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화(2/235)
#002 노예
현대의 자동차도 비포장 돌길을 달리면 덜컹거린다. 하물며 그저 판때기에 바퀴만 붙인 마차는 오죽할까.
무거운 나무 마차는 말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크게 흔들려, 머릿속의 뇌는 종처럼 흔들흔들, 몸은 뼈까지 모조리 덜컹거렸다.
덕분에, 이 괴이한 곳에 떨어진 뒤로는 물 한 모금 먹지 않았는데도 계속 토했다. 나중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헛구역질을 해댔다.
결국 괴로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김주환은 다른 사람을 밀치며 가장자리로 향했다. 몸을 질질 끌면서 이동하자,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가장 자리는 안쪽보다 춥지만 다리를 조금 넓게 펴고 앉을 수 있다. 아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 했다.
그 틈을 억지로 파고들자, 남자 한 명이 팔꿈치로 김주환의 얼굴을 쳤다.
반사적으로 피하기는 했지만 몸이 괴로웠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못했다. 남자의 팔꿈치는 김주환의 이마를 강하게 쳤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생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먹질을 해댔다. 싸움은 익숙한 편이었다.
김주환은 자신의 몸에서 막 떨어지는 남자의 팔을 잡았다.
남자의 한 팔을 등 뒤로 꺾으며 상체를 바닥에 찍어 누른다.
남자는 마차 바닥에 뺨을 눌린 채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김주환이 조금만 힘을 주면 남자의 팔은 부러지고 말 것이다.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겁에 질려 숨을 헐떡였다.
김주환의 길을 막으려고 하던 다른 남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남자들은 김주환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몸을 피했다.
남자들의 세계는 어딜 가나 비슷하다. 상대가 강하다고 알면 함부로 대적하지 못한다.
김주환은 사람들을 밀치며 가장자리로 나갔다. 얼굴을 사람들에게서 돌려 외부로 향하자 차가운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왔다. 썩은 냄새에서 해방되어, 겨우 숨이 쉬어졌다.
*
행렬은 한참을 가다 잠시 서서 쉬고 다시 움직였다. 춥고 힘들다. 마차의 덜컹거림을 견뎌내는 게 고작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사람이 가득한 마차는 끊임없이 흔들거리면서 추운 겨울 길을 지나쳐갔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시간이 흘러갔다. 해는 아직 높이 떠 있지만 공기는 서서히 차가워지고 있었다. 겨울의 해는 짧다. 어쩌면 이제 곧 밤이 되는 게 아닐까. 지금도 이렇게나 추운데 밤이 되면 얼마나 기온이 떨어질는지,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하늘이 붉어질 무렵 행렬이 멈췄다.
병사들이 서둘러 천막을 치고, 여기저기에 불을 피웠다. 큰 솥이 불 위에 걸린다. 병사들이 어디선가 물을 가져와 붓고 다시 그 안에 여러 가지를 집어넣었다.
김주환은 멍하니 병사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가 탄 마차는 병사들과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고소한 냄새는 이곳까지 풍겨왔다.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하지만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지급되지 않은 채 병사들의 식사가 끝났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병사들이 마차 안에 약간 큰 나무통과 표주박처럼 생긴 둥근 그릇을 넣어주었다.
나무통에는 묽은 죽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병사들이 먹던 것과는 다르다. 상했는지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배는 고팠지만 그걸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마차 안의 다른 남자들은 허겁지겁 나무통의 음식에 달려들였다.
몇 개 없는 그릇을 빼앗아 먼저 먹으려는 사람과 맨손으로 음식을 떠올려 먹는 사람, 뒤쪽에서 어떻게든 나무통에 가까워지려는 남자들이 순식간에 뒤엉켜 마차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무통은 순식간에 비었다. 사람 수보다 음식의 양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병사 몇 명이 마차마다 돌아다니며 나무통과 그릇을 수거해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병사들이 마차 위에 둥글게 말려 올라가 있는 두꺼운 천을 내렸다. 넝마 조각처럼 낡은 천이 마차를 덮자 사방이 조용해졌다.
마차를 덮은 건 일반적인 천이 아니었다. 가죽 같은 걸 가공한 게 아닌가 싶다.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표면이 약간 오돌토돌한, 두꺼운 비닐장판 같았다.
두꺼운 천 덕분에 추위는 덜해졌지만, 동시에 공기도 차단되었다. 신선한 공기가 공급되지 않으면서, 마차 안은 금세 숨 막힐 듯한 악취로 가득해졌다.
악취와 희박한 공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숨이 막혀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김주환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조금이라도 공기를 더 맡을 수 있도록 가장자리에 바짝 붙는다.
천막과 마차의 좁은 틈새에 코를 향한 채, 김주환은 최대한 천천히 숨을 쉬었다.
‘천천히, 천천히, 괜찮아. 여기는 밀폐된 공간이 아니야. 적지만 공기는 계속 들어오고 있어. 두렵지 않다. 나는 두렵지 않다.’
김주환은 두려워지는 마음을 억눌렀다. 조급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급해지면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강해진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더 많은 공기를 빨아들이려 들고, 결국엔 숨을 쉬지 못한다는 공포로 머리가 미쳐버릴 거다.
김주환은 반복해서 얕은 숨을 쉬었다. 잠이 들면 깨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공포가 수없이 밀려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뜬다. 하지만 눈을 떠도, 감아도 어두운 것은 똑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가족은 없다. 부모님은 중학교 때 사고로 돌아가셨고, 그 이후로는 쭉 혼자였다. 여자를 사귄 적도 있었지만 길게 가지 못했다.
캄캄한 집으로 돌아가 불을 켤 때마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새삼 느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왔다. 외로운 세상에서 한껏 허세를 부리며 고개를 들고 살았어. 하지만 솔직히 지쳐 있었다. 매일 밤 잘 때마다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하지만 어느새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조차도 외로워져 버렸다.
‘아버지, 어머니.’
이런 곳에 떨어져서도 계속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래야 하나요. 싫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 익숙한 세상에서 밀려나와 이런 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면, 그렇다면 이제야말로 그만 노력해도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몸이 마음을 배반했다. 살고 싶다, 공기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쳐댄다. 희박한 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해 숨이 가빠져갔다.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왠지 산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행복하세요! 행복은 개뿔, 이 세상이고 다른 세상이고, 다 제기랄이다.
그날 밤은 계속해서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억누르며 보내야했다. 추위보다 더 힘든 시간이었다. 아침이 되고 천막이 올라간 뒤에야 겨우 자신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런 날이 이틀 더 이어졌다. 밤마다 매일, 오늘은 죽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의 목숨은 끈질기다. 쉽게 죽지 않는다. 죽어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져갔다. 그냥 고통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흘째 되던 날, 김주환이 탄 마차는 초라해 보이는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하늘 높이 해가 떠 있는 정오 무렵의 일이었다.
*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보는 마을이다.
‘이곳에도 보통 사람이 살고 있구나.’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김주환은 마차의 나무 창살에 달라붙어 조용한 시골 마을을 바라보았다.
동물이나 도적을 막기 위한 것일까. 바짝 얼어붙은 겨울 밭을 배경으로, 사람 키 정도의 돌벽이 길게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돌담으로 뭔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돌벽은 군데군데 허물어져 구멍이 나 있었다. 그나마도 마을 전체를 두르고 있지는 않았다.
병사들이 마차를 끌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인적이 뜸한 거리 너머에서 몇 명의 남자들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김주환은 마차의 나무 창살을 붙잡고, 병사들을 맞이하는 마을 남자들을 보았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과 중년 정도로 보이는 마을 남자들이 병사들에게 허리를 굽실거린다.
노인의 신분이 가장 높은 것처럼 보였다. 다들 비슷한 차림이지만 가장 깨끗했고, 병사들의 대장과 대화는 사람도 노인이었다. 어쩌면 저 노인이 마을을 책임지는 촌장일까.
병사들의 대장이 뭔가 말하자, 촌장 옆에 있던 마을 사람이 허둥지둥 마을 안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 병사들은 마차를 마을 안쪽으로 이동시켰다.
땅덩어리는 넓었지만 마을 자체는 크지 않았다. 집들은 약간의 거리를 두었을 뿐 가까이 붙어 있었고, 마을의 중앙으로 보이는 광장 한쪽에는 돌을 쌓아 만든 우물이 있었다.
우물을 보자 갑자기 목이 말랐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김주환과 같은 마차에 있는 남자들이 마른 침을 삼켰다.
하지만 마차 안의 누구도 뭔가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다. 김주환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입을 꾹 다물고 마차 밖에 시선을 주었다.
튀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마을에 들어오기 전, 다른 마차에서 한 명이 병사에게 뭔가 말을 걸었다가 얻어맞는 걸 보았다. 맞은 남자는 눈이 터졌는지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마차 안 사람들이 죽든 살든 신경쓰지 않는다. 아마 동전 한 장의 가치조차 없는 걸 거다.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없는 게 분명했다. 최소한 병사들에게는 가치가 없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된 걸까. 바짝 마른 입술 사이로 작은 한숨이 빠져나갔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마을 남자들이 술통을 여러 개 가지고 왔다. 그 뒤에는 여자 몇 명이 음식 바구니를 안고 있었다.
병사들 사이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울렸다.
우물 옆에 있는 작은 나무 테이블에 술통과 나무잔이 놓이고, 여자들이 음식 바구니를 놓았다.
대장과 병사 몇 명이 술을 들이키며 여자들에게 뭔가 말을 걸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에 끈끈한 게 묻어 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시선과 목소리로 그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병사들은 금방 이 마을을 떠날 것 같지 않다.
“….”
이 마을에는 왜 온 걸까. 그저 어디론가 가다 들린 건지, 아니면 뭔가 목적이 있어 온 건지, 왠지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마을 촌장이 대장에게 굽실거리며 뭔가 말하자, 대장이 힐끔 마을 여자들을 보았다. 여자들은 파리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촌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여러 번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슬쩍 대장의 손에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주머니가 약간 묵직하게 내려앉은 걸 보면 금화나 은화같은 동전 종류의 돈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싶다.
대장이 슬쩍 주머니 입구를 열어 안을 보더니 병사들에게 뭔가를 소리쳤다.
“#### #####.”
병사 몇 명이 다른 마차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 마차에는 가장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사람 수가 다른 마차의 두배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대략 사십에서 오십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앉을 공간조차 없어서, 몇 명은 엉거주춤 선 채 다른 사람 위에 엎어져 있었다.
병사들의 재촉을 받으며 마차 안에 있던 남자들이 밖으로 나왔다. 조금이라도 느리게 움직이면 병사들이 창을 거꾸로 하여 찌르거나 마구잡이로 때렸다.
마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추측했던 대로 죄인이거나 노예인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발목에 쇠고랑을 붙이고 있었다. 느낌으로 보면 죄인보다는 노예일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
자신은 대체 어떤 취급이 될까. 쇠고랑이 없어도 다른 사람처럼 노예로 취급되려나. 하다못해 이 마차가 아니라 그냥 벌판에 떨어졌으면 다른 방도가 있었을지 모르는데, 재수 없는 놈은 결국 다른 상황에서도 끝까지 재수가 없는 것 같다. 김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쩔렁쩔렁 쇳소리를 울리며 노예들이 마차 밖에 모여 서자, 촌장과 마을 남자들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촌장과 남자들은 노예들 앞에 서서 한 명씩 차례대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입을 벌리게 하여 안을 확인하고, 어깨와 팔, 허리를 꼼꼼하게 만져가며 살핀다. 앞에서 뒤에서 보고, 앉거나 한 바퀴 빙그르 돌게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노예를 고르는 것 같다.
촌장과 마을 남자들이 이십 여명 되는 노예를 고르자, 병사들이 그들을 대장에게 끌고 갔다.
대장이 앉아있는 탁자에 한 병사가 두툼한 종이 뭉치를 갖다 놓는다.
대체 뭘하려는 걸까. 앞으로 벌어지는 일은 미래에 김주환이 당할 것이기도 하다. 김주환은 숨을 삼키고 가만히 나무 창살 너머로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