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19)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19화(219/235)
#219 평생의 소원
#219 평생의 소원
“오빠, 이거 맛있어. 엄마 특제 스튜야. 엄청난 거거든. 도로시가 여기에 고기를 듬뿍 넣었어.”
아까 봤다.
영주님의 아이는 고기가 모래라도 되는 것처럼 텀벙텀벙 솥에 넣고 있었다.
토비는 불안한 마음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 이래도 되는 건가.’
스튜를 끓이는 솥에 작은 바가지로 물을 몇 번 부었을 뿐이다.
장작을 패려고 했지만 자를 나무도 없고, 고작해야 마차에서 잘 말린 장작을 몇 개 내린 게 토비가 한 일의 전부였다.
그 외는 그저 그릇을 가져다주거나 앉을 자리의 먼지를 조금 터는 정도.
하는 일이 너무 적어서 밥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주님의 부인은 한 그릇을 준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말을 번복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지만 영주님의 아이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식사를 받는다 해도 영주님이 다 먹고 난 뒤에 남는 걸 먹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새 그릇에 담긴 스튜를 받았다.
토비는 물끄러미 그릇을 보았다.
눅진한 스튜가 반이나 들어있었다.
왠지 조금 무서워졌다.
설마 통통하게 먹인 뒤에 잡아먹으려고 하는 건 아닌가.
살짝 영주님의 눈치를 봤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바보 같았다.
자신처럼 빼빼 마르고 더러운 녀석이 맛있을 리 없다.
적어도 이 스튜보다는 맛없을 것이다.
토비는 영주님과 부인을 힐끔힐끔 보다가 물었다.
“이렇게 많이 바, 받아도, 되나요?”
“물론이야. 천천히 먹으렴. 그런데… 우리나라 말을 잘하는구나.”
영주님 부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어… 어릴 때 조금….”
토비가 어릴 때 이 성에는 시모니 왕국의 포로가 여러 명 있었다.
그들은 전쟁 노예로 끌려와 토목공사나 밭일, 눈을 치우는 일 등에 동원되었다.
그때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토비는 힘쓰는 것 대신 그들의 허드렛일을 했다.
포로들의 토사물과 숙소의 똥오줌을 치우고, 곰팡이 핀 밥을 가져다주는 일은 모두 토비의 일이었다.
포로들은 어렸던 토비에게 왠지 동정적이어서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주었다.
그때 시모니 말을 기억했다.
어렸을 때는 타이론 말보다 시모니 언어가 더 능숙할 정도였다.
‘잘한다고….’
영주님 부인은 그냥 하는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칭찬은 처음 받아봤다.
가슴속이 왠지 간질간질하다.
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으렴.”
토비는 자신이 들고 있는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정말로 이게 자신의 몫이었을까. 먹어도 되는 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선뜻 먹을 수 없었다.
영주님 아이 것과 달리, 스튜에 고기는 없다.
그게 서운하지는 않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고기 국물이 들어간 스튜를 받은 것이 처음이라 그저 감격할 뿐이었다.
하지만 영주님 아이는 이상했던 모양이다.
“엄마, 왜 오빠한테는 고기가 없어?”
도로시가 영주님의 부인에게 물었다.
“빈속에 고기를 먹으면 좋지 않아서 그래.”
“그럼 고기는 언제 먹어? 오빠는 고기 못 먹어?”
“조금 뒤에. 스튜를 한두 시간 더 끓여서 고기가 많이 흐물해지면 먹을 거야.”
엑! 토비가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뱉자, 영주님 부인이 부드럽게 웃었다.
“지금은 우선 그걸로 참으렴. 조금씩 먹어야 해. 안 그러면 배에 탈이 나니까.”
“이, 이걸로 충분해요.”
“….”
토비의 말에 영주님 부인은 가만히 웃기만 했다.
토비는 뜨거운 스튜를 조금씩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진한 고기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다.
“엄마, 그러면 오빠는 이 빵도 못 먹어?”
도로시가 노랗고 좋은 냄새가 나는 크림을 빵에 잔뜩 묻힌 채 입에 넣으며 물었다.
“아니, 그건 부드러우니까 스튜에 찍어서 조금씩 먹으면 돼.”
“엑!”
토비는 다시 한번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자신 앞에 놓여있는 작은 그릇을 보았다.
그릇에는 작은 빵조각이 놓여 있었다. 부드러워 보인다. 전 영주님 식탁에 가끔 올라갔던 빵과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빵 옆에는 방금 도로시가 먹은 노란 크림도 있었다.
이게 자신의 것이었다니, 몰랐다.
당연히 영주님의 아이 거라고 생각했다.
“오빠, 빨랑 먹어야 해. 안 그러면 오즈랑 덩굴이 다 빼앗아 먹거든.”
와구와구 소리가 날 것처럼 빵을 입에 밀어 넣으며 도로시가 말했다.
토비는 살짝 아이를 곁눈으로 보았다.
‘나보다 작아.’
영주님의 따님은 작고 귀엽다.
그리고 반짝반짝했다.
웃을 때마다 눈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크게 부풀어있는 머리카락은 화톳불을 받을 때마다 실제로 반짝반짝 빛을 냈다.
이렇게 빛나는 걸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서, 토비는 왠지 눈이 부셨다.
다시 눈을 스튜에 고정하고 조금씩 먹는다.
도로시가 스튜를 더 먹는다고 부인에게 그릇을 내미는 바람에, 몸이 조금 닿았다.
“….”
토비는 어깨를 움츠려 아이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목욕은 물론이지만, 토비는 하인들처럼 천으로 몸을 닦은 적도 없다.
방금 전에는 영주님 부인의 명령으로 도로시와 나란히 손을 씻었지만, 손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여전히 더러웠다.
자신의 더러움이 이 반짝거리는 아이한테 묻을까 무서워졌다.
‘더럽히고 싶지 않아.’
반짝반짝한 것은 계속 예쁘게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
영주관의 하인들이 항상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토비에게 가장 맞는 걸 거다.
그 말이 틀리다거나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인생이 불공평한 건 당연한 거다.
누구는 행복하게 태어나고, 누구는 불행하게 태어난다.
불행한 별 아래에서 태어난 사람은 계속 불행하다.
타고난 별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그런 불행한 사람 중에서도 일등인 토비는 반짝반짝한 걸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어쩌다 만나는 반짝반짝은 멀리에서 보기만 했다.
한데 오늘은 바로 옆에 있어. 그게 왠지 기쁘고 조금은 무서워서 얼굴 표정이 자꾸만 이상해졌다.
왠지 재채기를 할 것처럼 코끝이 간질간질해진다.
‘이게 행복인가.’
묘한 감동을 하고 있는데, 덩굴이 슬금슬금 가지를 뻗어왔다.
“히익!”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자, 도로시가 나무라는 것처럼 말했다.
“덩굴 너는 오늘 나쁜 행동을 했으니까 얌전해야 해. 사람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나쁜 거야. 알겠어?”
덩굴이 도로시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슬그머니 몸을 아래로 내렸다.
‘꽃과 덩굴의 공주님일까?’
저만큼 무서운 덩굴을 꾸짖을 수 있다면 그렇지 않을까.
‘게다가 반짝반짝하고…. 꽃의 공주님이 있다면 이렇게 생겼을 거야.’
어쩌면 영주님은 괴물들의 왕일지도 모른다.
‘그런 소문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새 영주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괴물을 이끌고 다닌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고.
토비는 다시 한번 살짝 도로시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어느새 사방은 캄캄해졌는데, 반짝거리는 금가루가 도로시 주변에 뿌려져 있는 것 같다.
“오빠는 토끼를 잡을 수 있어?”
“…어… 토끼?”
갑자기 꽃의 공주님이 물었다.
어리둥절한 토비에게 공주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 물고 있는 고기를 꿀꺽 삼켰다.
“도로시가 오늘 토끼를 잡았는데, 아빠가 놓아주라고 했어. 나중에 토끼집을 만든 뒤에 잡으러 가기로 했거든. 오빠는 토끼 잡을 수 있어?”
“… 모르겠는데….”
“그래? 그럼 도로시가 가르쳐줄까? 도로시는 엄청나게 잘 잡거든. 토끼 잡는 사냥꾼이야.”
이야기가 어째서 이렇게 흘러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문득 숲에서 반짝거리는 공주님과 함께 토끼를 잡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굉장히 즐거울 것 같다.
이루어지지 않을 이야기지만, 그저 대답만 하는 건 괜찮을지 모른다.
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토끼 두 마리 잡을 수 있겠다. 도로시가 한 개, 오빠가 한 개. 그러면 토끼 왕국을 만들 수 있어. 토끼가 결혼하면 또 토끼가 태어나거든. 아기 토끼가 태어나면 그 아기가 또 토끼를 낳는 거야. 알겠어?”
“… 어….”
도로시의 말이 뭔가 좀 이상하지만, 토끼는 번식력이 강한 짐승이다.
암수 두 마리라면 당연히 새끼를 많이 낳겠지.
토끼 왕국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수십 마리로 불릴 수는 있을 거다.
작은 꼬마 공주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옆에 앉아있던 작은 뿔토끼도 일어선다.
마치 줄에 매달려 똑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동작이 똑같아.
“아빠, 언제 토끼 잡으러 가면 돼요?”
“우리 만들 때까지 조금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토끼가 다 도망가면 어떻게 해?”
도로시가 깜짝 놀라서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만큼이나 토끼를 잡고 싶었을까.
커다랗게 떠진 도로시 눈동자 때문에 왠지 토비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이 작은 공주님은 웃고 있는 게 어울린다. 놀라거나 울거나 슬퍼하거나, 그런 건 좋지 않다.
“괘, 괜찮아. 토끼는 살던 곳에서 도망가지 않을 거야.’
토비도 잘은 모르지만, 예전에 하인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토끼는 갔던 곳으로 다시 향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토비의 말에 도로시가 기쁜 듯이 웃었다.
“진짜 다행이다. 토끼 왕국을 만들려면 토끼가 반드시 필요하거든. 도로시가 잡으러 갈 때까지 토끼가 아기를 낳으면 안 되는데.”
“….”
왜 그럴까. 토끼가 많을수록 많이 잡아올 수 있으니 좋은 게 아닌가?
마치 토비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도로시가 입을 열었다.
“엄마 토끼랑 아기 토끼가 헤어지면 안 되잖아. 도로시랑 오빠랑 둘이 가면 엄마 토끼랑 아빠 토끼만 잡을 수 있으니까. 아니면 아기 토끼랑 엄마 토끼랑? 아! 안 된다. 결혼하려면 엄마랑 아빠 토끼여야 하잖아. 그럼 아기 토끼가 불쌍해져.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잘 모르겠다. 그냥 모두 잡아오면 되지 않을까?
애초에 토끼들의 사정을 살펴줄 필요는 없을 거다.
‘꽃의 공주님이라 그런가.’
인간인 토비와 달리 꽃 공주님은 마음이 너무 여리고 착한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가만히 스튜 그릇을 보는데, 도로시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도로시가 대장이야. 사냥할 때는 대장이 있어야 하거든. 그래도 좋아?”
“…응.”
얼굴이 가깝다. 자신의 더러움이 묻을까 몸을 조금 뒤로 물리자, 도로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빠한테는 부대장 자리를 줄게.”
“삐잇!”
옆에 있던 하얀 뿔토끼가 갑자기 발로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엄청 빠르다.
조금 화가 난 것 같은데 괜찮나. 잡아먹히면 어쩌지.
‘귀, 귀엽게 생기기는 했지만… 저것도 괴물일 테니까.’
조금 겁이 나 몸을 움츠리는데 도로시가 뿔토끼에게 말했다.
“하지만 오즈가 제일 어리잖아. 너는 아기니까 부하를 하는 거야.”
작아도 괴물을 부하로 두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꽃공주에게 반대하고 싶지는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토비는 허둥대기만 했다.
아니, 그전에 영주님의 숲에서 마음대로 토끼를 잡아서는 안 된다.
‘꽃공주님은 영주님 딸이니까 괜찮으려나.’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전의 영주님하고는 말은커녕 가까이에서 얼굴을 본 적도 없었는데, 지금은 영주님 바로 앞에 있고 그 따님하고는 말까지 한다. 심지어 나란히 앉아있다.
‘너무 이상해.’
공주님과 영주님 부인에게서는 뭔가 좋은 향기까지 난다.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것 같은 썩은 내가 아니다.
꽃향기처럼 아주 좋은 냄새였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꽃의 공주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스튜를 다 먹었다.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그것도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본 건 처음이었다.
꿈같은 시간이 조금 느리게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순간이 끝나는 게 아쉬워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섬주섬 빈 그릇을 챙겨 드는데, 영주님 부인이 다시 스튜를 부어주었다.
“어….”
“식사는 느긋하게 해도 돼. 아직 도로시도 다 먹지 않았고, 너도 조금 더 먹어야지. 네 이야기도 좀 듣고 싶고.”
영주님 부인이 부드럽게 웃는다.
이렇게 예쁜 사람도 처음이지만 이 정도로 길게 말해주는 사람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야, 쓰레기, 이리 와, 저거 해, 멍청이 정도의 말 밖에 들어본 적이 없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안절부절못하고 엉덩이를 들었다 다시 내리는 걸 반복하자, 도로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빠는 뭐가 되고 싶어?”
“어….”
“도로시는 방금 정했는데, 사냥꾼 대장이 될 거야. 멋지겠지? 오빠는?”
꽃공주의 질문은, 영주님 부인이 토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토비가 가만히 있자, 도로시가 얼굴을 토비와 그릇 사이로 빼꼼 들이밀었다.
“뭐가 될 거야? 할 거 없으면 도로시처럼 사냥꾼 할래?”
“… 나, 나는 하인이 되고 싶어.”
“하인?”
꽃공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조금 이상하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인이 되면 정기적으로 돈과 원단을 받는다.
그러면 제대로 된 옷을 만들어 입을 수 있다.
신발도 살 수 있을 거다. 물론 사본적은 없지만.
돈을 내면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살 수 있다고 들었다.
무엇보다도 영주관의 하인 목록에 이름이 올라간다.
그렇게 말하자 꽃공주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목록에 이름이 있으면 좋은 거야?”
“응.”
“뭐가 좋은데?”
“….”
설명하기는 어렵다.
토비는 조금 헤맸지만 꽃공주는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토비가 말하기를 계속 기다렸다.
왜인지 영주님과 부인도 조용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타닥거리며 장작 타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그 소리가 마치 시간이 걸려도 되니까 천천히 말하라고 등을 밀어주는 것 같다.
“… 증… 증거야… 목록은….”
태어나 한 번도 이곳에 살고 있다는 흔적을 새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일할 때도 사람들 눈에 보이지 말라고 명령되어 있었다.
항상 구석에서 조용히 처박혀 일하고 식은 밥을 먹었다.
토비라는 이름을 누가 붙인 건지도 몰랐다. 그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드물게 그를 토비라고 불렀다.
이대로 영주관 구석에서 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는 게 그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하인 목록에 오르면 봉록을 줄 때 이름이 불린다.
야, 너, 멍청이라는 말 대신에, 정확하게 토비라고 불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토비가 여기에서 살아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고용되어 영주관 어딘가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는다.
“도로시는 목록이 없는데…. 나도 흔적이 남았으면 좋겠다.”
꽃공주가 중얼거렸다.
괜찮아, 공주한테는 영주님과 부인도 있고 그 옆에 토끼 괴물도 있으니까. 물론 덩굴도.
목록이 필요한 건 토비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토비는 살짝 꽃공주를 훔쳐보았다.
불빛을 받아 금빛 머리가 춤을 추는 것처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시시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꽃공주한테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꽃공주는 여전히 반짝반짝한 빛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
예쁘다.
이 꽃공주님을 위해 일하는 하인이 되면 정말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토비는 흠칫 놀라 머리를 털었다.
자신이 정식 하인이 되다니, 그런 일은 없다.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
헛된 꿈을 꾸면 뒤에 찾아오는 실망이 큰 법이다.
그때, 토비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영주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운이 좋구나. 마침 하인을 구하고 있었거든. 게다가 우리는 타이론 말을 잘 모르니까 정말 잘 됐다. 토비, 네가 우리의 첫 번째 하인이 되어주겠니?”
“어!”
토비가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 하는데, 도로시가 손뼉을 쳤다.
“잘 됐다. 그러면 이제 도로시만 목록을 찾으면 되겠지. 도로시는 사냥꾼 목록에 올라가고 싶어.”
“삐이?”
“오즈도 올려줄게. 아, 오빠도 올려줄까? 나중에 목록을 찾으면 오빠 이름도 올려줄 거야. 목록이 여러 개면 무지 좋겠다.”
“어….”
어리둥절한 가운데 토비가 하인이 되는 게 정해진 것 같다.
봉록은 차차 정하기로 했다. 영주님은 아직 하인들의 봉록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한다.
“가, 감사합니다.”
왠지 꿈을 꾸는 것 같다.
토비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영주님 부인이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토비.”
“… 어… 네….”
이렇게 부드러운 말을 들어본 건 처음이다.
무엇이 어떻게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는 상태로 대답하고, 잠시 뒤에는 뭉그러진 고기가 들어간 스튜를 또 한 번 받았다.
“….”
죽을 때까지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오늘 이 순간 다 써버린 걸지도 모른다.
‘나, 내일 죽나.’
왠지 그럴 것 같다.
이렇게 행복한 날이 또 올 것 같지는 않으니, 그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행복하게 죽는다면 그것만큼 복된 인생이 또 있을까.
고개를 숙인 채 스튜를 먹는데, 시커먼 눈물이 그 안으로 뚝 떨어졌다.
비록 괴물투성이의 영주관이지만, 지금부터 나는 하인이다.
하인 토비.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