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Married Man in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30)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230화(230/235)
#230 산타를 만난 날이 모든 것의 시작
#230 산타를 만난 날이 모든 것의 시작
땅이 눅진하게 녹아버릴 듯한 여름밤이다.
이제 며칠이면 가을이라는데,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것 같다.
주환은 건물 전체에 약간의 바람을 일으켰다.
일종의 에어컨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건물을 식히는 데는 그다지 큰 마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면 영주관 전체가 얼어버리고 말 것이다.
주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는 의식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방안의 공기를 차갑게 식힐 수 있지만, 주환에게 그런 건 묘기에 가까웠다.
전혀 할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집중해서 마력을 조절하면, 못 할 것도 없지.
하지만 코끼리가 이쑤시개로 개미 간을 빼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조금만 신경을 늦추면 순식간에 공기가 차가워져, 물건이 꽁꽁 얼어버렸다.
주환의 마력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몇 번 정도는 노력해봤지만, 결국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처럼 공기를 냉각시키는 동안, 거기에 신경을 집중해야 하니 다른 일을 못하는 거다.
아버지는 동시에 몇 가지 일에 신경을 돌릴 수 있는데, 주환에게는 불가능했다.
주환보다는 적다 해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력은 이 세계 마법사에 비하면 훨씬 많다.
단순히 주환보다 마력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아버지의 마력 조종이 능숙한 덕분이겠지.’
목공은 형편없을 만큼 서툴러도 마력을 다루는 일은 또 다른 거구나, 하고 남몰래 감탄했다.
방 식히는 일은 포기한 대신, 주환은 가끔 건물 전체를 차갑게 한다.
건물의 열기를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여름을 지내기는 훨씬 편해졌다.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건물을 식힌 뒤, 주환은 리지의 몸에 얇은 이불을 덮었다.
리지가 몸을 뒤척이면서 이불이 몸에 감겼다.
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이불에 쏟아지면서, 가느다란 리지의 몸이 그대로 드러난다.
주환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조용한 숨소리가 작은 리듬이 되어 방안에 퍼진다.
리지가 숨 쉴 때마다 얇은 이불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왠지 이 세상에 단둘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다.
주환은 리지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며시 손을 그녀의 배 위에 올렸다.
손바닥 밑으로 단단한 배가 닿자 왠지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납작하던 리지의 배는 어느새 조금 볼록해졌다.
아이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똥배가 약간 나온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녀에게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얇은 몸 안에 아이가 있다니.’
생명의 신비니 뭐니 흔히들 말하지만, 그것을 정말로 그렇다 느끼는 것은 아마 부모라는 입장이 되어 본 뒤일 거다.
이렇게 묘한 기분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주환은 몸을 굽혀 아내의 배에 살짝 입을 맞췄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부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만나자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리지의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귀 뒤로 넘겨준 뒤, 주환은 조용히 방을 나갔다.
영주관 건물 밖에는 아버지가 도로시를 안은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도로시는 아버지 어깨에 작은 얼굴을 올리고 잠들어 있다.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아.”
주환이 도로시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아버지가 작게 웃었다.
“오늘은 졸리기는 한데 잠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야. 제 엄마 배가 볼록 나왔다고 흥분해 있었던 탓이겠지. 동생이 거기에 있다는 게 이상했던 것 같더구나. 졸려서 끄덕거리길래 재우러 나왔다.”
아버지는 주변에 약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신과 몸이 접해 있는 도로시가 더울까 걱정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바람마법을, 어머니는 물마법을 사용한다.
주환과 달리 부모님은 한 가지 마법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매우 능숙해서, 현대 지구의 이기를 상당 부분 이곳에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아버지는 에어컨과 공기총, 청소기 같은 느낌의 마법을 자주 사용하고, 어머니는 물을 회전시켜 세탁기처럼 활용하거나 우물물을 가느다랗게 뽑아 올려 수도처럼 써먹었다.
“또 산타가 왔겠구나. 어서 가 봐라.”
“네.”
아버지가 웃는다.
처음 방문한 이후부터, 매일 밤마다 산타가 온다.
이제는 최소한 한 번씩은 다 잡아서 익숙해졌을 텐데, 왜인지 몰라도 덩굴은 매번 산타를 둘둘 감아 붙잡아 두었다.
어쩌면 재미있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영주관 외곽으로 가자, 아니나 다를까, 산타가 덩굴에 감겨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 온 녀석이다.
게다가 덩굴이 혼나고 있었다.
“이렇게 느슨해서야 되겠습니까. 침입자가 담을 넘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잡다니, 그러다 잘못해서 주인님의 성소가 더러워지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죠?”
[….]“루돌프면 루돌프답게 주인을 위해서 최선을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털끝만 한 침입도 허락해서는 안 돼요. 요새 루돌프는 정말 허약해져셔…”
목소리를 들어보면 산타할머니였다.
전에 보았을 때는 친절하고 인심 좋은 할머니 인상이었는데, 어쩐지 느낌이 좀 다르다.
산타할머니가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었다.
“나 때는 말이죠, 산과 들을 쫓아다니며 매일 사방 몇백 킬로를 확인했어요. 그래도 침입하는 놈들은 또 침입합니다. 조심에 조심을 더해도 모자라다구요. 아시겠습니까?”
아, 이건 예전에 악신의 집에 침입했던 자들의 이야기인 것 같다.
잔소리는 그 때문인가.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는 그때의 일이 큰 상처로 남았던 거겠지.
‘전혀 잊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자, 왠지 불쌍해졌다.
산타할머니가 덩굴 때문에 기묘한 자세가 된 채로 다시 말했다.
“알겠으면 힘을 더 줘요. 이 정도 구속으로는 허수아비도 뿌리치고 도망가겠어요. 시래기죽도 못 먹었나. 왜 이리 힘이 없어. 상대가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수천수만 명이 닥쳐왔다고 생각하라구요! 지금 적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산타할머니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흥분해서인지, 여성스럽던 목소리가 점점 남자 같아진다.
흠, 역시 남자인가.
잘 모르겠다.
덩굴이 산타할머니 말에 열을 받았는지, 아니면 그 말에 따라 노력하는 건지, 점점 더 붉은 몸을 옥죄기 시작했다.
산타할머니 살이 덩굴 틈새로 불룩불룩 튀어나왔다.
너무 힘이 가해져,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다.
주환은 바로 옆에서 졸졸 따라오던 덩굴 가지를 툭툭 쳤다.
‘이제 그만해라. 저러다 진짜 터지겠어.’
덩굴이 주환의 생각을 읽고 굼실굼실 몸을 움직였다.
산타할머니를 얽매고 있던 가지가 조금씩 힘을 풀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있던 산타할머니의 고개가 겨우 조금 움직였다.
“아직 멀었어요. 이 정도 가지고야, 내 전성기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못하겠네.”
산타할머니가 투덜거리다 문득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고, 겨우 주환이 온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
산타할머니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산타할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드럽게 바뀌면서 눈이 반달 모양이 되었다.
“주인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지난번에 부인과 따님이 카스타드 크림을 좋아하셨죠. 그 생각이 나서 조금 챙겨 왔습니다.”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리 완전한 할머니의 것이다.
덩굴이 내려주자, 산타할머니는 기쁜 듯이 주환에게 다가와 자신의 품을 뒤졌다.
붉은 옷 어딘가에서 커다란 보자기가 튀어나왔다.
공간마법인가.
어디에서 나온 거야, 이거.
“카스타드에, 케이크도 조금 만들어봤어요. 주인님의 부모님도 드시라고 넉넉하게 가져왔습니다.”
“고맙다.”
주환이 웃으며 받자, 산타할머니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주인님이 보양식을 판매하고 싶어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희가 그 포장 용기를 만들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래 주면 정말 고맙지.”
이 세계에는 일회용 용기가 없다 보니, 안 그래도 포장을 어떻게 해서 파느냐가 골칫거리였다.
그걸 산타들이 맡아주면 정말 한시름을 던다.
그렇게 말하자, 산타할머니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힐끔 주환의 안색을 살핀다.
“이런 말은 좀 주책일지 모르겠지만, 주인님도 보양식을 좀 드시는 게 어떨까요? 그러면 아이 생기기도 좀 쉽지 않을까 하는데요. 워낙 신의 몸은 아이가 깃들기 어렵지만, 지금부터 부지런히 노력하면 십 년 안에는 아기님이 태어나지 않을까요?”
아, 이런. 산타들은 아직 리지가 임신한 걸 모르고 있었나 보다.
주환이 말하지 않아도, 산타벼룩이 알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진짜로 그 녀석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런 걸 말해주지 않고.
주환은 약간 머쓱해진 얼굴로 어깨를 움츠렸다.
“리지가 임신했어. 아마 늦겨울이나 초봄에는 아이가 태어날 거야.”
“그렇죠. 아이가 빨리 생기면 좋죠. 겨울에는 좀 춥겠지만 아기님이 방에 있는 동안 날이 따뜻해지면, 백일이 지나서 봄바람을 맞을 수 있… 네?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주인님”
산타할머니가 온화한 얼굴로 말하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뒤늦게 주환의 말뜻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하지만 주환이 뭔가 말하기도 전에, 산타할머니가 허둥지둥하기 시작했다.
“늦겨울? 초봄이라구요? 맙소사. 얼마 안 남았잖아. 주인님이 드디어…. 수천 년을 기다린 끝에 아기님을 보시는가… 맙소사, 이런 일이. 당장 준비를 해야겠어요. 장난감! 아기님이 좋아하실 만한 장난감을 만들어야겠습니다. 눈이 팽 돌아버릴 정도로 멋진 걸 만들어드릴게요. 아, 빨리 다른 몸에게도 알려야지요. 다들 기뻐할 겁니다. 맙소사, 맙소사. 아기님이라고….”
산타할머니가 주환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바쁘게 말하고, 다시 빙글빙글 돌았다.
그렇게 기쁜 걸까.
주환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산타할머니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더니 달려갔다.
영주관 담벼락에 달라붙는다.
담을 기어올라가면서, 산타할머니가 주환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들었다.
“주인님, 보양식 그릇은 걱정 마세요. 저희가 멋진 걸로,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물론 아기님 장난감도 걱정 마시구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놈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저는 말이죠, 지금 당장 둘이 있다가 한 놈이 죽어도 모를 만큼 기쁩니다.”
주환이 웃자, 산타할머니는 더 큰 미소를 얼굴 가득 담은 채 영주관을 떠났다.
문득, 저 산타들이 어떻게 이곳과 산타마을을 오가는지 조금 궁금해졌다.
말을 타는 건 아닌 듯한데, 설마 걷거나 뛰어다니는 걸까.
다음에 한 번 물어봐야겠다.
잠시 소란스럽던 공간은 산타할머니가 떠난 것으로 이내 조용해졌다.
다시 영주관 건물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여전히 도로시를 안은 채 넓은 영주관 안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한 팔로 아이 엉덩이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도로시 등을 천천히 토닥인다.
달빛 아래, 아버지의 미소가 부드럽다.
주환은 잠시 떨어져 그 모습을 바라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아버지, 이제 그만 들어가세요.”
“아, 그래.”
몸을 돌리려던 아버지가 문득 주환을 보았다.
“아, 얘야. 잠깐 애 머리 좀 봐주겠니? 낮에 넘어지기라도 했는지 혹이 난 것 같아. 뭔가가 만져지더구나.”
“….”
아버지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단순한 혹은 아닐 거다.
주환은 손에 마력을 둘러 조금씩 도로시의 몸에 흘려 넣었다.
피가 뭉치거나 머리뼈에 금이 간 것은 아니다.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조금 안심하고, 주환은 아버지가 말하는 곳에 손가락을 살짝 댔다.
이마에서 머리 중심 쪽으로 살살 쓰다듬어가자, 손가락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여기군요.”
이상하다.
살짝 튀어나온 부분의 형태가 묘했다.
꼭 나사못 끄트머리가 피부 밑에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마력으로 그 자리를 훑어보자, 뼈의 형태가 조금 이상하게 변형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이런 것은 없었다.
분명 며칠 사이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다. 아마 이 자리는.
“….”
심장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기억이 반딧불이처럼 깜박이며 되살아났다.
아주 먼 옛날의 기억이다.
악신의 짐승이 하나이던 시절, 보송보송한 흰 털을 날리며 숲을 뛰어다니던 그때.
지금의 연화나 오즈와 달리, 최초의 루돌프는 뿔이 크지 않았다.
지금의 도로시에서 만져지듯이 아주 작은 돌기 같은 것이었다.
손톱보다 작은 뿔이 털 속에 숨겨져 있었다.
바로 지금의 도로시 머리에 있는 돌기와 똑같이.
‘역시… 도로시는 악신의 짐승이었구나.’
유난히 서툰 손끝은 전생이 짐승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먹는 것만 보면 앞뒤 모르고 달려드는 것도, 나이에 비해 어린 행동도, 어쩌면 전생이 그랬기 때문에….
주환은 아이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긴 세월 돌고 돌아, 그토록 보고 싶어서 내 곁에 왔는가.
루돌프라는 짐승의 슬픈 성품에 가슴이 아파졌다.
“괜찮은 거니? 어디 이상한 건 아니냐?”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주환은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네, 괜찮아요. 별것 아니에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아버지가 안심한 듯 툭툭 도로시의 등을 두드렸다.
“이제 들어가자꾸나. 리지가 잠결에 너를 찾겠다.”
“네, 아버지.”
리지는 점점 더 악신의 부인과 닮아가고 있다.
처음부터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던 그녀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덧칠해 수정하는 것처럼 나날이 변했다.
처음 만났을 당시의 리지와 지금의 그녀는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다르다.
얼굴의 윤곽이나 모습이 달라진 것이 아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완전히 다른,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야말로 조금씩 모습을 덧칠해가는 것 같다.
그녀 역시 주환처럼 환생한 걸 거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산타들이 부지런히 선행해 기운을 모은 덕분이겠지.
악신이 과거를 되풀이하는 고통은 그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일 것이다.
‘산타가 아니었다면, 아마 오늘의 이런 날은 영원히 오지 않았을 거야.’
그들이 주환을 지구에서 이곳으로 불러들인 덕분에, 아마 그래서 여지껏 맞물리지 않았던 기어가 맞아떨어져 움직이기 시작한 걸 거다.
주환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세상이 산타들에게도 행복한 곳이 되기를.
그들이 행복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란다.