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27)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27화(227/235)
#227 아이들의 미래
#227 아이들의 미래
며칠 뒤, 본격적인 수리를 하기 위해 마을의 목수가 찾아왔다.
목이 굵어 통나무 같은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목수는 영주관을 꼼꼼히 둘러본 뒤, 주환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영주님, 죄송합니다요. 저와 마을 남자들이 보수할 수 있는 건, 삐걱거리는 문이나 흠집이 나고 부러진 것 정도입니다. 영주관의 문이나 창문처럼 고급스러운 작품은 왕도나 베른령의 장인이 필요해요. 제가 만드는 물건으로는 이 영주관의 분위기를 망칠 겁니다.”
목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자신의 말에 주환이 화를 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무서운 모양이다.
화내지 않는다.
당연히 그의 말이 옳다.
몰라서 마을 사람들에게 수리를 맡긴 것이 아니었다.
목수가 말한 왕도의 물건은 당연히 비싸다.
가난한 윈우드 령의 사정으로는 지금 그런 곳에 돈을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 문짝의 장식과 고급스러움에 쓸 돈이 있으면 작물의 씨앗이나 거름을 사는 편이 훨씬 낫다.
정 문을 만들어 달 수 없다면 차라리 천막 천을 달 생각이었다.
그렇게 설명하고 어떻게 방법이 없는지 묻자, 목수가 멍하니 주환을 올려다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저… 이 건물은 영주관인데요. 귀족님들이 머무는 곳에 천막 천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다시 한번 설명해야 하나.
주환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 목수한테 방법이 없으면 정말로 천막천으로 문을 막고 겨울을 맞아야 한다.
가급적 그 꼴은 면하고 싶었다.
“이 마을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작령 전체가 모두 굶어 죽을 판이니, 허튼 곳에 돈 쓸 여유가 없어요.”
제발, 알아들어줘.
지금 이 시점에서 귀족의 체면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주환은 차근차근 다시 한번,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쓸 생각이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목수가 주저하면서 힐끔힐끔 주환을 보았다.
몇 번이나 말을 하려다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문다.
그리고 마침내 꿀꺽 침을 삼키며 말을 꺼냈다.
“그… 사실 이곳의 문짝이나 창문을… 모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완벽한 건 아니고 흠집이 있거나 쪼개진 놈이 많겠지만요.”
목수가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죄, 죄송합니다, 영주님.”
목수가 몸 전체를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사, 사실은….”
주환이 촌장을 통해서 이전의 일은 불문에 부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영주가 말은 너그럽게 하지만, 막상 눈앞에 영주관의 물건이 보이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분 나쁜 것은 확실할 거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영민들이 훔쳐 간 영주관의 물건은 곳곳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져 있었다.
영주한테 돌려준 뒤 마음 편해지고 싶어도, 그 뒤에 혼날 것이 무서워서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영주관의 물건을 마음대로 자신들이 쓸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불가능했다.
전 영주와 달리, 주환은 하루 한 번 정도는 꼬박 마을로 나가 여기저기 살펴본다.
들킬지 모를 위험을 안고 영주관 물건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목수는 그렇게 줄줄이 말한 뒤 넙죽 엎드렸다.
목수는, 계속 두려워 떨면서 이대로 사는 것보다는 이실직고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주환은 목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잘 됐군요. 그 물건들을 모아주세요. 자신이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 우선 촌장과 당신이 한데 모으면 됩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화… 화내지 않으시나요, 영주님.”
“불문에 부친다고 이미 말했으니까요. 남자가 한입으로 두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물건을 모으면서 수리와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은 차차 확인해 주면 됩니다. 너무 자잘한 곳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곳까지면 돼요.”
“그건….”
“당신들에게 부담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부터 영주관의 수리는 급격히 빨라졌다.
겨울에 천막천 치고 사는 꼴은 면하게 된 것 같다.
다행이다.
*
영주관 수리가 진행되면서, 부인회 여자들의 태도도 변했다.
더 이상 리지를 세균 대하듯 하지 않았다.
리지와 반대 방향의 벽에 붙지 않고, 제대로 같은 공간에 “뚝” 떨어져 앉는다고 한다.
두려워하지 않는 건 아니다.
여자들과 리지의 관계는 여전히 멀었다.
그래도 하루에 몇 마디씩은 대화가 오간다며, 리지가 매우 기뻐했다.
방긋방긋 웃는 리지의 얼굴이 떠오르자, 주환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기쁨이 너무 소박해.’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녀가 기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마수나 괴상망측한 소문을 제외해도, 영주 부인과 평민이라는 차이가 있다.
본래 적국이라는 점도 문제였다.
모험가 마을과 달리, 리지는 이곳에서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면, 가족 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당연히 기뻤겠지.
문득 하늘에 떠 있는 해를 올려다보면, 이제 슬슬 리지를 마중 갈 시간이었다.
부인회가 끝날 무렵이다.
주환은 영주관 수리의 감독을 아버지에게 맡기고, 슬슬 영주관을 나섰다.
마을로 들어가, 부인회 건물이 보이는 곳에 멀찌감치 선다.
그 사이 주환의 행동 패턴을 파악한 마을 사람 몇 명이, 일부러 근처로 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갔다.
주환 역시 받아들여지고 있다.
좋았다. 영원히 괴물 취급이 아니라서 정말 좋았다.
잠시 기다리자, 한참 멀리 있는 건물에서 리지가 나왔다.
여전히 도로시와 단둘이었다.
아직까지는 부인회 여자들과 함께 나올 정도로 가까워지지 못한 모양이다.
항상 리지가 나오면, 약간의 시간을 두고 부인회 여자들이 무리 지어 나온다.
“….”
오늘의 리지도 어제와 비슷했다.
조금은 기쁜 듯, 그리고 조금은 우울한 듯 보였다.
아침에 나갈 때, 오늘에야말로 부인들과 함께 나오겠다고 혼자 다짐하는 것을 보았다.
뭐, 매일 하는 다짐이긴 한데.
실패해서 약간 우울해진 거겠지 싶다.
주환은 가만히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리지와 도로시가 건물에서 조금 멀어지면, 그 뒤는 아이들의 차례다.
도로시가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아이들도 쿠키에 관심이 많은 건지, 이 시간이 되면 마을 꼬마들이 몰려온다.
지금도 도로시가 나오기 조금 전부터 꼬마 몇 명이 근처에 모여 있었다.
부인회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다.
도로시가 나오자 아이들이 조금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이들이 도로시를 보고 수군거린다.
도로시가 손바닥을 모아 펼치자, 리지가 그 위에 과자를 수북이 놓았다.
도로시가 작은 손 위에 과자를 올린 채 아이들을 향했다.
제일 먼저 도로시에게 다가간 아이는 일전에 부모를 잃었다던 여섯 살짜리 여자애였다.
그 아이는 그다지 도로시를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부모가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던 거라고 들었다.
하지만 이제 금지령은 풀렸을까.
여자애가 도로시와 이야기를 나누며 과자를 몇 개 집어먹었다.
그 틈에 남자애 한 명이 다가와 과자를 움켜쥐고 도망쳤다.
남자애가 아이들 무리 뒤편에 서서 뭔가 말한 것 같다.
도로시가 큰 소리로 말했다.
“도로시는 괴물 아니야! 아빠가 그랬어. 도로시가 괴물이면 너는 왕괴물이라고. 자꾸만 도로시 괴물이라고 하면 앞으로 너는 왕괴물이 될 거야! 엉덩이에는 뿔이 나고 입으로는 덩굴이 나온다구! 알겠어?”
아니, 아빠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과자를 가져 간 남자애가 겁을 먹은 모양이다.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 그런지 놀라거나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아이한테 왕괴물이라고 놀린다.
주환은 피식 웃었다.
아이들 무리와 도로시와의 거리가 어제보다 가까워져 있었다.
2미터도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몇 배나 멀리 뚝 떨어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큰 발전이다.
도로시가 아이들과 함께 과자를 먹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6살 여자아이가 과자를 다 먹어갈 무렵, 다른 여자애 한 명이 도로시에게 다가갔다.
도로시 손에 남은 마지막 과자는 그 아이의 것이 되었다.
좋았어, 또 한 명 과자로 유인할 수 있었다.
리지와 도로시가 이쪽으로 걸어오자, 주환은 숨듯이 서 있던 건물 뒤편에서 나왔다.
도로시가 그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아빠! 도로시가 이겼어!”
그래, 보고 있었다.
도로시가 자랑스러운 듯 코를 흥 울렸다.
“도로시가 울렸어! 도로시는 용감해서 안 울었는데. 할머니가 그랬거든. 누가 도로시 한 대 때리면 두 대 때리래. 맞고만 있으면 얕잡아 보여서 바보 된대. 근데 걔는 때리지 않았잖아. 그래서 도로시가 울려준 거야.”
어머니….
주환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어쩌면 이 세상에서는 어머니의 교육이 옳은 걸지도 모르겠다.
리지를 보자, 그녀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는 모양이다.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
그날 저녁 가족회의가 열렸다.
여자아이를 기르는 방법에 대한 토론의 장이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과묵한 분이기도 하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반대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는 주환과 리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은 뒤,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환이 너는 도로시를 공주처럼 예쁘게 기르고 싶고, 리지는 도로시가 결혼하면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는 정도로는 가르치고 싶은 거지? 그게 남편한테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거고?”
그런 생각은 없었다.
주환은 그저 도로시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었으면 할 뿐이다.
모험가가 되고 싶다면 모험가로,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으면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신부로, 그렇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 얘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자신은 도로시의 미래를 너무 꽃밭으로만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
그래, 어쩌면 어머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무의식중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리지를 아끼는 것처럼, 누군가 도로시를 그렇게 사랑할 거라고.
어머니가 주환과 리지의 얼굴을 차례로 보았다.
“우선, 이 세계에서는 여자든 남자든 얕보이면 끝이야. 내가 여기에서 오래 살면서 느낀 거다. 환이 너는 아직도 지구 감각이 빠지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건 너 정도일 거야. 굳이 싸우지 않아도, 상대편이 알아서 피할 정도의 덩치와 힘이 있으니까.”
“….”
“하지만 도로시는 너처럼 살 수 없어. 여자는 이 세상에서 입장이 약하지. 지구에서처럼 예의범절 깍듯이 챙기며 살다가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마냥 얕보일 뿐이야.”
어머니의 눈썹이 찌그러졌다.
“남자는 몰라. 이곳에서 여자로 살아봐야 진짜 그 실정을 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대접받고 살려면, 힘이 약해도 일단 반격해야 해. 참기만 해서는 정말 끝도 없이 당한다구.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덤벼야 겨우 사람대접받는 곳이다.”
어쩌면 어머니도 처음에는 지구에서와 다른 이곳 생활에 힘겨웠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진정하라는 듯,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머니는 깊이 심호흡을 한 다음, 리지를 보았다.
“리지, 안 됐지만, 도로시는 네가 바라는 것 같은 여자는 안 될 것 같다. 나도 살림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도로시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 같아. 이런 말은 정말 미안하지만, 솔직히 누가 봐도 굉장히 서툴지 않니.”
리지가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의 말이 맞다.
리지도 그렇게 생각해서 더욱 도로시에게 가르치려고 열심인 거다.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행복한 결혼생활은 하기 힘들 거다. 내가 볼 때는 도로시가 이 세계의 남자와 만나 행복해질 것 같지가 않아.”
어머니가 리지의 손을 꼭 잡고 주환을 보았다.
“내가 전에 들은 적이 있어. 아버지가 딸에게 잘해야 하는 이유는 말이다, 딸이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남자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라더라. 아버지가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거야.”
다정한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보다 매정한 사람을 만나면 그걸 깨닫는다.
자신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답해 주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은, 자신을 장식품처럼 대하는 남자를 만났을 때 그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도로시의 기준은 이미 제 아버지가 되어 버렸어. 이 세계의 어떤 남자를 만나도 만족할 수 없을 거다.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행복할 수 없어.”
예전에 리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 때문에 도로시의 삶이 망가지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주환의 고개도 수그러들었다.
어머니가 히죽 웃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이 세상에 그런 남자가 없다면 우리가 만들면 되지 않겠니?”
“아니, 어머니. 그건 불가능하죠.”
주환이 쓴웃음을 짓자, 어머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나랑 네 아버지가 널 기른 것처럼 기르면 될 것 아니냐.”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잖아요.”
어머니가 주환에게 눈을 흘겼다.
“남자 녀석이 패기 없기는. 토비가 있지 않니. 둘이 약혼한 셈 치고 지금부터 잘 교육해서 기르면 되지. 안 그래도 그 아이는 널 옆에서 보고 배울 거 아니냐.”
“그런 식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마음대로 묶으면….”
주환의 말을 어머니가 막으며 입을 열었다.
“애들이 커서 다른 사람을 찾으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지금부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키워나가면 반드시 좋은 사이가 될 거다. 첫눈에 반하고, 서로 쳐다봤을 때 전기가 반짝거려야만 사랑인 게 아니야. 감정이 서서히 변해가도, 그것 역시 사랑이야. 나랑 네 아버지를 봐도 그렇지 않니. 처음에야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밀고 밀고 또 밀어서 성립된 관계지만, 지금은 네 아버지도 나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잖아. 그렇죠?”
어머니가 갑자기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어머니의 뺨을 손가락으로 살짝 만졌다.
말로 하지 않아도 대답이 되었다.
보는 아들과 며느리가 부끄럽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도로시뿐 아니라 토비의 마음과 미래도 마찬가지로 다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마음대로 정해버리면 안 된다.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말해버리면 토비에게는 거절이라는 선택도 없었다.
그 아이는 성격으로도, 입장으로도, 거절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괜찮아. 모두가 행복해질 거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는 가장이 자식들의 혼처를 결정하잖아. 이 세계 룰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애들이 자랐을 때 제대로 마음을 잘 살피고 결정하게 하면 되지.”
“….”
“강제로 마구 밀어붙이려는 게 아니야. 나중에 아이들이 자랐을 때 제대로 선택하게 두면 되잖니. 우리는 그저 자리만 깔아주는 거야. 그 정도는 괜찮지 않니? 그리고 내 느낌으로는 토비와 도로시는 서로 잘 맞을 거다.”
리지는 어머니의 말에 설득된 것 같다.
조용히 생각하는 모습이 왠지 그렇게 보였다.
어머니뿐 아니라 리지까지….
문득 아버지를 보았지만, 아무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정말 그런 식으로 토비와 도로시를 묶을 생각인가.
주환은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입을 열었다.
“아무리 나중에 선택하게 한다 해도, 저는 아이들 미래를 미리 정하고 싶지 않아요.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자기 인생을 정하게 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주환은 그걸 막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 토비의 교육까지는 괜찮습니다. 우리의 상식이나 사고방식은 굳이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아마 곁에서 보면서 자연스럽게 토비에게 녹아들어 갈 거예요. 그건 교육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아마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보고 배울 태니까요. 하지만 약혼이니, 결혼이니, 그런 말은 아이들에게 하지 마세요.”
솔직히, 토비와 도로시가 좋은 사이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이다.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말 뼈다귀 같은 놈보다 주환의 마음도 놓일 테고.
하지만 아이들의 인생을 그렇게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의 것이다.
성공도 실패도, 아이들 스스로 겪어나가며 얻어내야 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어깨를 안고 나지막이 말했다.
“여보, 나도 그렇게 생각해.”
“… 알았어요. 환이도 당신도 그렇게 말하면 어쩔 수 없죠.”
어머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의 회의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이마를 맞대고 잠이 들어 있었다.
달빛이 토비와 도로시의 뺨에 머무르는 것을 보고, 정말로 이 아이들에게 그런 미래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