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0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09화(209/235)
#209 윈우드 남작이 되다
#209 윈우드 남작이 되다
왕도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달리 화려했다.
비싼 옷을 입고 보석을 붙였다는 것이 아니다.
병사들은 일부러 피를 닦지 않은 도끼와 창을 들고, 지금은 쓸모도 없는 나무방패를 수레에 얹고 가다 도시에 가까워지면 다시 꺼내 들었다.
모두 변경백의 지시라고 한다.
병사들의 모습이 처절하게 보일수록 승리의 가치가 높아진다.
이번에는 대런도 동행했는데, 그가 히죽거리며 작게 말했다.
“아마 이건 카일이나 그 아버지의 제안일 겁니다.”
“카일… 그 젊은 수석 보좌관입니까? 길드의 수다쟁이와 사이가 나쁘다는.”
“그래요. 그 사람 집안은 대대로 변경백의 측근을 하고 있죠. 우리 가문치고는 드물게 머리가 좋고 약삭빠른 부류에 속합니다.”
무력에만 치중하고 있는 변경백과 그 직계는 계략에 약하다.
카일 집안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보충해 주는 자들이었다.
“길드로 쫓겨나 있는 막내도 무력보다는 머리 쪽이 더 도는 편이죠. 하지만 그 아이는 성격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버지나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걸 알아차리면서도 그걸 속으로 삭히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놓지요. 뭐, 결국은 그 아이도 우리 베른 직계 남자라는 말입니다. 계략과 귀족 사회에는 솔직히 어울리지 않아요.”
대런은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막내는 거기에서도 수다쟁이라고 불리는 모양이군요. 집에서도 이름 대신 짹짹이라고 불렸는데.”
아니, 짹짹이는 좀 너무하지.
주환이 웃자 대런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늘을 보았다.
“그 아이 못 본 지도 꽤 됐네요. 어머니가 가끔 혼자 울고 계시죠.”
귀족이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가서 보면 될 것 같은데 권력과 돈을 가지고도 그 단순한 일을 못한다.
갑자기 조용해진 대런을 힐끔 보면서, 주환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도시에 가까워지자 성 밖까지 사람들이 나와 병사들을 맞는다.
들리는 도시, 향하는 길마다 백성들이 나와 환호하고 있었다.
작은 들꽃을 뿌리거나, 가끔은 음식을 내미는 사람도 있다.
변경으로 향할 때는 고용된 용병 신분이었던 자들도 왕도로 돌아가는 길목에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병사다.
길게 늘어진 군대 행렬 속에 있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없던 애국심이 생기네.”
하하. 어쩌면 저 용병들 중에서도 병사로 전직하는 사림들이 좀 있을지 모르겠다.
“신의 축복을!”
“축복을!”
주환에게 축복을 내려달라는 사람과, 병사들의 행렬을 향해 신의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병사들이 행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간다 간다 간다 산타의 가호 아래 변경백군이 간다. 물러가라 적들아, 우리 용사 나가신다, 신의 용사 나가신다.
병사들의 목소리에 맞춰 길가에 서 있던 사람들도 함께 노래한다.
용병들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아무래도 병사로 전직하는 용병이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왕도에 도착한 뒤, 주환은 공식적인 승전 행사 전에 다니엘과 변경백을 만났다.
주환은 가장 작은 접견실로 안내되었다.
작다고는 해도 30평짜리 아파트보다 넓은 것 같다.
화려한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된 접견실에 들어서자, 다니엘은 미리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은 왕이 늦게 들어오는 거라던데, 성격도 급하다.
주환을 보자 다니엘이 위엄 있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에 승리를 가져온 용사여, 이리 가까이 오라.”
전쟁 때문에 왕궁을 떠날 때, 다니엘은 아직 조금쯤 어설픈 느낌이 남아있는 소년왕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사이, 그는 날 때부터 왕이었던 것처럼 의젓해져 있었다.
기초가 단단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주환이 뿌듯해진다.
가까이 가서 고개를 숙이려 하자, 다니엘이 그걸 막으며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어때요? 진짜 왕 같습니까?”
“… 폐하.”
주환이 나무라는 것처럼 부르자, 다니엘이 어깨를 약간 움츠렸다.
“숨이 막히거든요. 왕처럼 하고 있는 건. 변경백도 주환 씨 앞에서만 이라면 괜찮다고 했으니, 뭐, 좋잖아요. 적어도 숨 쉴 구멍은 있어야죠.”
“….”
힐끔 변경백을 보자, 튼튼한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는다.
“자네가 그랬지. 폐하에게 마음을 허락하고 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게 자네가 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네.”
“….”
물론 그렇게 생각했었다.
외로운 왕의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평범한 사람처럼 말하고 의지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게 자신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애초에 다니엘과는 그렇게 긴 교제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우연이 겹쳐서 몇 번 만난 사람일 뿐.
하지만 반짝거리는 다니엘의 얼굴을 보니 뭐, 이래도 상관없나 싶어졌다.
주환이 쓴웃음을 짓자, 변경백이 입을 열었다.
“승리의 보상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려고 자리를 마련했네. 미리 말해두지만 보상을 받지 않는 건 곤란해. 용사일 뿐 아니라 전쟁영웅인데, 거기에 보상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왕과 나라를 위해 싸우려 하지 않을 거야.”
“그건 그렇겠지요.”
“솔직하게 말해서 자네의 공로를 금화 같은 것만으로 치하하는 것도 어렵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가로 금화를 내놓는다고 하면 금액이 정말 어마어마해지네. 현재 우리나라에 그런 돈은 없어.”
게다가 다니엘이 왕이 된 직후니 돈은 가급적 아끼고 싶을 것이다.
주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영지를 받아줬으면 좋겠네.”
“… 그냥 왕궁 창고에 박혀 있는 아무 칼이나 막대기 몇 개로 끝내면 안 되겠습니까?”
주환의 말에 변경백이 크게 웃었다.
그가 주환의 어깨를 탕탕 치더니 힘 있게 말했다.
“영지를 받아주게. 자네한테 꼭 필요한 장소를 알아냈지. 받고 나면 자네도 기뻐할 거야.”
“거기가 어딥니까?”
“미안하지만 아직 말해줄 수 없네.”
“….”
주환은 변경백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다니엘에게 시선을 주자 그도 웃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만 보면 말해주고 싶은 모양이다. 표정이 들썩들썩하고 있었다.
‘일부러 비밀로 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은 말할 수 없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환은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혹시 주인이 있는 땅입니까? 설마, 영지를 줄 테니 싸워 이겨서 차지하라는 건 아니겠죠?”
“뭐! 물론 그건 아니에요.”
다니엘이 당황해서 손을 젓는다.
주환은 가만히 변경백의 얼굴을 보고 문득 말했다.
“혹시… 타이론의 땅입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말해줄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타이론의 사자가 이미 왕도에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지금쯤은 이쪽에서 요구하는 배상 목록을 가지고 타이론으로 출발했을 것이다.
변경백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면 굳이 비밀로 할 필요도 없겠지.”
변경백이 씨익 웃었다.
“자네가 산타마을을 찾고 있다고 들었네. 보상으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길드장이 말해주더군. 길드에서 자네 의뢰로 산타마을이 있을 것 같은 지역을 찾는 중이라고.”
“설마… 타이론에 산타마을이 있습니까?”
주환이 놀라자, 변경백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그런지는 몰라. 하지만 국경에 인접해 있는 타이론 땅에 있을 가능성이 크네.”
몇백 년쯤 전부터 갑자기 마수가 증가한 지역이라고 한다.
주환은 산타벼룩이 설명한 산타마을의 모습을 길드에 전해두었는데, 그것과도 얼추 들어맞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지역에서 산타를 보았다는 목격자가 과거에 있었다네.”
“맙소사.”
전쟁이 끝나면 마차를 타고 다니며 각 지역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막막했었다.
언제까지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리지가 임신까지 했다.
그런 상태에서 긴 마차여행이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고, 결국 아이가 태어나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산타 찾는 걸 중단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전쟁배상 목록에 그 지역을 끼워 두었네. 그곳에 관한 협의를 먼저 하겠다고 요구했으니, 머지않아 회신이 올 거야. 크게 가치가 있는 땅은 아니기 때문에 타이론에서도 크게 고집하진 않을 걸세.”
변경백이 한눈을 찡긋하며 웃었다.
“처음에는 고생을 많이 할 거야. 그곳은 내가 알기로는 숲이 많고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적지. 우리와 국경이 가까워서 약탈도 곧잘 당했다네. 가난한 데다 민심까지 그리 좋지 않을 걸세.”
변경백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말이 귀족이고 영주지, 처음에는 부유한 평민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거야.”
“….”
오히려 번화하고 화려한 도시를 받는 것보다 좋다.
귀족과 거리가 먼 주환과 리지에게는 지금 말한 것 같은 땅이 더 잘 맞을 것이다.
어쩌면 변경백은 그런 것까지 모두 생각해서 그 영지를 주기로 결정한 건지도 모른다.
주환은 다니엘과 변경백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주환의 반응을 보고, 다니엘과 변경백이 기쁜 듯 웃고 있었다.
그 후 한동안, 주환은 왕도에서 머물렀다.
변경백이 왕궁 안에 방을 마련해 주었지만, 리지와 도로시를 위해 거리에 방을 빌렸다.
귀족 거리의 저택에서 머물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그것도 거절했다.
리지와 도로시는 시장이 열릴 때 돌아다니며 그걸 구경하고, 거리의 사람들과 섞여 웃는, 그런 나날이 더 즐겁다.
귀족 흉내를 내야 하는 저택에서의 생활은 그리 즐거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간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주환을 알아본 주민들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말을 걸었다.
“용사님! 전쟁에서 승리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용사님.”
“유니콘님은 안 보이시네요.”
사람들이 말을 붙이는 통에 앞으로 갈 수가 없다.
도로시가 리지 손을 잡고 가만히 주환을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푸, 쉬었다.
“아빠가 너무 인기 있어서 도로시가 걸어갈 수가 없어.”
“… 미안하다.”
“괜찮아, 아빠. 도로시는 마음이 넓으니까. 배가 고프지만 참을게.”
아니, 정말로 미안하다.
리지가 킥킥거리고 웃자, 도로시가 걱정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 그렇게 웃다가 무리하면 어떻게 해? 조심해야지.”
“… 그래.”
리지가 웃음을 참으며 대답한다.
이 교환을 벌써 몇 번째 보는 건지.
요즘 도로시는 ‘엄마 아빠를 지키는 강한 나’에 심취해 있는 중이다.
모든 걸 자신이 보살피고 확인해야만 한다는 강렬한 의무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한동안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사방을 뛰어다니더니, 어느새 병사가 되겠다는 희망은 없어진 모양이다.
리지가 문득 거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활기가 있네요. 지난번에 봤을 때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는데.”
“정말 그러네.”
왕도가 이정화 때문에 난리가 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찌그러진 문짝과 바닥의 핏자국은 간간이 보이지만 그뿐이었다.
분명 저 사람들 중에는 자식과 부모를 그 와중에 잃은 자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주환은 리지의 어깨를 안고 천천히 걸었다.
반대편에서 리지의 손을 잡고 걷는 도로시가 종알종알 잔소리를 해댔다.
“엄마, 조심해야 해. 걸을 때 돌을 밟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기우뚱 넘어지거든. 알겠어?”
“… 그래.”
저 소리도 벌써 수백 번은 들은 것 같다.
‘설마 아기 태어날 때까지 계속 잔소리를 듣는 건 아니겠지.’
어쩌면 리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살짝 한숨을 쉬었다.
*
이십여 일 남짓 지났을 무렵, 드디어 왕궁에서 승전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가 다니엘이 왕이 된 이후 처음으로 맞는 공식행사다.
그 때문인지, 다니엘은 몸이 무거울 것처럼 보이는 의복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치장하고 있었다.
소년처럼 차려입고 행사에 참석한 도로시가 작게 소곤거렸다.
“아빠, 다니엘 폐하 어깨가 부러질 것 같아. 옷 엄청 무겁겠다. 도로시는 저거 입으면 땅에 박힐 것 같아.”
리지가 옆에서 웃자, 도로시가 눈썹을 조금 일그러뜨렸다.
“엄마, 진짜야. 거짓말 아니거든. 웃으면 안 돼. 도로시가 땅에 들어가면 얼마나 아프겠어?”
문득 다니엘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주환과 마주친 시선이 다시 도로시를 향한다.
도로시가 번쩍 손을 들어 마구 흔들어댔다.
“도로시!”
리지가 작게 아이를 부르자, 도로시가 여전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폐하가 날 보고 손 흔들랬어.”
아니, 그건 아니겠지.
도로시는 식물의 소리를 듣는 거지, 사람의 눈이나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능력은 없으니까.
주환은 도로시의 머리에 손을 툭 올린 뒤 몸을 바로 했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시종의 목소리가 홀 안에 퍼진다.
주환을 힐끔거리며 보던 사람들의 시선 역시 모두 앞쪽의 다니엘을 향했다.
시종이 왕을 대신해, 전쟁의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다니엘이 그 뒤를 이어 이번 전쟁에 참여한 자들에 대한 칭찬을 몇 마디 하자, 홀 안에 요란한 박수 소리가 퍼졌다.
“용사 주환은 앞으로 나오라!”
이제 자신의 차례다.
오늘을 위해 변경백이 마련해 준 의상을 입고, 주환은 다니엘 앞으로 향했다.
왕 앞에 무릎을 꿇자, 시종이 소리 높여 외쳤다.
“오랜 숙적 타이론을 이 나라에서 물리치고 이 나라의 위기를 구한 용사 주환을 윈우드 남작으로 봉하여 그 공로를 치하한다.”
주환은 공손히 고개를 내렸다.
“용사 주환, 명을 받듭니다.”
다니엘이 주환의 어깨에 칼을 한 번씩 대는 것으로 의식은 끝이다.
주환이 일어서자, 다니엘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용사 주환, 그대의 통치로 삭막한 영민의 마음에 꽃을 피우도록 하라. 이 나라에 그대라는 희망이 내려온 것처럼, 그대 사는 땅에서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폐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소리 속에서 몸을 돌리자, 도로시가 열심히 손뼉 치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손에서 불이 날 것처럼 도로시는 열심히 손바닥을 부딪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