것처럼, 정말로 열심히.
한스는 용사가 손짓해 자신을 부르는 것을 보고 허둥지둥 말을 몰았다.
며칠 동안 그는 용사 주환과 마력을 운용하는 방식에 대해 정보를 교환해왔다.
한스 자신도 다른 사람과는 마력을 사용하는 방법이 많이 다르지만, 용사는 과연 용사랄까, 일반적인 경우와는 확실하게 달랐다.
보통 사람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선 오랫동안 마력 운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하지만 용사는 마음먹으면 그게 곧 마법이 되는 모양이다.
‘이건 뭐, 들어본 적도 없네.’
그리고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냥 마음먹은 걸로 마법을 사용하는 걸 어떻게 배울 거야.
다행히 용사 역시 한스가 하는 방식대로는 마법을 행사할 수 없었다.
방법을 따라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마력이 너무 많기 때문에 똑같이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한스는 가느다란 마력을 누군가에게 붙여 따라가다 다시 또 다른 대상에게 갈아타며 길게 마력을 뻗어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주환이 사람에게 마력을 붙이면 영향력이 너무 커져버렸다.
한스가 물 한 방울을 몰래 사람에게 묻힌다고 치면, 주환은 커다란 호수를 사람에게 들이붓는 거라고 해야 하나.
상대가 모르게 마력으로 따라붙는 게 불가능했다.
‘정말 다행이지. 만일 용사가 그것까지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완전 X된 거야.’
한스가 주환에게 가까이 가자, 유니콘 머리에 앉아있던 뿔토끼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스를 보았다.
‘모두가 다 저 뿔토끼를 귀엽다고 하지만, 나는 그냥 섬뜩하기만 하던데. 다들 진심으로 말하는 건가?’
가끔 녀석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마치 토끼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며 보는 느낌이었다.
아이와 함께 다닐 때도 그렇다.
사고뭉치니 귀염둥이니, 병사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가만 보면 다르다.
아이가 위험한 곳으로 향하면 못 가게 막고, 어쩌다 독사 같은 걸 만나면 아이가 보기도 전에 밟아서 죽여버렸다.
게다가 말썽 부리며 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바위를 가루로 만드는 거다.
그게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바위를 조각내는 것도 아니고 가루로 만들고 있는데.
‘나는 무서워.’
한스는 부르르 몸을 떨고, 뿔토끼에게서 시선을 약간 비꼈다.
왠지 뿔토끼가 훗, 하고 그를 비웃는 것 같다.
‘느낌 탓이 아니야. 절대로 비웃고 있는 거야.’
살짝 뿔토끼를 쳐다보자, 뽐내는 것처럼 뿔토끼가 가슴을 잔뜩 내밀었다. 마치 자신이 위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니맘대로 하세요. 니가 왕이십니다.’
그는 이 뿔토끼의 밑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
이 토끼 앞에만 서면 뱀 앞에 선 쥐새끼 심정이 되니까.
“….”
고작 토끼한테 쫀다고 웃지 마라.
바위를 가루로 만드는 힘 앞에서라면,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약한 거니까.
한스는 잔뜩 위축된 상태로 용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