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9화(19/235)
#019 아이의 첫 번째 영웅은 언제나 아빠
리지의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남편이 달려오더니 그녀를 잡고 있던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눈 깜짝할 새였다. 사람이 무슨 바람에 떨어지는 가을 낙엽 같다.
놀랐다. 무섭다기보다는 그저 놀랐다.
이 세상에 저렇게 커다란 남자를 번쩍 들어 올리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사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이 허공을 날아간 것도 처음 보았다. 힘들게 던진 게 아니다. 가벼운 나무토막 던지듯이 훌쩍 팔을 흔드니 날아가 버렸다.
주환이 주먹을 휘두를 때는, 맞은 사람이 바닥으로 꺼지는 줄 알았다. 사람의 얼굴이 납작해지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틈이 없다. 마치 현실이 아닌 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화낼 줄 모르는 듯 순해 보이던 사람이 저렇게 무서울 만큼 분노할 때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섭다고 하면 아까 남자들이 자신을 끌고 갈 때가 훨씬 훨씬 무서웠지. 주환이 남자들을 때리는 건 그저 놀랐을 뿐이다.
다만 딱 한 번, 주환이 무서워진 순간이 있었다. 몸을 돌려 그녀를 보려 했던 때, 눈이 마주치기 직전 남자들을 두들겨패고 던지던 주환이 막 몸을 돌려 그녀를 보았을 때, 혹시나 자신도 그렇게 맞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죽은 남편의 얼굴은 어느새 희미해졌다. 한 시간 남짓, 그것도 맞으면서 보았던 얼굴이니 지금은 사실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도로시와 조금 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어도 남편의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도로시는 제 친엄마를 닮았을 거다. 그런 것 같아.
하지만 맞을 때의 기억은 선명했다. 얼굴과 몸을 엉망으로 두드리던 주먹과 발,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상황이 겹치면서 아주 잠깐 몸이 굳었다. 그래, 딱 한 번 주환이 돌아보던 그 순간 만은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주환의 눈을 보고 알았다. 이 사람은 다르구나. 그녀를 때리던 남편, 자신을 끌고 가려던 마을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눈동자가 다르고, 얼굴이 다르고, 그녀를 만지는 손길이 다르다.
‘이 사람은 나를 지켜주는….’
주환의 눈을 보았을 때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니 무서울 리가 없지.
하지만 주환은 다르게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돼서 어떻다는 이론이 아니라, 그냥 알았다. 이 사람은 자신이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거친 남자들을 거침없이 두들겨패던 남편의 눈이 리지를 보고 움츠러든다. 자신처럼 보잘것없는 한낱 마누라의 반응이 뭐 그리 무서울까. 그런데도 주환의 커다란 몸이 그녀 때문에 작게 쪼그라들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걸 알겠다.
저기요, 서방님. 그렇게 상처받은 눈,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 전혀 무섭지 않으니까.
말로 하면 쉬울 텐데, 언어는 통하지 않는다.
리지는 주환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깨닫고 보니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무서운 일은 이미 다 지나가고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떨고 있지. 혹시 그래서 주환은 자신이 무서워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깜짝 놀랐다. 그게 아닌데, 사실은 바람처럼 달려와 그녀를 구해준 남편에게 안심하고 있는데, 그게 전혀 저 사람에게는 전해지지 않고 있구나.
리지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어 남편을 향해 뻗었다.
“주환!”
그녀가 부르자, 주환은 약간 놀라는 것 같더니 주저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바로 앞까지 온 남편이 머뭇머뭇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주 살짝, 조심스럽게. 마치 손대면 녹아버리는 눈송이를 만지는 것 같다.
리지는 주환의 손을 꼭 잡았다. 커다란 남편의 손은 자신의 작은 손이 들어가고도 한참 남을 만큼 크다. 이 커다란 손이 자신을 지켜주었다. 남편의 체온이 전해지자 마음이, 몸이 안심한다. 따뜻한 공기에 폭 감싸인 기분이 들었다.
아, 이 사람 곁에 있으면 안전하구나. 아무도 때리지 못한다.
잠시 멈췄던 눈물이 갑자기 쏟아졌다. 주환이 그녀에게 손을 잡힌 채 허둥지둥하며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숙여 주환의 손에 입술을 댔다. 마음이 넘쳐흐른다. 이 사람을 만나 정말 좋았다. 이 사람이 남편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깊은 곳에서 샘이 솟아나는 것처럼, 리지의 마음이 자꾸만 손을 통해 이 남자에게로 흘러갔다.
그녀가 울어서 놀란 것 같다. 갑자기 주환의 몸이 딱딱해졌다. 경직된 것처럼 가만있다가 살며시 잡힌 손을 빼내 리지를 끌어안았다. 토닥토닥 남편이 등을 두드려준다.
“리지, 고마워.”
짧은 시간 동안 익힌 말이 주환의 입에서 작게 흘러나왔다. 이 사람이 뭐가 고마울까, 고마운 건 자신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리지는 작게 숨을 토했다. 파뜩 정신이 들었다. 잠시 도로시를 잊고 있었어. 아이가 많이 놀랐을 텐데.
머리를 들어 집 쪽을 향하자 창문에 도로시의 얼굴이 빼꼼 보였다. 키가 작은 아이의 얼굴이 눈만 보인다. 아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과 두려움이 가득 고여 있었다.
리지는 주환의 품에서 몸을 살짝 빼냈다. 손가락으로 도로시를 가리키자, 주환도 금방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약간 걱정스러운 듯 도로시를 바라보았다.
리지는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창문 앞에 서 있던 도로시가 고개만 돌려 리지를 본다. 너무 울어서 눈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아이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 밑을 바라보자, 바닥에 작은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너무 두려운 마음에 소변을 본 것 같다.
***
도와달라고 마음속으로 불렀던 것은 분명 도로시 자기인데 실제로 오자 주환이 무섭다. 주환의 커다란 주먹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도로시의 눈앞에서 사람 얼굴이 빨갛게 피투성이가 되었다.
퉁퉁 부은 새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죽을 무렵에는 처음에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리지의 얼굴도 그랬어. 지금은 예쁘게 되었지만 처음 집에 온 날 아버지에게 맞았을 땐 죽은 새엄마와 비슷했다. 빨갛고 파랗고 누렇게 되어 있었다.
언젠간 내 얼굴도 저렇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면 너무 무서워서 오줌이 나왔다. 옷이 젖어 척척하고 춥고 무섭다.
울음소리도 어느새 쑥 들어갔다. 울면 더 맞는다. 아버지의 무서운 고함소리, 새엄마의 비명소리, 숨죽여 울던 리지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며 울렸다.
울면 안 돼. 소리를 내면 맞는다.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참지 못해 울음소리가 나지만 어쨌든 소리 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지가 자신을 보고 집안으로 왔을 때는 조금 안심했다. 리지는 때리지 않는다. 아까는 새엄마처럼 도로시가 없는 애라고 쳐다보지 않았지만, 다시 봐줬어. 도로시는 다시 있는 애가 되었다.
도로시는 얼른 입을 열었다.
“리지, 미안해요. 숨어서 미안해요. 도와주지 않아서 미안. 모르는 애 하지 말아. 잘못했어요.”
빨리 잘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리지가 도로시를 볼 때 말해야 해. 다시 없는 애가 되기 전에 빨리, 빨리 말하자.
“맙소사!”
리지가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달려왔다. 도로시는 오줌 때문에 척척하고 더러운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리지가 꼭 끌어안았다. 리지, 바닥에 오줌 있어, 옷이 젖는데.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리지가 먼저 소리를 냈다.
“도로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까 눈이 마주쳤을 때는 남자들이 널 발견할까 봐 모른 척했던 것뿐이야. 도로시가 미안해할 일은 없어. 전혀 없어.”
리지가 더 꼭 도로시를 끌어안더니 훌쩍훌쩍 울면서 말했다. 어른인데 아이처럼 운다.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미안해, 도로시. 무서웠지. 하지만 이제 괜찮아. 아빠가 왔으니까.”
“…?”
리지가 이상한 말을 했다. 아빠?
“아버지, 죽었는데.”
도로시가 말하자, 리지가 몸을 약간 떼더니 얼굴을 마주 보았다. 리지의 얼굴이 눈물 때문에 더럽다. 어른인데 도로시보다 더러워진 것 같아.
“도로시, 주환이 누구인지 몰라?”
“주환.”
주환은 주환이다. 그리고 리지의 남편. 알고 있어. 리지가 구정물처럼 된 얼굴로 부끄러운 것처럼 웃었다.
“주환은 내 남편이야. 그러니까 도로시의 아빠가 되는 거야.”
“어?”
“응?”
“아빠?”
리지가 이상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도로시가 더 이상해. 어째서 리지의 남편이 도로시의 아빠가 돼?
리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얼굴을 찡그리고,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도로시의 새 엄마지?”
“응.”
“그럼 도로시는 내 딸이야.”
“어?”
진짜야? 도로시가 리지 딸이야? 도로시는 새엄마 딸이었어? 도로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리지가 놀란 것처럼 말했다.
“도로시,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거니?”
“어? 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새엄마라는 건 알았지만 그게 도로시 엄마라고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진짜 엄마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미 죽었고, 그래서 도로시한테는 엄마가 없는 줄 알았어. 새엄마가 도로시 엄마였다니, 정말 몰랐다.
머릿속에서 바쁘게 리지의 말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이 파뜩 들었다.
“말도 안 돼!”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리지가 작게 웃었다.
“도로시는 내 딸이니까, 나한테 남편이 생기면 그 사람은 도로시의 아빠가 되는 거야.”
“아빠?”
그럼 도로시한테는 아버지가 둘이야? 도로시는 깜짝 놀라 창밖에 서 있는 주환을 쳐다보았다. 주환이 아빠라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도로시는 주환과 리지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다시 소리쳤다.
“아빠야?”
리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환은 전에 있었던 죽은 아빠랑은 달라. 절대로 우리를 때리지 않아.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이야.”
갑자기, 리지가 남자들한테 끌려가던 모습이 생각났다. 리지도, 도로시도 울고 있었다. 도로시가 도와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을 때 갑자기 짠, 하고 주환이 나타났어. 무서운 남자들이 팍팍 나가떨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늑대처럼 축 늘어져 버렸어.
그건 도로시 아빠라서 그랬던 거야? 도로시가 딸이니까, 도로시가 도와달라고 했으니까?
머릿속이 바쁘다. 아빠, 아빠, 아빠…. 머릿속에서 아빠라는 말이 빙빙 돌아다녔다.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다. 주환은 한 번도 도로시를 때리지 않았어.
“아빠!”
도로시는 리지 얼굴을 보고 그렇게 소리친 다음 창문 밖을 보았다. 나무창 너머로 커다란 주환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도, 몸도, 손도, 발도 크다. 저 커다란 사람이 도로시 아빠야. 엄청 강한데 아빠다. 도로시와 리지를 지켜주는 사람이야. 나쁜 남자들한테 주먹을 휘둘러서 휙휙 날려버렸어.
도로시는 리지에게서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시한테 엄청나게 강한 아빠가 생겼다. 때리지 않아. 도로시에게 웃어준다. 밤에는 꼭 끌어안고 함께 자주고, 고기도 주고, 이름도 주었다. 이름을 준 사람이 아빠라니, 근사하잖아.
처벅처벅, 오줌 묻은 발이 무겁다. 옷이 축축 처져서 뛸 때마다 오줌 방울이 튀었다. 그래도 가만있을 수 없다. 도로시는 집 밖으로 나와 주환에게 뛰어갔다.
“아빠!”
큰 소리로 외치자, 주환이 눈을 껌벅껌벅 뜨고 도로시를 보았다.
“아빠!”
도로시는 있는 힘을 다해 주환에게 달려갔다. 이제 아무도 우리를 때릴 수 없다. 물건을 가져갈 수도, 리지를 끌고 갈 수도 없어. 아빠가 있으니까. 엄청나게 강한 아빠가 우리를 지켜주니까. 도로시한테 아빠가 생긴 거야.
***
여자는 그래도 말이 통하니 괜찮다. 어찌어찌하다 보면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고, 때로는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안 된다. 도로시가 특이한 거야.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자신한테 저렇게 웃고 달라붙어 주는 애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이제 안 된다고 생각했어. 무서운 걸 보여줬으니까. 사람의 얼굴뼈가 부서지고 팔을 부러뜨리는 모습 따위, 아이에게 보여줄 게 못 된다. 그런 걸 봤으니 이제 도로시는 당연히 자신을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달려오는 아이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는 태양 같다.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반짝반짝, 마치 별처럼 빛났다.
“##!”
무슨 뜻인지 아직 모르는 단어를 자꾸만 외친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아빠, 그렇게 외치는 걸 거다.
리지가 어떻게, 뭘 말했기에 무서워하던 도로시가 갑자기 변했는지는 몰라도, 이 아이에게 허용되었다.
주환은 달려온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았다. 도로시가 짧은 팔로 주환의 두꺼운 목을 끌어안았다. 말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도로시가 자꾸만 아빠라고 소리친다. 반짝반짝, 아이에게서 별가루가 튀어나와 사방으로 퍼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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