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199화(199/235)
#199 밤하늘 아래에서
#199 밤하늘 아래에서
“동쪽이 당했다!”
“철수! 철수! 모두 철수하라!”
“동료를 버리지 마라!”
“부상자가 있는지 확인해!”
“바닥에 횃불을 비춰!”
“아군을 버리지 마라.”
캄캄한 가운데 횃불이 춤을 춘다.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와 비명이 한데 어우러져 밤공기를 찢어댔다.
이렇게 크게 패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스의 심장이 콩닥콩닥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다.
하지만 겁먹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쪽이에요! 이쪽으로! 이 길이 안전합니다. 서둘러요!”
한스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자신이 어느새 난장판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도 무시해 버렸다.
원래 그는 안전한 후방에서 정보만 주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두려움이 머릿속은 물론 입까지 꽉꽉 차올랐지만, 이런 어둠 속에서 동료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캄캄한 밤이 되면, 황야와 숲으로 뒤범벅된 이런 지역은 더욱 위험해졌다.
동서남북은커녕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져 버린다.
마력 탐지를 하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은 어둠 속을 헤매다 언데드 속에 뛰어들거나, 아니면 동료와 떨어져 엉뚱한 숲에서 아침을 맞게 될 것이다.
아니, 아침이 되기 전에 마수한테 먹혀 죽을 확률이 더 높다.
‘나밖에 없어. 이 사람들을 구할 사람은.’
오줌 지릴 것처럼 무섭지만 용기를 내자.
한스는 횃불을 두 손으로 들고… 아니, 이놈의 횃불은 보기와 달리 왜 이리 무거운 건지 한 손으로는 들 수가 없다.
어쨌든 한스는 횃불을 하늘 높이 쳐든 채 가능한 크게 흔들었다.
병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자, 한스는 횃불로 어둠 속을 가리켰다.
“저쪽이에요! 서둘러요. 잠시 뒤면 저 길에도 놈들이 도착할 겁니다. 서둘러!”
부상병을 업고 메고, 병사들이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한스는 다시 몸을 둘려 횃불을 흔들었다.
“여기야! 여기! 서둘러요!”
한참을 외치다 보니 악이 받친다. 마음은 급한데 병사들이 너무 느렸다.
“이 똥멍청이들아! 서두르라고! 잘못하면 모두 죽는다! 똥줄 빠지게 달려!”
바로 앞까지 부상병을 업고 달려온 병사가 힘들게 숨을 내쉬면서 한 마디 뱉고 지나갔다.
“알았다, 멍청아!”
다른 병사가 또 한 명 지나가면서 갈라진 소리로 웃었다.
“이제야 베른 병사 같네.”
“헛소리 지껄일 힘이 있으면 뛰어!”
한스는 그렇게 외치고 다시 횃불을 높이 들었다.
흠, 이 사람들 입이 왜 이렇게 거친가 했더니, 전쟁터에서 구르다 보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어쨌든 서두르지 않으면 한스 자신도 위험할 것 같다.
“개새X들아! 나 결혼 못 하고 죽으면 언데드 돼서 찾아갈 테다. 손이 발이 되도록 뛰지 못해!”
진짜 살아서 결혼하고 싶다.
“죽으면 저주할 거야!”
한스는 진심을 담아 외치다, 문득 언데드 몇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다.
사람들을 불러들이는데 신경 쓰다 놈들이 가까이 온 걸 놓친 모양이다.
“안 돼! 그만! 다른 쪽으로 가! 이쪽도 막혔다. 다른 쪽으로 가야만….”
그렇게 말하던 한스는 뒷덜미에서 한기가 쫘악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재빨리 몸을 앞으로 구부렸다.
“우아아아아아아! 언데드다. 시체놈이 왔다. 여기 시체놈이 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구르는데, 이놈의 언데드가 행동이 빠르기도 하지. 덥석 그의 다리를 움켜쥐었다.
“끄아아아악. 물린다! 물린다! 나 죽는다!”
그렇게 외치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마력이 그의 몸 전체를 덮었다.
그의 다리를 잡고 있던 언데드가 움찔하더니, 하얀 말의 발에 차여 멀리로 나가떨어졌다.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자 어둠 속에서도 새하얗게 몸을 빛내는 유니콘이 허공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용사님!”
주환이다. 신의 용사가 왔다.
한스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횃불을 들고 정신없이 흔들며 어둠 속을 향해 외쳤다.
“용사가 왔다! 신의 용사가 왔다! 이제 살았어! 모두 이쪽으로 와라! 용사님이 오셨다!”
“수고했어요, 한스.”
높은 허공에서 주환이 짧게 한 마디 하자, 유니콘이 히잉 하고 울음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아갔다.
전쟁터를 누비는 하얀 말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왜인지 모르지만 주환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자체 발광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어째서 사람이 반딧불이처럼 밝게 보이는 걸까.
마력 때문인가.
밤인데도 눈이 부신 느낌이다.
마치 번개를 몸에 두르고 달리는 전쟁의 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용사가 왔다는 함성이 들리고, 그 소리에 화답하는 것처럼 새로운 병사들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우와아아아아아!”
힘찬 함성이 쏟아진다.
지치고 힘에 겨워 억지로 내지르는 함성이 아니다.
펄떡펄떡 살아움직이는, 지금 막 잡아올린 물고기 같은 외침소리였다.
진짜 살았구나, 실감이 생겼다.
“우와, 나 살았어. 진짜 살았다. 이제 도망가야지.”
용사가 왔으니 일단은 이 자리에서 떠나자.
한스는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베른 병사를 향해 뛰었다.
병사는 부상병을 데리고 있었지만 둘 다 지치고 다치고 힘들어 보였다.
굼벵이보다 느리다.
저러다가는 분명히 쓰러지지 싶었다.
허둥지둥 달려간 한스는 부상병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셋이 함께 달렸다. 이제 진짜로 도망친다.
한데 이상하기도 하지. 전투 때문에 힘 빠지고, 다쳐서 몸이 불편한 건 다른 두 명인데 어째서인지 한스가 제일 느렸다.
“야, 네 몸에 붙어있는 다리는 장식이냐?”
“….”
부상병이 한 마디 한다.
버리고 갈까.
한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이 사람들은 나쁜 놈들이 아니다. 단지 입이 더러울 뿐이다. 마음은 착한 놈들이… 겠지.
“이러다 너 때문에 다 죽겠다.”
아닌가. 그냥 감사할 줄 모르는 뻔뻔한 놈인가.
부상병이 중얼중얼 뭔가를 투덜거렸다. 콱, 죽여버릴까 보다.
“멍청이처럼 시체한테 물리는 놈이 입만 살았네. 허허. 그 정도 기운 있으면 죽진 않겠다.”
반대편에서 부축하고 있던 병사가 껄껄 웃었다.
“어쨌든 덕분에 살았네. 고맙다.”
부상병이 작게 말했다. 아까부터 투덜거리는 건 단순히 수줍어서인지도 모른다.
한스는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목숨 걸고 도와주는데 불평이 더 많은 건 좀 억울하지만, 역시 나쁜 놈은 아니다.
‘이런 대화도 좋은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고개를 떨구고 있던 부상병이 문득 한스를 보았다.
“어라, 탐지병! 너 무서워서 오줌 지렸냐?”
“….”
그래, 아까 죽을 뻔했을 때 조금, 아니 사실은 많이 지렸다.
그가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처음이면 누구나 다 그럴 거다.
여기로 오기 전까지 그는 전쟁터에 서지 않는 탐지 마법사였던 거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 잘린 언데드랑 껴안아봐라. 누구라도 쫄아버리지.
“풉!”
“오줌을 지려…. 내 전쟁터에서 몇 년을 굴렀지만 오줌 지린 놈은 또 첨보네.”
“소년병도 무섭다고 오줌은 안 싸더만.”
“고X 떼라.”
뒤쪽에서 쫒아오던 베른 병사들이 배꼽 잡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빌어먹을.’
X됐다. 이거 평생 놀림거리다. 얼굴에 핏대가 올랐다.
“빌어먹을 개새X야! 알면서 묻는 거 아니야!”
“하하하. 미안, 미안. 설마 다 큰 남자가 바지에 오줌을 쌀 줄이야. 설마 했지. 땀인가 싶었다.”
“….”
한스는 생각했다.
여기나 저기나, 시모니나 타이론이나, 병사 놈들은 다 개새X다. 배려라는 게 없어.
* * * * * * * * * *
“힘내! 도움이 왔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 일어나라! 너희들이 살아있다, 여기 있다는 신호만 주면 아군이 돕는다. 일어나! 손가락 하나만이라도 움직여 신호를 보내라!”
주환이 외치며 달려가는 앞에, 꿈틀거리는 바닥이 보였다. 아주 조금이었지만 분명히 땅이 움직였다.
이 세계의 어둠은 인간에게 불친절하다.
캄캄한 발밑에 있는 것이 땅인지 언데드인지, 아니면 구해야 할 아군인지 구별할 수 없다.
마력 탐지가 없었다면 주환 역시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허둥지둥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환은 재빨리 땅에 마력을 보냈다.
‘인간이다.’
살아있다.
미약한 숨이지만 아직 붙어있었다.
주환의 말을 듣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빠르게 달리던 연화가 순식간에 속도를 줄이며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연화가 미처 다 서기도 전에, 주환은 훌쩍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이대로 보내면 죽을 거야.’
숨이 너무 약하다.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게다가 이미 언데드화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꼼꼼하게 치료할 시간은 없었다.
‘일단은 살려놓는 게 우선인가.’
더불어 언데드의 씨앗이 있다면 그걸 억제해야 한다. 상당히 강한 마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 사람 몸에는 조금 무리가 되겠지만 어쩔 수 없지.’
주환은 병사의 몸에 회복마력을 불어넣었다.
너무 강한 마력이 들어가서인지, 병사의 몸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병사의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져 나왔다.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많이 아프겠지만 일단은 참아줘.”
어쩔 수 없다. 우선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주환은 조금 더 마력을 넣은 뒤에야 부상병에게서 손을 뗐다.
뒤따라 온 병사에게 부상자를 넘기고, 주환은 다시 마력탐지로 바닥을 훑어갔다.
“저쪽! 두 명이다.”
주환의 말이 떨어지자 근처에 있던 병사 몇 명이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
주환은 언데드와 붙어 고전하고 있는 병사들한테 달려갔다.
마력을 두른 손으로 언데드의 머리를 잡는다.
위험했다. 병사가 코를 물어뜯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언데드 머리를 훌쩍 뒤로 당기며, 주환은 그대로 불을 일으켰다.
어둠 속을 환하게 밝히며 언데드가 타오른다.
고통에 가득 찬 언데드의 눈동자가 언뜻 보였다.
‘여전히 이 언데드들은 고통을 느끼는구나. 영혼은 그대로 살아있는데 몸만이….’
하지만 불쌍히 여길 틈이 없다.
근처에서는 연화가 언데드 둘을 발길질해 바닥에 쓰러뜨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못하도록 말발굽으로 언데드의 팔과 다리를 내리친다.
단지 부러뜨리는 게 아니었다.
둔탁한 망치로 팔다리를 끊은 것처럼, 말발굽이 닿은 자리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주환은 그대로 몸을 돌려 연화 위에 올랐다.
사방을 휘 둘러본다.
아수라장이었다.
적과 아군이 이렇게 섞여 있는 상황에서는 주환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고통스러워지는 사람이 좀 많겠지만 어쩔 수 없지.’
주환은 몸속에 있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 어둠 속에서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내 구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
다소 무리하게 마력을 밀어 넣더라도 한꺼번에 풀어놓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산타벼룩의 공기방울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무래도 마력이 약해진다. 언데드의 씨앗에 영향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주환은 숨을 고른 뒤, 너른 공간을 향해 회복 마력을 풀기 시작했다.
강하기는 하되, 인간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까지만, 조심해서.
긴장으로 몸이 굳었다.
힘 조절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
너무 강하면, 아무리 회복마력이라 해도 사람을 죽여버릴 수 있다.
치유력을 두르고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이건 불과 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동일한 마력이니까.
“윽!”
“히익….”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가면서 작은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주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너무 강한 것은 아닌지, 조금 더 마력을 풀어도 되는 건지, 잠시 망설임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
언데드의 씨앗을 죽이지 못한다 해도 일단 성장을 멈추게 하려면 조금 더 강해야 할 것이다.
주환이 마력을 털끝만큼 강하게 하자 나직한 비명소리가 더욱 커졌다.
‘괜찮아. 괜찮아. 죽지 않았어. 아직 죽은 사람은 없다. 조금만 더….’
잠시 동안 마력을 풀어놓던 주환은, 사람들의 몸이 한계점이 이르렀다는 판단이 들자 마침내 힘을 거둬들였다.
잠시 뒤, 사방이 부산해졌다.
죽은 듯이 바닥에 엎어져 있던 사람은 일어나고, 부상당해 비틀거리던 병사들의 걸음은 뚜렷하게 변했다.
언데드와 싸우던 병사들은 피곤하던 몸에 갑자기 활력이 가득 차면서 승기를 잡아갔다.
“철수하라! 언데드를 쫓지 마. 싸우지 말고 철수하라! 동료와 함께 뒤로 물러서!”
주환의 외침소리를 듣고, 병사들이 그대로 말을 옮겨 고함치기 시작했다.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병사들이 일제히 언데드를 피해 달린다.
일부 병사들은 나무 방패로 언데드를 막으며 동료들이 도주할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이쪽으로! 여기야!”
“달려라!”
한스와 여러 명의 병사들이 횃불을 흔들며 철수 장소로 아군을 불러들였다.
그쪽에는 나무 방패로 방어벽을 만든 병사들이 수십 명 있었다.
하나 둘 도망치던 병사들이 그 너머로 들어가, 다시 나무 방패로 새로운 방어벽을 만들었다.
언데드가 몇 정도 몰려갔지만 도끼병들이 뛰쳐나와 재빨리 팔다리를 잘랐다.
언데드에 섞여 있던 병사들이 차차 적어지고, 마침내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주환은 몇 번이나 마력 탐지를 펼쳐 아군 병사가 쓰러져 있는지, 언데드와 섞인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마침내 마지막 한 명의 병사까지 모두 나무 방패 방어벽 뒤로 들어가자, 주환은 산타벼룩을 불러냈다.
“주인님! 산타벼룩 대령했습니다. 팽.”
산타벼룩이 파르르 날갯짓하며 힘차게 외쳤다.
“그래….”
주환이 명령을 막 내리려는데, 산타벼룩이 파르르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대답했다.
“옙! 알겠습니다. 팽!”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을 읽는 게 편하기는 한데 이럴 때는 조금 머쓱해진다.
주환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송진가루 주머니를 꺼내자, 산타벼룩이 공기방울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밤하늘이 작은 공기방울로 가득해졌다.
붉은 문양이 공기방울의 표면을 덮는다.
주환이 주머니에서 송진 가루를 약간 덜어내 손바닥에 올리자, 공기방울이 차례차례 그 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