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5)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95화(195/235)
#195 벽에서 사람 나왔다
#195 벽에서 사람 나왔다
화살이 날아오는데, 이상하게 남자의 눈만 보였다.
왜인지 모르지만 남자의 눈이 검다. 왜 사람 눈이 검은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게 안 좋은 거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도로시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꽉 감았다.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캄캄하니 더욱 무섭다.
“앗!”
“맙소사!”
병사들의 놀란 목소리가 주위에서 들린 것 같다.
죽는다.
진짜로 죽는다.
화살이 얼굴을 콱, 꿰뚫을 거야.
“읍!”
저절로 배에 힘이 들어갔다.
“아빠아, 엄마아…. 도로시 죽어…. 흐엥….”
울음소리가 실실 새어 나온다.
오줌도 살짝 나오려는 것 같다.
창피하기는 하지만 무서운 걸.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화살이 몸에 닿는 것 같지 않다.
분명히 얼굴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는데….
살며시 눈을 뜨자, 오즈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오즈?”
오즈가 도로시의 머리 위에서 몸을 거꾸로 한 채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긴 귀가 아래로 늘어져 있다.
눈을 감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즈 때문에 캄캄했던 모양이다.
뒤늦게 머리가 무거워졌다.
“오즈, 이제 너는 커지고 있어서 머리에 올라가면 안 돼. 목이 아프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다 깜짝 놀랐다.
“화살은? 화살은 어디에 있어? 오즈, 너한테 맞은 거 아냐? 엉덩이 보여봐. 아니, 머리! 머리 보여!”
머리든 엉덩이든 화살에 맞았을 것 같다.
어쩌지.
그렇게 생각하니 또다시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지만 곧바로 오즈 머리털 속에서 팽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라, 꼬마야. 팽. 이 몸이 누구시냐. 팽. 주인님께 너와 부인의 안전을 부탁받은 산타벼룩이시다. 팽. 화살은 내가 막았다. 팽.”
“오….”
도로시는 약간 감탄한 목소리를 냈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잘 모르겠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대단한 건지… 잘 모르겠어.
“삐이?”
오즈가 훌쩍 뛰어내리더니 발바닥으로 바닥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바닥에 뭔가 먼지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뭐? 그게 화살이라구? 오즈가 한 거야?”
대단하다. 정말 대단하다. 날아오는 화살도 먼지로 만들 수 있었던 거야?
도로시는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대단해, 오즈! 우리는 킹왕짱이야! 무적이다!”
신난다. 아빠한테 자랑해야지. 아, 엄마한테도.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보니, 엄마가 자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 상태가 이상하다.
“엄마?”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엄마가 굳은 것처럼 앉은 채 도로시 허리를 안고 있었다.
엄마 몸이 덜덜 떨린다.
입술도 새파랗고, 뭔가 이상해.
“엄마, 왜 그래? 어디 아파?”
“도로시….”
“엄마, 무서웠어?”
“… 그래. 엄청 무서웠어.”
엄마가 작게 말하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흠, 엄마는 겁보구나. 도로시는 용감하게 서 있었는데. 물론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엄마.”
어쩔 수 없다. 도로시는 아직 아이지만 용감하니까 아빠 대신 엄마를 보호해야 해.
도로시는 작게 한숨을 쉬고, 아빠가 하는 것처럼 엄마 등을 톡톡 두드렸다.
“엄마, 괜찮아. 무섭지 않아. 도로시가 있잖아. 도로시하고 오즈가 있으면 엄청 세거든. 무적이야. 세계 최강이라구.”
“꼬맹아! 내가 구해준 거다! 팽! 내가 막지 않았다면 토끼가 먼지로 만들기 전에 화살을 맞았다구. 팽.”
산타벼룩이 시끄럽게 떠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도로시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엄마가 꽉 안고 있기 때문에 잘 움직일 수 없다.
어쨌든… 아까 그 남자. 또다시 화살을 날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하려고 했지만, 마침 병사들이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데 이상하기도 하지.
남자는 바닥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오즈, 저 아저씨는 왜 저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도로시가 물어보았지만 오즈는 삐이, 소리를 내며 고개만 갸우뚱할 뿐이다. 모르는 것 같다.
“항복인가? 병사들이 자기보다 많으니까?”
문득 넌 몰라도 돼, 라는 느낌의 생각이 오즈한테서 전해져 왔지만, 다시 오즈를 쳐다보았을 때는 아무 생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즈의 머리털 속에서 팽이 외쳤다.
“넌 몰라도 된다, 팽! 루돌프 사정이야! 팽!”
“그래?”
루돌프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팽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도로시는 여전히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엄마 등을 부지런히 문질렀다.
“하아, 정말 큰일이야. 엄마는 너무 약해서. 도로시가 강하니까 괜찮지만.”
그렇게 중얼거리자, 오즈가 동감이라는 듯이 삐이 소리를 냈다.
조금 덜 무서워진 걸까. 엄마가 아주 약간 웃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을 지키는 병사가 될까?’
긴 창을 들고, 혹은 화살을 쏘아서 사람들을 지키는 병사!
왠지 멋지잖아!
“좋아! 도로시는 병사할 거야! 오즈, 너한테는 멋진 활을 만들어줄게. 아빠가 만드는 거 봤지? 그런 거 만들어줄 거야.”
“삐이…?”
“등에 메고 다니면 정말 멋지겠다.”
“삐이.”
왠지 오즈의 반응이 조금 시들하지만, 이번에는 산타벼룩이 흥분한 듯 말했다.
“그거 멋지겠는데. 팽.”
“너도 만들어줄게, 팽. 아주아주 멋진 걸로.”
“내 이름은 팽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하는 거냐, 꼬맹이야. 팽.”
“삐이! 삐이!”
오즈가 샘이 난 듯 귀를 파닥거리고, 왠지 시끌시끌해졌다.
처음에는 나무 옆에 쓰러져 있는 화살 남자가 조금 궁금했지만, 어느새 도로시는 그 사람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병사가 되면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느라 바쁜걸. 그 남자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어졌다.
‘즐거워.’
오즈에 팽까지 있으니까 더 왁자지껄 즐겁다.
“도로시 행복해.”
문득 포로로 그런 말이 나왔다.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닌데, 말하고 나니 정말 굉장히 행복한 것 같다.
“도로시는 정말 행복해!”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하자 엄마가 웃는다.
오즈 귀가 파닥거리며 바쁘게 움직였다. 오즈도 행복한 것 같다.
팽이 오즈 털 속에서 날개를 파르르 흔들었다.
팽의 얼굴이 뽀롱 위로 나온다.
팽도 웃고 있었다.
“좋은 일이지. 팽. 행복은 좋은 거다. 팽. 우리 산타벼룩이 가장 행복할 때는 바로 누군가가 행복할 때니까. 팽. 나도 행복하네. 팽.”
모두가 행복하다니, 정말 좋아.
“아빠도 행복하면 좋겠다.”
그렇게 얘기하자, 엄마와 오즈와 팽이 왠지는 모르지만 모두 함께 도로시를 안아 주었다.
“음…?”
화살을 쏜 남자한테 가까이 간 병사들이 소란스럽다.
뼈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렇게 잔인한 건 처음 봤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고개를 길게 빼고 그쪽을 바라보려고 하자, 오즈가 갑자기 톡톡 튀었다.
저쪽 봐, 저쪽 봐, 그러는 느낌이다.
“알겠어. 그만 재촉해.”
대체 뭘 보라고 그러는 거야.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돌린 도로시 눈에 구석에 있는 성벽이 들어왔다.
먼지로 사라진 성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 단단한 성벽에서 뭔가가 톡 얼굴을 내밀었다.
“와! 사람이잖아! 벽에서 사람 나왔다.”
아빠가 이야기해 준 모자 속의 토끼 같다. 신기하다. 하지만 왠지 조금 이상한 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 벽에서 왜 사람이 나오는 거야?”
하지만 엄마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엄마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 * * * * * * * * *
도시 안은 지옥이다.
부하들도 차례차례 미쳐가고, 변경백 군대가 들어온 이후로는 그나마 남아있던 측근도 모두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래도 밖으로 나가면 희망이 있다. 밖에는 그의 후원자가 군대를 이끌고 와 있었다.
그런 게 아니었다면 이런 굴욕적인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5왕자는 죽은 평민의 옷을 벗겨 입은 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정문 근처로 향했다.
다른 성문에는 병사들이 있어서 나갈 수 없다.
하지만 정문 근처에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통로라고 하기에도 조금 어려운, 엎드린 채 기어가야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틈이다.
지금까지는 그 근처에 병사들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모두가 다 미쳐 날뛰며 누군가를 죽이고 있으니까.
‘서둘러야 해. 조금 있으면 그곳도 지나갈 수 없게 될 거야.’
변경백의 군대는 이제 왕자와 그 핏줄, 그리고 공주들을 찾고 있다.
아버지는 이미 잡혀, 구경거리처럼 거리에 매여 있었다.
며칠 사이 형편없이 말라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 아니야. 지금은 아버지 생각으로 감상적이 될 때가 아니야.’
5왕자는 머리를 털었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다. 다른 데 눈 돌릴 틈이 없다.
공주들은 아마 살 수 있을 것이다.
왕적에서 빠져 누군가의 포상으로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나이가 너무 많은 공주는, 온정이 주어진다면 아마 수도원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왕자들, 특히 왕비의 소생들은 안 된다.
분명 모두 죽는다.
5왕자도 정비 소생이었다.
‘왕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단지 이대로 있으면 죽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왕위 다툼에 합류했을 뿐이다.
지금도 그는 변경백군이나 다니엘과 다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우선 밖으로 나가 후원자들을 만난 뒤, 다른 나라로 가거나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왕적에서 빠지고 배상금을 내면, 어떻게든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변경백도 모든 왕자를 죽이려는 건 아닐 거다.
‘아니… 그런가.’
적에게는 용서 없는 베른 일족이다.
현 변경백의 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타이론 병사들 목을 베어 장대에 꽂아놓는 잔인함으로 유명했다.
지금 변경백도, 그 이전 변경백도, 적에게 비정하기로는 매한가지였다.
그들 일족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아 어릴 때부터 전쟁터에 밀어 넣어진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토록 오랫동안 타이론의 침범을 받으면서도 굳건하게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다.
‘외국으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는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5왕자는 수풀 속에 숨겨져 있는 좁은 돌 틈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이 통로를 알게 된 것은 어릴 때였다.
왕세자 형님이 아직 소년일 때 가르쳐주었다.
형님이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나이차가 많아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그에게만 살짝 알려준 비밀이다.
아버지에게 죽은 왕세자를 생각하자, 코가 시큰거렸다.
얼굴 보기 어려운 아버지보다, 그는 형님과 더 가까웠다.
‘지금은 살아남는 데 집중해야지.’
5왕자는 다시 차가운 현실에 의식을 돌렸다.
성벽은 굉장히 두껍다.
그 성벽을 가로질러 나 있는 틈새 역시 상당히 길었다.
한참을 기어가야 한다.
5왕자는 숨을 헐떡이면서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몸을 움직였다.
어릴 때 보았을 때보다 훨씬 좁은 것처럼 느껴졌다.
팔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피부가 거친 표면에 끌리면서 금세 상처가 생겼다.
성벽 돌의 축축한 공기가 콧구멍에 달라붙는 것 같아 괴롭다.
평생처럼 긴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바깥의 공기가 코끝에 닿았을 때는 체면도 잊고 벌름벌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5왕자는 낑낑거리며 간신히 구멍에서 굴러 나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강한 바람이 그를 향해 불어왔다.
퍽퍽, 소리와 함께 화살이 몸에 꽂힌다.
5왕자는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프다.
굵은 화살이 어깨와 다리에 박혀 있었다.
변경백의 병사가 있었던 걸까.
하지만 분명 이곳에 그를 위한 병사들이 있을 것이다. 성은 함락됐지만 모두가 죽지는 않았을 테니까.
5왕자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 그들을 찾아야 해. 분명 어딘가에서 날 구하려고….’
급소는 피했다.
그의 편을 찾기만 하면 살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너른 공간에 쓰러져 죽은 병사들의 모습과, 조금 멀리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의 후원자와 병사들이었다.
아니, 자신의 후원자 군대뿐만이 아니었다.
잘 보면 다른 세력의 군대도 있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다시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십여 개의 화살이 몸 전체에 박힌다.
5왕자는 앞으로 고꾸라진 채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
* * * * * * * * * *
도시 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 변경백의 병사들이 시체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군 중에도 죽은 사람은 있다.
대부분은 부상하자마자 주환이 회복시켰지만, 미처 보지 못한 곳에서 죽은 병사가 여러 명 있었다.
“자네가 직접 태워줄 수 있겠나? 신의 용사인 자네의 손에 흩어지면 그게 곧 그들에게는 가장 큰 축복일 걸세.”
변경백이 죽은 병사의 눈을 감기면서 한 말이다.
이 나라에 화장의 습관은 없다.
대부분은 땅에 매장한다.
전쟁터에서는 크게 구덩이를 파 한데 묻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의 경우였다.
사람들이 신의 아들이라고 믿는 주환이 있으면 사정이 다르다고 변경백은 말했다.
“무엇이 됐든, 자네 손에 처리되면 그게 곧 신의 부름이야.”
“그것이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주환의 말에, 변경백이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도시 안의 시신은 모두 수레에 담겨 성 밖으로 옮겨졌다.
차곡차곡 아군과 적, 일반 시민을 구분해 나란히 눕힌다.
신관들이 나와 시체마다 축복을 내렸다.
그 뒤가 주환의 차례다.
성안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와 지켜보는 가운데, 주환은 먼저 아군의 시체에 마력으로 불을 놓았다.
순식간에 불길이 타오르며 병사의 시신이 재로 변해갔다.
도시 사람과 적이었던 병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신관의 축복이 내려졌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가끔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시신의 수가 엄청나기 때문에 신관들이 축복을 내리는 일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들의 시신도 재가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모두가 재가 되어 바람에 흩날려가는 모습을 보며, 주환은 문득 산속에 잠들어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들도 모두 누군가의 부모요, 자식이었을 텐데, 자신의 죄가 깊다.
‘미안하다.’
이제 남은 것은 강태형.
네크로맨서다.
“….”
이정화 때와 같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주환을 만난 이후 급격하게 힘이 늘어나 결국에는 자신까지 망가져버렸다.
‘만나자마자….’
그를 만나는 즉시 죽여야 한다.
시간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결국엔 모두를 위하고 그 남자조차 위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